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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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익숙해진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부모님이 특별한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무신론자로 살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 이웃집 어른을 따라 교회에 다니다 부흥회의 분위기에 질겁하고, 소풍 길에 다녔던 절은 볼 거리이거나 쉼터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책을 통해 이슬람을 만나고 왜곡된 프로파간다에서 참모습을 찾으려 읽는다. 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익숙함이 종교보다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 온 이진경님이 불교를 종교보다 철학으로 이해하고 안내하는 불교철학 기본서 라고 판단한다. 바람 쐬러 다녔던 절, 스님들,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체유심조가는 걸 잡지 말고, 오는 걸 막지마라정도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보왕삼매경을 보고 좋다고 느낀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불교 철학을 온통 이해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몇 가지 불교 철학 개념을 알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기쁘다.

<불교를 철학하다>1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에서 막혔던 가슴이 터지고, 답답함이 사라지며 ! 그래,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연기적 사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책이란 독자가 읽었을 때 책이다. 가지고만 있으면 책이 아니라 짐이거나 스트레스일 뿐이다. 좋아했던 남자의 변심을 원망하고 안타까워하고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연기緣起가 무엇인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다. 그 조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음, 사라짐이다.

“‘연기적 사유는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와 결별한다.” 주역의 모든 것은 변한다와 같은 변화를 긍정함을 토대로 한다. 그러니 불변한 것을 찾으려는 서양의 형이상학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다.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다.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그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혼 초기에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10, 20년 후에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연기적 사유는 동일한 것조차 조건에 따라 본성이 달라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 하던 것을 계속 하게 하는 성향으로 관성적인 잠재력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업은 본성이 아닌 것조차 반복되면서 본성처럼 몸과 입, 의지에 달라붙어 관성적인 언행을 만들어낸다.” 연기적 조건의 차이에 업의 힘이 끼어들어 변화를 만들어간다.

 

불교의 가르침중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상이란 조건이 달라져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무상이란 동일성이 없음, 동일성에 반하는 차이가 있음이다. “무상을 본다는 것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봄이다.” 무상을 보지 못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 할 때 애착과 집착이 일어나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다.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동일성의 사유도 배운다. 차이에서 출발하는 불교 철학은 차이화에서 생긴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일성에 가두려는 힘에 대항하며 차이를 긍정할 것을 요구한다.

 

근대 과학의 분석적 인과성과 불교 철학의 연기적 인과성을 비교한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이라는 단서로 독립변수와 종속 변수로 분석하는 인과는 서양의 분석법이다. 분석적 인과성에서 변수간 인과관계가 필연적이어야 하지만, ‘연기적 인과성이란 필연성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필연성을 가진 법칙마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우연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카게무샤의 눈물에서 우리는 조건, 관계에 따라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아가 강하면 빨리 늙는다를 풀어낸다. 자아는 환경이나 관계 등 외부와의 만남에 의해 그때마다 만들어지는 잠정적인 안정성이라 본다. 행동패턴은 익숙해진 일상생활을 쉽고 편하게 해 주는데, 이는 새로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패턴 안에 제약된다. “삶의 가능성이 라고 불리는 성격이나 패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오십 정도가 되어야 자아가 안정된다는 말은 자아에 갇혀가는 시기라는 말이다.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나와 남에게 자랑거리가 아니다 남에게 폐가되고, 나에게 안타까운 어떤 상태를 표시할 뿐이란다. 그렇기도 하다.

 

지구는 가장 큰 공동체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대기비율처럼, 지구의 온도 역시 그런 항상성을 갖는다. 이런 이유에서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일 뿐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하나의 생명체다.”

 

끌어당겨 내 것으로 가지려는 마음(탐심 貪心), 밀쳐 내거나 제거하려는 마음(진심 嗔心) : “오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치달리고, 갖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집착하며, 가버린 것을 붙잡으려 애쓰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을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이 다가온 것을 밀쳐내려 버둥거린다.”

 

라는 지혜는 선악호오, 미추정사 美醜正邪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 요체다. 분멸은 모두 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호오미추의 척도를 내려놓고 애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저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들리고 그가 왜 저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분별하지 말라는 뜻은 호오미추의 판단을 떠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란 연기적 조건을 모두 지워 남는 것이 아무런 본성도 규정성도 없음이다. “공성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윤회는 영생불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삶이란 모면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에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런 고통 속에 영원히 머문다는 것이다. 윤회의 중단은 고통스런 삶의 중단이요, 그로부터 벗어남이다. 열반, 해탈은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연기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당대에는 혁명적 발상이다. “고통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차분하게 직시하고 그 안에서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다시 찾아 나선 이유였다.” 고통이나 번뇌 없는 깨달음은 없다. 윤회하는 현세적 삶과 별개의 해탈이나 극락 같은 것은 따로 없다. 윤회하는 삶을 떠나야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가라는 가르침이다. 고통에서 배우려고만 한다면 깨달음을 향한 길을 알려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다.

 

가까운 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만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기쁨을 주고 최대한 슬픔을 덜어주며 살라.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와 사랑은 집착이다. “연민 없이 사랑하라.” 동정이나 환대는 평등성과 거리가 멀다. 동정이나 연민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비대칭성이 전제되어 있다.

 

一切唯心造 :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 일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밖에서 내게 다가온 연기적 조건이, 그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마음들이 나의 마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만든다.”

 

十二緣起 : 無明///名色/六處///////老死

앞에 것이 뒤 것의 조건이다. 뒤는 앞이 있어서 일어난다.

 

미움 없이 미워하라.”눈 업이 보고, 코 없이 냄새 맡는 것들”, “十二緣起의 어느 부분들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휴에서 201611월 초판을 내놓았고, 20179월 초판 6, 본문 356쪽 분량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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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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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8.7.3.()

허리를 세우고 걷는 행위와 생각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다. 생각,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철학을 발전시켜 왔던 사람들을 철학자라 부른다. 걷기와 철학자! 칸트가 걷는 시간에 태엽시게를 맞췄다는 일화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구분하기 전에 떠오른다.

