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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다정한 편견
나는 편견을 사랑한다
아름답고 올바른 편견이 절실한 시절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620/pimg_7943391171226529.jpg)
이 책은 소설가 손홍규가 지난 2008년부터 3년 반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묶은 산문집
이라고 한다. 당시에 썼던 180여 편의 글 중에서 138편을 가려 엮었다.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우직하고 따뜻한 애정,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진실한 주장을 담았다.
개성 있는 문체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손 작가 특유의 필치가 돋보이며, 짧지만 매 꼭지마다 강한 울림과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편견이란 절대로 다정할 수 없는데 제목을 보면서 어쩌면 역설적 표현을 한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래' 다정한 편견도 있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비록 짧은 글 한 편의 이야기지만 책 전반적인 내용 역시 다정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면 충분히 가슴 따스하다.
저자와 같은 나이지만 왠지 저자가 나보다 한참이나 인생의 선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생각 때문이리라. 하지만 도시에서 자라 시골을 잘 모르는 탓에 더욱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글 하나 하나가 어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된장국 같은 느낌이다.
얼마전 응답하라 1994가 유행했을 때 사실 오래전 추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X세대로 명칭되는 신세대의 출현이었다.
그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새로운 신인류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X세대도 어느새 지금의 N세대에 비하면 어른이 되었지만 새로운 문화의 출현에서 여전히 X세대가 회자될 정도로 당시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런 X세대 이면서 동시에 주변에 머문 아웃사이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치 나이 지긋한 노년의 작가가 짧은 수필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사유도 깊어 어떤 사물이나 공간을 가지고 다양한 책과 사상가의 이야기를 덧붙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려간다.
이제 막 사십대가 된 작가가 쓴 것이라고 하기엔 소위 글빨이 예사롭지 않다.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작가란 아무나 될 수 있지만 누구나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 옳다고 믿는 것들이 떄로는 사회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며 개인이 그르다고 믿는 것들이 또한 반대로 판명되기도 한다.
누군가 공권력은 더렵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편견인가 편견이 아닌가 여섯명이 비명에 죽어 갔는데도 진압 당사자인 경찰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이건 편견인가 편견이 아닌가 나는 이런 물음 앞에서 갈등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 라고 한다면 이건 편견인가 편견이 아닌가" 이 글을 읽으면서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란 글이 생각났지만
어쩌면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편견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편견도 보기 나름이다.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금 새기게 되는 지난날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은 작가의 따뜻한 심성이 엿보이는 가족과 고향 이야기들이다.
가장 일찍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드는 어머니의 바지런함을 무심히 넘겼다가 나이가 들어 돌아보는 그 시절의 어머니 이야기,
탈곡을 끝내고 돌아온 지친 아버지에게 건넨 어머니의 설탕물맛, 돌아가신 고모가 고봉밥을 내놓으며 ‘싸목싸목’ 먹으라고 했을 때의 그 어감,
그리고 고향에서 소를 판 돈으로 자신의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걸 알고 교수에게 F학점을 요구하고 교학과를 찾아가 등록금을 돌려달라고 떼쓴 이야기 등등,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고백을 들을 수 있다.
글의 곳곳에서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찾을 법한 풍경들, 언젠가 사라지고 말 존재들에 대한 소회가 묻어난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2부 ‘선량한 물음’ 역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나 사회에 관한 성찰과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학교 다닐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무렵의 한 토막. 폭설이 내린 어느 날 배달을 나갔다가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엎지른 음식값과 깨진 뚝배기값을 걱정하며 복잡한 심정으로 식당에 돌아왔는데, 식당 주인은 걱정스런 얼굴로 ‘괜찮니?’라고 묻는다.
그 선량한 말에서 작가는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배웠단다.
또 한 토막.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개울가에서 빨래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어차피 빨래할 옷,
함부로 한들 어떠냐 했던 어린 시절의 잘못된 생각을 타락에 빗대어 말한다.
우리는 ‘타락하지 않아서 인간다워지는 게 아니라, 타락의 속도를 늦출 용기를 지녀서 인간다워지는 존재’라고.
이렇듯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아포리즘을 가득 담고 있다.
책 앞에서 그대는 경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3부 ‘바느질 소리’는 습작시절까지 해서 20년 가까이 소설을 창작해온 작가가 왜 글을 쓰고,
무엇을 쓸 것이며,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등,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책 읽는 자세에 관해 말한다.
‘좋은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겪었던 것들에 비추어 스스로 상상하게 해준다’라거나,
문장의 경우 도덕성이란 우리가 글로 옮기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이해를 뜻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작가 스스로
‘시대의 증인’이 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글을 써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종종 글쓰기 강연을 다니는 저자는 문학이나 독서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는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 방법은 모르지만 자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고 운을 뗀다.
즉 ‘경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대는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움을 수긍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것이다.
참다운 용기는 전염성이 강하다
4부 ‘다정한 편견’에서는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을 들춰내고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생활상을 직설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노동자의 절규가 느껴지는 현장에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본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환경과 평화를 위해 모두들 행동에 나서자고 말한다.
결코 관념에 그치는 주장이 아닌,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저자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진솔하다
그의 청춘을 제대로 견주고 싶으니 차라리 별책부록을 쓰게 해달라. 이것이 처음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정적인 그를 모르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사랑에는 도취가 없고 희망에는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