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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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에게 좋은 표지를 선택해 보라는 글이 있었다. 예술이나 미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다. 쉽게 좋아요를 누를 수 없었다.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니 아름다움과 어울리지 않았고, 예술성을 찾기도 어렵다. 분명 뜻이 있으리라 여기며 읽는다. 독자 생각에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란 제목은 원제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이 평이하단 까닭에 바뀐 것이리라.

 

목차를 보니 아는 화가가 없다.

여성 화가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큐레이터의 아내가 던진 질문에서부터 의학, 과학 분야에서 여성이 소외됐던 시대적 흐름을 탄다. 미술 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는 작가의 말은 오늘날까지 여성 화가는 저평가되고 있으며, 다행히 재평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는 르네상스 기부터 20세기 초 현대 미술이 시작되던 때까지 여성 화가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겠노라는 기승전개요로 작가의 말을 실었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읽어 볼 당위성을 쉽게 풀어 놓았다.

 

여러 가지 무지를 깨닫는다.

15~16세기 이탈리아에서 미술에 하위 영역이 있었단다. 영역의 다양성이나 개인별 좋거나 싫은 영역이 있음은 이해하지만, 위계가 있었다니 의외다.

세 명의 여성 화가는 볼로냐를 무대로 한다. 볼로냐는 중세 최초 대학이 세워진 개방적이고 진보적이 소도시였다. 도시의 분위기가 걸출한 여성 화가를 품을 수 있었을 듯. 처음 소개하는 여성 화가는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다.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라는 대리석 조각보다 <그라시 가문의 문장>이란 씨앗 조각을 보고 싶다. 고군분투하다가 40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에타 : 아버지의 미술 작업을 도우며 배웠고 아마도 아버지 작품의 큰 부분을 맡아 그렸다. 궁정화가가 될 수 있었으나 아버지의 종용으로 예술혼을 꽃피우지 못하고 서른 살에 출산 중 사망한다. 당시 작품은 화가와 조수의 합작품이었다는. 조영남이 언론에 나오고 재판을 받는 상황을 비난하고 이해하지 못했는데 역사 속에 그러했던 사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타 시라니 : 볼로냐 출신으로 27에 사상을 떠난 여성화가

유디트 레이스테르 :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다. “엑스레이로 관찰한 결과라는 문구를 접하며 미술사 연구의 한 측면을 배운다. “오른손에 든 붓의 그림 속 캔버스에서 바이올린의 활과 거의 평형을 이루는데이를 작가는 회화와 음악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따라 해 보니 붓이 방향은 자연스러움까지만 공감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미술에 대한 인식인 개방, 부유, 탈종교는 볼로냐와는 다르다. 역사에서 배운 거다. 결혼과 출산이 여성 화가에게 공통된 족쇄였다. 남편의 이름으로 작품을 팔아야 했다. 프린스 할스의 즐거운 술꾼이 유디트의 유쾌한 술고래보다 친숙하다. 유디트의 그림에서 웃옷, 얼굴, 모자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다.

앙겔리카 카우프만 : 아버지의 지원과 헬리콥터 맘의 합작품이 탄생시킨 여성 화가다. 부모의 지원과 그녀의 재능이 결합해 유럽에서 가장 지적인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단다. 그녀가 로마에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 그랜드 투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와도 중첩된다. 앙겔리카의 자화상을 보면, ! 여기부터 예쁜 자화상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역사화와 종교화가 회화의 범주에서 가장 우월하고 지적인 분야이고 초상화, 풍속화, 정물화, 풍경화라는 하이어라키가 있다고. 오늘날에도 이런 위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베르토 모리조 : “나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그들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므로 동등하게 대접받기를 원한다.” 메리 카사트의 <푸른 암체어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를 보며 웃는다. 그림을 감상하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다.

스포니스바 앙귀솔라 : 이탈리아 출신 여성 화가로 <이젤 앞의 자화상>이 화가로서 자신을 그린 최초의 자화상이다. 스페인 궁정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장수했으니 책에서 소개한 화가 중 세속적 의미에서 행복한 삶은 살았다.