이동방법으로 걷는 행위가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를 타고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일 만보 걷기를 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하체를 튼튼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걷는다. 목표는 목표로 존재하고 월 2~25천보를 걷는다. 걷는 과정에서 인사이트와 사고의 융합도 경험한다. 글 쓰는 기간에 걷기는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글감을 늘려주고 다듬기도 한다. 건강을 목적으로 걷다가 경험한 통찰은 걷기의 가치를 키워준다는 걸 지난겨울에 경험했다.

그러니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이란 제목에 목차도 살펴보지 않고 구입한다.

전반부의 글 전개는 걷는 것을 조감하는 행위로부터 말하기, 글쓰기와 연계하려 한다. 조금은 억지스럽다. 인간이 걷는 행위를 아무리 철학자라지만 100여 페이지에 풀어가니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다만, 걷기, 산책이란 행위를 꾸준히 했던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세 번째 산책네 번째 산책은 지식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밤늦게 출발할 만보 걷기를 할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60분간 걷다 왔고, 샤워를 마치고 독서노트를 쓰도록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네 개의 산책으로 구성했다.

프롤로그 : 로봇이 위험하고 정교한 이를 해내지만 인간의 사소한 동작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나이 들어감을 세월의 타격으로 표현한다. 이 책이 걷기, 말하기, 생각하기의 관계를 둘러싸고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말하는 건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락이 시작되었다가 만회되고 다시 이어지면서 나아간다.”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철학은 걷기 방식과 유사한 존재 양식에 따라 이어진다. 넘어지면서, 넘어지는 걸 스스로 막으면서 무한히 반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양식이다.”

 

첫 번째 산책 : 플라톤 철학의 핵심인 동굴의 비유는 우리가 감각의 허상에 사로잡힌 포로들이며, 진실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인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실제 세계로 여긴가는 걸, 지실은 저 너머 다른 곳에 있으며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요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아침 일찍, 때로는 몇 시간 동안 씩 걸으며 성찰하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던 탓이다.

회의주의자들은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기쁨과 슬픔은 어떤 확실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에 선택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의 겉모습을 보고 이런 대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뿐이다.

디오게네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그는 집, 부인, 자식을 버렸고, 통 속에서 자고(이것만 알렉산더와의 일화로 알려져 있다), 신전에서 먹을 것을 훔치고, 사람들 앞에서 자위를 하고, 행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단다. 화폐도 위조 했다네. ‘삶과 자연만 존중했다고 한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연일 재판받고 교도소에 있어야 할 철학자다.

세네카 편에서는 로마에서 걸음걸이로 직업과 여자의 정숙함을 판단했다고 한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

 

두 번째 산책 : 힐렐의 일화를 소개한다. “성서 전체를 한 문장으로 말해달라고? 문제없네.” 힐렐은 사람들이 네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걸 네 이웃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 전체의 말이네. 나머지는 모두 해설이네. 이제 가서 공주하게나......” 공자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과 다름이 없다.

간주곡 : “일반적인 생각의 차원을 떠나 철학적 생각과 그 고유한 방식에 몰두하면 걷기와 생각의 닮은 점이 분명해진다.” “명백한 사실들을 문제 삼지 않고, 확실한 사실로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철학도 없다.”

 

세 번째 산책 : 오컴이 활동하던 13세기 유럽은 모든 학자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라틴어로 말하고 읽었다. 오컴은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존재하는 것을 처음으로 명백하게 구분하는데 이는 비트켄슈타인이 나오기 600년 전이다. ‘오컴의 면도날

몽테뉴는 서재에서 백 보를 걸으며 <수상록>의 텍스트를 받아 적게 하고 구술했단다.

루소는 걷기에는 내 생각을 활기차고 생기 넘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 몸이 움직여야만 정신이 깃든다.”라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산책을 예술로, 하나의 존재방식으로, 거의 삶의 이유로 만든다. 어디론가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위한 걷기, 이것이 혁신이다.” 산책을 예술로라는 구절은 젊은 연인들이라면 끄덕일 듯하다. 저자는 루소가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쓴 원동력이 걷기에 있었다고 판단한다. 우리도 걸어야 한다.

칸트에게 걷기는 군대 같은 엄격함이 필요한 건강법이자 엄청난 작업을 하며 버티는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칸트가 생활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역사학, 지리학, 문학, 법학을 강의해야 했기에 대단히 일찍 일어났고, 사시사철 일했으며, 매일 일이 끝나면 걸었다고 한다. 칸트는 혼자 걷기와 코로 숨 쉬며 걷기 방법을 썼단다.

데카르트, 디드로, 공자, 노자, 붓다, 헤겔도 많이 걸었던 사람으로 묘사한다.

네 번째 산책 : 쾨뢰시 초머 산도르라는 철학자를 처음 알게 됐다. 언어에 재능이 있던 헝가리인인 그는 헝가리어의 기원을 찾아 헝가리에서 터키, 페르시아를 거쳐 티베트에 도착했고 이 걷기 여정에서 터키어, 페르시아어, 티베트어를 익혔다. 히말라야에서 걸어서 벵골과 콜카타까지 더 걸었다. 티베트에서 7년간 머무르며 영국의 부탁을 받고 티베트어-영어 사전과 티베트어 문법책을 만들었다. 이후 아시아를 한 바퀴 돌아보러떠났다가 아샘의 다르질링에서 쉰여덟에 이질로 죽는다.

소로는 하루에 적어도 네 시간 이상 걸었다. 월든 호수에 살 때. 소로가 걸은 것은 어디론가 가기위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에 다가가기 위해서 였다.

걷기는 관찰과 반추의 원천이자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문장에 공감한다.

니체도 한 평생을 걸었다. 오직 시각을 다양하게 늘리기 위해서 이었으리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키르케고르, 비트켄슈타인의 걷기에 대해서도 저자의 생각을 밝힌다.

 

에필로그 : 철학, 걷기, 말과 생각은 동일한 내적 움직임에 의해 작동되는 유일하고 동일한 활동이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책세상에서 본문 219쪽 분량으로 201711월 초판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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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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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스키타이 초원에서 크림반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과 피렌체, 파리, 런던을 휩쓴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역사다.

<La Peste> 는 알베르 까뮈가 2차대전후 알제리 오랑이란 항구도시에 베르나르 리유라는 의사를 서술자로 두고 인간의 삶을 그린 소설이고.

