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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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과 별로 친하지 않다. 어려서는 내리막길이 무서워서 산을 싫어했고,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오르막길이 힘들어서 싫어했다. 심지어 회사 행사로 산행을 하고 나서 감기에 걸려 버렸는데, 너무 심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알레르기 천식 진단을 받았다. 그 이후로 산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같이 산에 가자고 하면, 나는 산 아래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내려온 사람들과 합류해 파전만 먹는다.

그런 내게 청년 작가 박범신의 <순례>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박범신 작가는 그냥 동네 산이 아니라 무려 히말라야에 다닌다. 무언가 삶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낄 때, 그는 히말라야에 간다.

그래, 사는 게이게 아냐!’ 그는 마침내 멈추어 서서 속으로 외칠 것입니다.
(…)
거꾸로 매달린 시간이니 위태로운 과도기이자, 습관적 삶과 새로 생성되는 주체의 틈이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여기, 히말라야에 옵니다.
(p. 16~17)


히말라야의 고요와 마주하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해서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만을 들으며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향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박범신 작가를 지금까지 지켜온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해가 떠오르는 순간,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찍은 사진을 보고서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의 순간이었다.






물론 히말라야 등반에는 위험이 따른다. 박범신 작가도 고소증에 걸려서 고생하기도 했고, 조난을 당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위험한 봉우리에는 곳곳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촐라체라는 봉우리에서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과 발목이 골절되는 조난을 당한 두 사람이 간신히 살아서 돌아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박범신 작가의 소설도 있다. 그럼에도, 산은 사람들을 은밀히, 그러나 강렬하게 부른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다. 나는 잘 몰랐으나 박범신 작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사건 이후 순례길에 올랐으며, 그 사건의 본질과 문학의 의미를 곱씹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것이다.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 작가도 이미 지내온 세월이 길다. 폐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던 나날들의 기록이 이 책 말미에 있다. 좋아하는 작가에게 남기는 세월의 흔적이 서글프지만, 그는 겸허하고 따스하게 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듯 하여 책을 덮는 기분이 가볍다. 히말라야를 오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작가인 만큼, 그의 말년이 시들어진 것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아름다워 보인다. 그의 다음 작품도 왕성한 혈기를 품고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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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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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은 내게 그냥 주전부리나 음료수를 사러 가는 곳이었다. 때로는 하도 자주 가서, 주인 아저씨가 폐기 상품을 주기도 하고, 카운터에 숨겨 두었던 하나 남은 허니버터칩을 팔기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시키기도 했지만.
이제,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를 읽고 나자 편의점이 많은 사람의 생의 무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장님과 알바들의 사연이 얽히고, 단골 손님들과 직원들의 인연이 더해지며, 누군가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인생을 건 도전을 할 수도 있는 곳으로 말이다.
<
불편한 편의점> 1권에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알바였던 오선숙 아주머니가 ALWAYS 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부터 이어진다. 염 사장님은 말썽꾸러기 아들 민식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준다. 민식은 편의점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알바였던 선숙 아주머니를 점장으로 승진시켜 모든 일을 다 시키고 자신은 집에서 그저 술이나 먹는다. 그러면서 알바들의 주휴 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등 악덕 사장이 된다.
1
권에서처럼 단골 손님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이야기는 고조된다. 소고기집을 하다가 코로나의 일격을 맞아 가게가 기울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삐걱대는 사장님이 ALWAYS 편의점에서 퇴근 후 소맥을 말아 마시고 간다. 불편한 편의점의 오지랖 알바는 소고기집 사장님에게 상꼰대라고 놀리고, 직접 소고기집을 찾아가 곰탕을 먹는다. 그리고 가족들의 말을 한 번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아빠가 막노동을 하고 엄마가 청소일을 하는 집 아들 민규는 매일 엄마 아빠의 싸움에 기가 질려 ALWAYS 편의점을 찾는다. 2+1 상품을 사서 아껴 먹으며 세 시간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민규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기 시작하고 곧 알바 아저씨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폐기 상품도 챙겨 주고 책도 빌려주며 민규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이야기는 ALWAYS 편의점의 오지랖 알바 홍금보의 사연으로 달아오른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편의점에 알바로 취업하여 그가 벌이는 일이 이 소설의 백미다. 그는 ALWAYS 편의점의 분위기를 바꾸고 염 사장님과 민식을 도우며 그 자신의 꿈을 화려하게 펼친다.
1, 2
권으로 이어진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분위기로 끝난 이 소설이 참 멋지다. 1권의 마지막도 아주 인상적이었지만, 2권의 결말도 한겨울의 얼음도 녹일 듯 훈훈하다. 불편한 편의점 ALWAYS가 아주 쾌적하고 멋진 편의점으로 탈바꿈하는 이야기를 저물어가는 봄날, 당신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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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인물 드로잉 - 기초 연필 스케치부터 고급 테크닉까지 나 혼자 드로잉
이일선.조혜림 지음 / 그림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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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잘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내게 소중한 사람을 그려 준다거나, 유명한 인물을 척 보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그렇게 그린 그림을 선물한다면, 또는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 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림 일기도 써보고, 이것 저것 낙서해봤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는 잘 되지 않았다.
<
나 혼자 인물 드로잉>은 인물 그리기 만을 다룬다. 기초부터 고급 표현까지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갈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선 연습부터, 재료 다루기, 찰필 및 지우개로 할 수 있는 표현 등 기초 이론부터 시작한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책에 연한 선으로 밑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그 위에 쉽게 연습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연한 선이 그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적은 노력으로 좋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을 망칠까 봐 걱정하지 않고 중점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것에 신경을 써 가며 이 책을 한 장씩 채워 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인물을 잘 그릴 수 있게 될 것 같다.
개성적인 그림 그리기도 소개되어 있다. 빠르게 그리는 크로키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 법이 설명되어 있다. 간단하게 스케치하고 명암만 표현해 주어도 충분히 느낌을 살릴 수 있는 매력적인 그림이 탄생한다.



