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본사 -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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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류 대번영을 이끈 이슬람 문명의 역사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는 서구중심 세계사와 비교한다.

이슬람의 황금기 : 압바스(750~1258)

압바스 제국은 500년 이상 이슬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중동-서아시아 역사의 주도권이 페르시아인에서 아랍인으로 넘어갔다. 압바스 제국은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피정복지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차별과 배제를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국가로 거듭났다. 이슬람이 세계종교로 확산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 과학, 예술의 절정기를 이룬 무대가 압바스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였다. 1258년 바그다드는 몽골의 침략으로 초토화되면서 500년 압바스 제국의 수명을 다했다. 반세기가 지나서 오스만제국에 의해 재통일되어 아랍인에서 튀르크인으로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가 바뀐다.

 

이슬람은 예수의 신격을 부정하고, 철저한 일원론적 유일신으로 알라를 믿는 종교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구약에 기록된 많은 선지자를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 신이 보낸 마지막 인간 예언자로 여긴다.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중재자를 두지 않기에 예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 사상과 근본정신이 다르다. 현세에서 행한 선악의 경중에 따라 신의 심판을 받고 천국의 구원과 지옥의 응징으로 운명이 나뉜다는 내세관과 모든 것은 신이 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예속된다는 정명 사상을 갖고 있다. (p. 325)

 

이슬람 공동체가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아부바르크(재위 632~634) 칼리프 이후 30년 만에 이집트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제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를 서구에서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란 표현을 사용해 빗대곤 하지만, 당시 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의 수탈과 착취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이슬람의 진출을 오히려 환영했고, 정복 과정에서 이슬람으로의 강제 개종은 실제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p. 327)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인 전파를 설명하려는 의도이다. 이슬람은 일단 무력을 사용해 정복한 후에는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거나 직접 통치하기보다는 기존 토호 세력을 인정하며 그 지역에서 인두세(무슬림은 내지 않는다)를 거두어들이는 지방분권통치를 채택했고, 정복지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개종하면 세금 부담이 줄어드니 시간이 지날수록 개종하는 인구가 늘었다. 5대 칼리프 때에는 세금 감면을 노린 개종을 막기 위해 개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꾸란에는 강제 개종을 금하는 구절이 있다. “너희 주님이 원하시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게 될 터인데, 너희는 어찌하여 사람들을 강요해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가”(꾸란10:99)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p.333) 이슬람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퍼진 것은 관용과 포용정책을 편 덕분이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적의에 가득 찬 수사는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 전역을 휩쓸던 이슬람 열풍을 막고 기독교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신학자이자 이슬람 연구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정립해 놓은 극도의 이슬람 혐오 사상의 영향이다. (p. 334) 7세기 이슬람이 태동하면서 취한 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명백히 관용과 포용이다.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중동의 이슬람 사회는 다양한 민족의 각기 다른 종교와 풍습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공존에 익숙했다. 중세 이슬람 사회에서 자신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허용된 이교도를 딤미(Dhimmi)’, 혹은 아홀 알딤마(ahl al-dhimma, 계약의 백성)라 불렀다. 딤미는 무슬림 국가에 의해 허용되고 보호받는 비무슬림 시민을 일컫는 법률 용어였다.

 

셀주크튀르크(1040~1157)

분열되었던 이슬람 세계는 11세기 셀주크튀르크 왕조에 의해 재통일 되었고, 압바스조의 칼리프로부터 술탄의 칭호를 받고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수호자를 자처했다. 1071년 셀주크조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황제를 포로로 잡고 비잔티움군을 격퇴하였다. 아나톨리아 지역이 이슬람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차 십자군 원정의 빌미가 되었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기사 집단들 간에 통제 불능의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타개하고 1054년 동서 교회 분리 이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간 비잔티움 제국의 동방 교회를 통합하여 로마 가톨릭의 관할 아래 둠으로써 교황권을 확대하는 데 있었다. (p.361) 예루살렘은 638년 무슬림에 의해 장악된 이후 종교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한 번도 순례를 방해받지 않았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상황을 왜곡, 과장하면서 성지 탈환을 호소하며 유럽인들을 부추겼다. 일상적인 폭력과 성적 타락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기사들에게 이교로들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기도 했다. (p.362) 예루살렘을 정복(1099)한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학살했고, 2차 전쟁 때부터는 주변국을 약탈하거나 콘스탄티노플을 초토화했다.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왕국 : 호라즘샤(1077~1231)

호라즘샤는 칭기즈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앙아시아(아랄해 남쪽부터 오늘날 이란 영토까지)를 제패한 순니 이슬람 왕조다. 호라즘샤-몽골 전쟁에서 패하여 중앙아시아의 튀르크화와 이슬람 전파가 저지되고 이슬람 문화도시들(사마르칸드, 호라산, 헤라트 등)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유럽인들은 몽골에 호라즘샤가 무너지자 안도했다. 그래서인지 몽골의 문화 말살과 살육보다는 칭기즈칸의 통치정책, 몽골군의 군사 전략, 문화 교류를 통한 이류 문명에 대한 기여 등을 연구하여 칭기즈칸을 우상화하고 영웅담을 확대재생산 해왔다. (p.384)

