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페트로스키 선집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홍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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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하이테크 펜을 빨리 써보고 싶어서 수업 시간을 기다리던 학생이었던 나는 성인이 되자 본격적으로 문덕이 되었다. 예쁜 볼펜과 수첩, 노트를 사 모으다 급기야는 만년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만년필용 종이, 잉크, 펜 파우치 등을 모으고 쓰며 즐거워했다. 이제는 지우개, 연필, 색연필, 포스트잇, 마스킹 테이프 등 문구라면 뭐든지 좋아하고 모으는 지경이 되었다. 아무래도 문구점 하나를 열어도 될 판이다.

<연필>은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인 연필에 대해서 쓴 책으로 연필이라는 작은 문구 하나로 장장 600여 페이지를 채웠다. 문덕에게는 연필이 매우 소중한 물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여기 저기에 굴러다니는 작은 물건에 지나지 않을 텐데, 그 연필에 대해서만 이렇게 길게 논했다는 게 놀랍다.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렇게 사람들의 주의를 전혀 끌지 않는 연필의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골동품점이나 박물관에는 연필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필 따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헨리 페트로스키는 연필에 대한 책을 쓰면서 연필을 매개로 이 책 전체에 걸쳐 공학을 논한다. 연필을 만드는 건 컴퓨터를 만들거나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쉽고 하찮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자 이 작은 연필 하나가 다시 보인다.
연필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깃펜을 잉크에 찍어 쓰거나 날카로운 첨필을 썼다. 그러다 누군가가 흑연 덩어리를 발견하여 덩어리 째 손에 쥐고 쓴 게 연필의 시작이다. 그러다 흑연 덩어리가 손을 더럽히자 종이로 싸서 쓰게 되었다. 제대로 된 현재의 연필의 형태를 갖춘 인공물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처음 연필을 만든 사람들은 목공을 하던 사람들이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흑연 만으로 연필을 만들었는데, 고품질의 흑연을 채굴하던 광산의 흑연이 고갈되자 콩테라는 사람이 흑연과 점토를 섞어 연필심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렇게 만든 연필은 심의 짙기가 처음부터 다 쓸 때까지 일정하며 흑연과 점토를 섞는 비율을 이용해 짙기와 무른 정도를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는 훌륭한 제품이었다. 콩테 덕분에 요즈음에는 일반적인 2B, HB, 4H 등으로 구분되는 연필이 나올 수 있었다.
연필의 자루로는 삼나무가 적당하다. 그러나 연필제작업자에게는 삼나무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삼나무 숲이 무한정한 것도 아니고 전쟁 등으로 수급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다.
연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흑연과 점토로 연필심을 뽑아낸 후 나무 판자에 연필심의 반 크기의 홈을 낸다. 그 후 연필심을 넣어 접착시키고 동일하게 홈을 판 판자를 덮고 붙인다. 그 후 연필 모양으로 판자를 잘라내야 한다. 이 때 연필심이 정확히 가운데에 위치해야 연필깎이로 깎으면 부러지지 않으며, 심에는 입자가 큰 이물질이 섞여 있지 않아야 필기감이 좋다.
가내수공업으로 제작되던 연필은 이후 연필 만드는 기계를 고안하여 기계로 생산하게 되었으며 비로소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이렇게 연필의 품질과 제작 공정을 개선하고자 노력한 연필업자들 모두가 바로 공학자들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연필의 존재가,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연구와 손길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연필이라는 작은 물건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아끼던 연필을 하나 깎아 책에 줄을 그으며 독서를 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팔로미노 블랙윙 연필을 하나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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