라비니아 폰타나 : 대작(250cm×189cm)을 책에 담아 작가의 안내를 따라가기 어렵다 (펜던트 속의 그림) 아버지가 물색한 사위 덕에 딸은 화가로 성장하고 사위는 11명의 아이를 헌신적으로 양육한다. 덕분에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라 불린다. 초상화가 결혼을 제안하는 방편이었다니, 사진결혼의 시작인 셈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선언 :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한 여자의 영혼에서 시저의 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강한 여성으로 거듭난 젠틸레스키는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를 이끈 린다 노클린이 소개한 페미니스트 화가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세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다른 화가의 그림보다 훌륭하다.

클라라 페테르스 : 2016년 수장고에서 350년 만에 드러난 정물화 속에 식기에 비친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식탁 위의 맛있는 것들에서 풍성한 식탁(욕망)을 그렸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 1705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를 보며 신사임당의 그림을 떠올린다. 동판화 작품집인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는 과학자의 눈과 예술적 감성의 합작품이라. 종속과목강문계를 만든 린네도 칭찬했고, 작품집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다윈이나 윌리스의 생물과 생태 관찰보다 먼저 행했음에 그녀의 삶이 가치가 있다.

로자 보뇌르 : 레즈비언으로 남장한 여성화가 였다니. ‘니베르네의 경작은 오르세 미술관에 다시 가거든 꼭 보리라. ’말 시장은 살아잇는 듯하다.

수잔 발라동 : 표지에 실린 화가가 수잔 발라동이다. 그녀의 그림에서 에로티시즘을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여성성 묘사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한나 희흐의 다다이즘은 이해 불가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요아나 쿠르턴 :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종이 오리기가 17세기 네덜란드의 전통공예로 자리 잡는다. 공예를 예술로. 일본의 우키요에가 프랑스 인상파에 영향을 준 것처럼.

카린 라르손 : 집을 예쁘게 꾸민다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의 개척자로 가장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여성 화가다.

거트투르 지킬 : 화가에서 녹색정원 디자이너가 되는 과정까지 총 21명의 여성 화가를 다룬다.

 

표지에 무섭게 느낄 사진(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을 넣은 뜻은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책 제목에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역사를 먼저 배우고 미술을 전공한 까닭이리라. 흩어진 역사적 사실이 많지 않아 여성 화가의 삶을 재구성하기가 어려웠을 터. 유연함으로 메꾼다. 유연함에는 시대정신, 시대의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무리하지 않더라. 미술을 전공한 탓에 이미 평가된 자료를 소개하는 것은 기본이고 작가의 평가도 버무려져 있다. 미술 영역에 위계가 있음을 배웠고 작가에게 오늘날도 그러한가 물어보고 싶다. 작가의 페이스북 글을 읽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는 느낌이라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좋은 책이다.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20206월 은행나무에서 브런치 북 대상 수상작을 책으로 엮어낸 거다. 적당한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편집은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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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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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2020.7.3.금 
 
코로나 19가 심각하다고 느낀 건 2월 21이었다. 정년을 맞으신 은사님과 모임이 있었던 날, 메모가 있어서 기억한다. 거의 반년이 지났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다. 뉴스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지내며 나 나름의 이 시기를 정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집에 틀어 박혀 강의 듣고 만 보 걷기가 일상이다.  2월부터 3월까지 젊은 이탈리아인 파올로 조르다노(물리학을 전공한 소설가) 겪은 코로나 19 상황을 4월 초에 번역해 낸 민첩함이 놀랍다. 조르다노의 안목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세상은 복잡한 데다 사회, 정치, 경제 논리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신적으로도 얽혀있다. 직면한 위기는 정체성과 문화를 초월하고, 확산은 우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세계화를 보여 주는 지표라고 표현한다. 
 
