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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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서점을 좋아한다. 서점 데이트를 꿈꾸기도 했고, 북페스티벌에도 종종 가서, 다 들고 오지도 못할 정도의 책을 사기도 했다. 서점이나 장서에 관한 에세이도 여럿 읽었다. 서점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좋아해서, <오후도 서점 이야기>, <별을 잇는 손>, <책들의 부엌> 등등을 즐겨 읽었다. 서점이 배경인 소설은 다들 훈훈하고 잔잔했다.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는 특별하게도 논픽션과 픽션이 섞인 책이다. 고바야시 서점과 주인인 유미코씨는 실재하는 장소와 사람이지만, 그 외의 인물과 설정은 픽션이다. 가와카미 데쓰야는 작가의 말에서, 서점을 취재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고바야시 서점의 이야기를 소재로 따로 소설을 쓰고 싶었노라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출판유통 회사 다이한의 신입 사원 오모리 리카의 성장 스토리 사이 사이에 유미코씨의 긴 이야기를 넣었다. 리카가 유미코씨에게 조언을 구하러 가서, 그의 서점 운영에 관한 에피소드를 듣는다는 설정이다.
매번 길어지는 유미코씨의 이야기이지만, 그건 그대로 놀랍고 훈훈한 에피소드여서 읽는 맛이 있었다. 책으로만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서 우산을 판 이야기라거나. 서점을 도둑맞아서 다이한에 보낼 대금이 없을 때, 알음알음으로 소식을 전해들은 모두가 고바야시 서점에서 대량으로 책이나 상품권을 구매해줘서, 무사히 대금을 치를 수 있었던 이야기. 가마타 미노루라는 유명한 작가의 강연을 조그마한 고바야시 서점의 힘으로 해낸 이야기.
유미코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도 오모리 리카처럼 난 일을 이렇게나 좋아하지는 않는데,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 당장 고바야시 서점에 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도 했다. 리카가 다이한 직원으로 기획한 서점 이벤트 역시 현실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소설로서도 흥미롭고, 소박하고 잔잔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였지만, 고바야시 서점의 실화를 녹여 넣어서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 책이다. 서점에 관심이 있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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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7펜스 2022-09-1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시는 설렘이님이 관심가지셨을 책 제목인데요^^♡저도궁금해지네요ㅎㅎ

설렘이 2022-09-17 22:34   좋아요 0 | URL
이 책 요즘 인기 많은 듯 해요.. 잔잔한 스토리가 참 좋았던 책입니다..
 
같이의 세계 - 혼자가 좋은 소설가와 둘이 좋은 에세이스트가 꿈꾸는 인간관계론
최정화 외 지음 / 니들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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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교환일기를 썼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모둠 별로 써 보기도 했고, 좋아했던 친구와 둘이서 써 보기도 했다. 친구의 글을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을 쓰기도 하고, 반대로 내 글에 답하는 글을 친구가 써 주기도 했다.

<같이의 세계>를 읽으며 그 시절이 생각났다. 이 책은 에세이이지만, 특별하게도 두 명의 작가가 서로에게 띄우는 편지와 같은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짧게 서로에게 전하는 말이 앞에 달려 있고, 뒤에는 본편인 에세이가 실려 있다. 이전 에세이를 읽다가 뿜을 뻔 했다는 귀여운 멘트와 함께,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또 상당히 잘 써진 글을 읽는 기분이 삼삼했다.
고양이와 많은 식물들과 함께 사는 소설가 최정화 작가, 아내와 단둘이 사는 에세이스트 일이 작가, 그리고 그 부인으로 보이는 일러스트레이터 키미. 그 세 명의 호흡이 단연코 돋보이는 책이다.
큰 병이 있는 고양이 먼지를 키우며, 그 고양이가 무서워하지 않게 하려고 집에서 가장 조심조심 지내는 최정화 작가의 이야기, 그 덕에 아침에 나가려면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느릿느릿 움직여야 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 화가와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부부가 노상 붙어 있지만 그러면서도 사이가 좋다는 푸근한 이야기, 그러나 서로 일어나고 자는 시간이 달라 세 시간 정도 혼자 지낼 수 있기 때문이라며 터놓는 비결.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비록 고작 세 시간이라도 그것이 매일이 되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작거나 적더라도 지속된다는 건 대체로 그렇다. 어느새 충분해진다. 그러기 마련이다.
(p. 63)



일이 작가와 부인인 키미가 한 달 식비 30만원으로 생활하던 때, 거금 5천원의 로투스 스프레드를 사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로투스 스프레드가 떨어져 깨져버린 안타까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런 저런 가슴 아프고, 소소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오랫동안 부부가 쌓아왔기에,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찮고 사소한 것의 힘은 엄청나다. 오늘도 여차하면 영원히 잊힐 만큼 사소한 사건들을 쌓으며 우리는 같이 산다.
(p. 115)


