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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망원동 - 어린 나는 그곳을 여권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ㅣ 아무튼 시리즈 5
김민섭 지음 / 제철소 / 2017년 9월
평점 :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김포와 서울이었다. 집 사정 때문에 김포와
서울을 오가며 지냈고, 대부분의 시간을 김포에서 지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서울에서 계속 살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가장 많이 담긴 곳은
김포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낼 때는 농촌 지역이었지만, 이제는
김포도 많이 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마트가 들어서는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김포와의 연은 끊어지고, 개발된 김포는 예전 모습을 잃어버려, 내 어린 시절을 그 곳에 가서
추억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아무튼, 망원동>의 저자 역시 망원/성산/상암 인근에서 자랐고, 망원동이
망리단길로 개발되며 예전의 모습을 잃는 걸 지켜봐야 했다. 단골 가게가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고, 지역민들이 찾던 곳들이 밀려나고 외지인들이 들를 만한 곳만이 살아남을 때 느꼈을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김포를 찾지 않는 나도 내가 살았던 그 집이 없어진다는 게 서글펐으니.
다들 저마다 버텨내기 위해 분투하지만 누군가는 밀려나고 만다. 한 사람과 한 공간의 이주를, 여전할 수 없는 당신들을 지켜보며
몹시 서글펐다.
(p. 115)
망원동에서 자유로를 타고 파주까지 가서 외식을 종종 했다는 이야기에는 북한에 누이를 두고 온 아버지 이야기가
겹쳐진다. 할머니가 간절히 딸을 보고 싶어해 이산 가족 상봉을 줄기차게 신청했으나 북한의 고모가 만남을
거부했다는 에피소드에 마음이 쓰렸다. 북한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고모에게는 남한의 가족을 만나는 것이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는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내가 어렸을
때 날 돌봐주었던 외할머니의 고향이 황해도여서 더 그랬을 것이다. 외할머니는 종종 고향 이야기를 하셨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던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이미 많이
노쇠하신 외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아, 딸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저자의 할머니
이야기에도 마음이 탄다.
망원동 인근에서 쌓았던 즐거운 추억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제는 휴대폰이 있어
약속 장소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 졌지만, 예전에는 만남 장소가 중요했다. 나가서 내가 찾는 그 사람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그 시절, 현대백화점
시계탑에서의 추억 이야기에 내 추억들도 소환된다. PC방이 처음 생길 때, 친구들과 모여서 게임을 하던 이야기. 그 옛날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의
시대에 신촌에서 정모와 벙개를 하던 이야기.
어린 시절 망원 일대에서 자라다 성인이 되어 고향을 떠나고 떠나고,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망원동에 작업실을 얻은 저자의 망원동 이야기에는 추억이 묻어나고, 지금의 변한 망원동의 모습이 그 위에
덧씌워진다.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왔기에, 또 그
고향이 많이 변했기에 망원동 이야기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내게도 유년 시절을 보냈던 김포에 다시 가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예전에 살던
곳은 모두 없어졌겠지만. 내 추억 위에 새로운 김포의 기억을 쌓아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