 

인류 최대의 대제국 : 오스만(1299~1923)

오스만제국은 20세기까지 존속한 인류역사상 최대의 제국이다.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과 함께 세계 3대 제국이라고 한다. (p.523) 13년 만에 분할된 알렉산더 제국, 반세기 만에 와해한 몽골 제국에 견줄 때 인구, 지배영역, 문화 수준, 세계관 등에서 명실상부한 대제국이다. 소수집단에 자치권 부여, 밀레트 제도(인재 등용 정책), 예니체리 등을 통해 남동부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세 대륙을 석권했다. 흑해, 에게해, 지중해, 페르시아만 바다를 독점했으며, 카스피해와 대서양은 물론 인도양까지 영향을 미쳤다.

1453년 오스만제국의 공격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무너졌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군대에 함락되기 직전 교황청과 유럽 국가들로부터 군대를 파병하겠다는 제의가 왔다. 하지만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던 비잔티움 시민들은 콘스탄티누스 11세와는 달리 이교도의 터번에 무릎을 꿇을지언정 로마 가톨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면 유럽의 파병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스스로 패망의 길을 택했다. (p.365) - 인류 본사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플 진출로 인해 오리엔트 지역을 통한 종래의 동서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유럽인들이 동방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P. 541) 신항로 탐험은 오스만이 유럽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포르투갈인들이 시작한 일이다. 게다가 튀르크인들이 유럽에 진출한 후 동서 교역로는 오히려 활성화되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신항로 탐험에 나선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 지중해-홍해-인도양 루트를 이용하는 유럽과 동방 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소외된 이베리아반도의 상인들이 지중해와 홍해를 거치지 않고 대서양으로 나가는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보탠다.

이슬람의 황금기 : 압바스(750~1258)

신라와 고려에 관한 기록이 담긴 수십 권의 필사본이 작성되고 보존된 것도 압바스 제국 때였다.

살라딘의 지도자로서의 덕성은 후일 유럽 기사도의 전형이 되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사자왕리처드가 맨땅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백마 2필을 보내주며 왕의 권위와 체통을 지킬 수 있게 해줄 정도였다. 사후에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말하고 세상을 떠났다.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 : 티무르(1361~1526)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는 몽골 제국의 후예임을, 종족적으로는 튀르크 민족성을,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 문화를,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한 독특한 통치체제를 갖춘 나라였다. 티무르는 3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정복지에서 공예기술자, 장인을 데려다 사마르칸트를 세계적인 도시로 꾸몄고, 학자와 문인을 우대하여 학문의 발달을 밑받침했다. 천문학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동서 교통로를 통해 유럽과 동아시아로 전달해 주었다. 티무르 왕조 패망 시기에 권력 투쟁에서 밀린 자히르우드딘 바부르는 1526년 인도를 정복하여 무굴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티무르 제국의 문화와 종교, 제도 등은 고스란히 인도의 무굴제국에 계승되었다. 티무르 제국의 과학을 비롯한 학문상의 혁신 중 일부가 원과 명 시대 중국을 거쳐 15세기 조선, 특히 세종대 조선의 르네상스로 연결되었다. 저자는 당시 세계를 주도하던 이슬람 문명의 영향과 도입 없이 유럽의 르네상스나 조선의 과학 발달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p. 408)으로 본다.

 

이베리아반도에 꽃 핀 이슬람 문화 : 후우마이야와 나스르(756~1492)

후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왕조가 압바스 왕조에 패망하고 6년 후인 756년부터 1031년까지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번성하며 중세 유럽에 이슬람 문화를 전하는 창구로 기능했다. 나스르 왕조는 이베리아반도에서 꽃 핀 800년 이슬람 문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왕조였다. 알함브라 궁전은 나스르 왕조의 유산이다. 후우마이야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전체 인구의 10%에 달했던 유대인들은 아랍 인구를 능가하는 비율이었다. 무슬림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비즈니스와 학문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세파르딤으로 디아스포라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오늘날 아슈케나짐(동유럽 거주 유대인), 미즈라힘(중동 및 남아시아 거주 유대인)과 함께 유대인 혈통의 주류를 이룬다. 나스르 왕조는 르네상스 이전에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놀라운 학문과 건축기술,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었다. 1492년 나스르 왕조는 멸망하고 이베리아반도는 781년 만에 기독교 왕국의 손에 넘어갔다.