역사와 철학이 주지 못하는 걸 문학이 줄 수 있음을 장 타루가 페스트에 굴복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확인한다. 그는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었기에. 노트를 기록하고 작품해설을 보려한다. 내가 느낀 것과 해설의 간극이 얼마나 가까운가를 알고 싶다. Peste는 베르나르 리유라는 의사가 Peste가 창궐하기 전에 허약한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낸 후부터 시작한다. 리유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장 타루, 리사르, 늙은 카스텔, 그랑, 랑베르, 코타르, 라울, 파늘루라는 조연과 Peste가 시작돼서 수많은 목숨을 먼나라로 데려가고 제풀에 힘이 떨어져 폐쇄된 도시가 개방되기까지,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까뮈는 5부로 소설을 구성했으나 독자인 나는 내 나름대로 를 동심원이 확대되는 것처럼 4단계를 거치며 소설을 재구성하여 읽는다.

첫 단계에서 도지사 리사르와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의 입장차이, 즉 도시에 퍼지는 병을 Peste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관료와 의사의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인다. 다음과 같이...... 리사르는 주저하다가 리유를 건너다보았다. “솔직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 주시오. 당신은 이것이 Peste라고 확신합니까?” “질문을 잘못하셨습니다. 이건 어휘의 문제가 아니고 시간 문제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결국하고 지사가 말했다. “이것이 설령 Peste가 아니라 해도, Peste가 발병했을 때 취하는 예방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군요” “기어코 제 의견을 필요로 하신다면 사실 제 의견은 그겁니다두번째 단계는 Peste를 공식화하는 단계다. 지사가 파리로부터 받은 전보공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Peste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세 번째 단계는 베르나르 리유와 장 타루의 대화이다. “신이 있는가 없는가?” Peste로 죽어가는 사람수가 급격히 늘어갈 때 신을 탓할 것인가, 신을 원망할 것인가를 두고 이루어지는 대화를 삼단계로 본다.

마지막 단계는 인간에 대한 봉사가 평화를 가져온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할 것 보다는 찬양해야할 것이 더 많다고 말하고 싶어 리유가 서술자로서 이야기를 쓴 거라는 고백이 네 번째 단계다.

 

호텔에 살고 있는 장 타루는 차장 검사를 아버지로 두었기에 한 때 유복한 시절을 지내 넉넉해 보이는 젊은이다. 그는 Peste 창궐로 도시가 폐쇄된 기간 내내 수기를 써 일상을 기록한다.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다. 11월에 장타루와 리유는 테라스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우정의 시간을 갖는다. 리유는 타루의 인생을 들어주고 방파제와 가까운 바다에서 수영하며 달콤한 추억을 만든다. 정월에는 타루가 Peste에 굴복한다. 수용소에 격리하지 않고 베르나르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리사르는 도지사로 Peste를 공식화하기를 주저하는 전형적인 관료지만 책임을 다하다 죽는다.

늙은 카스텔은 Peste 혈청을 만들기를 반복하고 10월에는 실험한다. 그가 만든 혈청의 효과였는지, 겨울이 왔기 때문인지, Peste가 힘을 잃어서인지 명확치 않지만 그랑이 살 수 있었던 까닭중 하나다.

그랑은 시청 하급 공무원으로 아내 잔은 그를 떠났지만 잊지 못하고 글로 그리움을 쌓아둔다. 그랑은 Peste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때 봉사대인 보건대에서 서기 비슷한 역할을 해낸다. 베르나르 리유는 그랑을 보잘 것 없고 존재도 없는 영웅으로,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본다. 그랑에게도 Peste가 들어온다. 떠나간 아내 잔에게 행복하게 살라는 편지를 쓰고 싶다며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며 울 수밖에 없었다. 소설 한 장을 넘기니 쥐가 다시 나타난다. 그랑의 병세가 호전돼서 소설 끝까지 살아 봉사한다.

랑베르는 폐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신문기자다. 탈출 직전에 탈출을 포기하고 오랑에 남아 보건대 일에 동참한다.

코타르는 연금생활자로 한 때 자살을 기도했지만 폐쇄된 도시로 들여오는 물자를 암거래해 돈을 모은다. Peste가 쇠퇴하자 불안해하고 급기야 총을 쏘는 미친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체포된다.

라울은 랑베르의 도시 탈출을 도와주려 노력한다. 1만 프랑을 받기로 하고.

파늘루는 인간보다 신의 의지에 믿음을 깊게 가진 카톨릭 신부다. Peste가 만연하자 자원봉사에 열성적으로 힘을 보탠다. 그는 신부가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순이라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한다. 병명미상으로 기록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 3부는 Peste 절정기의 아랑을 묘사한다. 봄에 시작된 Peste8월에 절정에 이른다. 공포와 반항을 내포한 생이별과 귀양살이, 시내에서도 격리구역 설정하기, Peste균을 없애겠다는 의도로 빈발하는 방화. 최대한의 신속성과 최소한의 위험성을 바탕으로 한 장례식. 곤궁이 공포보다 절박해지는 상황. 절망에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나쁜 것이다. 개와 사람의 죽음의 차이는 확인도장을 받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소설 4부는 9월부터 12월까지의 기록이다. 10월에 큰 비가 내리고, 혈청은 성공하지 못하고, 혈청을 투여한 어린이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모두 큰 충격을 받는다. 11월은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내려간다. 태양이 힘을 잃어간다. 12월이 되면 그랑의 병세가 절망과 희망을 주고받는다.