뒷부분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고급 작품을 연습하도록 되어 있다.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가득이다. 물론 그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쉽지 않겠지만, 언젠가 이런 그림을 혼자서도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여정을 이 책이 도와줄 수 있을 듯하다. 그것도 매우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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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 수채화로 그린 모네가 사랑한 꽃과 나무
박미나(미나뜨) 지음 / 시원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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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는 예술가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도 춤추는 빛과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공기를 화폭에 담으려 했던 모네라면. 모네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러나 모네가 지베르니란 곳에 환상적인 정원을 가꾸었다는 것은 몰랐다.
박미나 작가는 그 곳에 다녀왔다. 모네가 가꾼 지베르니의 정원을. 그리고 그 곳의 꽃과 나무를 수채 보태니컬로 재현해냈고, 그 옆에 모네가 한 말이나 모네의 지인이 모네에게 한 말, 모네에 대해서 한 말을 실었다. 영어 원문과 번역문 모두를.
모네는 그저 정원을 취미로 가꾸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꽃 달력을 썼다. 일 년 내내 꽃과 나무가 풍성하게 피어서 초록과 빨강, 노랑, 보라 등 색색의 아름다움이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썼다. 꽃마다 개화 시기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배치했으며, 같은 꽃이더라도 심는 시기를 달리 해서 항상 정원에 꽃이 피도록 했다.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좋아하는 다리를 놓고, 다리 위에서 종일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그야말로 그의 예술의 정수이자, 그가 만든, 그를 위한, 그가 사는 세계였다.



모네는 그 곳에서 행복했으리라. 색채에 대한 고민과 예술에 대한 고뇌가 그를 항상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미나 작가는 그의 행복함을 이 책으로 고스란히 전했다. 그리고 그곳에 다녀온 작가 자신의 기쁨도 더불어.

