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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평점 :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참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여러 에피소드들 중 우리사회가 가사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기억나는데... 읽으면서 가사노동은 당연히 여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러면서도 그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했다. 가끔 뉴스 보다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 가사노동시간에 있어서 남녀 차이가 특히 크고 불평등하다는 얘기 많이 들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정도의 차이이지 어쨌든 남자보다는 여자가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점이 놀랍기도 했고...
여자는 주로 결혼 후 아기를 갖게 되거나 낳게 되면 자의든 타의든 회사 일을 그만 두게 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일을 해도 여자보다는 남자의 임금이 더 높다보니, 여자가 일을 그만 두는 게 합리적이고, 아무래도 아기의 곁에 엄마가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일과 꿈 다 제쳐두고 아기를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지만 여자는 집에서 먹고 논다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 후 아기가 어느 정도 성장해 다시 일을 하려고 하면 그 사이 경력은 단절되어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아내가 있는 남자들은 그 사이 경력을 쌓고 경쟁력을 갖춰 자리를 잡는다.
물론, 남자들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회사 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물론 안다. 여자도 결혼 전에 사회생활 하지 않나. 당연히 알지. 힘들다는 거. 또,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면 어이없어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시선들, 집안일 하는 남자들을 불쌍하다고 보는 말도 안 되는 시선도 있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사정들을 어디 가서 당당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이해와 공감도 받지 않나... 노동의 가치를 스스로 주장하기도 하고, 인정도 받고 있지 않느냐 이 말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일 할 때 여자들 역시 가사 노동을 힘들게 하는데 가사 노동의 가치는 아무리 주장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느냐, 어려워봐야 얼마나 어렵겠느냐 툭하면 무시하고, 심지어 편하게 집에서 먹고 논다는 소리까지 한다.
경력 단절로 결혼 전 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지만 그래도 여자는 일터로 나간다. 전보다 급여도 더 적고, 인정도 덜 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또는 자신의 새로운 꿈을 위해 늦게나마 새로운 일터로 나가지만 문제는 이때도 여전히 가사노동은 여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이다. 여자는 집 밖에서의 일도, 집 안에서의 일도 해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 한다. 가정이 잘 굴러가지 않으면 여자에게 손가락질한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소리를 듣는다. 여자가 일을 하던 안 하던 똑같다. 집안일은 여자가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패턴이 너무나 당연시되어 있다. 이게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여자들이 결혼과 출산을 피하는 데에는 이런 가사노동의 불평등 문제도 크다고 생각한다. 여자들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공감된다. 여자들에게도 경력이 단절되지 않게 일 해낸 것만큼 인정받으며 경쟁력을 쌓아갈 수 있게 그동안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빨래를 해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집 청소를 해주고, 집안의 각종 행사를 잊지 않고 챙겨주고, 기타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뚝딱뚝딱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말.. 가사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