소설 5부는 정월부터 이월까지의 기록이다. Peste가 약화된다. 겨울추위와 함께. 카스텔의 혈청도 효과가 나타나고. 병이 제풀에 힘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흥분과 의기소침이 교차한다. 단말마의 고통과 기쁨의 중간지점이다. 정월에 장 타루가 죽음에 굴복하고 이튿날 베르나르 리유는 일주일전 요양 가있던 안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2월 어느날 오랑시는 폐쇄했던 문을 연다. 랑베르가 기차역에서 아내를 기다릴 때 행복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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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겁한 승리
김연수 지음 / 앨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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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30.()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역식>59권의 단행본과 강석화의 <조선후기 함경도와 북방영토의식>44편의 논문, <경국대전>26개의 자료를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선조의 비겁과 무능, 일본의 교활함, 명나라 신종황제가 제발 자강하려고 애쓰라며 조선을 보는 태도를 보면 속이 터진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황폐화된 조선 강토에서 죽어간 민중과 살았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삶이 보인다. 의병활동과 이순신, 김덕령을 폄하하고 죽이는 선조의 태도에서 어떤 철학이 선조에게 있었는지 답답하며,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쟁을 대하는 16세기 말 조선과 일본, 명나라, 여진의 시각을 보며 현재의 국제정세와 비교해 본다. 저자 김연수가 왜 제목을 <임진왜란 비겁한 승리>로 지었는지 수긍할 수 있다.

 

임진년 왜의 침입을 대한 선조의 생각들은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에서 볼 수 있다. 왜가 침입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근거가 여러 사료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조정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번봉을 지켜 조공을 착실히 바쳐 왔으며 제후의 법도를 어기기 않았기 때문에 중국이 우리나라 대하기를 내복內服처럼 여겼으며 알려 줄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알려 주었고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는 등 마치 한집 식구나 부자와 같은 친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귀국도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고 천하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선조수정실록 2451]

전쟁 전 사신으로 조선에 와 있던 일본 승려 현소를 통해 보낸 공식 문서 내용이다. 조선이 명의 속국이니 명이 지켜줄 거라는……. 명나라를 치겠다는 의도를 가진 왜가 이 문서를 보고 얼마나 헛웃음을 쳤을까?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고 그럴 것이라고 믿고 TV에 나와 공공연하게 이를 언급하며 사드 등 전략무기에 믿음을 가진 정치인들이 떠오른다.

 

충주에서 패전 보고가 이르자, 임금이 대신과 대간을 불러들여 파천에 대해 발의 하였다” [선조실록] 25428

왜가 부산에 침입해 보름이 지난 후에 선조의 반응이다. 대신들이 파천을 청하기를 기다리다 지친 선조가 스스로 입을 열어 도망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승만이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전으로 도망간 것과 다르지 않다.

 

“7년 동난 행한 모든 일이 움츠려 구차하게 보전하려는 계책뿐이었고, 쇄신 분발하여 적을 섬멸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리를 진작시키지 않았으니, 지금 비록 남쪽으로 내려가겠다는 하교가 있지만, 신은 믿어지지 않는다” [선조실록]31117

이는 의주로 도망가고 요동으로 도망가려 했으며, 조명 연합군이 한양 도성을 수복하고 조정 신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자는 청을 6개월 동안 미루던 선조가 전쟁이 끝날 무렵에 경상도 남동 해안에 웅크리고 있는 왜군을 몰아내는데 임금이 내려가 독전하겠다는 선조의 말을 듣고 사관이 기록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153건 사료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대하는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시각을 드러낸다. 정말 다행인 것은 사관들이 임금과 대신 간에 주고받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하는 이유를 누구나 알 수 있다.

 

다음은 조정 대신들의 시각을 실록에서 찾아본다. <선조수정실록> 2431일자다. 먼저 통신사로 다녀온 부사 김성일은 정사 황윤길이 필시 병화가 있을 것이다.”란 말에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라고 말한다.

한양 도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출발하는 날 선조의 의중을 알아차린 도승지 이항복의 말이다. 의주에 머물만합니다. 만약 형세와 힘이 궁하여 팔도가 모두 함락된다면 바로 명나라에 가서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몽학의 난에 연관된 것으로 사태를 오판한 조정은 의병장 김덕령을 체포하고 처분을 논할 때, “국가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즉시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순신 장군의 若無湖南 是無國家와 어찌 이렇게 대비될 수 있는지…….

한편 조선에 군사를 보낸 명나라의 시각은 사료에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 살펴본다.

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칙유하노라. 그대의 나라는 대대로 동번을 지켜오면서 본디 공순함을 다하였고 (중략) 국왕은 서쪽 해변으로 피난하여 초야에 파천해 있다고 하였다. (중략) 지금 특별히 행인사행인 설번을 보내어 국왕에게 이르노라. 그대는 마땅히 조종이 전해 준 기업임을 생각하여야 할 것인바 어찌 차마 하루아침에 가벼이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급히 치욕을 씻고 흉적을 제거하여 힘써 광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선조실록] 2592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자강책을 강구하지 않았던 조선이 명에게 다시 원병을 청한다. 이에 명나라가 조선에 보낸 비난이다.

어찌하여 몇 해 동안이나 휴식하면서도 군사훈련을 시키지 않고 스스로 와신상담을 잊고 왜군이 다시 쳐들어오게 되자, 전과 같이 또 장황하게 글을 바쳐 천조의 구원을 바라느냐. ...... 짐이 약소를 측은히 여기는 인과 어려움을 구해 주는 의로써 다시 군대를 보내고자 한다. ...... 짐은 구원병을 보내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만리 먼 길을 달려가 도와주는데 너희들은 사직을 지키는 의리에 소홀해서 한 가지 계책도 세우지 않았다. ...... 너희 마음이 너무 어두워 가련할 뿐이다.[선조실록] 301024

쪽팔릴 뿐이다. 주은래나 시진핑이 이런 역사적 사실과 모를 리 없고, 한반도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

 

동인 세력의 리더로 왜의 침입에 전쟁준비를 하자고 못하고 수수방관했지만,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겼음과 강항이 <간양록>을 남긴 것 말고는 온통 부끄러운 일 뿐이다. 충무공이 없었다면…….

 

역사에서 조선은 왜의 침입을 알지 못했다고 가르쳤다. 최소한 알고 있었다고 가르치려면 어떤 준비를 했는가를 말해야했기 때문이리라.

- “나는 이 적들을 한없이 우려했다.”<선조실록> 2552일자 기록을 보면 선조는 왜가 침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 조선은 정보를 얻을 곳이 없어 조선에 와 있던 왜 사신 현소로부터 내년에 길을 빌어 상국(중국)을 침범할 것이다는 확언으로 조정은 의논에 들어간다.