때때로 글쓰기는 균형을 잡기 어려울 때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게 하는 바닥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이탈리아 코로나의 알제로 값이 약 2.5란다. RO값이 1 미만으로 줄어들어 모든 감염자가 한 사람을 채 감염시키지 않아야 상황이 나아진다고 한다. RO값을 낮춘다는 것은 우리가 코로나19에 저항한다는 수학적 의미다. 자연은 선형적이지 않다. 본래 비선형적이다. 감염은 이탈리아가 알고 있는 문명의 구조가 엉성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백신은 신중함이다. 조르다노는 “특정 상황에서는 그저 단념하는 게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고. 전염병은 우리가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미 가택 연금 수준에서 사는 나에게는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많으면 다르다. More is different. 집단에서 우리 행동이 모여 만들어 내는 누적 효과는 행동 하나가 만들어내는 효과의 합과 다르다. 교육학에서 언급하는 ‘인지적 유연성 이론’과 맥락이 같다. 꽃가루를 벌과 바람이 나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예쁜 꽃을 보고 좋아한다. 무증상 감염도 이와 같다. 좋아하지 못할 뿐이다. 운송수단 특히 항공교통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운명을 바꾸었다. 인간이 능력이 부른 화 중 하나가 아닐까.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고 메탄의 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백 마리 가축을 집단 사육하는 것(양계장을 생각한다)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다.  
 
조르다노는 생각을 바꾸어 보자 한다. 바이러스는 환경 파괴로 생겨난 수많은 피난민 중 하나라고. 이 새로운 미생물이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쫓아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고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유발 하라리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환경파괴의 주범은 인간이라는. 우리가 먹는 식량 작물은 거의 모두가 돌연변이다.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괴롭혀 더 크게, 더 달게, 더 많이 생산하도록 조작한 돌연변이다. 그걸 우리는 과학의 힘이라고 한다. 자연의 처지에서 보면 과학은 침략일지 모른다.  
 
누구나 코로나19를 겪어가며 생각할 거다. 무엇이든 크든 작던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니까. 파올로 조르다노의 생각에 내 생각을 견준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는 은행나무에서 2020년 4월 10일에 내놓은 신간이다. 
 
#전염의시대를생각한다 #파올로조르다노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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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의 연대기 -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 걸작 논픽션 19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김현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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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대니얼 임머바르는 미국은 제국인가? 제국주의 국가인가? 에 대한 물음에 답한다. 교과서는 강대국이 군사력을 이용해 약소국을 침략하고 약소국의 자원 일체를 수탈하는 것으로 제국주의를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이냐는 물음에 누군가는 그렇다고 한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안과 밖에 존재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 등이 미국은 다른 나라의 영토를 탐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은 교과서가 정의한 제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국, 제국의 연대기>는 제목에서 결론을 내고 있듯이 제국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영토를 지배해 식민지를 건설하고 자원을 수탈하고 원주민을 억압하던 제국은 아니다. 이런 유형의 제국주의는 2차 대전까지가 유효 기간이었다. 그러면 왜 저자는 미국을 제국이라고 판단하는가? 본문 595쪽 분량과 약 100쪽이 달하는 각주(근거)를 통해 설명한다. 걸작 논픽션이라는 출판사의 생각에 동의한다.

 

책을 읽어가며 메모한 내용을 옮기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내용은 1부 식민지 제국과 2부 점묘주의 제국으로 구성한다.

1부 식민지 제국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공화국 지도자들은 대서양에 위치한 주들의 경우 절대로 미국 서부 경계를 이루는 미시시피강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서부 토지는 주 정부가 아닌 연방정부가 관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말하지 않아도 거짓이 되었다. 미국의 서부 진출의 바탕에 깔린 사회적 변화를 기술한다. 18세기 중반부터 식민지의 인구가 25년마다 2배로 늘어나고 있었다. 미국의 인구 증가를 인식한 사람이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피뢰침과 <프랭클린 자서전>만 유명한 게 아니었다. 1790년과 1890년의 인구를 비교하니 인구가 16배 증가했다. 무단 거주자들이 서부 개척자라는 정체성을 얻었다. ‘1845년에 미국 잡지와 민주주의 비평해마다 증가하는 수백만 인구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뻗어가도록 신이 베풀어주신 명백한 사명이라는 강렬한 표현은 당대의 분위기를 포착한 것이다. 노엄 촘스키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표현은 오늘날도 미국인의 의식 속에 남아 있고, 앞으로도 미국의 문제가 될 것이다.