 

 

이란 시아파의 자존심 : 사파비(1500~1736)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여 오늘날 이란이 시아파의 종주국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칼리프술탄’, ‘아미르대신 고대 페르시아 왕조의 황제 칭호였던 를 사용하며 이란 정체성의 뿌리를 분명히 했다.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사파비 때의 것이다. 테헤란을 이란의 두뇌라 부르는데, ‘이스파한이란의 심장으로 여긴다. 이란 역사에서는 사파비 왕조의 개창을 근대화의 시작으로 본다.

사파비의 영적 중심은 수피즘이다. 꾸란을 읽고 해석할 줄 몰라도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면 알라께서 찾아오실 것이며, 자기 수양으로 알라를 영접할 수 있다고 하여 신앙의 길을 넓혔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북아프리카에서는 아랍계 무슬림의 정복 활동을 통해 이슬람이 확산하였고, 동아프리카에서는 교역활동을 통해 이슬람이 확산하였다. 인류역사상 가장 짧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전쟁 기간은 총 38분밖에 안 되는 1896년 영국과 잔지바르 간 전쟁의 당사자인 잔지바르(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는 아라비아 반도국인 오만 술탄령이었다. 무슬림인 아랍인들이 동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교역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 :오스만(1299~1923)

1차대전에서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에 가담하여 패전함으로써 제국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무너졌다. 하나의 아랍공동체가 22개 개별 국가로 나뉘어 독립하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칸반도를 뺏김으로써 보스니아 무슬림 학살, 코소보 내전, 체첸 사태와 같은 복잡한 갈등과 분열의 상처가 생겨난다.

소수민족 보호제도인 밀레트(milet)’는 오스만제국 다문화 포용정책의 핵심이다. 밀레트는 아랍어 밀라(mila)’에서 유래한 용어로, 터키어로 종교, 종교 공동체, 민족이라는 세 가지 뜻이나 민족보다는 종교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다. 제국의 신민을 종교에 따라 구분하여 각 종교 공동체에 귀속하고, 자신들의 율법과 관습에 따른 자치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다만 오스만 술탄에게 복종해야 했다. 무슬림, 그리스 정교도, 아르메니아 기독교인, 유대교도로 구성된 4개 공동체가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밀레트였다. 각 밀레트는 무슬림과 관련된 송사 외에는 오스만 중앙정부의 간섭없이 결혼, 이혼, 출생, 사망, 교육, 언어, 전통 등에서 완전한 자치를 누렸다. 모든 밀레트 구성원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출세를 할 수도 있었고, 개종하여 다른 밀레트로 이주할 수도 있었으나 밀레트 이주를 권장하지 않았다. 밀레트는 오스만 제국 500년 역사를 통틀어 이질적이고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하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이름아래 통합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면서, 민족 간의 갈등이나 분쟁 없이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는 초석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는 후사인-맥마흔 서한(1915~1916)’을 통해 전후 오스만의 영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지지한다고 전하고, 유대인에게는 밸푸어 선언(1917)’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 국가를 세우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 정작 프랑스와는 비밀리에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을 맺어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약속받았다. (p.599) 실제로는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다. 모순된 영국의 행보는 중동 지역에 끊이지 않는 분쟁의 불씨다. 저자는 오늘날 중동의 갈등과 분열,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오스만 제국의 와해로 인한 역사적 후유증인 셈으로 본다.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 무굴(1206~1857)

무굴제국은 이슬람 문화에 페르시아와 힌두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창출했다. 돋보이는 예술 장르는 라지푸티나 회화궁정 세밀화이다.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은 더 깊게 배울 방향을 찾는 소재로 삼는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

기존 세계사에서 아프리카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최근 일부 소개하기 시작했으나 서양과 이슬람이 남긴 기록에 의지한다. 아프리카 역사 재구성의 한계다.

이집트 문명, 누비아 문명, 쿠시 왕국, 악숨 왕국이 기원전에 번성했다. 유럽 중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아프리카 서부네 가나왕국(700~1240), 르네상스 시기에 말리 왕 (1235~1670), 송가이 왕국(1464~1591)이 수준 높은 문명을 주도했다. 아프리카 동남부에서는 짐바브웨 왕국(11세기~1450), 남부에는 무타파 왕욱(1430~1760), 동부에서는 에티오피아 왕국(1137~1987), 중부와 서부에 각각 콩고 왕국(1390~1914)과 베넹 왕국(1180~1987)이 번성했다.

가나왕국은 사하라 횡단 무역으로 금, , 상아, 소금을 낙타를 통해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유럽의 물품과 교환해 수익을 올렸다. 팀북투와 모로코의 시질마사를 잇는 서쪽 교역로가 가장 활발했다.