색에 반해 그 색을 음미하는 동안 내겐 꽃의 이름도 나무의 이름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자연이었고 나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색의 간극을 오가며 하나하나 손끝에 물들이는 놀이와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p. 193)


책 말미에는 박미나 작가가 지베르니 정원에서 찍어 온 사진을 실었다. 그의 그림도 좋았지만, 실제 사진을 보니 그 곳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 속에 나온 것만 같은,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연못과 수련의 사진. 예술가의 집 답게 핑크와 그린의 조화가 너무나 예쁜 아기자기한 집. 모네의 집 안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 사진 등.



모네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그의 그림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베르니 정원을 보아야 한다. 그곳에 그의 열정이 있고, 그의 예술이 녹아 있고 그이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 박미나 작가 덕에 실컷 그 곳을 구경한 기분이다. 언젠가, 그 곳에 나도 찾아가서 아름다운 색과 빛을 눈에 담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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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들다 우는 밤 - 홀로 글을 찾고, 다듬고, 엮습니다
홍지애 지음 / 꿈꾸는인생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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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책 읽는 일을 좋아한다. 책에 대한 책이라면 그게 무엇인들 좋다. 독서 에세이, 서점인 에세이, 번역가의 책, 작가의 에세이, 출판 에세이, 출판 산업 관계자 인터뷰집, 독서법에 대한 책,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책, 서평집, 문예지. 서점이나 작가가 배경인 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읽었다.
<
책 만들다 우는 밤>은 그 중 출판 에세이쯤 되겠다. 홍지애 작가는 꿈꾸는인생이라는 1인 출판사 대표다. 그는 책을 많이 읽지도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기억되는 것도 무언가 억울해 하지만, 책 만드는 일만큼은 뼛속 깊이 사랑한다.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자본으로 작은 출판사를 차렸다. 5년 여 동안 출판사를 운영하며 겪은 이모저모를 이 책으로 썼다. 그 안에는 유명한 대형 출판사가 아니기에 겪어야 했던 설움이 꾹꾹 눌려 있고, 그의 울음이 담겨 있다. 한편 출판사 사업등록증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날의 설렘과 첫 책이 교보문고에 입고되던 날, 달리 보이던 교보문고의 영롱한 모습, 그가 사랑에 빠진 꿈꾸는인생의 책들이 빛나고 있기도 했다.
나도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홍지애 작가의 에세이 사랑에 깊이 공감했다. 아무튼 시리즈를 보고 에세이에 빠진 점도 같다. 꿈꾸는인생에서는 고심 끝에 들 시리즈를 기획하여 선보이고 있다. 한 사람이 책 한 권 분량을 꽉 채워서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쓴 책. 이거라면 삼일 밤낮이라도 말할 수 있지. 같은 느낌이다. 그것이 연필이라면 그에게는 하나의 연필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연필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시리즈다. 그 중 사생활들은 내 독서 관리 앱 위시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다.
서평단으로 오래 활동하다 보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책인데 너무 좋은 책이 있다.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인데 찬찬히 읽어보면 베스트셀러보다 나은 책도 많다. 그럴 때면 서평단 활동을 하는 보람을 참 많이 느낀다. 서평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읽지 않았을, 나만 아는 보물을 찾은 느낌. 무언가 나 혼자만 알고 있고 싶을 정도로 아끼는 마음도 든다.
홍지애 작가는 꿈꾸는인생의 책이 읽어보면 참 좋은데, 많이 팔리지 않아 고민하고 슬퍼하다 못해 우기를 맞는다. 불시에 찾아오는 강렬한 울음을 겪어내며, 나 때문인 것 같아. 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이 좋은 글이 대형 출판사를 만났으면 잘 되었을 텐데.
하지만 잘된 일이 나 내 덕에 잘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일이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또 다른 오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홍지애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다. <책 만들다 우는 밤>이 참 좋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만 알고 있고 싶지 않다. 서점마다 이 책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대대적으로 진열되어 많은 사람에게 가 닿기를 바래 본다. 그를 응원한다. 그의 인생이 꿈꾸는 것이 되고, 꿈꾸는인생 작가들의 꿈이 독자에게 전해지고, 꿈꾸는 독자들이 그의 책을 찾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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