#도서협찬
#쇼펜하우어의행복론과인생론
#을유출판사
현대인들의 아픈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는 힐링물의 유행이 지나가면서, 지난 7-8년간 출판 시장에서 제일 인기있는 철학자는 단연코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따뜻한 응원은 커녕 뼈 때리는 쓴소리로 가득한 니체의 #철학 은 눈물을 삼키고 회초리를 드는 엄격한 부모님을 닮았다. 일시적으로 거짓 평화를 갖다주는 사탕보다는 몸에 좋은 쓴 약을 알아보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그런 니체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바로 니체가 흠모해 마지 않던 #철학자 #쇼펜하우어다. 니체가 쓴 맛이라면 쇼펜하우어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맞는 바람같은 매운 맛이다. 니체의 독설은 쇼펜하우어의 것에 비하면 순한 맛이다. 순한 맛의 철학자는 광증으로 젊은 나이에 정신을 놓았지만, 오만한 쇼펜하우어는 노년에도 형형한 눈빛을 장착하고 독설을 날렸다. 그의 독설은 콧대 높은 바그너의 무릎도 꿇렸다. 니체에겐 추남의 연모를 받는 냉미녀처럼 도도한 바그너였지만, 쇼펜하우어에게 니벨룽겐의 반지를 헌사하고도 형식적인 인사조차 돌려 받지 못했다.
깨알같은 글씨로 65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집대성되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1부의 행복론과 2부의 인생론, 국내 초역의 ‘색채론’과 해설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쇼펜하우어의 주저인 #의지와표상으로서의세계 에 미처 담지 못한 글들을 추려 출판한 것인데, 약 30년도 더 지나 쇼펜하우어가 이미 노년에 접어 들었을 때 출판한 것이니,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은 더욱 단단하게 여물고 혼란스럽던 곁가지들은 다 쳐내어져서 정수만 남았다.
결벽증이 의심될 정도의 도덕성, 거침없는 철학적 행보는 (본인은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상당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천재성에 빚을 지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이른 나이에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고, 평생 불화를 겪었으나 당대의 거장들과 교류하며 괴테를 소개시켜 준 어머니로부터 인문학적 천재성을 물려 받았다.
그러나 재능과 부를 모두 가진 엄친아인 쇼펜하우어의 인생관은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다. 쇼펜하우어가 바라보는 인생의 디폴트 값은 고통이다. 개체 보존 욕구, 종족 번식 욕구, 이기심에서 발생하는 삶에의 의지 (=욕망) 는 그것이 고통이던 혹은 (그보다는 나은) 무료함이던 간에 인생을 불행하게 한다. 행복이란 순간의 착각이며, 행복을 쫓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욕망을 통제하고 초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헛된 희망으로 미래에 행복할 것을 기대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현실에 충실하라고 한다. 성적,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사고의 유희일 뿐, 해탈을 통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행복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유일한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 쇼펜하우어가 위대한 철학자인 이유다.
P22 내면이 풍요로우면 운명에 많은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
P23 육체적 장점이든 정신적 장점이든 시간의 힘 앞에서 점차 굴복하고 만다. 그런데 도덕적 성격만은 시간도 어찌할 수 없다.
P48 속물은 정신적 욕구가 없는 인간이다.
P64 자긍심은 어떤 점에서 자신이 압도적인 가치를 지녔다는 것에 관한 확고한 확신임에 반해, 허영심은 이러한 확신을 타인의 마음속에서 일으키려는 소망이다.
P200 어릴 때는 인생행로에 중요하고 중대한 일이나 인물은 요란하게 등장할 걸로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일이나 인물 모두 아주 조용히, 뒷문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슬쩍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250 오직 현실만이 실재하고,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사고의 유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251 우리 인생의 여러 장면은 거친 모자이크 그림과 같다.
P376 진리는 적나라할수록 더없이 아름답고, 그것이 주는 인상은 간단한 표현일수록 더욱 심오하다.
P507 인간의 공허함과 단조로움으로부터 생겨나는 사교에 대한 욕구는 인간을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불쾌감과 반발심으로 인해 다시 떨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정중함과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