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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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인간의 맛

2026. 3. 2(월)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가는 법’에 대한 답을 찾으려 『중용(中庸)』을 읽는다. 깊게 한 공부나 연구가 아니다. 선조들은 십대에 읽어 통달했고, 도올은 21세에 중용을 읽으며 울었고,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동년배들이 퇴직하는 시기라 너무 늦게 읽는다. 공자께서 ‘나는 중용을 택하여 지키려고 노력해도 불과 만 1 개월을 지켜내지 못하는구나!’라고 자탄한 일에 비추어 나를 다독였다.

『중용』은 “군자의 도는 부부간의 평범한 삶에서 발단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 지극함에 이르게 되면 하늘과 땅에 꽉 들어차 빛나는 것이다.” 보통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가히 더불어 군자의 도道를 알 수 있지만, 도의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고 한다.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뿐, 타인에게 나의 삶의 상황의 원인을 구하지 아니 하니 원망이 있을 수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 하며,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치 아니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이한 현실에 거하면서 천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위험한 짓을 감행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남이 능히 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라. 호학역행(好學力行)의 도에 능하게만 되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반드시 현명해지며, 비록 유약한 자라도 반드시 강건하게 될 것이다. 밤새 소리없이 소록소록 쌓이는 백설처럼 인간의 내면에 쌓이는 신독의 덕성이야말로 『중용』의 궁극적 주제다. 도올은 공자의 가르침이 단순한 윤리적 교훈에 그치지 않고 우주적 진리를 구현한 체계로서 유교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노력으로 평가한다. 이것이 독자가 소화한 중용의 가르침이다.

깊숙하게 『중용』의 내부로 들어가 소화하려 애쓴 걸 모아 본다. 도올 선생의 주장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신선하고 내가 알지 못했던 관점을 찾아주니 호기심을 채울 수 있고도 재미있는 거다.

서(序)에서 도올은 역사를 진보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중용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간존재도 해방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여기서 서구의 사상으로서 이성과 베이컨의 경험주의가 낳은 폐해가 인류에게 위협(핵과 산업화, 기후 변화 등)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공감할 수 있다. 기탄(忌憚)은 ‘거리낌’이고 ‘기탄이 없다’는 것은 ‘공적 마인드’가 없다는 것이란 문장에서 공론의 장에서 벌어지는 언어사용의 미숙함을 깨우친다.

베네수엘라를 침략하고 엊그제 이란을 공격하는 미국 트럼프는 칸트가 말한 정언 명령 (나 자신에게 있어서나 타인에게 있어서나 인간성을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서만 취급하지 않고 항상 목적으로서 취급하도록 행위하라)을 어기고 있다. 도올은 중국 문명에게 서구 문명이 지향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창출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결국 미국은 한국을 버린다는 사실이다.”(p.34)라고 말한다.

도올은 『중용』을 읽으면서 ‘일상적 삶의 혁명’을 바라며 정자程子가 말한 논어 독서법을 서술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 사람, 이 책을 읽은 후에도 그 사람이면, 그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중용(中庸)

『중용』에서 1장인 천명장(天命章)이 가장 어렵다. 『중용』을 읽고 “중용”만을 말하며 “성誠”을 말하지 않은 자는 『중용』을 읽지 않은 것이라니 더 그렇다. 誠은 자연 nature에 가까운 데 nature는 서구식 개념이라서 誠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서양 철학이 중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목적론적이며, 행복조차도 성공적 삶이라 말한다. 중용을 ‘無過不及’으로 말하는 주희는, 근대 정신의 한 표현이기는 하나 틀렸다고 본다. 중용은 일차적으로 품성의 탁월함과 관련된 것이지만, 중용의 지향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귀한 특징인 이성 혹은 사유의 힘의 발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나아가 중용적 인간은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성誠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배우지 않고도 잘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잘한다는 것으로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이 그렇다, 인간을 교육시킨다고 하는 문제는 이성적 인간을 만드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상식이다. 우리가 배양해야 할 것은 정감情感의 윤리성과 심미성이다. 교육학자 아이즈너가 예술 수업에서 강조하는 예술적 감식안보다 큰 범주다. 이성의 교육을 통섭하는 새로운 인성의 교육이 중용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군자의 중용은 “시중時中”이고 소인의 중용은 ‘무기탄’이다. 중中이란 오직 적절한 시時를 만날 때만이 중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비트켄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말한 것은 결코 언어적 개념 조작에 의한 어떤 논리적 결구도 근원적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는 개인으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사회적 가치와 더불어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이론이라기보다는 인문주의적 상식이라고 본다. 21세기 민주제도의 성패는 리더십의 도덕적 질 확보에 달려있다. 지知라는 것은 인식론적 탐구라기보다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천적 앎이다. 앎의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덕성은 “호문好問”이다.지나가는 어린이에게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서슴치 말고 물어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이다. 어떤 질문 즉 테제가 제시되면 그것에 관련된 모든 양극적, 대척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하나의 작은 선이라도 진심으로 고뇌하면서 가슴에 품어 잃지 않는다면 공자-자사가 말하는 중용이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시중時中을 발현하고 능구能久하라.