- 중국은 일본이 조선을 거쳐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전쟁 8개월 전에 류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에 통보했다. 일본에 머물던 중국 상인 진신과 허의후 등도 일본이 중국ㅇㄹ 침략할 것이며 조선이 일본군의 향도가 될 것이라는 정보를 중국 조정에 전달했다.

- 관동별곡으로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정철은 정여립 역모 사건을 기획하여 동인을 상대로 원한을 갚는 소인배인 듯하다

 

<임진왜란 비겁한 승리>는 앨피에서 20135월 초판을 내놨다. 본문 395쪽 분량이다. 사료를 토대로 한 글이지만 읽기 쉽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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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1 -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유라시아 견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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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1>
책을 덮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다. 하나는 전공인 지리학인지라 유라시아를 다루는 내용의 공간을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지도가 머리 속에 있으니 저자가 하는 이야기는 자석에 쇳가루가 달라붙듯이 쩍쩍 달라붙은 탓이다. 다른 하나는 학창시절 배웠던 이후의 유라시아 현대의 모습을 과거와 적절하게 버무려 던져주기 때문이다. 책과 뉴스를 통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의 유라시아 변화 모습과 방향을 지켜보았지만 단편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
덤으로 미국 패권주의를 벗어나고 있고, 중국이 새로운 모습으로 유라시아의 주역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강조한다. 저자가 좌파적 시각이라고 고백하듯 유라시아에서 미국을 걷어내고 각 지역의 부흥을 위한 노력도 보여 준다. 地誌 중에서 아시아지지를 공부한 느낌이다. 저자는 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지만 역사의 이해에 지리가 절실함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까닭으로 세계사, 좁혀도 중국사와 아랍세계사를 소홀하게 다룬 사람이나 지리 감각을 키워가는 사람에게는 헷갈리거나 복잡다단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염려한다. 고등학교 지도책을 옆에 펴두고 책의 내용을 따라가며 확인한다면 이해를 도울 듯하다.
오랜만에 수없이 밑줄 치며 읽은 책이라서 독서노트를 쓰려면 한나절은 걸릴 듯하다. 어떤 기준으로 노트를 적어 볼까 생각하다가 우선 밑줄 친 내용을 다시 보며 워드작업을 한 후에 기준을 세워 다시 정리하기로 한다.
프롤로그 : 겐요샤(1881년 설립된 일본의 극우단체)가 쑨원과 신해혁명을 지원한 저의는 청제국의 몰락에 있었다. 2014년 <몽夢, 대아시아>를 창간한 뜻도 중국몽에 맞선 대항담론이다. 반중연합에 기초한 대 아시아 구상은 몽상이자 망상이다. 일본의 한계다. 저자는 서구의 지정학적 가치체계를 내던진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근대와 전근대의 분단을 잇고 유라시아적 맥락에서 동서고금을 재인식함으로써 유럽의 자만과 아시아의 불만을 해소하는 대동 세계를 모색한다.
연행록과 견문록 : 박지원의 열하일기, 박규수(박지원의 손자이자 유길준의 스승),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혈연과 학연을 통해 흐르는 문류를 소개한다. <서유견문>이 서구 문명을 문명의 정점으로 보지 않고 앞으로 서구의 처지가 어찌될지 알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다. 이런 태도는 得中의 태도, 동과서, 고와 금에서 중용을 지키는 자세라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책이 전개될 것임을 알아채야 한다. 캉유웨이, 량수밍, 타고르, 간디,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도 헛개화가 아닌 眞개화를 궁리했다.
21세기 중화망 : 태국 국경 치앙라이의 마에살롱은 버마에서 쫓겨난 국민당 잔군 4천 명이 1982년까지 본토 수복을 꾀하던 곳이다. 현재는 중국 윈난성과 태국을 잇는 고속철도가 통과하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방콕의 춘절 :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의 80%가 방콘 돈므앙 공항에서 출격할 정도로 미군이 많이 주둔하던 곳이다. 미군 철수후 전쟁기의 유산이 관광업 부흥의 견인차가 된다. 중화 세계의 외부인 방콕에 광동성 출신 화교가 많아 춘절이면중국 관광객이 넘쳐난다. 신동방무역 시대 : 중국이 주도하나 창설국의 GDP에 기초해 지분을 할당하고 미국처럼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영국, 독일도 참여한다. 실크로드이후 신동방무역시대를 여는 기초 작업이다.
우크라이나, 신냉전과 탈냉전 :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 몬센토, 듀퐁과 같은 생명공학 기업이 밀려와 ‘세계화의 덫’에 걸려들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주민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인데, 서방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에는 독일 패망후 나치를 추종하던 무리들을 보호한 미국의 손길이 닿아 있다. 미국은 유럽, 러시아, 중국을 나누고 쪼개려 한다. 동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이 울타리를 벗어나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한다. 푸틴은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고속철을 건설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인도양에 부는 바람 : 중국은 스리랑카, 몰디브, 세이셸, 모리시어스에 관심과 투자를 쏟아 바닷길을 활성화하려 한다. 인도는 면화길에 투자한다. 뭄바이에서 이란의 반다르아스를 거쳐 카스피해를 지나 러시아의 아스트라한 항까지 물류망을 구축하고, 이란의 차바하르항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터키까지 연결을 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미얀마의 시트웨항 건설, 아세안 고속도로까지 인도의 입김을 불어 넣고 있다. 중국이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내놓은 지 1년 후 인도는 몬순 프로제트로 계절풍에 기댄 고전적 교역망을 재건하여 인도양 세계 복원을 꿈꾼다. 오늘의 G2는 미국과 중국이나 내일의 G2는 중국과 인도일 것이다.