말리 왕국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당시 아랍-이슬람 세계와 폭넓게 교류했다. 이때 축조된 이슬람 대사원이 흙벽돌로 지은 젠네 대모스크이다. 말리 왕국의 무슬림 만사 무사1324년 메카로 순례를 떠났는데, 동원된 사람이 6만 명, 그 중 12,000명는 그를 수행하는 노예였다. (p.501) 아랍인 역사학자 알마크리지와 이븐 할둔이 기록한 사실이다. 이슬람의 아프리카 수용은 종족성의 초월, 스와힐리어로 나타났다.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다시 읽을 기회다.

 

인류 최대의 대제국 : 오스만(1299~1923)

크림 전쟁 참전을 계기로 유럽 열강이 오스만제국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 1876년에 등극한 술탄 압둘하미드 2세는 탄지마트 정책이 추구하던 서구 지향적인 정치개혁을 중단하고, 무슬림의 지주성과 이슬람 이념의 통일을 바탕으로 하는 보수 정치로 회귀했다. 제국 와해의 위기 속에서도 다방면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했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에 비밀리에 사절을 보내 한반도 사정을 정탐하기도 했다. (p.596)

1차 세계대전 중 동맹국 편에 섰던 오스만제국은, “협상국의 한 축인 러시아가 제국의 동부를 침략해 옴에 따라 대안 없이 동맹국에 가담하여 국권을 지키려 했다.”(p.597) - 영국 편에 서려 했으나 받아 주지 않아 독일 편에 서게 됐다고 알고 있었다. 더 공부해야 할 역사적 배경이다 -

 

타지마할을 낳은 제국 : 무굴(1206~1857)

무굴제국은 330년 넘게 인도 아대륙에 번성했던 이슬람 왕조다. 무굴제국은 인도 아대륙에 국한된 지역 국가로 평가절하되면서 제국의 실체와 문명의 깊이를 제대로 고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무굴제국은 티무르 제국의 후예다. 무굴제국은 토착 문화와 융합하고 종교 간 화해와 다른 가치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창의적인 문화를 이룩했고, 주변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목문화를 토착 힌두적 토양에 새롭게 이식함으로써 다원성이 발현되는 최고의 문화 용광로를 가동할 수 있었다. 수학, 천문학, 의학 분야는 물론 건축 분야에서도 타지마할로 대표되는 불멸의 문화를 꽃피웠다. 1857년 영국의 식민 통치받다가 1947년 간디 주도로 독립했으나, 800년 이상 인도 아대륙의 정치와 경제를 주름잡았던 북부의 이슬람 공동체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독립하였다. 무굴제국에 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

인도 남동부의 퐁디셰리는 힌두가 아닌 타밀족의 문화와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그중 랑골리는 쌀가루, 석회가루, 색모래, 꽃잎 등의 안료를 사용하여 마당이나 거실의 바닥을 장식하는 그림이다. 집을 나서거나 집에 들어올 때 밟는다. 세계적인 영적 공동체 오로빌(Aurovile) 도 있다. 40개 나라에서 온 1,800여 명이 공동체 생활을 한단다.

 

끝으로, 인류 본사가 가진 의미를 나름대로 적어본다.

낱권으로 중동 사람들의 종교, 역사, 문화를 다룬 책들이 있다. 40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책들이다. 머리가 커지면서 가졌던 지적 호기심은 이슬람 세계에 관한 관점을 갖고자 노력했다. 제국주의 국가와 서구 자본주의가 포장(왜곡, 축소 등)해 놓은 사실과 역사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막연했던 지적 호기심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물결을 따라 나온 책들을 보면서 일부 풀어간다. 하지만 완벽에 이를 수는 없다. 학교 교육으로 배운 것은 유럽 중심주의 관점에서 쓴 세계사 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을 읽을 줄 알고, 지적 호기심이 있어 스스로 배우려는, 이른바 교양 쌓기를 하고 있어서 이희수의 일류본사를 만났다. 아마도 일류본사는 앞으로 읽게 될 오리엔트-중동에 관한 책들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기준으로 삼아야 할 듯하다. 아프리카의 이슬람 왕국과 무굴제국의 정치 경제와 문화, 1차 세계대전 직전 오스만제국의 국제 정세 판단에 대해서는 한 걸음 더 디뎌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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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본사 -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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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으로 읽은 인류 본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소화할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서구중심 세계사를 배우고 가르쳤기에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 둘째,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기,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을 언급하여 더 깊게 배울 방향 찾기에 중점을 둔다. 끝으로, 인류 본사가 가진 의미를 찾는다.

 

1: 아나톨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 1만 년의 역사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는 서구중심 세계사와 비교한다.