용기도 반드시 화和를 전제로 해야만 진정한 용기가 된다. 중용이 계속 밀고가는 “성聖”의 테마는 모두 신독愼獨과 관련이 있다, 남이 알아주는 것과 무관하게 나의 내면적 도덕성을 홀로 지키는 것, 그것이 성인의 길에서 가장 난제로 본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을 은둔하여도, 부끄럼없이 내 갈 길을 가는 것이 중용의 길이라고 공자-자사는 선포하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기 위하여 갖는 모든 인간관계를 유가사상가들은 다섯 관계로 통칭했으니 오륜이다. 군신관계, 부자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붕우관계다. 부부관계는 부자관계, 형제 관계에 선행하는 가장 본질적인 관계다. 부부는 오륜의 하나일 뿐 아니라 우주적 생명력의 핵심이다.

우주의 법칙은 우주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다, 우주 밖에 있는 어떤 존재가 그 법칙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창조론이란 것은 ‘법칙부여’의 외재주의이다. 베르그송은 외재주의를 거부한다. 충서忠恕에서 忠은 가슴 깊은 곳에서 충실하여 우러나오는 느낌, 서恕는 나의 마음을 타인의 마음에 이입하여 같이 느끼는 공감상태를 의미한다. 논어에는 恕가 ‘기소불욕 물시어인’으로 되어 있다. 중용에는 “시저기이불원 역물시어인(施諸己而不願亦勿施於人)”이라 고 명료하게 나타냈다. 공자-자사는 ‘언행일치’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단지 언은 행을 돌보고, 행은 언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 뿐, 타인에게 나의 삶의 상황의 원인을 구하지 아니 하니 원망이 있을 수 없다.

행원필자이 등고필자비(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란 먼 길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서구 언어에는 효孝라는 말이 없다. 효는 특정한 나의 부모에 대한 복종이나 추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인간의 선업을 계승하는 문화적 마인드야말로 진정한 효라고 천명하고 있다.

‘모든 종교의 뿌리는 제사이다’는 허버트 스펜서(1820~1903)의 명제다. 종교의 존속은 사회적 연속성을 구현하려는 것이다. 장례는 죽은자의 위位로써 하고 제사는 제사를 받드는 자손의 위位로써 한다는 주공周公이 확립한 예이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릴 기회를 얻지 못한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받으려면, 먼저 친구들에게 신임을 받아라. 친구들에게 신임을 받으려면, 먼저 부모님께 효순해야 한다. 자기 몸을 돌이켜보아 성실하지 못하면 부모님께도 당연히 효순할 수 없다. 자기 몸을 성실하게 하려면 선善을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유교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건다. 이 사람 중심의 생각이 유교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유교의 영원한 생명력이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뽐낸다. 그러나 조랑말이라도 열심히 가기만 하면 열흘이면 같은 목적지에 너끈히 도달할 수 있다. 문제는 가는 목적지가 명확히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강대국은 약소국에 대하여 “후왕이박래厚往而薄來”해야 해서 중국은 조선으로부터 받은 것보다 후하게 준다는 원칙을 가졌다고 도올은 말한다. 이는 공자-자사의 위대한 영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미국의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와 이란 침공한 것은 후왕이박래와 거리가 멀다.

인仁은 끊임없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하면 천天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박학과 심문이 합쳐서 학문이, 신사와 명변이 합쳐져서 사변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학문과 사변은 知의 세계이고 독행은 行의 세계이다. 지행합일의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결국 인간을 하느님으로 만든다.

성誠에 기반하여 명明으로 나아가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明명을 기반으로 성誠으로 나아가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성性이란 자연에서 문명으로 가는 과정과 관련되고, 교敎라는 것은 문명에서 자연으로 가는 과정과 관련된 것이라 한다, 문명에 속해 있는 인간은 끊임없이 교육을 통하여 자연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사상이 닮아있다. 자사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성실하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자사에게 자연의 법칙은 그 자체가 종교적 경건성의 대상이며 인륜도덕의 법칙이며 심미적 찬탄의 대상이며 인간문명의 모든 가치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 이런 사상은 서양인들에게는 있어본 적이 없다고 도올 선생은 말한다.

중국인들은 주나라 이후부터 이미 인간의 도덕을 하나님이나 초월적 픽션으로 보장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간의 도덕은 오직 인간의 주체적 행위의 문제이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생각은 실존주의의 기발한 명제가 아니라 인간의 너무도 당연한 상식에 속하는 것이었다.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결여한 인간은 고전을 공부할 자격이 없다. 현대사는 나의 기점이다. 한국사람에게 있어서 현대사는 일제침략사에 대한 반성이다. 이 반성이 없는 자들은 한국인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도올 선생의 생각으로 공감한다.

