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뇌의 비밀 - 죽기 전까지 스마트한 사람들의 전두엽 단련법
와다 히데키 지음, 이주희 옮김 / 포텐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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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면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나름대로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느낀다. 어떤 할머니는 아주 작은 일에도 성을 잘 내셔서 눈살이 찌푸려 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연세가 더 많은 다른 할머니가 훨씬 젊어 보이고, 활기차고 밝고 열정적으로 살고 계신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이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는 스마트하고 젊고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누군가는 의욕도 없고, 감정 조절도 되지 않아 모두가 싫어한다. 노인의학과 정신의학을 연구하는 와다 히데키는 그 차이가 전두엽의 쇠퇴와 유지에 있다고 주장한다.
전두엽은 뇌의 앞쪽에 있으며, 25세가 되어야 비로소 모두 성장한다. 전두엽은 집중력과 의욕, 창의력, 감정 조절, 사회성, 공감 능력, 통찰력 등 고차원적인 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가 10대 때,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미숙했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전두엽이 발달하기 전의 모습이 어떤 지 알 수 있다. 전두엽은 25세에야 완성되고, 그제야 사람은 자제력이나 집중력, 판단력을 가질 수 있다.
이 중요한 전두엽은 4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꼭 노화가 아니더라도 외상, 뇌혈관 질환, 치매, 알콜 과다 섭취, 흡연, 스트레스 등의 요인으로도 뇌는 줄어들어 버린다. 전두엽이 쇠퇴하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보속증이 나타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변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어진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외롭고, 매사 의욕이 없으며, 세상 일에 관심이 없고,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 작은 일에 버럭 화를 내곤 한다. 이 책에 수록된 감정 노화도 테스트는 그래서 전두엽의 노화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두엽은 늦은 나이에도 충분히 단련할 수 있다. 흑백 논리에 물들지 않고 의견의 회색 지대를 고려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운동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읽기, 듣기 등 인풋보다는 말하기, 쓰기 등의 아웃풋의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와다 히데키는 그러면서 아웃풋보다는 인풋만을 강조하는 일본 교육과 의료 교육의 현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도 총명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전두엽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있다. 와다 히데키는 자신이 하기 즐거운 일, 또한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전두엽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는 바로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릴 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뇌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다른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관심을 끄는 아웃풋을 한다면,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뇌는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
그는 405060 나이대 별 전두엽 단련법을 제시한다. 40대부터 전두엽을 관리하기 시작해야 하며 50대는 반드시 운동해야 한다. 60대에는 가능하다면 일을 해야 한다. 꼭 보수가 높지 않더라도 최대한 현역으로 있기를 권고한다. 70대는 머리를 쓰고, 고기를 먹어 영양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한다. 80대는 이미 알츠하이머형 변성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즐기는 것이 좋다.
과거, 뇌세포는 재생되지 않아 나이가 들 수록 머리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이제 나이가 들어도 뇌는 충분히 가변성이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활발히 활동한다면 뇌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와다 히데키는 나이가 들어서도 전두엽을 관리하며 충분히 스마트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그 방법이란 것이 운동, 식생활, 수면 등 빤한 것이 아니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노화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전두엽을 단련하며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만년의 과제가 될 것 같다. 만약 당신이 40대 이상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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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한상원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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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왠지 니체에는 관심이 많다. 그의 철학이 어렵기도 하지만 은근히 매력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지만, 아무래도 원전으로 읽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위버멘쉬라거나,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의 비유, 영원회귀의 사상 등 그의 유명한 철학 개념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읽고 싶은 책이지만, 접근하기 어려워서 주저하고 있을 때, EBS Books에서 나온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에서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상세하고 쉽게 해설해주기도 하지만, 저자의 사견 역시 첨가해서 전해준다. 그만의 니체 철학의 해석이나 적용을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니체의 철학은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귀의 개념은 현재의 이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할 지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으로, 즉 삶을 긍정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삶과 인생, 자신에 대해 100% 무조건적인 긍정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경멸을 토대로 더 나은 존재를 향해 노력하는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
니체는 기존의 철학과 윤리, 종교를 부정하며 새로운 철학을 주장한다. , 낡은 서판을 부수고 새 서판에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한다고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저자는 니체의 철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니체를 수용하든 니체에 반대하든, 삶에 적용해야 할 것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말미에는 하이데거, 들뢰즈, 알랭 바디우가 해석한 각각의 니체 철학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어, 해석의 재미가 배가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주제로 쓴 교향곡 등의 음악에 대한 정보로 마무리되어 좀 더 흥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이 책 한 권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벽히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당히 짧고 축약적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핵심 사상과 메시지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니체나 철학 초심자라면, 한 번 읽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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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 인간 -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
제이미 배런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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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상 기를 쓰고 노오력하고, 노오력해서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는 말에 익숙하다. 학생 때는 쓰러져도 학교에서 공부하다 쓰러지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고, 회사에서는 야근에 특근에 절어야만 회사 좀 다닌다고 인정 받는다. 오죽하면 욜로나 휘게까지 주목을 받을 정도일까. 하도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 순간을, 오늘을 즐기자는 모토가 유행이 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즐거움을 미래로 연기하는 사람도 많다. 은퇴 후에 옷을 지어 입겠다고 예쁜 원단을 모아 두는 게 취미였던 한 여성이, 은퇴도 전에 과로로 병사하는 경우를 보면 그게 다 뭔가 싶다. 대학만 들어가면, 대기업에 취업만 하면, 집만 사면, 차만 사면. 끝도 없이 인생의 고난과 노오력 거리가 밀려 오고, 우리는 즐거움을 그 이후로, 또 그 다음으로 미루고만 있다.
그건 모두 사회가 전하는 메시지라고 제이미 배런은 역설한다. 우리는 모자라다고. 우리는 남보다 못하다고.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그래서 그런 우리를 뜯어 고치기 위해 모 기업의 제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우리는, 응당 과부하에 걸리기 마련이다. 과소비를 하고, 과소비를 메꾸기 위해 과로하고, 과로하면서 과하게 노력하고, 결국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제이미 배런은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메시지를 모두 내다 버리라고 조언한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만족하라고. 지금, 당장 즐거워지라고. 즐거움을 위한 활동에 시간을 적극적으로 할애하라고. 그렇다고 그가 조언하는 것이 모든 것을 그만 두고 놀고, 쉬고, 먹고, 자고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성실하고 꾸준하게 마음 깊이 원하는 것에 매진하라고 역설한다. 남보기 그럴 듯한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걸 다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이 되라고. 당신 인생의 주인공은 당신이니까.
제이미 배런의 일견 설득력있는 목소리는 이 시대의 과부하 인간들에게 해방을 가져다 준다. 그저 남을 따라, 더 높은 곳으로,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노오력만을 하다 죽는 사람이 되기는 싫지 않은가. 그의 목소리에 한 번 귀 기울여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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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지음, 고상숙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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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

