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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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소설은 모두 자전적 소설같다는 감상을 쓴 적이 있는데 에세이에서 그의 친구들을 보며 얘가 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유쾌한 사람이지만 진정 나와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구나 싶었던게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라면서 계속 사람 만나 수다 떨고 돌아다닌 이야기야.. 상상만 해도 기 빨려..

그래도, 옛친구들에게 연락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외적인 젊음과 내적인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듯,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영원할 줄 알았던 관계도 쉬이 퇴색되기 마련이다.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결속력의 중심에는 조하나의 마음 씀씀이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강한 친구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던 것 같다. 마치 아픈 고양이를 돌보는 것과 같은 그런 마음 말이다. 종미와 M 못지않게 깨달음에 호들갑스러운 나는 새삼모두에게, 심지어는 조하나에게도 조하나 같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나답지 않은 기특한 생각을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 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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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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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찌질한 사랑이라니,

수려한 글솜씨로 사랑의 본질을 논해 나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살짝 촉촉해지기까지 했지만 어느 순간 참을 수 없이 찌질한 아사리판이 펼쳐진다. 결국 건축학개론의 수지는 압구정 선배랑 잤다고 주장하는 남자들 같은 소란스러움이었다. 김연수 작가는 남자 작가라 그 부분에서 살짝 불신했는데(중간에 위험한 부분도 있었다. 젖이니 브래지어니 꽥) 그 찌질함에서 선영이를 끄집어내 준다. 지지리도 찌질한 건 광수와 진우 뿐이다. 다행이다.

86학번 평론가분의 서평은 진우만큼 찌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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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사랑할 때의 진우는 남자답게 믿음직하기도 하고 질투가 심하기도 하고 너무 사소한 것들에까지 신경을쓰면서도 한 번도 집에 바래다주지 않을 정도로 무심하기도 했다.
말했다시피 사랑 안에서 일어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세상의다른 모든 일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잘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일만은 모험을 겁내지 않는 젊은이들의 전공분야다. 젊은이들은 아직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혼자서 빠져나올 때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사랑이 되풀이될수록 그 관계 속으로 밀어넣을 만한 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쯤이면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더이상 헷갈리지 않게 되는데, 그건 이제 불타는 사랑이란 자신보다 더 어린 사람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나이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소진됐기 때문에 더이상 사랑에 소진될 수 없을 때, 우리는 사랑 외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실연의 상처로 멸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그럭저럭 굴러온 셈이다.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사람들 중에는 급기야 질투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느끼는 부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세상에 없다.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서는 시기심이라는 단어가 준비돼 있다. 그런 점에서 어휘력이 부족하면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만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한다. 즉 너무 알려고 하지 말아야만 한다.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일이다. 그건 무방비도시의 어둠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현대적인 사랑의 방식이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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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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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지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계속 곱씹게 된다. 어떤 시절을 살아내게 해준 힘이 다음 시절을 살아내게 해줄 힘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힘은 딱 그 시절에만 필요한 것인데 그 힘으로 계속 살려하면 추해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많고 많은 계절을 지내고 관조해야 나올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동안 참 이상하기도 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를 읽은 날, 이루말할 수 없이 외롭고 기괴한 상가에 조문을 다녀왔다.

엄마의 전화로 힘들었던 날, 깜빡이와 어머니는 잠 못이루고를 읽었다.

헐값으로라도 팔고 싶은 부동산으로 고민 중인데 무구를 읽었다.

나는 무장해제한 채로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작가는 모두 자기 나이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나이 든 화자는 과거를, 젊은 화자는 약간의 환멸을 보여주는 것이 극히 사실적인데 권여선 작가님의 ‘소녀같은 성인 여성‘의 문체가 너무 부드러워 문득 슬퍼졌다. 예순의 여성을 이룬 것은 그가 지내온 스물, 서른, 마흔의 삶이더라. 혹은 놓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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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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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가드닝은 특별하지 않다. 유독 잘 키우는 그린 핑거도 아니고 키우는 족족 죽이는 똥손도 아니다. 대단핫 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베란다와 거실에 화분이 가득한 우리 엄마 집 같은 정원. 이런 별 것 없는 소재로 글을 써내다니 이 사람은 진정 작가구나. 그래서 작가의 가드닝은가드닝 지침서도 소설도 아닌 일상 산문집이 될 수 있다.

김금희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자꾸 양희가 생각났다. 햄버거를 씹으며 오늘도 사랑한다고 말하던 양희, 폭팔하는 감정에 못이겨 달려온 필용에게 나무 같은 거 보라던 양희,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 않는다는 극본을 쓴 양희. 나는 너무 한낮의 연애가 그저 지나지게 밝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과도한 햇빛도 의미했을 것 같다. 이 또한 나무를 죽일 수 있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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