변화란 개념을 다이어트로 설명한다. 80킬로에서 10킬로를 빼는 일은 쉬운 일이라 이 정도의 수치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변變의 단계이다. 1년이나 2년의 시간에 만약 건강하게 50킬로로 내려왔다면 단순히 몸무게를 뺀 사람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생활습관과 성격, 인격구조의 화化를 체험한 사람일 것이다.

‘성자자성誠者自成’이라는 말은 우주의 모든 성실한 법칙이 외재적인 존재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노자사상은 도덕부정의 사상이나 그의 책 제목은 『도덕경』이다. 도와 덕은 현대 서양어의 도덕과는 관계가 없다. 도는 인식의 문제이지만, 덕은 ‘몸의 축적’에 관한 것이다. 모든 덕은 나의 몸에 습관으로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를 통하여 세계를 인식하고, 덕을 통하여 나의 내면적 도덕적 주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순간’은 눈을 한번 깜박거리는 시간이고, ‘찰나’란 손가락을 한번 튀기는 시간을 65분 한 것이다.

-犬不七年, 鷄不三年. 도올 선생의 글에 나오는 닭의 이름이 봉혜다. ㅎㅎ

-공자는 술이부작述而不作하였다고 하였으나, 도올은 술述을 통하여 작作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늦게나마 四書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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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부처의 말 - 2500년 동안 사랑받은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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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괴롭히는 감정 즉, 이룰 수 없는 걸 갈구하는 욕망과 영원히 반복되는 화는 타인이 만든 게 아니라 당신의 심신에서 생겨납니다.”(p.166)라는 문장에서 오래전에 탁닛한이 『화』란 제목으로 책을 낸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불자가 아니니 불교 경전을 탐구할 까닭이 없지만, 『초역 부처의 말』은 초판을 50쇄가 넘게 인쇄해 출판했느니 베스트셀러다. 시류에 따라 사 읽은 셈이다. 짧은 글로 구성하고 심리학으로서의 불교라는 차원에서 현대어로 옮겨두었기에 선택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12부로 나누어 190여 개의 소재로 열거한 글은 부처님의 말씀을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전직 승려가 짓고 한국어로 옮겨두었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뽑아 분류한 주제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비교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다, 선한 업을 쌓아야 한다, 자신을 알고 친구를 선택한다, 행복을 안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자유로워지며 자비를 배운다, 깨닫고 죽음을 마주한다 등이다.

나에게 더 필요하다고 여기는 글들을 옮겨둔다.

“적을 고민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화내지 않고 온화하게 있는 것, 단지 그뿐입니다.”(p.20)

온화하게 있지 못하더라도 침묵하는 길도 있느니.

“자신이 얼마만큼 애쓰고 있는지

자신이 얼마만큼 이루어냈는지

자신이 유명인과 얼마나 잘 아는 사이인지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대단한지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점점 당신을 멀리할 것입니다.”(p.50)

→ 나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저기 온라인공간에 쓰레기와 같은 글을 올려 두고 있느니.

“원하고 원해서 견딜 수 없는 상대를

만들지 마세요.

원하고 원해서 견딜 수 없는 상대가

당심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언젠가 그 상대를 잃지 않으면 안 될 때

당신의 마음은 극심한 고통으로 뒤덮일 것입니다.”(p.76)

→ 미망이 내 곁에 머물 때마다 떠올려아 하느니.

어떤 종교를 갖거나 신에 대한 믿음으로 가지고 살지 않는다. 철학 혹은 심리학이라는 차원에서 종교를 대한다. 특히 불교에 대한 것은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로 눈을 뜨게 되었고, 불광출판사에서 내놓은 『종교문해력 총서(전5권)』도 재미있다. 원영 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도 읽기 쉽다. 고우 스님이 강설한 『육조단경』의 ‘양변을 여의라’가 가장 와 닿는다.

P.S. 튀르키예로 가는 비행 중에 읽고 오늘에서야 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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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철학 30day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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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

2025. 2. 2()

고윤 작가가 매일 철학하는 삶을 살자며 내놓은 책이다. 위인 54명의 삶과 책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한다. 제목에서 기저에 개인주의가 깔려 있지 않을까 우려한다. 김태형의 교양 심리학에서 중요하기 다루는 우리주의와 견주며 읽는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조언이 더 개인주의에 가깝고, 가운데에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두고 교양 심리학을 집단주의에 가깝게 상정하고 읽으면 된다. 물론 우리주의집단주의와는 다르다.

 

첫 소재로 등장한 낙관주의이성주의비관주의를 견주어 이성주의에는 낙관과 비관이 함께 있다. 낙관주의자가 되자는 작가의 권유 14가지를 서술한다. 나는 졸저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에서 완벽주의최적주의를 견주어, 성장기에는 완벽주의 태도로 성취적인 삶을 살되 나이가 들면 최적주의적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칼럼을 소개하였다.