아무리 욕심이 나도 무리는 하지 말 것.

근 서너 달을 몇 시간 안 자며 무리하다 번아웃이 와서 두세 달 즈음 골골 앓고 난 후 아프게 깨달은 것들이다. 난 그 동안 원하지도 않았던 잡다한 일들을 건사하느라 시달리면서도 하고 싶었던 일들을 욕심껏 벌였다. 한 무더기의 잡일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은 두 손 가득 담은 모래가 술술 빠져나가듯 잡히지 않았다. 바쁘고 고달프게 보내면서 아등바등하던 내 인생 자체에 커다란 회의가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그 순간 나는 의욕이든 건강이든 총기든, 또는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놓아 버리다시피 했다.
가장 어두웠던 날들이 지나고, 책을 펴도 한 글자 집중할 수 없었던 날들을 거치고, 방구석에 칩거하면서 바느질로 마음을 달래던 날들에 <세상 끝의 카페>를 만났다. 우연처럼, 인연인 듯, 차라리 기적에 가깝게.
이 책의 중심 메시지는 힘든 시간을 거친 내 깨달음과 맞닿아 공명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 이 책을 만났기 때문에 아픈 깨달음이 더욱 통렬해졌는 지도 모른다.

제 생각에 그 거북은…. 그 녹색 바다거북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 헛된 짓으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 같아요. 지금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진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 일을 하는 데 쓸 힘이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뭐 그런 걸 가르쳐준 게 아닌가요?
(51%)





이 책의 주인공은 쳇바퀴 같은 직장 생활에 지쳐, 그만 휴가를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나 교통사고 때문에 길이 심하게 막히자, “되는 게 없네.” 하면서 차를 돌린다. 그러나 그 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길을 잃고, 연료도 떨어져 가고, 배는 고프고, 하룻밤을 보낼 곳도 마땅히 없어 절망할 즈음, 세상 끝인 듯 황량한 곳에 신기루처럼 불을 밝힌 카페가 등장한다.