그리스 문화로 배워온 지식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서 일어난 문명(오늘날 튀르키에)의 소산이다.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히포크라테스, 밀레투스 3대 철학자인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만드로스도 아나톨리아 문명이 길러낸 인물이다. 성서고고학 측면에서 아라라트산은 노아의 방주가 걸렸다고 추정되는 산이고, 에덴동산, 아브라함의 활동 무대였던 하란, 사도 바울의 생가, 초대 7대 교회와 산타클로스의 실제 무대인 성 니콜라스 주교 성당이 아나톨리아반도 문명에 속한다. 12천 년 전 신전도시 쾨베클리 테베’, 트로이, 히타이트, 황금 손을 가진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 ‘고르디우스의 매듭같은 신화와 전설이 넘쳐난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대항해시대, 종교개혁,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19세기 과학의 시대, 20세기, 2차 대전을 치르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 우리가 배워왔던 세계사, 특히 서양사의 큰 줄기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문명은 인류 문명이 뿌리이자 모태인 오리엔트에서 뻗어 나간 줄기 문명이라고 본다. 왜곡하거나 가볍게 취급한 아카드,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트로이, 프리기아, 아시리아, 우라르투, 메디아,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압바스 제국, 사파비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관점을 인류본사에서 시도한다.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아나톨리아는 해 뜨는 곳(anatole)’이란 의미다. 쾨베클리 테베 발굴로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혁명을 정착 생활의 시작으로 보았으나, 농경 이전의 수렵과 채집이 주된 구석기시대에서 대규모 도시 공동체와 문명이 존재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헬레니즘이란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 이후 이 지역에 전해진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나 융합적 요소에 갖다 붙인 지극히 그리스적인, 나아가 서양 중심적인 표현이다.”(p. 211)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저자는 알렉산더가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광대한 페르시아를 발아래 두었다고 헬레니즘의 승리로 주장함은 지나치다고 본다. 알렉산더가 그리스 문화를 이식하여 오리엔트를 변화시켰다는 주장은 유럽 중심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과장(p.212)이다. 저자는 오리엔트에 세운 그리스계 후계국가들이 오리엔트 지역의 문화에 동화되어 점차 소멸한 점에 유념하자고 말한다. 노엄 촘스키도 같은 맥락에서 유럽 중심적 시각은 미국 자본주의가 20세기에 만든 프로파간다라고 한다. 알렉산더는 동방 원정에 그리스 학자들을 대동하고 다녔고, 이를 토대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다고 배우고 가르쳐왔다. 알렉산더의 유명세는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한 그리스-로마 작가들 덕분이다. 고대문자의 해독과 고대 문헌을 이해하게 되면서 동서양 역사 인식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지만, 중동에서, 저자는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을 13년 동안에 벌어진 인류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침략전쟁이자 약탈 전이었다.”(P.224)라고 평가한다.

 

둘째,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보탠다.

1986년 사세휘가 쓴 세계사를 서양인의 눈으로 보지 말고 동양인의 눈으로 보자는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가 아닌 '일본인의 안목으로 본 세계사'에 관한 책으로 지적 호기심을 일으킨 첫 책이었다. 정수일의 이슬람 문명, 타임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은 오리엔트-중동에 관한 이해를 돕는 책으로 유익했다. 이를 통해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소화하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 조항 중 부부관계에 관한 내용은 놀랍다. “아내가 남편과 잠자리를 거부할 경우 그 배경과 전후 사정을 조사해 아내는 정절을 지키고 과오가 없는 반면 남편은 외출이 잦고 평소 아내를 크게 멸시했다면, 아내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면 아내는 자기 재산을 가지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p.79) “빚 때문에 노예가 된 경우 채권자의 집에서 3년 동안 노예로 일하게 한 뒤에는 풀어줘야 한다.”는 조항으로 보아 노예는 중세 농노보다 처지가 나은 듯하다. 저자는 신이 함무라비 왕에게 통치권을 주고 주문한 두 가지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5 공화국이 떠오르는지…….)할 것과 약자가 고통받지 않는 국가 운영이라고 본다. 서구인들이 게르만인은 모두가 자유롭고, 라틴인은 일부가 자유로우며, 오리엔트에서는 한 사람만 자유롭다며 절대권력 체제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고 강조한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원전 59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치드키야 왕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키루스 2(21세기에도 이란에서 존경받는다)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역하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함으로써 성경과 유럽 역사서에서 성인으로 추앙한다.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길가메시 서사시>B.C. 2,000년 경의 작품으로 일리아스오디세이아보다 1,500년 앞선 것이다. B.C.1274년 철기와 전차 3,500대를 사용한 히타이트와 청동 무기로 무장한 이집트 간 전쟁을 '카데시 전투'라 한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두 문명, 철기와 청동기 문명이 충돌한 대륙 간문명 간 전쟁이었다. 두 나라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이집트-히타이트 평화조약(카데시 조약)을 맺는다. 양국 국경선 인정, 상호불가침, 호혜·평등의 원칙을 확인한 전문 12개 조로 인류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이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B.C. 550~B.C. 330)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가 외할아버지를 살해하고 모반해 세웠다. 나라 이름을 메디나에서 페르시아로 바꿨으나 언어, 지배계층, 문화는 연장되었다. 키루스가 제국을 통치한 대원칙은 다문화 정책과 관용정책이다.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복속하고 조세를 내고 군사적 통제를 받는 조건으로 개별 국가나 군소 공동체에 일정한 자치와 자율권을 부여했다. 이런 전통은 초기 이슬람 시대를 거쳐 오스만제국 시대까지 이어졌다. 키루스는 유대인이 바빌로니아에서 고향으로 귀환을 허락하며 수만 명 유대인의 노임을 계산해 챙겨주고 신전을 지을 비용까지 대주었다. (에스라서 1:1~4) ‘키루스 원통이라는 도기에 새긴 쐐기문자는 인권선언문이다. 이는 세계인권선언의 효시로 여겨진다. 키루스 무덤 주변은 관개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데 페르시아어로 갇힌 정원이란 의미의 파라다이아로 불렸고, 여기서 오늘날 ' 파라다이스(Paradise)’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p. 167)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팔레비 이란 국왕, 이스라엘 건국자 벤구리온, 아테네 출신 역사가 크세노폰(그리스 역사를 지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리스 전기 역사이고, 크세노폰의 그리스 역사는 그리스 후기 역사다)은 키루스를 예찬했다.

