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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평점 :
[스포 다수 있습니다. 책 읽기 전에 내용 알기 싫으시면 읽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지명도로 치면 대통령과 유재석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 국민의 90% 이상에게 신뢰받고 사랑받은 사람, 매일 저녁 같은 시간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1500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자기 얼굴을 보여 줬던 사람, 긴 시간의 카메라 앞에서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적 없고, 발음 한 번 꼬였던 적이 없는 사람, 재벌가의 며느리, 고위 공무원의 아내... 당대 최고의 아나운서 최선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교외의 외딴 집에서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대 최고의 아나운서가 강간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은 당연히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일단 당연히 유력한 용의자는 최선우의 시체가 발견된 그 집의 주인일 것이다. 그 집의 주인은 미술교사 서인하였다. 근처 낚시터에서 붙잡힌 서인하는 경찰 조사에서 계속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검찰청에서는 갑자기 돌변한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강주희 검사 앞에서 서인하가 내뱉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최선우와 자신이 섹스 파트너였다는 것. 그것도 SM(사도마조히즘) 커플이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자신과 최선우가 그날 다툰 건 사실이지만 자신이 집을 나올 때는 최선우가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후에 2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것 같다고... 최선우가? 세상에 알려진 고상한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충격적인 이야기라 믿기 어려웠으나 사실 타살이라는 명백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다. 서인하의 일관된 진술과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들 속에서 수사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서인하는 줄곧 둘이 연인 사이였다고 주장하지만... 서인하가 최선우를 스토킹하고 납치하고 강간한 것까지는 본인의 자백이 없다 해도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살인까지는 아니었다. 그걸 입증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최선우를 살릴 수 있는 시간에 적극적 구명 행위를 하지 않은 죄를 더할 수 있을 뿐? 그럼 15년 정도로 결론이 날 것이다. 아무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된 하나의 증거는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그것은 바로 서인하가 연쇄 방화 살인범일수도 있다는 것? 최선우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유명한 여자들이 이미 그의 손에 희생됐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연쇄 방화 살인이 더해진다면 사형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우연히 발견된 그 증거는 너무나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서인하는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 되어 결국 사형을 확정 받았다. 사건이 다 해결되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강주희 검사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서인하로부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곳에서 듣게 된 사건의 진실.... 그것이 서인하의 ‘사랑’이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해주지 않았던 여자지만 자신이 사랑했기에, 그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린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소실점>은 검사실과 재판정이 실시간 무대이고, 그 공간을 채운 이야기는 강간, 불륜, 살인, 방화 등이지만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단지 예쁘고, 짜릿하고, 상큼하고, 힘이 되는 그런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것... 참.. 이런 사랑도 사랑일까..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건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선우의 모습도... 원래 사람이라는 존재가 워낙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지만 이렇게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살 수도 있는 건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이 모를 정도로? 하.. 참.. 나는 최선우든 서인하든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끝까지 간다면, 무엇까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다. 참 어려운 사랑이야기인데, 소설 자체는 매우 몰입도 높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