퇴계 이황의 말씀을 통해 수기치인(修己治人)’에 이르는 과정에 조화를 강조함을 발견하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과 감성에 대해 말한다. 독자는 특히 조화안정을 비교할 때, 평온을 유지하는 입장에서 스토아 학파의 아파테이아를 떠올린다. 퇴계는 아파테이아보다 조화를 강조한다. 올바른 관점으로 인생을 끌어가려면 조화를 중시하란다.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일 뿐, 남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게 무슨 죄란 말인가는 장영실의 말이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타인에게 받는 인정보다 중요하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분사회에서 살았던 장영실조차 이런 생각을 가졌는데 오늘날과 같이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에겐 어쩌면 당연한 삶의 자세일 수 있다.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망각하는 자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는 니체의 말이다. 이를 통해 사소한 일을 흘려보내는 것이 지혜일 수 있다. 정석은 과거 행동을 반성하고 올바른 길로 나가야 하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빨리 털어낼수록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디아트리베를 통해 말한다. 우리는 폭증하는 지식을 수령만 할 뿐 해석하고 정리하는 일은 아웃소싱하고 있다. 그마저 유튜브에서 찾는다. 사유의 회복이 필요하다. 체화되지 않은 지식을 뽐내서는 안된다.

공자는 논어를 통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얕은 사람이라고 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는 것이다.”

미셸 푸코는 현대의 파높티콘은 CCTV 가 아니라 습성이라고 한다. 자유의지를 아웃소싱한 채로 쌀아가는 습성. 책을 읽고 사색의 바다에 잠겨 보자. 그래야 주관적인 선택에 따른 홀로서기를 시작할 수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생이 힘든 게 아니라 당신이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말한다. 자신의 문제와 실패에 대하여 방어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남을 탓한다. 이것이 누적되면 인생은 꼬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역설적으로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 나였다면, 인생을 바꿀 힘도 나에게 있다는 의미다.

이성계의 말, “화살이 과녁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활 쏘는 이가 과녁으로 화살을 보내는 것이다에서 작가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 성취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일기 쓰기, 아침 명상을 추천한다.

율곡 이이는 말로만 뜻을 세우고 기다리다 죽지 말고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생각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을 것이라 한다.

공자는 배우려는 자가 스스로 분발하지 않으면 일깨워지지 않는다. 스스로 표현하며 애쓰지 않으면 밝혀지지 않는다를 통해 떠먹여 주는 인생에 중독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니체는 주어진 만큼 책임지는 법을 익히라 한다. 책임져야 하는 자리를 두고 망설이는 사람과 책임지는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누가 책임자로 적절할까? 책임을 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알베르 까뮈는 인생의 부조리함을 넘어서는 해답으로 나의 시선을 부조리함에 두지 말고 부조리의 두꺼운 벽을 뚫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전의를 제시하나 독자는 열정의지라고 믿는다.

지식은 이미 알려진 사실에 기반하지만, 상상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기본의 생각을 뛰어넘는 혁신을 발견할 수 있다. 관점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이다. 어떻게 상상력을 키울까. 자신에 대한 탐구가 깊은 사람일수록 소유한 무의식과 창의적인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삶이 단순할 것이다. 불필요한 일에 마음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는 몰입이다. ‘오컴의 면도날처럼 사고하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하라.

사람은 혼자 있을 때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동양의 신독과 어울린다. 작가는 나를 발견하는 것을 내 인생에 가장 큰 의무라고 생각하자고 말한다.

헤겔은 모순은 모든 운동과 생명의 뿌리다.”라고 했다. 이는 극과 극은 통한다, 나아가 정반합의 출발이 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복수심 또한 연료가 될 수 있다며, “가장 좋은 복수 방법은 상대방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잘 사는 방법이 최고의 복수다.

칼 융은 가장 위대한 실수는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들에게 덧 씌우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분쟁의 원인이다.”라고 했다. 이는 내 기준으로 남을 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며, 공자의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란 황금률과 통한다.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사람들은 죽음을 슬퍼한다.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주제에현재의 삶과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쓰라는 표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 미루지 않기, 우선순위 세우기를 생각한다.

적당히 존재하는 것은 사는 게 아니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주체적인 삶으로 자신의 의지와 꿈을 실현시키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죽음과 동시에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쓰라. 또는 쓸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밴저민 프랭클린 말로 우리는 나의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느낄 때, 깊은 우울감에 빠지곤 한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자. 소유보다 공유하자. 그래야 삶이 가치있게 바뀐다.

올바른 길만이 존재할 뿐,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스스로에게 물으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간 얻은 성취는 온전히 내가 한 선택에서 비롯됐다.