 

페르시아의 왕의 길을 벤치마킹한 로마는 역전제와 아피아 가도를 고안했다. 페르시아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이고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조로아스터교의 고대 페르시아식 발음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이원론적 세계로 우주와 인간 세상이 대결구도 속에 진행된다. 인간은 내면에 선과 악 이란 상반된 속성을 품고 있으며,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없고 타고난 이성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 선순환하는 생활철학이 교리의 중심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제를 라틴어로 마구스(Magus)’라고 하는데, 페르시아어에서 라틴어,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 magicmagician가 됐다. 유향과 몰약을 들고 마구간에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은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다(p. 196) 초상화나 인물이 포함된 상상화, 상징물을 제작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로 배격했다.

 

영화 ‘300’에서 묘사된 그리스-페르시아 간 전쟁은 지나친 왜곡이다. 2세기 로마 제정 시대 문학가 루키아노스는 헤로도토스를 거짓말쟁이로 혹평한다. 그리스 작가들이 묘사한 페르시아 전쟁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반세기 동안 11차례 공략했으나 최종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고, 마라톤 전투에서는 패했다. 이란에서 마라톤은 인기가 없단다.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유래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단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B.C. 330년 알렉산더에게 패하며 220년 역사를 끝냈다.

 

연꽃은 B.C. 3,000년 경 이집트에서 페르시아, 간다라와 중국을 거쳐 6세기에 한반도 불교문화로 전해졌다.

 

파르티아(안식국) (B.C. 247~224)

우리 교과서에서 나라 이름 정도만 언급되었으나 파르티아는 500년간 로마에 맞선 대제국이었다. 유프라테스강을 경계로 오늘날 동쪽의 튀르키예 일부, 이라크, 이란을 포함하는 오리엔트 핵심지역을 장악하고 로마와 경쟁 또는 협력하며 471년간 존속했다. 로마와 중국, 동아시아 간 중계무역으로 경제를 다졌다. 파르티아는 로마와 300여 년간 전쟁을 치렀다. 아르메니아 지역이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충지로 로마와 파르티아가 승리와 패배를 반복한 지역이다. 아우구스투스 이래로 로마는 파르티아를 공격하지 않는다(서로 지친 탓에)는 불문율이 있었기에 유프라테스강을 경계로 하였다. (역사지도를 펼치면 이해가 쉽다) 파르티아가 중국이나 로마에 군사적으로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중앙아시아의 말을 이용해 끊임없이 기병을 양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레 전투는 세계 전쟁사에서 유명한 결전이었던 로마와 파르티아 간 전투로 마지막 결전에서 로마의 크라수스가 전사한다. (P. 247) 로마와의 긴 전쟁은 파르티아의 중앙 권력을 약화하기에 충분했다. 파르티아의 주류 신앙은 이란 동부에 뿌리내린 미트라교였다.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교의 분파로 보기도 했으나, 최근 연구자들은 조로아스터교 이전부터이란, 인도 지방에 존재한 독립된 신앙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미트라교가 로마로 건너가 미트라가 로마의 군신이 되고,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로마 상층부의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로마인 스스로 미트라교를 페르시아 밀교라 칭했으니 페르시아 신앙과 관련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로마와 500년 가까이 전쟁과 교역을 통해 접촉과 교류를 했던 파르티아를 떼어 놓고 로마 시대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신국론을 쓴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독교 교리와 불교의 내세관이 가미된 종교로 4세기 초 로마,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위구르, 티베트 불교에 영향을 끼침)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마니교의 교리를 가지고 기독교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립한다. 천국과 지옥, 이생과 전생, 천사와 사탄, 최고신에 대항하는 악신 등 조로아스터교 신앙의 이원론적 변증법이 기독교 교리 완성에 작동했다고 본다. (P.274)

 

저자는 인류 최초의 대제국이었던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후예로 선조들이 이룩한 제국의 거버넌스를 계승한 파르티아는 로마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문화적 실체를 조망해야 한다고 본다.

