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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평점 :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마음 가는 대로 이것 저것 많이도
해 보았다. 프랑스자수, 제본, 퀼트, 가죽공예. 거기다
이제는 뜨개와 양모펠트, 미싱까지 기웃거리고 있다.
공예의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길고 지난할 수도 있지만,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어제보다 조금 더 수놓은 미완성 자수 작품, 지퍼를 달고 상침하려고 다림질해 놓은 미완성 필통, 재단해서 심지를
붙여놓고 바느질을 기다리는 미완성 북커버. 만들고 있는, 혹은
만들다 만 소품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내 손길을 탄, 아직
내 손길이 조금 더 필요한 것들.
<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의 저자 바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한다. 만드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고. 바나는 문어발로 일을 벌이는 나와는
다르게 뜨개라는 한 우물을 팠다. 뜨라밸(뜨개 앤 라이프
밸런스)이 안 지켜질 정도로 빠져서, 가열차게 뜨개를 한
바나는 이제 수준급이 된 것 같다. 심지어 도안을 직접 그려서 출시도 한다고 한다. 그걸 본 바나의 한 친구가 한 말.
“미치려면 저렇게 미쳐야 하는데 아주 잘 미친 좋은 예”
(p. 173)
바나는 자조적으로 이 말을 책에 쓴 듯 하지만, 나로서는 너무나 부럽다. 이것 저것 건드려보다가 무엇도 잘 하지는 못하는, 모든 것에서 초보를
못 벗어난 나로서는 말이다.
바나가 직접 디자인해서 떴다는 고양이 티셔츠와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도안을 보고 반해서 만들었다는 회전목마 가디건의 사진을 본
나는, 그만 눈이 하트가 되어서 나도 뜨개옷을 만들고 싶어졌다. 현실은
이제 겨우 코바늘로 사슬뜨기를 배우고 원형뜨기에서 헤매고 있으면서도.


코로나 락다운 때문에 집에서만 있으면서 하도 심심해서 뜨개를 시작했다는, 아일랜드에 사는
개발자 바나는, 이제 뜨개를 하기 전에는 도대체 뭘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독학과 책 등으로 뜨개의 세계를
헤쳐나가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이 책에는 뜨개 라이프에 대한 에세이뿐 만 아니라 뜨개에
대한 정보도 글 사이 사이에 녹아있고, 뜨개 작품 사진도 마치 화보집이나 잡지처럼 멋지게 실려있다.

필력도 좋고 재미도 있으면서 안에 실린 사진도, 뜨개 솜씨도 일품이다. 이제 막 뜨개 인형을 배우겠다고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는 내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공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재봉틀로 드드륵 박으면 10분도 안 걸릴 것을 느리게 느리게 손바느질을 해서 정성스레 만드는 맛. 막
완성한 소품이 뿜는 행복 에너지. 겨우 바늘이나 실, 가위
따위이면서도 갖고 싶어서 날 안달하게 만드는 공예 도구들.
이런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너무나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원형뜨기를 잡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