김구는 겸손한 태도가 당신을 귀인으로 만든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호 백범은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마키아벨리의 불만만 가진 사람은 불만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꾸준히 불평만 한다. 더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인도 속담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기 싫은 자는 핑계를 찾는다와 통한다.

니체는 하루를 시작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눈을 떴을 때 오늘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으니, 그가 기뻐할 만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라.” 사소한 온정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친다.

공자는 도량이 넓어지면 만사가 평안하다고 한다. 관계란 결국 도량의 문제다.

전장에서 승리하는 요소 중 하나는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준비하고 있을 때만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정약용은 오르막길은 어려워도 끈기로 올라갈 수 있으나, 내리막길은 쉽다. 그렇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마천은 내가 숭배하는 것이 나를 노예로 만든다고 한다.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왕양명은 인간의 가장 큰 병은 바로 교만이라 한다.”

남들도 나처럼 실수할 수 있다.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동시에 상당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때 앨버트 엘리스의 말을 생각한다. “남들도 나처럼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타인을 휠씬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는 개개인의 스트레스를 줄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공감하는 능력,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소중하다.

외모, 학력, 명예, , 지위, 욕망은 껍데기다. 우리가 인간이 인상 탐욕과 욕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하자고 타고르는 말한다.

뻔한 것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성공한다.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선택집중이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훌륭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내적 성장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다. 가끔은 세상의 흐름을 끊어 내고, 나 자신과 대화하는 침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 부를 경멸하는 척하는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 부를 얻는 일에 절망한 사람이 부를 경멸한다.” 돈을 밝히지 않는 사람은 없다.

도덕경의 가르침이 독자가 책에서 가장 공감하는 문장이다. 무엇이든 전부 이룰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꾸준함이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대체할 수 있다. 10년간 좋은 책을 더 읽는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 길을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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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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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2026. 1. 24()

돌아 돌아 구운몽을 읽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반니 보카치오가 지은 데카메론에서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기 이탈리아 사람들의 유머와 재치를 만났다. 여러 언어를 거쳐 번역된 아라비안나이트에 이어 조설근과 고악이 지은 홍루몽에서 중국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읽고 김만중의 구운몽을 읽었다. 홍루몽구운몽을 나이가 들어 읽은 것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리거나 젊을 때 읽었더라면 허황된 꿈 이야기로 쉽게 잊혀질 수 있었을 듯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고 허무라는 단어의 의미를 옅게나마 느끼는 시기에 읽은 것은 독자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홍루몽구운몽비교해 읽는 것도 재미있다. 홍루몽은 등장인물의 말과 속담 등으로 인생사를 평한다. 가모는 무릇 사람이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부귀를 누릴 줄도 알고 가난을 이겨낼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연륜이 빚은 언사다. 모란이 고운 것도 푸른 잎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불교사상을 담은 표현과 사찰에서 행하는 장례식, 스님을 장원 내에 거주하게 하는 방식 등으로 불교를 수용하고, 도사의 등장과 보옥의 선문답, 소설의 끝부분에 나타난 문단으로 노장사상을 담고 있다.

구운몽에는 홍루몽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성진과 여덟 선녀, 여덟 선녀는 꿈속에서 인연을 맺은 두 처와 여섯 명의 첩이다. 성실한 불제자였던 성진이 잠시 마음을 잘못 먹어 인간 세상에 환생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결국은 그것이 허무한 것임을 깨닫는 꿈을 꾸는 과정이다. 육관대사라는 스님과 여덟 선녀를 통해 불교와 선교에 바탕을 둔 이야기임을 안다. 홍루몽이 시, 말과 속담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듯이 구운몽도 중국의 역사와 고사를 끌어다 이야기를 풀어간다. 수많은 전고(典故)를 살펴 사용한다. 조선에서 짓고 읽힌 소설이나 배경은 중국이다. 시골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낙양으로 가는 과정에서 여인을 쫓고 취하는 로드 무비식의 이야기와 토번 정벌, 관직을 얻고 제후로 봉해지는 과정에서 중국이란 지리적 배경을 토대로 한다. “예전 여자 중 시 잘하는 자는 반첩녀, 탁문군, 채문희, 사도온, 소악란뿐이라”(p.177)서술돼 있어 다섯을 검색하니 중국역사 인물이고 계급이(반첩녀).

 

소설에서 약수(弱水)를 인간 세상과 선계를 나누는 강으로 칭하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레테의 강, 스틱스 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성진이 환생한 양생(양소유)’ 이 둔 두 명의 처는 정경패와 난양공주 이소화로 자매의 연을 맺고, 여섯 첩과도 질투하지 않고 한 남자를 섬긴다. 첩에는 기생 출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여인, 공주 등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하나같이 양소유를 모신다. 이 점에서 요즘 여성 독자라면 비위가 상할 일이다.

