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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처럼 또 살아내야 할 하루다 - 제11회 권정생문학상 수상 작가 이상교 에세이
이상교 지음 / 오늘산책 / 2020년 11월
평점 :
시인이나 소설가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그들의 전문 글쓰기 분야는 시나
소설일지라도, 그 시나 소설의 매력이 강하더라도, 그들의
산문은 또 다른 느낌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느낌과 산문의 느낌이 상당히 다를 때도 많다.
이번에 펼친 산문집은 동화와 동시 작가의 산문집이다. 그러나 이 산문집은 동심의 나라 보다는
어른들의 세계에 더 가깝다. 무심한 듯이 써내려간 노작가의 일상다반사와 빠르게 휘갈긴 듯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 느낌이 좋았다. 그림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과 그림이 서로 어우러진 책이라니.
가슴에 슬픔이 가득
깃든 자는 걸어라.
길의 끝까지 걸어라. 슬픔의 끝까지 걸어라.
무심히 걸어라.
어느 사이 발목은 몽롱해질 것이며
발가락에는 물집이 생길지니,
새로운 슬픔이 돋기를 기다리게 될 터.
(p. 47, “돋을 자리”)
몸도 불편하고, 동거인도 없어 보여 쓸쓸해도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에서 건져올린 단상들만은 반짝반짝 빛난다. 그의 내면은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로 가득한가 보다.
기쁠 일도 특별히
설렐 일도 없건만
공연히 잠을 설치다.
청춘도 아니면서 앞날을 설계하다.
철들 날 멀다.
(p. 115, “철들 날”)
글은 분명 산문이지만, 시어 같은 감성에, 시처럼 줄바꿈이 되어 있어 산문 같은 시, 시 같은 산문이다.
내가 기꺼이 나무
아래 나무의자에 망연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까닭은,
하늘의 구름, 나뭇잎들이 작은 바람결에도 사부작대는
것을 보고 싶어서다.
방 안 무수한 먼지가 오색 빛을 내며
고요히도 춤추는 걸 본 적 있다.
세상에 춤추지 않는 것은 없다.
(p. 168, “춤” 중에서)
동화와 동시 세계에 대해서는 무지한지라, 이상교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의 삶에 대한 사랑이, 자연에 대한 사랑이 돋보이는
산문집이었다.
이따금 중랑천 둑에
가려면,
이따금 통닭을 뜯어 먹으려면,
이따금 옴살과 까칠과 변덕을 떨려면,
이따금 덜 된 뻥을 치려면
살아 있는 쪽이 조금 더 나을 것이다.
(p. 190, “이따금” 중에서)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건 작가의 그림이기도 했다. 글 내용에 맞게
그린 삽화의 느낌이 정말 좋았다. 농담처럼 또 살아내야 할 하루에, 그의
글을 읽으며 조금의 평안을 얻었다. 동화 작가의, 한 개인으로서의
또 다른 면을 들여다 본 기분이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 한 숨 돌리고 싶을 때 펴서, 한 꼭지씩 읽으면 힐링될 만한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