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 - 그것대로 괜찮은 삶의 방식
김가지(김예지) 지음 / 다크호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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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로 출판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 김예지 작가이다. 젊은이이지만 생계를 위해 청소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그림 그리는 일을 같이 하는 작가이다. 그의 독특한 사연과 특유의 그림체가 매력적인 책이 꽤 반응이 좋았고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책을 세 권 출간했다. 그는 사실 성정이 약하기도 한데, 특히 두 번째 책인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에서는 그가 앓은 불안 장애를 주제로 카툰을 그렸다.
김예지 작가는 엄마가 권해서 청소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에서는 엄마의 사랑과 엄마와의 관계가 주제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힘들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 작가의 엄마가 청소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남는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 제안으로 이렇게 책도 세 권이나 냈으니 그는 실로, 성공한 꿈꾸는 젊은이이다.
사실, 그는 마음이 많이 약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날들을 보내던 중, 엄마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는 나아졌다.



이 책에는 김예지 작가 모친의 젊은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요구르트 아줌마, 서빙, 배달 등등의 일을 전전했던 시기의 이야기까지 엄마의 인생 이야기도 담았다. 그의 엄마는 어렵게 살았을 지 언정, 훌륭한 어른과 좋은 엄마였다. 누구나 자식 자랑을 하고 싶어한다. 심지어는 자식을 자신의 액세서리나 인형처럼 다루고, 마음에 차지 않으면 폭력도 불사하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그의 엄마는 그런 마음이 없다. 누가 자식 자랑을 하면 축하하고, 자신의 아이들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김예지 작가에게 청소일을 권하고, 젊은 나이에 그런 험한 일을 한다며 기특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김예지 작가가 싫다면 회사도 그만두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라고 응원했다. 그리고 그 덕에 김예지 작가는 성공했다.
대기업을 다니는데 왜 그만두냐, 정년 보장이 되는데 나오면 안 된다. 등등 회사를 그만두려는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아파도 이런 말을 부모로부터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김예지 작가의 엄마는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요즘 세상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비혼, 제로웨이스트, 미니멀리스트 등의 소신도 갖고 있는데, 그런 것도 엄마에게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는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작가의 모친도 애면글면 일하던 시기를 지나고, 자식들이 독립하자 허무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김예지 작가와 같이 다니고 일하면서 싸우기도 종종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잘 싸우고, 싸우고 나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며 서로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청소일을 다니는 차 안에서 깊은 대화를 하며 서로의 방 안에만 있던 시절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알콩달콩 같이 여행도 다니고 일도 같이 하고, 친구 같기도,부모 같기도 한 그들의 관계와 모습이 아름답다.
앞으로의 김예지 작가의 행보 역시 기대되며, 그 앞날에 엄마가 계속해서 정다운 동행이 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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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를 보는 눈 - 기계가 도달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창의성의 경지
크리스 존스 지음, 이애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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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궁금한 게 있으면 ChatGPT가 척척 대답해주고, 말만 하면 AI가 그림도 그려주고, 간단한 상담은 AI 상담원이 하며, 빅데이터로 내 취향까지 분석해서 상품을 추천해주는 시대다. 그야말로 최첨단의 시대이며, 인공지능으로 뭐든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그러나 <1%를 보는 눈>의 크리스 존스는 이러한 데이터와 기계에 대한 맹신에 제동을 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부터 스포츠계, 날씨, 정치, 범죄, 경제, 의료계를 넘나들며 빅데이터로 기계가 분석한 것에만 의존한 사람들의 몰락을 다룬다.
데이터에 의존하기는 쉽다. 지금까지의 패턴을 기계에 입력하고, 정교한 계산을 거쳐, 앞으로의 예상을 도출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성공할 것 같다.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해서 미래를 예측한다.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사람의 직관과 열정은 쏙 빠지고 조립식 라인과 같은 시스템이다.
이러한 행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기계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많으며, 데이터만이 말해줄 수 없는 것도 많다. 사람은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이다. 어쩌면 이러한 정교한 논리보다 뜨거운 가슴이 말해주는 게 더 많은 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떠오르는 시대에,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 있다는 그의 주장에 나는 희망을 본다. 솔직히 최첨단 기술이 편하고 유용한 것은 알겠지만, 그리 탐탁치 않다. 기계가 모든 열정을 빼앗는 시대가 올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러나 크리스 존스의 주장을 읽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AI
ChatGPT의 시대, 한 번쯤 사유해볼 만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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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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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하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고정적인 일정량의 소득과 자신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이다. 많은 장, 단편 소설을 썼는데, <블루 & 그린>은 그의 단편을 모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사실 스토리 중심이 아니다.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작품은 절대 아니다. 그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거나,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보이는 풍경을 그린다. 이런 소설에 몰입해서 읽기란 사실 쉽지 않다.
<