 

체로키 인디언이 죽음의 행진으로 불리는 강제 이주한 오클라호마는 미 대륙 전역의 인디언들이 토지를 강탈당하고 몰아 둔 곳이다.

 

해조분에 관한 이야기는 생소하다. 해조분은 새똥으로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에 토질 개선제로 사용한 것이다. 질소가 부족한 북미 농지에 해조분은 기적처럼 생산량을 늘려주었다. 영국과 페루가 세계 해조분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1856년 해조분 제도법 이후 미국 시민이 없는 무인도에서 해조분을 발견할 때마다 해당 섬은 대통령의 재량에 따라 미국에 부속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카리브해와 태평양의 수많은 섬이 해조분 탓에 미국이 소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화학비료의 생산으로 해조분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책의 후반부에 이 섬들이 미 제국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밝힌다.

 

영국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가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영토 분배가 끝났으므로, 이제 이를 분할하고 정복해 식민지화하는 일만 남았다했다. 그러나 미국의 시각은 달랐다. 미국에서 1890년 발표된 논문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토지 개척이 끝난 후 바다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해상 무역과 해외 기지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파악한 것이다.

 

1899년 제1회 미국 영토 확장 식민박람회 기획자들은 미국의 섬나라 점령지에서 온 1,000명이 넘는 원주민을 볼 수 있다고 광고해댔다. 이런 일은 제국주의 시대에 파리, 런던에서도 있었기에 생소한 일은 아니다. 확장된 영토들은 미국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미국령이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인이 아니다. ‘도서 판례라는 것이 있는데 미국의 일부 지역이 진정한 미국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만든 법이다. 오늘날에도 준주에 사는 미국 국적자 400만 명이 투표권이 없고, 의회 대표를 내 볼 수 없다. 하기는 1857년까지 미국 내 흑인은 시민이 아니며, 될 수도 없었으니......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실상 : 식민지 주민에게 윌슨은 해방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윌슨의 발언은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등 남부 유럽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윌슨의 평화 원칙은 즉각적인 제국의 종식을 요구한 레닌의 욕에는 못 미쳤다. 일제하 조선 사람도 윌슨에 속은 것! 5.4운동 때 중국인들은 파리에 모인 연합국 지도자들을 영토와 배상금 확보에 눈이 먼 강도떼라고 불렀다.

 

미국 최대 식민지 필리핀 지배를 둘러싼 선과 악(악이 대부분이지만), 맥아더 관련 이야기, 푸에르토리코에서 십이지장충 박멸을 위한 실험과 화학전에 대비한 실험 등을 기술한다.

 

2부 점묘주의 제국

킬로이가 여기 다녀갔다는 소재로 미군이 세계 각지에 남긴 흔적이 문화로 남게 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1940년대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해결할 수 없던 항공의 시대를 연 지도가 만들어진다. 전시 지도 제작자였던 리처드 해리슨은 극지 방위각 투영법으로 지도를 완성한다. 이 지도는 1945년에 고안된 유엔 로고의 기반이 되었다.

