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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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작가의 노란 책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 때는 이석원 작가의 정체도 모르고, 그저 서점의 서가 하나 가득 그 샛노란 표지의 책이 잔뜩 꽂혀 있는 모습에 이끌려 책을 사고, 그렇게 또 신들린 듯 읽기 시작했다. 마침, 그 때가 한참을 책을 잘 읽지 못하다가 다시 열심히 책을 탐하게 될 즈음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는 듯하다.

이번 이석원 작가의 에세이는 빨간 책이다. 그리고 이번의 에세이는 지금까지의 에세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에세이스트라면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마련이지만, 이번에 이석원 작가는 시선을 자신의 밖으로 돌렸다.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택배를 보고,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눈치챈 아파트 경비 아저씨, 오랜만에 만나게 된 어렸을 때 친구,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버린 블로그 친구, 음악을 할 때부터 알던 오래된 친구 등등.
그의 시선을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고 돌려준 편집자 덕에 이런 빨간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이 마음에 든다. 그의 조금 마음 여린 듯한, 그러면서 오만가지 걱정과 마음쓰임에 시달리는 시선이 어딘지 애달프면서도 섬세해보여 읽는 재미가 삼삼했다.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세상은 뭔가 원하고 바라고 잡으려고 하면 주지 않고 외면을 하다가, 포기를 해 버리거나 더 이상 그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되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바라던 것을 조금 생색내듯 내어주고 마는 것일까.
(p. 265)


페이지가 훌훌 넘어가는, 감성적인 듯하면서도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이석원 작가의 목소리. 그가 목소리를 낮추고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한 에세이 한 꼭지 한 꼭지가 마음에 훅 들어온다.

가끔 인생이란 그저 짓궂은 신의 농담이 아닐까 상상해보는 건 하나뿐인 친구가 그렇게 거짓말처럼 갑자기 가버린 덕분인데, 오늘처럼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여전히 나와 같은 땅 어딘가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치 주유소에 들러 빈 연료통에 연료를 공급받는 자동차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p. 78)


역시 이석원 작가의 글맛이 난다. 그는 프로페셔널한 전문가의 말투를 갖지 못하고, 그저 이석원의 어투가 있을 뿐이라고 전문가의 분위기를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의 이 문체가 너무가 좋다. 처음, 노란책에 홀려 책장을 팔랑팔랑 넘겼을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이석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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