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의 세계 - 혼자가 좋은 소설가와 둘이 좋은 에세이스트가 꿈꾸는 인간관계론
최정화.일이 지음 / 니들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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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교환일기를 썼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모둠 별로 써 보기도 했고, 좋아했던 친구와 둘이서 써 보기도 했다. 친구의 글을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을 쓰기도 하고, 반대로 내 글에 답하는 글을 친구가 써 주기도 했다.

<같이의 세계>를 읽으며 그 시절이 생각났다. 이 책은 에세이이지만, 특별하게도 두 명의 작가가 서로에게 띄우는 편지와 같은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짧게 서로에게 전하는 말이 앞에 달려 있고, 뒤에는 본편인 에세이가 실려 있다. 이전 에세이를 읽다가 뿜을 뻔 했다는 귀여운 멘트와 함께,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또 상당히 잘 써진 글을 읽는 기분이 삼삼했다.
고양이와 많은 식물들과 함께 사는 소설가 최정화 작가, 아내와 단둘이 사는 에세이스트 일이 작가, 그리고 그 부인으로 보이는 일러스트레이터 키미. 그 세 명의 호흡이 단연코 돋보이는 책이다.
큰 병이 있는 고양이 먼지를 키우며, 그 고양이가 무서워하지 않게 하려고 집에서 가장 조심조심 지내는 최정화 작가의 이야기, 그 덕에 아침에 나가려면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느릿느릿 움직여야 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 화가와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부부가 노상 붙어 있지만 그러면서도 사이가 좋다는 푸근한 이야기, 그러나 서로 일어나고 자는 시간이 달라 세 시간 정도 혼자 지낼 수 있기 때문이라며 터놓는 비결.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비록 고작 세 시간이라도 그것이 매일이 되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작거나 적더라도 지속된다는 건 대체로 그렇다. 어느새 충분해진다. 그러기 마련이다.
(p. 63)



일이 작가와 부인인 키미가 한 달 식비 30만원으로 생활하던 때, 거금 5천원의 로투스 스프레드를 사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로투스 스프레드가 떨어져 깨져버린 안타까운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런 저런 가슴 아프고, 소소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오랫동안 부부가 쌓아왔기에,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하찮고 사소한 것의 힘은 엄청나다. 오늘도 여차하면 영원히 잊힐 만큼 사소한 사건들을 쌓으며 우리는 같이 산다.
(p. 115)


소소한 사건들에 대해서 쓴 소박한 에세이이지만, 두 작가가 서로의 글을 주고 받는 사이 켜켜이 쌓인 훈훈한 기운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든, 부부만 단둘이 사는 사람이든, 냉장고를 두지 않고 사는 사람이든, 인터넷 뱅킹을 하지 않는 사람이든,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이 에세이 집을 읽는 다면 그런 것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다르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엇갈리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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