 

사산조 페르시아(224~651)

사산조 페르시아는 B.C. 6세기부터 1,200년간 서아시아에 페르시아 문명을 꽃피운 거대한 제국 중 하나로 마지막을 장식한 나라였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 3개 도시에 아카데미가 있었고, 5세기 설립된 군데샤푸르의 아카데미는 6~7세기 당대 최고의 학문의 전당이었다.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아테네의 아카데미를 폐쇄하자 아테네에서 쫓겨난 그리스 철학자와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정통에서 이단으로 봄) 학자들이 아카데미 교수진을 형성했다. 인도의 천문학과 점성술, 수학과 의학, 중국의 전통의학이 소개되고 각 지역의 의학 지식이 집대성되어 치유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번역하고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조너선 라이언스가 지은 지혜의 집은 더욱 상세하게 기술한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문화와 예술은 입수쌍조(가운데 나무가 있고 양옆으로 새가 쌍을 이루고 서 있는 양식) 디자인, 아라베스크 무늬, 건축양식 이완(책으로는 알 수 없어 더 공부해야 할 듯) 등은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 아나톨리아, 발칸반도, 이집트, 이베리아반도까지 퍼졌다. 타지마할과 알함브라 궁전 양식에 드러난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에 멸망하면서 몇몇 왕족과 귀족이 아랍군을 피해 동방으로 도망하다가 당나라에 정착하기도 했다. 구당서에 기록이 있고, 사산조 왕족의 후예가 후일 신라로 망명하여 살았다는 내용의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가 발견되었다. (p.309)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으로 오리엔트 세계는 이란 민족에서 아랍 민족으로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 1,200년간 축적된 페르시아 문화는 문화적 토대가 축적되지 않은 아라비아반도 중심의 아랍 정치 세력을 문명화한 세상으로 이끈 촉매제 역할을 했다. 페르시아 문명이 안내한 길을 따라간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 제국을 건설했고, 티무르 제국왕실의 후예는 인도에서 무굴제국을 세웠다.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은 더 깊게 배울 방향을 찾는 소재로 삼는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세 문명은 독립적이지 않고 이미 5천 년 전부터 광범위한 접촉과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현대 고고학이 밝혀냈다. 저자는 에게해에 있는 산토리니섬이 대폭발한 사건은 지중해를 둘러싼 미케네, 크레타, 트로이, 프리기아, 히타이트, 페니키아, 이집트의 고대 역사와 연결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토대로 가설을 제시한다. 고고학과 역사학의 진전을 기대한다.

 

로마와 500여 년간 경쟁과 협력했던 파르티아는 다언어, 다문화 사회였음에도 뚜렷하게 문자로 기록된 자료를 남기지 못했다. 다만 파르티아 왕실은 음유시인들의 창작을 장려해 수많은 서사시의 전통을 남겨 후대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 서사시의 놀라운 발전을 가능케 했다. 파르티아의 주류 신앙인 미트라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가 불교와 습합(習合, 절충한다는 의미)하여 미륵불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P. 273) 저자는 12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정한 것도 미트라 전통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P. 298)

 

P.S. 이완(iwan (페르시아어 : ایوان eyvān, 아랍어 : إيوان Iwan, 철자가있는 ivan, 터키어 : eyvan)은 일반적으로 한 쪽 끝이 완전히 열리는 3면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홀 또는 공간입니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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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독일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밝혀낸 휴식의 놀라운 효과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라디오에서 부모가 짜 준 일정대로 살며 공부하던 모범생이 대학생이 되어 방황하다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유품 정리사의 조언은 목표에만 매달려 살지 말고, 우울증이 오면 작은 일이라도 매일 해야 할 일을 거르지 말고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직장 동료들은 나더러 맨탈이 강하다고 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힘껏 살아온 내게는 운이 좋았는지 대부분 한두 번 실패하면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었다. 우울증이 내게 올 틈을 주지 않고 살았다. 늦게 시작해 나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아내도 번 아웃이 오지 않았지만, 몇 번씩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라고 한 적이 있다. 잘 극복해 주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 예전에 읽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을 공유한다. 혹시라도 삶에 지쳐있다는 느낌이 온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24.2.26.()

 

2017.8.9.()에 쓴 글이다.

책을 덮고 이틀이 지나 독서 노트를 쓴다. 전체 흐름을 연결할 수 없다. 목차를 다시 본다. 메모와 밑줄 친 문장도 다시 본다.