양소유의 일생을 승상이 일개 서생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 로써 국가의 위기를 평정하고 으로써 테평성대를 이루니 부귀영화가 곽분양과 견줄 만하였지만 분양은 예순에 장상을 하였고 소유는 스물에 승상을 하였으니 전후로 재상을 누린 것(여기서 왜 1심에서 내란 주요 종사자로 23년 형을 선고 받은 한덕수가 떠오르는지.....)이 분양보다 많고 군신이 함께 태평성대를 누리니 복록의 완전함이 진실로 천고에 없는 바더라라고 정리하지만, 실제는 꿈이었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다시 장부가 되니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변하지 못했다.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닌가? 창밖 기온은 영하라지만 유리라는 장벽을 통과해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한 토요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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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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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THE END OF THE WOLRD IS JUST THE BEGINNING

2025. 1. 17()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 이어 피터 자이한(지정학 전략가이자 글로벌 에너지, 인구통계학, 안보 전문가)의 책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을 읽는다. 원제와 번역서의 책 제목이 다르다. 콘텐츠의 기반에는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의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인구구조가 셰계의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는 인구구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리적 여건의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2차대전 이후의 세계는 냉전 시대라는 것에 이의가 없다. 피터 자이한은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에서 브레튼 우즈 체제의 본질은 미국이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안보동맹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안보동맹으로 미국은 반공산주의 진영을 세워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20세기 후반을 지내왔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경제적으로 자유무역을 추구해 왔다.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총체적인 개념은 미국이 세계 동맹의 충성심을 사기 위해서 경제적 불이익을 스스로 감수한다는 개념이다. 그게 바로 세계화다. 지난 수십 년은 미국의 세기가 아니었다. 미국이 희생한 세기였다.(p.410)”라는 시각이다. 미국의 세기가 아니라 미국이 희생한 시기였다는 문장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끝까지 읽고 판단해야 한다. 한국에는 90년대 초 김영삼 대통령대에 세계화라는 개념이 국제화를 넘어섰다.

진정한, 실질적인 미국의 세기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p.410)는 에필로그에서 세 가지로 정리해 준다. 첫째, 베이비붐 세대가 2020년대에 대거 은퇴하면 미국에게 큰 타격이다. 은퇴하면서 그동안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40년 무렵 밀레니엄 세대 중 가장 어린 연령대가 40대가 되면서 그들이 투자한 자본으로 경제 체제는 다시 한번 풍성해진다. 둘째, 미국과 멕시코가 연계하여 미국의 재산업화가 완성된다고 본다. 2040년대는 북미지역에서 호시절이다. 셋째, 세계 다른 지역과는 전혀 다르게 2040년 무렵 농업계는 디지털, 유전학, 자동화, 공학의 발전이 뒤섞이면서 미국 농부들은 열량 산출은 세 배로 늘리게 된다. 동반구가 겪을 2020년대와 2030년대에 동반구가 겪을 식량부족과는 다르다. 넷째, 재료공학 분야에서 장거리 전기 전송 능력, 리튬보다 더 나은 배터리가 가능할 것이다. 천연가스를 연료로 쓰는 발전 시설을 폐기하고 본격적 에너지전환에 착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냉전이 끝났는데 미국은 왜 동맹국을 위해 비용을 대야 하는가?’(이 질문은 도널드 트럼프만의 생각이 아닌 것이다) 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책 본문의 내용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자유무역)가 붕괴하면 일어날 일들을 자료와 통계를 가지고 풀어간다. 운송, 금융, 에너지, 산업 자재, 제조업, 농업이라는 여섯 영역에서 미국이 행해왔던 힘을 열거하니 미국이 발을 빼면 생길 위험성을 예견한다. 한국 입장에서 저자가 전망하는 미국이 아메리카로 돌아간 세계질서는 암울하다. 물론 친미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영역별로 메모한 내용을 옮겨본다.

 

한 시대의 종말 THE END OF AN ERA

: 미국은 왜 몽골이나 로마 제국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는가?를 묻고 답한다. 세계를 아우르는 제국을 제대로 경영하기에 충분한 규모의 점령군을 확보하기 불가능하다. 게다가 주둔군을 전진 배치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물류비용을 생각해 보면 현실적 선택지가 아니다. 소련이 육군 중심의 방대한 대륙국가지만, 미국 군사 역량은 해군력이다. 미국은 민주정체를 가진 국가라는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정부가 연방정부 못지 않게 권력을 행사하고 당시 행정능력이 엉망이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제국을 원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는 미국, 제국의 연대기의 저자 대니얼 임머바르의 판단과 같다.

지정학과 인구구조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앞으로는 대량소비 체제는 없다.

