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이해하는 사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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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 두 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존재들이 주인공이다. 자살을 기도하는 고등학생과 백수 삼촌.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마음을 울린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고등학생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학생의 마음과 조카를 향한 애정 깊은 마음에서 우리는 진실함을 본다.
두 편 모두 뒷부분에 반전이라거나, 의외의 스토리 전개가 있다. 특히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에는 우주맨이라는 살짝 SF 느낌의 개념이 나와서 이야기에 다채로운 맛을 내는 양념이 된다. 진진한 이야기에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설 쓰는 사람으로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 “다시 조심스럽게 걷듯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로 작가의 말을 간결하게 대신하는 김주원 작가의 작품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들 스스로가 소외되고, 힘겨워하는 영혼들이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에게 가 닿는다는 점이 인상 깊다. <십분 이해하는 사이>에서, 되지도 않는 유머를 하며 자살을 기도하려는 고등학생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고등학생.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보이는 모습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현실의 속살을 눈물 참고 응시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 49)


자칭 우주맨인 백수 삼촌은 사랑하는 조카 한솔이를 위해서 자신의 커다란 부분을 내려놓는다.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한솔이를 위해서라면, 한솔이가 밝게 커줄 수 있다면 우주맨은 출동하고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소외된 그들이 건네는 마음이, 위로가, 호의가, 정말로 진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 자신의 삶의 무게에도 자신의 옆 사람에게 가 닿으려는 손길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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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박초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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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개의 돌로 남은 미래><사소한 사실들>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제목이 뜻하는 바가 예상 외다. 첫 번째 소설의 미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미래가 아니라 고양이 이름이다. “사소한 사실들은 문자 그대로 사소한 사실을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방탈출 게임 이름이면서 주인공이 잠시 밤을 보내는 식당 창고의 이름이다.
미래“future”가 아니면서도, 이 소설집 내 두 편의 단편은 모두 미래를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다. 고양이 미래를 화장하고 돌아오는 길, 주인공의 결심은 행복한 미래에 닿아있다. “사소한 사실들을 벗어나서 옥탑방에서 아는 언니와 살게 되는 주인공이 그 옥탑방에 사는 것 마저 위태로워지자, 단단해지는 룸메이트들과의 관계 역시 미래에 가 닿는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엇이 과거이고, 무엇이 미래인지 알 수 없었다. 둥근 원 안에 공간과 시간이 갇혀 있었다. 나는 둥근 원을 돌면서 내가 원하는 진실을 시간 속에 짜맞추고 있었다. 이제 과거를 다시 쓰고 싶었다. 내가 만들어갈 미래가 내 과거가 될 수 있도록.
(p. 38)


고양이 미래를 만나기 전, 주인공은 사기를 당하고 사람과 세상에 상처받아 마음을 닫았다.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료해 주고 보듬어 준 미래의 장례식에서 그는 미래의 주인이자, 과거의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다.
옥탑방에서 살기 전, “사소한 사실들에서 살던 주인공은 친한 친구 율리의 재력을 부러워했고 질투를 했으며, 잠깐 만났던 남자친구 영훈과 데이트를 하면서도 돈에 묶여 있는 자신이 싫어서 딴소리를 해댔다.

삶이란 혼자서 외롭게 버텨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단둘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 역할이 주어진 것 같아 답답했다.
(p. 68)


상처받고 부서진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상처는 이중, 삼중이었고 하나의 고비를 넘었다 싶으면 또 한 고비가 나타나는 형국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살아갈 힘을 얻었다. 미래는 스물 여섯 개의 돌이 되고, 사소한 사실들을 떠나 찾은 보금자리에서도 나가야 할 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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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백건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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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는 고양이와 쥐를 테마로 한 두 편의 소설집이다. 동물이 나오고, 추리소설의 형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검은 고양이>는 역사 소설의 느낌이 있어 색다른 매력이 있었고, <쥐의 미로>는 조지 오웰의 <1984>가 연상되는 소설이었다.
<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검은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단돈 팔천원에 산다. 그림도 마음에 들고, 저렴한 가격에 사서 기분이 좋아져 방에 건다. 그러나 그 그림을 걸어놓고 보면 볼 수록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림 속 고양이의 느낌이 매일 다른 듯 하다, 어느 날에는 새벽 어스름에 잠이 깨서 그림의 고양이 눈 부분에서 파란 빛이 나오는 걸 보고야 만다. 그는 그림 뒷면에 적힌 글귀들을 토대로 이 그림의 배경을 뒤쫒는다. 흥미진진한 설정에, 미스테리와 서스펜스가 있으면서, 그가 찾게 되는 진실에 살짝 가닿은 듯 하다 놓치고 마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그림의 뒷면에 써있는 주소를 찾아가다 역사적 사실을 조우하는 장면도 이 소설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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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의 미로>는 새벽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쥐가 갉는 듯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1984>의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일터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었다. 시종일관 주인공의 신경을 긁으면서 등장하는, 쥐가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백건우 작가가 오래 전에 썼다는 이 단편 소설 두 편은, 그의 초기작인 듯 하다. 그럼에도 아주 인상적이고 몰입감있는 소설이었다. 미스터리나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일독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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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산문
박준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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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시인을 참 좋아한다. 어느 문학인들의 인터뷰 집에서 처음 본 그는 순수하고 영혼이 맑아 보였다. 한 눈에 반해서 그의 시집을 찾아 읽고, 산문집을 사서 읽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시와 에세이도 맑고, 투명한 느낌이었다. 시를 품은 에세이같이도 하고, 에세이를 품은 시 같기도 했다.