그는 그 곳에서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을 뿐 아니라, 그가 잊고 있고 외면하고 있던 삶의 중대한 질문과 마주한다. 바로 카페 메뉴판에 글자를 바꾸며 떠오르던 질문들이다.





당신은 왜 여기에 있는가?

죽음이 두려운가?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는 방법, 그 일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일들, 원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특징 등등을 배운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며 자랐건, 어떤 광고를 접하며 살았건, 그리고 일에 치여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건,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난 이걸 잊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 주변 상황이 내 인생에 온갖 영향을 미치는 걸 내버려 두었던 겁니다. 내가 골프공을 옮겨 어디에서 치건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듯이, 내 존재 목적에 대한 관심 역시 나만 갖고 있는 거죠. 내 운명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가 멋대로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운명이 나를 흔들어버리죠. 골프공을 옮길 수 있는 건 나뿐입니다.
(85%)

하루하루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거나,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딱히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죽어라 해 대면서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은 죽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일단, 돈을 벌고 원하는 일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은 은퇴한 다음으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으니.
주인공은 세상 끝의 카페에서 종업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고, 영혼까지 치유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세상 끝의 카페에 다녀온 후, 그는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도하기 시작하고, 그건 그의 인생에서 조금씩 지분을 늘려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 인생 자체가 멋진 이야기랍니다. 단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지, 또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죠.
(93%)

나는 이제, 재미없는 일은 모두 정리하고, 원하지 않는 잡일은 영혼 없이 대충 하고, 프롬프트 엔지니어와 핸드메이드 소품 작가의 길을 새롭게 걸으려 한다. 그 시작 지점이 될 뻔한 날들에 한 번 좌절되었으나, 크게 괘념치 않는다.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 것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고 매일이 설렌다. 보잘 것 없어만 보이던 내 인생이 조금은 더 나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이번 번아웃에서 배운 걸 꼭꼭 씹어 되새겨 본다.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것.
아무리 욕심이 나도 무리는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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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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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작가의 노란 책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 때는 이석원 작가의 정체도 모르고, 그저 서점의 서가 하나 가득 그 샛노란 표지의 책이 잔뜩 꽂혀 있는 모습에 이끌려 책을 사고, 그렇게 또 신들린 듯 읽기 시작했다. 마침, 그 때가 한참을 책을 잘 읽지 못하다가 다시 열심히 책을 탐하게 될 즈음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는 듯하다.

이번 이석원 작가의 에세이는 빨간 책이다. 그리고 이번의 에세이는 지금까지의 에세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에세이스트라면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마련이지만, 이번에 이석원 작가는 시선을 자신의 밖으로 돌렸다.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택배를 보고,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눈치챈 아파트 경비 아저씨, 오랜만에 만나게 된 어렸을 때 친구,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버린 블로그 친구, 음악을 할 때부터 알던 오래된 친구 등등.
그의 시선을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고 돌려준 편집자 덕에 이런 빨간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이 마음에 든다. 그의 조금 마음 여린 듯한, 그러면서 오만가지 걱정과 마음쓰임에 시달리는 시선이 어딘지 애달프면서도 섬세해보여 읽는 재미가 삼삼했다.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세상은 뭔가 원하고 바라고 잡으려고 하면 주지 않고 외면을 하다가, 포기를 해 버리거나 더 이상 그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되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바라던 것을 조금 생색내듯 내어주고 마는 것일까.
(p. 265)


페이지가 훌훌 넘어가는, 감성적인 듯하면서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이석원 작가의 목소리. 그가 목소리를 낮추고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한 에세이 한 꼭지 한 꼭지가 마음에 훅 들어온다.

가끔 인생이란 그저 짓궂은 신의 농담이 아닐까 상상해보는 건 하나뿐인 친구가 그렇게 거짓말처럼 갑자기 가버린 덕분인데, 오늘처럼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여전히 나와 같은 땅 어딘가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치 주유소에 들러 빈 연료통에 연료를 공급받는 자동차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p. 78)


역시 이석원 작가의 글맛이 난다. 그는 프로페셔널한 전문가의 말투를 갖지 못하고, 그저 이석원의 어투가 있을 뿐이라고 전문가의 분위기를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의 이 문체가 너무가 좋다. 처음, 노란책에 홀려 책장을 팔랑팔랑 넘겼을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이석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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