 

운송 TRANSPORT

: 철도가 등장하기 이전 육로 운송비용이 수로 운송비용의 20배 이상이었으나 철도의 등장으로 육로 운송비가 수로 운송비의 두 배가 되었다. 수로 운송에서 규모의 경제는 크기, 선원, 연료, 포장에 따라 달라진다. 생산은 지역에서 판매는 세계를 상대로 하는 시대는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획기적 발전을 이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마크 레비슨의 THE BOX에서 상세하게 다룬다) 2022년 현재 부피로 치면 80%, 액수로 치면 70%에 달하는 세계무역 운송은 대양을 가로지르는 선박들이 처리한다. 장거리 운송은 에너지, 제조업, 농산물 총운송량의 4분의 3을 담당한다. 미국 주도의 해양 질서가 사라지면 일본, 중국, 한국, 대만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페르시만 지역이 혼란해질 것이 뻔하다. 세계 무역체제, 세계 운송체계가 해체되면 도시는 필요한 식량과 에너지와 산업 투입재를 직접 마련해야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2019년 기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한 해 동안 운반한 화물보다 대형 컨테이너선 한 척이 운반한 화물이 더 많다. 구조가 해체되면 새 시대에 최대 패자는 단연 중국일 것이다.

 

금융 FINANCE

: 호황에서 불황으로 그리고 다시 호황으로 가리라 보는 미국 모델, 유로 모델을 살피고, 아시아의 금융 모델을 공짜 돈으로 묘사하며, 중국은 절대적, 상대적 척도 모든 면에서 인류 역사상 규모가 크고 가장 지속 불가능한 융자 대잔치를 벌여 재정 붕괴를 겪을 것으로 본다.

 

에너지 ENERGY

: 미래에 연료 공급 부문에서 가장 극심한 부족을 겪게 될 지역은 취약한 공급 경로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주요 소비국들이다. 동북아시아, 중부 유럽이 그런 나라들이고 독일, 한국, 중국이 단연 가장 심각한 위협에 놓이게 된다. 책은 우리와 비슷한 여건의 일본은 예외로 보는데 일본의 해군력을 대양 해군으로 평가해 대양 항로를 보호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석유는 땅이 얼 때까지 기다렸다 시추해야 한다.

운송, 금융, 에너지에서 미국은 운 좋은 나라이고 그 운은 지리적 여건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산업 자재 INDUSTRIAL MATERIALS

: 폴란드는 소금 광산 하나에서 얻은 소득으로 유럽의 강대국이 되었다. 1300년대에 대량의 고기나 생선을 저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염장이었다. 스페인은 포토시 은광을 확보하면서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1세기 연장했다. 1800년대 말, 칠레는 아타카마 사막과 풍부한 구리, , 질산염(산업화 초기의 화약) 매장지를 두고 페루, 볼리비아와 전쟁을 했다.

전기자동차의 회전력 전달 장치에 필요한 투입재는 내연 기관에 필요한 투입재의 여섯 배다.”(P. 323) 세계화가 막을 내리면 대부분 지역에 실존하는 한 가지 상품인 저질 석탄에 의존해야만 한다. 2010년의 탄소 배출은 호시절로 생각되는 날이 온다. 세계화로 산업 자재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소비하는 동시에 가공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은 나머지 세계가 수입하는 양을 모두 합한 양의 세 배를 수입한다. 중국의 보크사이트는 국제 거래 총량의 3분의 2를 흡수하고 알루미늄 전량의 5분의 3을 제련한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구리 완제품과 구리 광석을 긁어 모으고 있으며 세계 20대 제련소 가운데 열 개를 보유한다. 자유무역이 보호무역으로 대체되면 가장 큰 피해는 중국이 당할 것이다. “친환경의 길은 지속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재료과학이 진전을 이룰 때까지는 더 나은 대안이 없다. (P.338) 2021년 세계 희토류 생산 가공의 90%는 중국이 했다. 희토류 원광은 희귀하지도 않고 가공 과정은 비밀도 아니다. 남아프리카, 호주, 말레이시아, 프랑스에 예비용 채광과 가공시설이 존재한다. 중국이 싼 가격에 공급할 뿐이다. 대재앙은 없다.

 

제조업 MANUFACTURING

: 협업, 규모를 갖춘 제조업, 화석연료의 사용, 재료과학 응용법의 폭발적 증가 등이 서로 잘 맞물린 산업 혁명이 세상을 바꾸었다. 제조업에 도입된 적시생산방식(JUST-IN-TIME)은 제조업이 대량 생산 모델에서 상품 유통 모델로 진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안정적인 운송체계를 바탕으로 공급사슬이 유지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데이터를 우호적으로 해석해, 2000년 이후 효율성이 세 배로 증가했다고 해도 중국의 인구 구조 붕괴가 가속화 함으로 임금은 열다섯 배 올랐다. 21세기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은 대부분 수출이나 소비가 아니라 극초과잉 투자에서 비롯되었다”(p.379) 라고 저자는 저평가한다. 무엇인 사실인지 모른다. 독일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발휘하는 부문은 다른 물건을 만드는 기계류 제조다. 2005년 이후로 팽창한 중국의 산업기반 대부분은 오로지 독일이 제조한 혁신적인 기계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미래에 아시아 Inc는 지속가능성이 가장 낮다. 왜냐면 중국, 한국, 일본이 통합되고 평화로운 제조업 공급사슬을 가능케 하는 생산적 협력 가능성이 낮다. 인구구조의 각도에서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다. 아시아가 미국에 수출하지 못하면 아시아 경제 모델은 무너진다. 투입재 접근에도 문제가 있다. 중국은 하루 필요량의 70%, 한국과 일본은 하루 필요량의 95%를 수입하고, 수입 석유의 3분의 2 이상이 페르시아만에서 비롯된다. 공급사슬의 각도에서 동아시아는 제품 소비지에 멀리 떨어져 있다. 세계의 작업장으로서 중국은 수입한 기술과 부품들에 완전히 의존한다. 아직 고부가가치 부품들을 자력으로 제조할 역량을 입증하지 못했다. 중국은 과잉투자 모델을 이용해 자국이 생산할 수 있는 부품의 단가를 낮춘다.