반둥, 위대한 유산 : 혁명과 정치는 영감을 불어 넣는 예술이라는 ‘교도 민주주의’는 수카르노의 지론이었다. 반둥선언의 ‘평화공존 5원칙’에는 저우언라이의 求同存異가 담겨 있다. 문명화를 강요하고 근대화를 이식하고 민주화를 선동한 20세기 지배 이념과는 다른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대 인구대국, 세계 최대 이슬람 국, 아세안의 대표국이며 반둥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지한 소프트파워 강국이다.
적도의 대국,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는 만달라 국가(동남아 특유의 국가 성격으로 영토성에 기반을 둔 중앙집권형국가가 아니고, 왕조 개념도 없었다. 명료한 국경 없이 느슨하게 연계되는 지역)만이 존재하다가 20세기 중반에야 국가로 성립한다. 미국, 중국, 일본, 인도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한다. 미동맹을 고수하고 아세안의 심화에 힘을 쏟는다. 이슬람회의기구를 토대로 이슬람 부흥에도 역점을 두며, “미래는 적도에 있다”고 선언한다.
반동의 축, 미일 동맹 :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란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1952년 출발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동아시아 분열의 화근이다. 미일동맹 강화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 독배라고 본다. 일본에 유학했던 저자는 일본의 핵심 권력은 자민당 막후의 고위 관료들이라고 한다. 이들의 국가 전략은 일본을 미국과 일체화한다는 단순한 전략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길항을 미국과 중국간 패권경쟁으로 보지 않고 패도를 부리는 세력과 왕도를 소망하는 세력의 일합으로 본다. 조선의 식민지 전락과 남북분단, 한국전쟁이라는 백년 고통의 뿌리에 미일동맹이 있음을 기억하자고 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를 나누고 쪼개느라 여념 없다며 일본은 그 반동적 책략을 거드는 아사아의 주구로 평가한다.
파키스탄, 일대와 일로사이 : 미국은 파키스탄에 총을 주고 중국은 돈을 준다고 본다. 중국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에 적극 투자한다. 신장에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까지 도로, 철도, 송유관, 광케이블을 깔고 있다. 과다르-카슈가르 철도, 카라코룸 고속도로, 파키스탄 화력, 수력발전소를 지어 파키스탄 전력 공급량을 두 배로 튀겨줄 계획이 진행 중이다. 핵무기 기술도 전해주었다. 경제회랑이 완성되는 2030년이면 중화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신장을 통해 직통하게 된다. 신장은 황해보다 아라비아 해가 가깝다.
붉은 광장, 기억의 전쟁 : 저자는 2차 세계대전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원폭투하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왜곡과 조작을 지적한다. 미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독일과 소련의 정예 150만 명이 결전을 벌인 쿠르스크 전투(1943)를 꼽는다. 스탈린이 히틀러를 이겨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다. 소련 2700만, 중국 2000만, 미국 40만, 프랑스 60만, 영국 45만 독일 700만, 일본 300만 명의 인적피해를 토대로 소련과 중국이 동과 서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을 격퇴한 ‘유라시아 전쟁’이었다고 본다. 러시아와 몽골에서 ‘한힌골 전투’, 일본에서 ‘노몬한 사건’이라 불리는 전투에서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던 일본은 러시아의 육군과 공군 합동작전에 궤멸된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코프 장군은 이후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쿠르스크에서 연전연승하고 베를린도 함락시켰다. 맥아더는 비할게 아니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2차 대전은 세계 공황의 후폭풍으로 보고 책임을 독일과 일본에게만 떠넘기는 자본주의 국가가 근원적 화근이란다. 1/2차 세계 대전은 유럽인의 관점이고 태평양 전쟁은 미국식 독법이라는 논지다. 다분히 젊은 시절 좌파 시각을 가졌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미국식 교육을 받아 왜곡된 동북아사를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새로운 관점임이 틀림없다. 수많은 전쟁영화가 왜곡을 이끌었다.
유라시아의 축도, 몽골 : 만몽연합으로 출발한 청나라가 분리 통치함에 따라 라마불교와 몽골어로 300년을 존속했던 몽골은 20세기에 들어서 중국의 근대화(유교교육 강요, 한자 쓰기, 한족과 통혼)로부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를 수용하고 소련의 속국이 된다.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기 위해 ‘초이발산’은 대숙청과 라마불교를 탄압한다. 1990년대 소련군 철수이후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며, 징키스칸이 복권되고 민주화(탈동구화, 몽골화)한다. 두 개의 몽골, 제국의 유산 : 청나라는 몽골을 외몽골과 내몽골로 분리 통치하며 내/외몽골간 접촉을 방해했다. 동시에 몽골 왕실과 귀족 라마승에게는 높은 지위를 보장하는 회유책을 구사했다.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통치하는 수법은 고금이 같다.
‘붉은 라오스’의 탄생, 그 후 : 책을 통해서 베트남을 다시 보게 된다. 동남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에는 중국보다 베트남이 주역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한 호찌민은 캄보디아를 10년간 점령하고, 중국과 국경 전쟁을 벌였다. 전통적으로 시암과 월남에 이중 조공하며 균형을 취하던 라오스를 공산국가로 탄생시켰다. 베트남 혁명가들은 라오스 공산혁명을 위해 라오스어와 산간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배웠다. 어학교재 출판, 특수학교 설립 등으로 전국 고산지대까지 라오스어를 보급한 것은 베트남 혁명가들 덕분이라고 한다. 1970년대 이후 베트남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느렸다. 마치 소련이 동유럽 국가를 위성국으로 만든 것처럼. 베트남의 공산화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이 합심하여 ‘아세안’을 조직한 것이다. 1980년대 동남아는 베트남(인도차이나연방) vs 아세안간 대립구도 였다. 1990년대 동유럽의 탈냉전과 동시에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속국의 지위에서 벗어난다. 현재 라오스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과 국경이 닿는 내륙국으로 동남아 교통망의 허브로 변화중이다. # 청말 사상가 장빙린의 생각 : 몽골, 신장, 티베트, 만주는 독립시켜도 무방하나 유교 문명을 공유한 조선, 월남, 류큐를 편입시켜 대중국을 이루자.