 

전 세계의 반제국주의적 저항은 식민지 유지 비용을 높였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강대국들은 사람이 거주하는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도 제국의 이점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천연고무를 합성고무로 대체하며 동남아시아의 중요성을 현저하게 낮췄다. 견사, , 황마, 장뇌, 목화, 양모, 제충국, 주석, 구리 동유 등을 합성 물질로 대체했다. 미국 경제 전반에서 식민지는 화학으로 대체되었다. 특히 플라스틱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1940년대에 시작된 합성 혁명은 지정학이 규칙을 바꾸었다. 원자재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식민지 건설의 이점이 더 이상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됐다.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전 미국은 군수품 조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절감한다. 항공기를 이용한 군수품 공급을 개발해 맥아더는 태평양에서 건너뛰기전략을 사용한다. 본토에 상륙하지 않고도 일본을 패배로 이끌었다. 항공술과 마찬가지로 무선은 공간을 건너뛰는 기술이었다. 미국이 전 세계에 건설한 수천 대의 기지는 무선 기술이 없으면 운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국은 세계 식민지를 해저 케이블로 연결했지만, 미국은 무선 통신을 사용할 수 있었다. 힘을 덜 들이고도 효과적이었고 안전했다. 비행기와 무선은 화물과 정보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필요한 경우 영토를 뛰어넘으며 신속히 움직일 수 있음을 뜻한다. ‘항공술과 조립식 배송 방식, 무선통신, 암호화 기술, DDT, 어떤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은 함께 사용하며 관할권이 없는 외국 영토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영토를 대체한 셈이다.

 

미국이 제국이 되도록 한 중요한 요인 중 중요한 것은 산업 표준에 관한 것이다. 후일 대통령이 된 사무장관 후버는 나사산의 세계 표준을 만들어 낸다. 이 표준은 미목을 끌지 못했지만, 조용히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영국도, 프랑스도 전쟁 중이라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1946년 선진 공업국 경제 생산의 6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미국은 표준화의 중심으로 입지를 굳혔다. 국제표준음, 항공업계 표준어가 된 영어, STOP 표지판도 미국의 힘이다.

 

영어가 국제어가 된 것도 미국의 힘 덕분이다. 수십만 명의 유학생이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자국에서 식자층이, 권력층이 되었다. 항공 교통 관제사의 역할도 중요했다. 영어의 국제화에 참여한 중요한 집단 중 하나는 과학자들이었다. 현재 과학 분야 영어 출판물의 비율이 90%가 넘는단다. 가장 거센 파도는 인터넷에 있었다. 전 세계 웹사이트의 82.35가 영어로 되어 있다. 책에 한국의 열성 부모들이 자녀의 영어 교육을 위해 설소대 절제술(혀 아래에 붙어 있는 가느다란 섬유 조직을 절개하는 수술)’을 하는데 이는 LR 발음이 좋아지게 하려는 것이라는(P. 492에 한 문단으로 소개)......

 

2차대전 덕분에 미국은 해외에 2000개가 넘는 기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는 트루먼의 미국은 식민지를 점령할 뜻이 없으나 미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를 최대한 지키는 데 필요한 군사기지는 유지하겠다는 발언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방식을 알 수 있다. 군사 기지와 관련해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동안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가(군수품 조달처로서 2차 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의 기간에 일본의 경제는 55배 성장), 소니 등의 회사가 선발자 우위를 이용해 성장하고 후일 미국의 위협적인 경쟁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폭격기와 스마트 폭탄과는 별개로 미국은 뛰어난 기술로 전쟁의 양상을 바꾼다. 무장 드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탱크와 육군 중심의 전쟁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쟁의 적은 국가가 아니라 GPS 좌표다. 첨병전에서의 전투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외국의 형무소, 벽으로 둘러쳐진 수용소, 감춰진 기지, 섬나라 기지, GPS 안테나 기지국, 정밀타격, 네트워크, 항공기 및 드론 등 이 모든 것이 계속되는 테러와의 전쟁을 떠받치는 무대이자 수단이다. 이는 오늘날 권력의 모습이다. 바로 미국이 만든 세계의 모습이다. ” 세계를 연결하는 해외 기지의 형태로 제국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해외기지는 합쳐서 13, 러시아는 9, 미국은 약 800개에 달하는 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해외 기지에 출입할 수 있는 협정도 맺고 있다. 수십 개 국가에서 미군 기지를 수용한다. 이를 거부하는 나라들도 미군 기지에 둘러싸여 있다. 그중 여러 개는 해조분 섬이었다. 19세기 해조분 열풍은 미국의 해외 제국 전체의 기반이 되었다.