 

NAFTA 체제는 전망이 밝다. 대부분 지표가 긍정적으로 보인다. 북미의 제조업 상품은 수출이 아니라 북미지역 내에서 소비가 목적이다. 미국은 수출입을 합해도 경제의 약 4분의 3은 국내에서 비롯됨으로 국제 교역에 노출 정도가 제한적이다. 나프타 3국 중 산업 원자재나 에너지 생산에 관한 한 만만하게 볼 만한 나라는 없다. 공급사슬 측면에서도 임금 수준이 다양하고 에너지 비용이 낮고 운송비용도 낮으며, 부지 선택지가 거의 무한하고 산업 투입재 공급이 안정적이고 자본공급도 안정적이고 양도 많다. 안보 위협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구구조도 2040년이면 밀레니엄 세대가 근로 연령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멕시코가 북미 경제에 더욱 통합되고, 미국과 영국간 협력을 강화하면 큰 횡재가 있을 수 있다. 콜롬비아가 적시생산방식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모로 북미의 경제는 세계화가 아닌 상황에서도 실질적 호황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2026) 언론에서 전하는 미국 제조업의 붕괴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미국의 경제를 다룬다. 탈세계화는 중국 중심의 제조업을 가능케 한 공급사슬을 끊게 된다.

 

농업 AGRICULTURE

: 탈산업화는 산업의 종말만 뜻하지 않는다. 식량의 대량 생산이 종말을 맞고 대규모 기근을 겪는 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로 규모의 경제가 촉진되면서 하나로 통일된 세계 시장의 수요에 맞춰 지역의 국지적인 기후에 맞는 한 가지 작품만 생산하는 경향이 생겼다. 현재의 농업이 해체되면, 먹거리의 생산량과 종류와 확보 가능성과 안정적 공급이 대대적으로 위축된다. 근대 농업 기술과 시장을 이용해 산업화 이전 시대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모조리 산업화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게 된다. 인구 수준도 마찬가지다.

세계화한 현재 질서 하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식품 말고도 온갖 종류의 상품들 생산에 특화하고 있고 수출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먹거리를 수입한다. 앞으로는 이런 종류의 거래는 지금처럼 쉽지는 않게 된다. 이러한 공급 체계의 어느 부분에서든 차질이 생기면 파장은 농업 생산의 핵심부와 식량 수입국의 먹거리값을 지급할 능력에까지 미친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연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석유는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의 중요한 재료이고 비료를 만드는 기본 원료에는 천연가스가 포함된다. 화학 물질 투입재가 농업에 투입되어 곡물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투입재가 없다면 인류는 과거로 역주행하게 된다. 문제가 심각할 지역은 에너지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국, 중부유럽,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이다. 농업 생산량이 가장 크게 줄어들 나라는 중국이다. 오늘날 산업화된 농업은 수많은 투입재가 필요하다. 원료(파종용 씨앗)가 좋아 수확량은 크게 늘지만 비싸다. 비료, 제초제, 살충제, 관개용수, 축산 의약품 등 성장 투입재, 콤바인을 비롯한 농업 장비도 비싸고 구입도 쉽지 않다. 어느 부문에서 차질이 생기든 농산물 생산의 차질로 이어진다.

세계화가 붕괴를 시작하면 수출 위주의 단일품종 경작 방식은 가고, 지역 위주의 소규모 다품종 경작 방식이 온다. 밀 재배가 밀물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농촌지역에 빈곤이 만연하게 하기에 좋은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지리적 요건과 인구구조의 변화를 바탕으로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 질서인 세계화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 우리가 앉아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을 예상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이 발을 빼지 말도록 할 수도 없다.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한 한국으로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위해 자체 해상운송로의 안전을 도모할 역량을 기르거나, 주변국과 연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의 인구구조에는 뾰족한 답이 없다. 젊은이들이 자식을 낳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도록 사회적, 경제적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당위성만 번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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