소소한 사건들에 대해서 쓴 소박한 에세이이지만, 두 작가가 서로의 글을 주고 받는 사이 켜켜이 쌓인 훈훈한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든, 부부만 단둘이 사는 사람이든, 냉장고를 두지 않고 사는 사람이든, 인터넷 뱅킹을 하지 않는 사람이든,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이 에세이 집을 읽는 다면 그런 것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다르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엇갈리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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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콜의 어반 스케치 기초 - 펜 드로잉으로 스케치북 한 권 끝내기 카콜의 어반 스케치
카콜 지음 / EJONG(이종문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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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로망 중의 하나가 도심에서 어반스케치를 하는 것이다. 스케치북과 펜 하나만 들고 외출해서 카페에 앉아, 지하철 안에서, 또는 공원에서 행인들을 그리고, 빌딩을 노트에 담고, 카페 안의 예쁜 소품을 묘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실물을 보고 그리는 건 무리이고,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수준이다.

<카콜의 어반 스케치 기초>는 나처럼 초보인 사람도 어반 스케치를 즐길 수 있도록 다앙햔 팁과 연습과제, 꼭 필요한 이론을 담은 책이다. 요즘은 그림 그리는 과정을 스텝별로 실어서 따라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책이 대다수인데, 이 책은 조금 결이 다르다. 물론 스텝별 그림 그리기도 실려 있어서 몇 가지의 그림을 따라 그릴 수 있도록 해 주었지만, 그보다는 투시, 명암표현 등의 이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반스케치에서 주로 그리는 사물들에 대해 대상 별로 어떻게 그려야 쉽게 그릴 수 있는지 등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어반스케치를 하려는 초보자에게 제격인 책이다.





책의 그림체는 상세한 묘사라거나 디테일한 표현이 강조된 그림은 아니다. 빠르게 쓱싹 휘갈긴 듯한 그림체여서 특유의 매력이 있다. 그릴 대상의 순간을 포착하거나 짧은 시간 내에 물체를 대강 표현하는 듯한 그림이다. 주로 펜으로 그린 그림들이지만, 가끔 채색으로 느낌을 내기도 했다. 채색도 정교하기 보다는 밖으로 살짝 비어져 나가기도 하고, 면을 채우지 않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느낌의 채색이다. 개인적으로 정밀하게 묘사된 그림보다 이런 느낌의 그림을 선호하는데, 대강 그린 같지만 이런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만의 맛이 있다.
저자는 A5이하의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권을 채워보라고 권유한다. 스케치북이라면 나도 많은데, 아직 반도 채우지 못한 노트가 부지기수다. 망쳐도 상관 없고, 부담 없이 습작하듯 권을 채워보라는 권유에, 아직 그림으로 채우지 못한 노트를 들고 외출하고 싶어서 마음이 들썽인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건물 스케치인듯 하다. 벽돌 그리기, 창문 그리기 등의 팁과 함께, 중에서 가장 화려한 스케치가 수록되어 있다.







말미에는 회색 위에 그림을 따라 그리도록 하는 연습 페이지도 제공되어 있다. 여기에 연습부터 하기 시작해서, 언젠가는 카페에 앉아 맞은 편의 빌딩을 그리는 날을 기댜려본다. 책과 함께라면 날이 조금 빨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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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다비드 디옵 지음, 목수정 옮김 / 희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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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아니다. 과거 한국전쟁의 폐해를 간접적으로 듣고 보기는 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 보도를 보면서 경악하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없다. 특히, 전쟁에 참가한 병사의 입장에서는.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 마뎀바 디옵을 따라 전쟁에 참여한 알파 니아이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겪은 전쟁터에서의 참혹한 경험을 알파 니아이는 신의 진실로 말하노니로 시작하는 어투로 차분하게 진술해간다.
알파 니아이는 세네갈에서 농부의 아들로 자랐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세네갈이 프랑스령이었음에도 불어를 할 줄 몰랐다. 그는 투사였다. 강하고 탄탄한 몸을 갖고 있었고, 잘 생긴 얼굴을 타고났다. 그는 달리고, 수영하고, 싸웠다.
그의 절친한 친구 마뎀바 디옵은 반대였다. 허약한 몰골을 하고 있었으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교에 다녔다. 불어도 할 줄 알았다. 마뎀바 디옵은 학교에서 애국심이 고취되어,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했다. 약한 몸을 가졌음에도 그는 용감했다.
그는 세네갈의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프랑스 시민이 되어 생루이에서 사는 꾸는 꿈을 꾸었다. 그러려면 전쟁에 나가야 했다. 마뎀바 디옵을 위해 알파 니아이는 그와 같은 꿈을 꾸며 함께 전쟁에 나갔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가혹했다. 대위가 호각을 불면,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뛰어 나가 싸워야 했다. 수많은 병사가 죽어갔다. 알파 니아이는 몸은 보전할 수 있었지만 마음에 큰 상흔을 입었다.