<계절 산문>은 그의 최근 산문집이다. 시가 간간이 들어있고, 포근한 느낌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해서 힘든 나날들이 많았다는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부모님 집의 옆집 사람들이 키우는 개를 잡아먹기에, 챙겨주고 구해주려 하다가 실패한 경험. 마지막으로 그 개를 봤을 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개의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 힘들어 하는 성향 때문에, 가족끼리 외식을 가서 가위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하지 못했던 일도. 어린 그는 바쁘게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보여 차마 가위를 달라고 하지 못하고 한참을 멀뚱히 서 있었다. 오래 교류하는 벗이 없다는 한탄에도 마음이 움직였다. 어느 한 시절을 함께 한 아름다운 사람은 있었으나, 어려서부터 인생의 고비를 함께하고 같이 중년이 되는 사이가 없다는 걱정이었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조심하고 보는 버릇에, 벗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려고 한다는 그가 살짝 안쓰러워졌다.

저는 어쩐지 아직도 이것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다가온다 기대했다가 누군가 떠나간다 슬퍼하고 어제의 걱정을 끝냈다 싶었는데 새로 오늘의 걱정을 하고. 이쪽과 저쪽을 오갑니다. 끝도 없이 오가고 있습니다.
(p. 179)


그의 따스한 감성이 가득 담긴 에세이와 시를 읽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환절기마다 한 번씩 앓는다는 그가, 다가오는 봄에는 조금 덜 아프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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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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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마음 가는 대로 이것 저것 많이도 해 보았다. 프랑스자수, 제본, 퀼트, 가죽공예. 거기다 이제는 뜨개와 양모펠트, 미싱까지 기웃거리고 있다.

공예의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길고 지난할 수도 있지만,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 어제보다 조금 더 수놓은 미완성 자수 작품, 지퍼를 달고 상침하려고 다림질해 놓은 미완성 필통, 재단해서 심지를 붙여놓고 바느질을 기다리는 미완성 북커버. 만들고 있는, 혹은 만들다 만 소품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내 손길을 탄, 아직 내 손길이 조금 더 필요한 것들.
<
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의 저자 바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한다. 만드는 과정이 가장 즐겁다고. 바나는 문어발로 일을 벌이는 나와는 다르게 뜨개라는 한 우물을 팠다. 뜨라밸(뜨개 앤 라이프 밸런스)이 안 지켜질 정도로 빠져서, 가열차게 뜨개를 한 바나는 이제 수준급이 된 것 같다. 심지어 도안을 직접 그려서 출시도 한다고 한다. 그걸 본 바나의 한 친구가 한 말.

미치려면 저렇게 미쳐야 하는데 아주 잘 미친 좋은 예
(p. 173)


바나는 자조적으로 이 말을 책에 쓴 듯 하지만, 나로서는 너무나 부럽다. 이것 저것 건드려보다가 무엇도 잘 하지는 못하는, 모든 것에서 초보를 못 벗어난 나로서는 말이다.
바나가 직접 디자인해서 떴다는 고양이 티셔츠와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도안을 보고 반해서 만들었다는 회전목마 가디건의 사진을 본 나는, 그만 눈이 하트가 되어서 나도 뜨개옷을 만들고 싶어졌다. 현실은 이제 겨우 코바늘로 사슬뜨기를 배우고 원형뜨기에서 헤매고 있으면서도.



코로나 락다운 때문에 집에서만 있으면서 하도 심심해서 뜨개를 시작했다는, 아일랜드에 사는 개발자 바나는, 이제 뜨개를 하기 전에는 도대체 뭘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독학과 책 등으로 뜨개의 세계를 헤쳐나가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이 책에는 뜨개 라이프에 대한 에세이뿐 만 아니라 뜨개에 대한 정보도 글 사이 사이에 녹아있고, 뜨개 작품 사진도 마치 화보집이나 잡지처럼 멋지게 실려있다.



필력도 좋고 재미도 있으면서 안에 실린 사진도, 뜨개 솜씨도 일품이다. 이제 막 뜨개 인형을 배우겠다고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는 내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공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재봉틀로 드드륵 박으면 10분도 안 걸릴 것을 느리게 느리게 손바느질을 해서 정성스레 만드는 맛. 막 완성한 소품이 뿜는 행복 에너지. 겨우 바늘이나 실, 가위 따위이면서도 갖고 싶어서 날 안달하게 만드는 공예 도구들.
이런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너무나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원형뜨기를 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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