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만큼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곳은 또 없다. 여덟 살, 아홉 살 남짓 어린 아이에게도 학교 성적을 잘 받을 것을 요구하고, 좀 더 머리가 크면 전쟁 같은 입시를 치르게 한다. 입시를 잘 치르면 이번에는 스펙을 쌓게 하고 좋은 기업에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 것을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학교를 잘 나오고, 연봉을 잘 받아야 한다. 다행히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서 연봉을 잘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는 패배감에 젖어서 우울증까지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경쟁의 승리자라면 그들은 행복하고 만족할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대로 과도한 경쟁에 지쳐 병들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은 이번에는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능력주의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과연 공정한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를 하나 하나 분석해가며 능력주의를 꼬집는다.
사실 전세계가 능력주의 사회가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세속 계급제로부터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는 사회로 변화된 지 말이다. 이 변화에 따라 사회의 권력은 세속 귀족에서 소수의 엘리트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세속 귀족과 다른 점은 누구나 노력에 의해서 엘리트가 되어 집권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좋은 과에 들어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소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과연 쉽게 실현 가능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 미국의 대학에서 신입생 선발에 쓰는 SAT라는 시험 점수는 학생의 가계 소득과 비례하여 증가한다. 부잣집에서는 아이들에게 SAT 과외와 모의 시험을 충분히 시켜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SAT 과외는 시간당 100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그 결과 미국의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부잣집 자녀들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에 오는 학생도 있지만 지극히 소수다. 이것이 과연 기회의 평등인지, 과연 공정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능력주의 사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만심을 심어준다. 다 내가 노력해서 아이비리그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다 내가 잘나서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실패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깔보게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다른 사람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재능이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재능인 경우와 인정해주지 않는 재능인 경우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지 않다. 팔씨름을 잘 한다고 누가 인정해주거나 돈을 주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종류의 것인지는 운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에는 다분히 운이 따르고 주위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받지만 능력주의 사회는 그러한 것을 모른 체 한다.
그 결과 포퓰리즘이 고개를 든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같은 일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 대학 졸업자의 몰표를 받았고 힐러리 클린턴은 반대로 고학력자의 절대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이분된 데에는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분노한 데에도 큰 이유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세속 계급제 안에서는 자신이 잘 사는 이유가 단지 좋은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신에게 감사하고, 운에 감사한다. 계급이 낮은 사람도 자신보다 충분히 재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한다.
그러나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노력과 재능 이외의 많은 요인이 성공을 결정함에도 자신 덕에 성공했다는 오만을 갖기 쉽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어려운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세계화가 이루어져 경제가 크게 발전했지만, 그 이득은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돌아갔고 하위 소득자의 경제 상황은 몇 십 년 전과 비교해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 결과 대다수 하위 소득자들은 분노를 품게되었다.
이런 상황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마이클 샌델은 일의 존엄성을 되찾으라고 조언한다. 도박 사업의 운영자는 거액을 벌고, 학교 선생님은 그 보다 덜 벌지만, 그렇다고 도박 사업자가 사회에 더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성공은 일이 존엄하다는 것을 전혀 나타내주지 않는다.
일의 존엄성을 찾기 위해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서 노동자들이 충분히 가족을 부양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또는 급여세를 삭감하거나 없애고 지역 사회나 경제 발전에 전혀 공헌하지 않는 투기 행위에 세금을 물리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대안에 깔린 전제는 연대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 그 성공이 자신의 덕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과 행운의 덕임을 아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과 자신의 파이를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그저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맹신했던 능력주의를 이 책은 철저히 해부하고 낱낱이 고발한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의 시선에서 이 책을 썼지만, 우리나라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여야 할 이야기이다.
그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새벽까지 학원을 뱅뱅 돌고,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스펙을 쌓고 야근과 특근을 할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라는 이 대전제가 과연 공정한지,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 한 번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