대위는 영혼의 포식자였다. 난 안다. 아르망 대위는 살아가기 위해서 아내가 필요하듯이, 전쟁이 필요한 악마란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p. 107)


프랑스인 대위는 세네갈의 흑인들에게 야만적이 될 것을 주문했다. 적을 겁주기 위해서였다. 세네갈 초콜릿들은 왼손에는 총을 들고, 오른손에는 가지 치는 칼을 들고 미친 듯이 돌진해야 했다.

신의 진실로 말하노니, 전쟁터에선 스쳐 가는 광기를 원한다. 분노의 광기, 고통의 광기, 격정의 광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다.
(p. 70)


꽃다운 나이의 아름답고 젊은 청년이었던 알파 니아이를 전쟁이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이 책은 생생히 증언한다. 알파 니아이 자신의 시선으로.
메타버스의 시대, AI가 발전한 최첨단 21세기에도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꽃다운 나이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스러졌다. 이 책을 읽고 나자 그들이 겪었을 트라우마가 내 마음을 짓누른다.
2021
년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이 작품은 차분히 가라앉은 알파 니아이의 목소리로 전쟁의 민 낯을 낱낱이 고발한다. 다분히 어두운 분위기에, 끔찍한 장면이 속출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파괴적이었던 것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젊은이 알파 나이아의 마음 속이 아니었을까.
전쟁으로 그 누구도 더 이상 희생되지 않고, 그 누구도 상처입지 않고,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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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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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곳은 또 없다. 여덟 살, 아홉 살 남짓 어린 아이에게도 학교 성적을 잘 받을 것을 요구하고, 좀 더 머리가 크면 전쟁 같은 입시를 치르게 한다. 입시를 잘 치르면 이번에는 스펙을 쌓게 하고 좋은 기업에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 것을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학교를 잘 나오고, 연봉을 잘 받아야 한다. 다행히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서 연봉을 잘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는 패배감에 젖어서 우울증까지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경쟁의 승리자라면 그들은 행복하고 만족할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대로 과도한 경쟁에 지쳐 병들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은 이번에는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능력주의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과연 공정한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를 하나 하나 분석해가며 능력주의를 꼬집는다.
사실 전세계가 능력주의 사회가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세속 계급제로부터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는 사회로 변화된 지 말이다. 이 변화에 따라 사회의 권력은 세속 귀족에서 소수의 엘리트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세속 귀족과 다른 점은 누구나 노력에 의해서 엘리트가 되어 집권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과에 들어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소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과연 쉽게 실현 가능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미국의 대학에서 신입생 선발에 쓰는 SAT라는 시험 점수는 학생의 가계 소득과 비례하여 증가한다. 부잣집에서는 아이들에게 SAT 과외와 모의 시험을 충분히 시켜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SAT 과외는 시간당 1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그 결과 미국의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부잣집 자녀들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에 오는 학생도 있지만 지극히 소수다. 이것이 과연 기회의 평등인지, 과연 공정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능력주의 사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만심을 심어준다. 다 내가 노력해서 아이비리그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다 내가 잘나서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실패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깔보게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다른 사람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재능이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재능인 경우와 인정해주지 않는 재능인 경우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지 않다. 팔씨름을 잘 한다고 누가 인정해주거나 돈을 주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종류의 것인지는 운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에는 다분히 운이 따르고 주위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받지만 능력주의 사회는 그러한 것을 모른 체 한다.
그 결과 포퓰리즘이 고개를 든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같은 일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 대학 졸업자의 몰표를 받았고 힐러리 클린턴은 반대로 고학력자의 절대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이분된 데에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분노한 데에도 큰 이유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세속 계급제 안에서는 자신이 잘 사는 이유가 단지 좋은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신에게 감사하고, 운에 감사한다. 계급이 낮은 사람도 자신보다 충분히 재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한다.
그러나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노력과 재능 이외의 많은 요인이 성공을 결정함에도 자신 덕에 성공했다는 오만을 갖기 쉽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어려운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세계화가 이루어져 경제가 크게 발전했지만, 그 이득은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돌아갔고 하위 소득자의 경제 상황은 몇 십 년 전과 비교해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 결과 대다수 하위 소득자들은 분노를 품게되었다.
이런 상황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마이클 샌델은 일의 존엄성을 되찾으라고 조언한다. 도박 사업의 운영자는 거액을 벌고, 학교 선생님은 그 보다 덜 벌지만, 그렇다고 도박 사업자가 사회에 더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성공은 일이 존엄하다는 것을 전혀 나타내주지 않는다.
일의 존엄성을 찾기 위해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서 노동자들이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또는 급여세를 삭감하거나 없애고 지역 사회나 경제 발전에 전혀 공헌하지 않는 투기 행위에 세금을 물리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대안에 깔린 전제는 연대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 그 성공이 자신의 덕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과 행운의 덕임을 아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과 자신의 파이를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그저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맹신했던 능력주의를 이 책은 철저히 해부하고 낱낱이 고발한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의 시선에서 이 책을 썼지만, 우리나라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여야 할 이야기이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새벽까지 학원을 뱅뱅 돌고,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스펙을 쌓고 야근과 특근을 할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라는 이 대전제가 과연 공정한지,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 한 번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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