북경, 제국의 터전 : 중국사에서 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역할에 주목한다. 유목민족이었음에도 한나라 문명을 수용하고, 불교를 수용하며 중앙집권적 관료제, 균전제를 도입했다. 북위 장수가 만든 수, 당도 북위 정책을 이어가 夷가 華가 되는 변화과정을 겪었다. 시진핑의 ‘중국몽’도 탈아입구하지 않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고금 합작 프로젝트라고 본다. 북위와 시진핑의 중국을 華/夷의 변증법으로 해석한 것이다.
몽골의 후신 : 서쪽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이슬람의 칼리프, 유목민의 대칸, 동로마 제국 후계자의 황제라는 중층적 보편성을 실현한 제국으로 600년을 통치했다. 청나라에서 만리장성 북쪽, 감숙성, 사천성 서쪽은 라마불교와 일체화된 몽골 기원의 유목적 전통이 이어졌다. 만리장성 이남에는 유교사상과 화이질서가 온존했다. 저자는 일본의 위치와 역할에 새로운 관점을 소개한다. 한자권에 속하나 중화세계에 정식 포함되지도 않았고, 유목 문명과도 무연한 국외자로 천황과 무사정권이 19세기 까지 존속하는 예외성을 가진다. 한중일을 동아시아로 묶는 발상은 20세기에 들어서 생긴 것이며, 근대화의 선봉에 섰던 일본은 중화 세계와 대치하고 있다고 본다. 19세기말 이래 중국과 일본의 갈등을 대륙과 해양이라는 지정학적 갈등보다 몽골 세계제국이 구축했던 보편성의 안과 밖, 유라시아의 내부와 외부가 길항한다는 시각을 소개한다. 서역과 서부는 20세기 국가의 변경에서 21세기 제국의 관문으로 바뀌고 있으며, 일대 일로의 출발점이자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고 있다고 전망한다.
‘인의예지’의 공화국 : 저자 관점에서 해방이후 남(부국)과 북(강병)을 판단하고 사람이야말로 동방형 민주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며 동학운동의 의미를 재평가하자고 한다. 아시아의 하늘을 잇다 : 에어아시아(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가루다와 라이온에어 덕분에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방콕, 싱가포르가 저가항공사의 허브공항이 되었고 인도의 항공수요 증가 등은 21세기 하늘길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다시 쓰는 ‘천하’의 지정학 : 파키스탄은 이란과 중국, 이슬람 세계와 중화 제국을 연결하는 관문국가가 되어 가는 데 지구본을 보면 정말 그렇다. 상하이협력기구는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4개 스탄, 카프카즈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파키스탄, 네팔, 인도를 회원국으로 하고 몽골, 벨라루스,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옵서버로 터키, 캄보디아를 대화파트너로 하는 하이어라키를 두고 유라시아를 품어간다. 영, 미의 200여년 대외 전략과 다른 지정학적 반전을 시도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캄보디아, 속국의 민주화 : 론놀은 방공주의자라기보다 반베트남주의자였고, 시아누크는 중립노선을 추구하다 축출된 것이다. 킬링필드 당시 교사의 80%, 의사의 95%를 죽였는데, 외국물 먹고 온 친베트남파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인구 1/4이 줄었는데, 1970년대 전체에 걸쳐 일어난 일이고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한 인원과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파난 간 사람을 합한 숫자란다. 폴 포트의 ‘적색 킬링필드’만 부각하고, 미국의 전쟁범죄, ‘백색 킬링필드’는 철저하게 가려졌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크메르 루즈가 1979년 전복되고 베트남군이 10년간 캄보디아를 점령 지배하는 동안에 폴 포트는 태국 국경에 근거지를 두고 ‘천년 외세’인 베트남에 저항했지만 기억하지 않는다고 한다. 1989년 베트남군이 철수하고 30년간 훈센이 독재를 하는데는 베트남과 미국의 공모가 있다고 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자의 시각에서 어용학자다. 캄보디아 야당의 구호는 독재타도가 아니라 反훈센, 反베트남이란다.
실학자들의 나라, 싱가포르 : 한국에 소개된 해외 사상가의 편중을 아세안, 인도양 세계, 이슬람 세계, 북아시아로 옮겨 현해탄과 태평양으로 기울어진 지식 균형추를 유라시아로 삼아 지적 재균형을 이루고 싶다고 말한다. 인도계 싱가포르 대학 교수인 키쇼어 마부바니와의 대화에서 싱가포르 성공요인을 실력주의, 실용주의, 청렴이란 원리로 설명한다. 부럽다. 싱가포르가 우려하는 것은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과 허브국가로서 피할 수 없는 전염병에 취약함이다. 정부와 시장의 미묘한 균형, 영토의 절반을 자연 상태로 둔 리콴유의 선견지명, 자동차 없는 미래도시를 기획하는 현재를 알 수 있다.
지구적 근대, 지속 가능한 미래 : 저자와 프라센지트 두아라 싱가포르대 아시아 연구소장과의 대화에서 ‘서구적 근대’에 대한 회의 속에서 환경을 고려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논한다. 이슬람 경제의 메카,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는 1997년 IMF 사태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고정환율제와 자본 통제 ; IMF의 처방과 정반대로 응수)라는 방법으로 극복한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인 ‘이슬람 경제’로 발전중이다.
말레이사아의 할라 스트리트를 가다 : “은행 이자는 간통보다 36배 나쁘다” 이슬람 금융은 리스크를 공유하는 강점을 갖고 있다. 할랄산업 :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 된 것, 하람은 이슬람 율법이 금지하는 것이다. 1994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할랄인증제를 도입한 이후 소비의 할랄화, 할랄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유럽까지 진출한 할랄 산업은 윤리적 소비라는 최신 트렌드와 부합하며, 무슬림의 인구 비중과 종교적 열정을 생각하면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필리핀의 슬픈 민주주의 : 피플 파워와 가문정치가 필리핀을 혼란케 한다. 스페인 통치 300년 미국 통치 100년은 오늘날의 필리핀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60여 개의 집안 재력이 1억 국민경제의 절반을 차지한다. 1946년 독립이후에도 미국에 대한 문화적, 정신적 식민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혁명과 중흥 : 지리와 천시도 역사의 주체라며 <제국의 폐허에서>란 책을 사게 만든다. 타고르가 서구의 민주화란 부자가 빈자에게 강제로 먹이는 아편이라고 했다네. 학창시절 배운 타고르는 고마운 시인이었는데. 일본의 조선 땅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응원했으니.