 

<미국, 제국의 연대기>는 글항아리에서 20201716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부제가 전쟁, 전략, 은밀한 확장에 대하여이다. 저자는 노스트웨스턴대 역사학 부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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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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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아무리 큰 타인의 고통도 내 손톱 밑에 낀 가시만큼은 고통스럽게 느끼지 못하고 산다. 냉혹한 인간이라 그런가? 내가 겪은 고통보다 절대적 양이 작아서인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포기하거나 눈을 감는 것은 아닌가? 얼마간 타인의 고통에 대해 눈을 감고 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삶이 팍팍해서든지, 이기적이라서 그러하든지.

 

노엄 촘스키와 함께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에 대해 몸에 좋은 약은 쓰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수전 손택이다. 헬렌 켈러의 사회주의 활동이 자국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것처럼 수전 손택도 미국을 제외한 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는 문학가다.

포버트 카파가 찍은 공화국 병사, 데이비드 더글러스 덩컨이 찍은 장진호 전투’, 네이탐 탄으로 불붙은 옷을 벗어 던지고 뛰어 오는 베트남 소녀와 분신자살하는 스님 사진, 사이공 시내에서 베트콩 용의자의 머리에 권총을 쏘기 직전의 사진 등은 30년도 전에 ‘LIFE AT WAR’에서 본 기억들이다. 그전 사진으로 본 것일 뿐이었다.

90년대 초반 미국에 10여 일을 머물렀다. 동료는 미국인의 비만이란 주제로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런 관점을 갖지 못했기에 기념사진만 찍어 왔다.

타인의 고통을 읽어가며‘LIFE AT WAR’의 사진이나 여행에서 찍어 온 인증사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한다.

 

우선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 메모를 옮긴다.

스페인 내전(1936~39)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지켜본(‘보도된’) 최초의 전쟁이었다.(p.42)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 전쟁은 죽음과 파괴의 모습을 가장의 코앞까지 찾아들어왔다.(p.43)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미사일 폭격을 CNN이 실제 중계한 내용은 없다.

영어 동사 Shot총을 쏘다사진을 찍다란 두 가지 뜻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p.68) 전쟁 사진이 태어난 전쟁은 크림 전쟁이었으며, 그 당시의 사진작가는 로저 펜턴이었다.(p.76)

실질적으로, 잘 알려진 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히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이다.(p.90)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 식민지의)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p.112) 하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고종황제 초상화가 인종전시장에 전시됐었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백인들처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충격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적응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실제생활에서의 공포에 익숙해질 수 잇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가 건네주는 공포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거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각종 기념관은 1930~40년대의 유럽에서 유태인들이 학살된 사건을 사색하고 애도하던 방식의 산물이다.(p.132) 그런데, 흑인 노예사 박물관은 미국 내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p.133) 여기부터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을 통해 하고자 하는 뜻이 드러난다. “건국 이래로 사악한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예외라는 건국 신조가 지금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나라의 믿음과 어울리지 않는다.”(p.134) 미국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는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p.154) 

아마도 이 문단이 결론이라 생각한다

연민에 그치지 말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멈춤도 행동이다.

 

부록에 네 편의 글이 있다. 첫 편인 문학은 자유다독일출판협회 평화상수상 연설이다. 유럽인과 미국인간의 갈등을 풀어 놓았다. 쉽게 보기 어려운 글이다. 특히 미국인들은 적군과 아군이라는 용어로 세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실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미국에 붙어야한다는 것이 한반도 운명이라며 정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는 수전 손택의 말은 노엄 촘스키의 견해와 같다. 수전 손택은 미국이 과격해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사람들이 흔히 미국이 지닌 보수적 거치의 근원이라 여기는 것, 즉 종교 때문일 겁니다.”(P.202) “미국에서는 종교가 아직까지도 사회와 공공 담론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미국식 종교, 달리 말하자면 종교 자체라기보다는 종교를 둘러싼 사고방식에 가까운 겁니다.”(P.203) “문학의 임무중 하나는 문제를 명확히 제기하고, 널리 만연된 경건함을 반박하는 겁니다.”(P.207)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P.214)

