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의 소설을 좀 싱겁다거나 2%부족한 소설이라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건 이 작가가 도달하고 싶어하는 그 지점이 결국 우리 모두가 도달해야 될 지점이기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좀 더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타인을 비난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또 때로는 손을 내밀면서...그렇게 살아가기를 작가는 바라고 그의 소설을 읽는 우리도 바란다.
알지도 못하고 좋아했던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왜 좋은지 옆에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책. 그 목소리는 조용하고 다정하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과거의 어떤 지점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그림, 그 그리움의 실루렛을 만지작 거리는 느낌이다. 좋은 책 한 권은 풍성한 만찬과 같은 포만감을 준다.
사피엔스만큼 기발하고 멋지며 총균쇠만큼 지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인문철학건축서? 인류는 강수량 때문에 다른 공간과 문화를 구축하며 살다가 서로 만나면서 동서양의 융합이 이루어졌다. 미래는 기계와 인간의 융합 시대. 그곳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것이 남은 과제다. 이 방대한 책의 간략한 요약은 결국 미래에도 기술 보다는 인간이며 그 인간성의 핵심은 항상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과거와 미래의 융합에서 창조의 꽃이 핀다.
근 한 달 동안 천천히 이 책을 읽었다. 하야시 후미코...타고난 방랑의 기질과 야생마 같은 성격. 사랑스럽고 열정적인 이 여자에게 굶주린 삶이란 가혹한 형벌도 문학에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제는 너무 친숙한 이 여인과 헤어지려니 아쉽다. 매일 밤 흐린 스탠드 아래서 하야시 후미코를 읽었던 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