블루 & 그린>은 그의 실험적인 작품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사실 나는 소설에 나오는 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메밀꽃 필 무렵>을 읽던 날, 그 아름답다는 메밀 밭 묘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전까지 나는 책을 빠르게 읽는 편이었는데, 묘사 장면은 도대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속도도 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소설에 나오는 묘사는 어쩐지 읽기가 싫어 졌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장면 묘사에서는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눈 앞에 선하게 풍경이 그려지는 듯 했다. 과수원에서 잠이 든 한 여인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가 놓쳐버린 책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장면이 왠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 했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가독성이 좋거나 흡입력이 있거나 페이지가 팔랑팔랑 넘어가는 소설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천천히 공들여 읽다 보면 버지니아 울프가 그리는 장면이 마음에 어느새 들어와 있는 것이다.
영미문학의 대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적 실험을 깊게 탐사해볼 수 있는 책이다. 짧게는 몇 페이지에서 길게는 삼 사십 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비교적 짧은 그의 작품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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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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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물리를 좋아했다. 이과 과목임에도 암기해야 할 것들이 잔뜩 나오는 생물 과목 같지 않고, 내가 이해한 바에 따라 논리를 세워 풀어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불행히도 곧, 열정이 없는 물리 선생님을 만나 흥미를 잃기 전까지의 이야기이지만.
초등학생 때 읽은 어느 과학자의 전기 중 아직도 인상적인 내용이 있다. 과학자의 삶은, 그저 연구실로 출퇴근하고 연구실과 집을 오가는 것뿐, 단조로워 보여도 실은 연구 내용 때문에 상당히 드라마틱하다고. 실은 그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었다고.
1900
년부터 1945년까지의 물리학의 역사를, 그 시대 주요 물리학자들의 삶을 통해 짚어 나가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읽으며 그 책이 생각났다. 물리학자들은 풀어야 할 문제가 풀리지 않아 괴로워하다, 자신의 이론이 정확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환희에 휩싸였다. 동료 연구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고전하기도 했고, 연구를 위해 몸을 불태우다 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특히 이 책이 다루는 물리학은 양자 물리학이다. 막스 플랑크가 양자라는 개념을 고안해내고, 곧이어 마리 퀴리가 방사능을 발견했을 때부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많은 물리학자들의 싸움과 악전고투, 그들의 업적을 다루었다.
이들이 연구한 물리학 내용이 간단히 소개되기는 하지만, 물리학 자체 보다는 물리학자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부터 역사, 물리학의 발전 과정이 중심이다. 시간 순서에 따라 물리학자들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그들의 업적과 인생, 배경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물리학 서적이기 보다는, 과학사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평가일 듯 하다. 마치 소설을 읽듯이 술술 읽히는, 흔치 않은 과학을 주제로 한 책이다.
수많은 물리학자들의 눈물과 땀이 결국 원자폭탄으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지만, 또한 그들의 찬란한 인생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물리가 어려운 사람이더라도, 이 책이라면 흥미롭게 물리학의 역사와 물리학이 바꾼 세상의 역사를 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써진, 물리학을 주제로 한, 그러면서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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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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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도 즐기기 때문이다. 그 책이 전문 작가가 쓴, 작가 자신의 읽기와 쓰기에 대한 책이라면 볼 것도 없이 좋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작가들에게는 특히 쓰는 것뿐 아니라 읽는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하니 작가가 되었을 터이고,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로 책을 읽어야 하고, 다른 작가의 소설을 공부하기 위해 잘 써진 소설을 읽어야 하고, 또 그냥 좋아서 마음 가는 책도 읽는 듯 하다.
좋아하는 일본 문학 작가 중 한 명인 에쿠니 가오리의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에서는 작가 자신의 읽기와 쓰기, 그 주변부에 대한 에세이와 짧은 소설을 모았다. 한 꼭지 한 꼭지가 인상적이고,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는 작가의 고뇌와 작품에 녹아 있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 등이 재미있었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진하게 밑줄을 두 세번쯤 긋고 싶은 문장을 많이 만났고, 그가 읽었다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읽고 싶어져, 어려운 영어 원서도 불사하며 모두 데일리북 프로 앱의 위시리스트에 넣었다.
그가 말하는 읽기의 즐거움에 크게 공감이 갔다. 그는 일평생 소설가로 살면서 현실 속에서 사는 것보다 이야기 속에서 더 오래 있었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거나, 또는 읽거나 하면서. 삶의 80%는 이야기 속에 있었으니 소설을 쓴 20여 년 중 5년 밖에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현실 감각이며 시간 감각 마저도 없어져 버렸다는 그가 말하는 이야기의 매력. 역시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멋진 책 한 권을 읽었을 때의,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마저 읽기 전과는 달라지게 하는 힘, 가공의 세계에서 현실로 밀려오는 것, 그 터무니없는 힘.
(p. 212)


그가 책과 활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열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자신이 작가이면서도 자신의 책보다도 더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푹 빠진 책을 소개할 때. 그의 글에서는 반짝반짝 하는 빛이 나오는 듯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으로 떠나는 일이고, 떠나고 나면 현실은 비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p. 129)


몇 권 읽은 그의 소설도 참 좋았지만, 이 에세이가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작가의 진솔한 일상과 그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삼삼했다. 에세이이지만 무언가 마술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책이었다.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면, 꼭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l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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