 

타인의 고통은 도서출판 이후에서 2004년에 초판을 내놓았고, 나는 2011년 제 칠판, 본문 250쪽 분량을 읽은 거다. 하드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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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쫌 아는 10대 - 보호받는 청소년에서 정치하는 시민으로 사회 쫌 아는 십대 8
하승우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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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5일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선거 쫌 아는 10대>를 읽으며 독서노트에서 ‘선거’를 찾아보니 일곱 차례 선거에 대한 메모를 남겼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여성의 선거권을 보장한 나라는 1883년 뉴질랜드이고, 21세 남녀 보통선거는 영국조차 1928년에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에 미국 초기 헌법이 보장한 내용은 공사에 대한 주민의 간여, 자유로운 선거에 의한 세금 결정, 권력을 대행하는 사람들의 책임성, 개인의 자유 및 배심원제에 의한 재판. 이는 아직 유럽 어느 나라도 엄두내지 못한 것들이었다. 법령은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은 국가가 힘써야 할 가장 주요한 사업이다. 라고 말한다.

제13장, 합중국의 민주정치에서는 “보통선거제가 결코 국민적 선택의 지혜를 보장하는 방법은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2016년 초, 마크 저크버그가 읽은 책이라며 신문기사가 여러 권을 소개한다. 마침 번역본이 있어 몇 권을 주문한다. 책 분량이 적어 먼저 읽은 거다. 분량이 적다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명시적으로 선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내가 읽을 때는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떤 전략으로 홍보해야하는가’,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방법론의 기초를 다룬 것으로 판단한다. 기초의원, 시장, 군수, 도지사, 교육감,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모라면 읽어보면 좋겠다. 저크버그는 페이스 북과 같은 사업 아이템 홍보라는 시각에서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이 책을 읽었으리라.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 조지의 좌우명은 “읽기 쉬운 글은 만드는 것은 고된 글쓰기를 통해서”였다. 아일랜드 토지 개혁운동에 불을 붙이고 수많은 나라에서 ‘진보속의 빈곤’에 대해 강연한다. 의사의 만류에도 뉴욕 시장선거를 치르다가 죽는다. 그의 묘비에는 헨리 조지가 자기 자신을 두고 서약한 글이 새겨 있다. “내가 분명히 하고자 노력해 온 그 진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오래전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결코 숨겨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동지들이 발견할 것이다. 이를 위해 수고를 할 사람들, 고난을 받을 사람들, 필요하다면 죽기까지 할 사람들, 이것이 진리의 힘이다.”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의 본문은 중국의 정치 시스템을 새롭게 밝힌다. 일당독재라고 세뇌된 우리에게 ‘專政’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중국의 정치를 바라보게 일깨운다. 당과 군과 국가의 위상을 우리식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으며, 중국에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기 투표식의 선거로 대표를 뽑는 시스템의 허점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만일 선거도 없고 야당도 없고 검열도 받지 않는 공개적 비판도 없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기근을 막지 못한 실패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책임을 지도층과 정치 지도자에게 돌린다. 따라서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스페인 내전>은 선거로 정권을 잡은 공화파 정부와 프랑코라는 군인 독재자가 스페인의 패권을 두고 벌인 내전이다. 내전이지만 내전이라고 내팽겨 쳐 둘 수 없는 내전이었다. 당시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념을 따르던 사람들과 군부, 노동자, 학생 지식인, 특히 스페인의 국교랄 수 있는 가톨릭이 서로 다른 편이 되고 독일, 이탈리아, 소련이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영국,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의용군들이 스페인에 개인자격으로 들어와 국제여단을 조직하고 내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선거 쫌 아는 10대>는 하승우가 글을 쓰고 도서출판 풀빛에서 3월초 내놓았다. 어느 연령대가 읽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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