대동, 그 거룩한 계보 : 캉유웨이와 大同書, 박은식과 대동교, 1946년 ‘민족대동회’(무상분배, 8시간 노동과 최저 임금제, 사회보장제 도입등 사회주의 친화적), 미군정이 ‘자유민주’를 이식하려던 국대안과 성균관 복권을 통한 大學의 재건을 꾀한 대동회, 임시정부내 박은식과 이승만(위임통치청원론)의 비교를 다룬다.
시안의 미래는 장안이다 : 저자와 ‘실크로드 경제벨트’ 발전 연구원과의 대화다. 열차 ‘장안호’는 시안에서 출발해 우루무치, 카자흐스탄을 거려 로테르담까지 11일간 달린다. 현재 일 주일에 세 번 운행한다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좋고, 이 열차도 꼭 타보고 싶다.
서유기, 구도와 득도의 길 : 투루판을 중심으로 현장의 <대당서역기>를 풀어가며 원숭이인 손오공과 <라마야나>의 하누만이 닮았다고 상기시킨다. 서구의 선교가 정복과 전복으로 일관된 서사를 갖지만 현장의 길의 구도와 득도였다고 견준다. 대장정, 중국의 길 : 마오쩌뚱이 광동에서 옌안까지 치러낸 대장정에 견주어 장졔스의 국민당군이 충칭에서 윈난, 버마로드를 따라 후퇴하던 과정을 소개한다. 중일전쟁을 ‘항일 반파시스 전쟁’이라 명명하는 중국이 특정 국가가 아닌 제국주의 전체주의에 저항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평가하며 21세기 책임대국의 길을 모색하길 기대한다.
서부로 오라 ! :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버스로 꼬박 하루(24시간) 걸린다. 19세기 말부터 힘의 공백에 따라 이슬람, 소련, 청나라, 1950년 인민해방군 진입으로 변화한 중국 서부 지역 역사를 서술한다. 우루무치를 중심으로 서부 대개발이 이슬람권과 연계하여 진행되고 있다. 온난화로 만년설이 녹고 빠른 개발로 생존이 토대가 잠식되고 있음을 ‘천지는 어질지 않다’고 표현한다.
‘일대일로’의 사상 : 저자와 칭화대 국정연구원장으로 일대일로의 밑그림을 그린 후안강과의 대화가 주 내용이다. 후안강은 시장과 국가의 조화를 강조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를 중국의 독자적 체제로 본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미국의 안전보장 강화로 평가하며, 중국의 일대일로는 중국의 발전을 전 세계와 융화하는 지리혁명이라고 홍보한다. 미국식 생활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자각에서 홍색 중국을 녹색 중국으로 바꾸어 나가려고 한단다.
동서고금의 교차로, 카슈가르(각양각색) : 우루무치에 한족과 위그르족이 반반인데 카슈가르는 90%가 위그르족이다. 불교와 이슬람 문명이 공존한다. 청나라 말기 학자 공자진(1792~1841)은 신장에 성을 설치하고 영국과 러시아에 맞서려면 ‘서역’을 서해에 연결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서해란 인도양이다. 1821년 그의 혜안이 카슈가르에서 파키스탄 과다르항까지 철도, 도로, 고속철, 파이프라인, 광케이블이 연결되는 2030년이면 실현된다.
제국의 남문, 쿤밍 : 昆明天天是春天 쿤밍은 날마다 봄날,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곤명을 저자는 ‘날씨는 백점이고 경치는 만점’이라고 평한다. 고속도로 20개 노선이 건설중(2015년)이고, 고속철도 12개 노선을 건설중인 인구 800만의 곤명은 중국의 남문역할을 톡톡하게 하게 될 것이다. 성 단위에서 BCIM회랑(방글라데시, 중국, 인도, 미얀마) 연결과 메콩강 경제권 협력 프로그램(GMS)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다. 윈난은 이슬람 세계와 중화 세계의 역사가 포개져 있는 곳이다.
윈난에서 이슬람적 중국을 만난다 : 윈난의 중국화는 최신의 현상이다. 과거는 불교문명권의 영향아래 있었다. 몽골의 침입이후 중국에 편입되었고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인구가 대거 유입되었고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중국화가 본격 시작 되었다. 1253년 쿠빌라이 칸이 윈난에 있던 대리국을 복속시켰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출신 오마르는 바그다드를 잘 다스려 1270년에 윈난성 통치를 맡는다. 청말 혼란기에 윈난의 무슬림들이 ‘回民起義’ 이름 아래 독립왕국을 선포하나 16년 만에 무너진다. 윈난은 항일의 생명선인 버마로드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중국을 이해하려면 유불도외에도 서역의 이슬람 문명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제안한다.
중국과 중동의 상호진화 : 중국에 경제위기가 온다는 30연간의 예측은 돌림노래일 뿐이라는데, 중국 주식시장에서 외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된다니 그럴듯하다. 중국 중산층만 6억이란다. 2016년 중국이 주도하고 57개국이 창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세안경제공동체(AEC)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2016년 벌크선 운임지수에 따르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갔던 선박 운항 숫자는 급격히 줄고 유럽과 아시아가 가까워짐으로 인도양만 분주하다.
왜 왕도정치인가? : 저자와 중국의 신유학자 장칭과의 대화다. 서구식 민주정치의 문제점을 설파하는데 끄덕이게 된다. 세속화된 사회와 민의의 독재를 우려하며 제기한 의회삼원제라는 재미있고 독특한 발상을 소개한다. 정교 분리는 신화라며 왕도정치를 꿈꾸는 유학자의 모습을 본다.
중국 모델, 정치적 실력주의 : 대니엘 A. 벨과 저자의 대화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덜 나쁜 제도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현재 선거제의 결과가 부실하다. 정치인의 자질, 정치 수준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더구나 민주주의 선거가 미디어화, 시장화되고 있음을 비판하며 연구통계에 따르면 유권자의 표심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거제 민주주의가 덜 부패하는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정치적 실력주의를 주장하며 리콴유가 가졌다가 사라진 ‘질적투표’, 즉 자녀 양육을 책임진 40~50대에게 가산표를 주자는 제안을 소개한다.
<유라시아 견문 Ⅰ>은 서해문집에서 초판을 2016년 9월에 내놓았고 2권이 2018년 2월에 나왔다. 본문 557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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