김정운은 추천 글에서 우리는 바쁠수록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간다, ‘독일 사람들은 78월이면 죄다 어디론가 떠나 도시는 텅텅 빈다라고 한다. ‘그래도 독일은 안 망한다.’, ‘죽도록 일하는 우리와 비교해 여름 내내 놀다 오는 독일의 생산성이 훨씬 높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쉬어도 된다. ‘휴식은 창조적 과정의 일부다라고 말한다.

저자 울리히 슈나벨은 휴식이란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르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활동으로 자기만의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우리는 왜 날마다 바쁜가에서 우리가 시간을 얻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은 그게 어떤 것이든 우리 활동의 리듬과 흐름을 가속한다. 결국, 새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일거리만 더욱 부풀린다라는 제레미 레프킨의 말을 인용한다. 기술의 발달로 순수 근무시간(평생에 걸쳐 합산한 것)이 줄어든 대신 학습에 들어가는 시간은 수직으로 상승해 여가는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파킨슨은 우리가 기술로 시간을 절약하는 그만큼, 우리의 욕구와 요구는 증가한다라고 한다. 휴식을 누리는 기술은 자유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린 게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첫째, “우리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업무량의 정도보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더욱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비교적 일로부터 스트레스를 덜 받는 명백한 이유의 근거다. 둘째, 선택의 폭이 크면 클수록 구매를 자극하기보다는 기회비용만 커지고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스트레스만 치솟게 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아내를 따라다니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로 체감할 수 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정보 홍수에 휩쓸리지 않는 법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잡담, 전화는 업무 시간을 단절시킨다. 특히 디지털 네트워크와 오프라인의 균형을 잡으라 한다.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작업기업과 장기기억을 설명하며 작업 기억을 향상하려면 일의 우순 순위를 정하고 일과 상관없는 뭔가 중요한 생각이 떠오르거든, 나중에 알아볼 수 있게 메모해두고 하던 일을 하라. BC 5세기경에 글쓰기를 두고 소크라테스가 기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하고 외부의 도움에만 의존하게 한다고 비판했으며,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대해 지배층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성인의 게으름만 키울 뿐이고 결국 인간의 정신을 허약하게 만들 것이라 비난했다. 독서얼마나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레퍼토리이며, 상상력의 왕국이다라는 울프의 말로 정보의 홍수에서 벗어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에서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배운다라고 한다. 수면의 단계를 설명하며 수업시간을 8시에서 9시로 늦추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한다. ‘낮잠은 창의성을 높여 주는 힘이 있음과 명상은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기적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비워야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디폴트 네트워크(공회전 네트워크)에 대해 아무런 목표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많은 두뇌 영역을 활발히 활동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번쩍하는 깨달음을 설명하는 결정적 실마리를 준다.”라고 한다. 나도 이 문장을 읽으며, 잠을 자려고 누우면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나 메모하기 귀찮아 놓친 것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우리를 몰아붙이는 가속화의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이라고 지적한다. 시계 발명을 증기기관의 발명보다 비중 있게 판단하고 우리가 사는 정신없이 바쁜 사회를 만든 핵심 기제로 보는 시각을 소개한다. 풍요를 추구할수록 커지는 불안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가속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에서는 서두르는 습관과 불안감을 인정하고, ‘낯선 문화로 여행을 떠난 보는 일은 시간과 휴식을 다루는 다른 방식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푸른 자연에서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정을 추가하며, 몰입의 순간이 주는 행복도 경험해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상에서 더 많은 휴식을 누리는 기술에서 휴식을 누리기 위한 태도 세 가지를 메모한다. 첫째, 내외적인 저항을 감지하고 알아내라. 둘째, 거절하는 법을 배워 실천하라, 셋째, 내 인생의 나침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달아라. 그리고 자주 걸어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은 가나출판사에서 20167월에 초판을 내놓았고, 20173월 초판 5, 본문 331쪽 분량을 읽은 거다. 책을 읽었지만 그래도 일이 있는 게, 비중 있는 일을 해낸다는 게 의미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https://brunch.co.kr/@grhill/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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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민을 위한 동물지리와 환경 이야기
한준호 외 지음 / 롤러코스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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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

2024.2.24.()

 

chatGPT가 책을 읽으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이바지하면서 심오하고 다면적일 수 있다고 답한다.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는 자연환경과 동물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감성을 일깨우며 문화적 이해를 깊고 넓게 한다. 읽는 시간 동안 스트레스가 없음은 덤이다.

 

서문과 목차를 보고 어떤 책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동물이 행위 주체로 생태환경을 만들어간다.’ ‘인간 문명 발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거나 희생된 동물이 있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지구 생태계를 만들어갈 대안적 비전은 무엇일까?’ 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생태시민이란 키워드를 끌어낸다. 여섯 명의 지리 전공 선생님이 힘을 합쳐 낸 글이지만, 결이 달라 어색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아 쉽게 소화할 수 있다. 윤문과 퇴고에 정성을 기울였음을 본다.

330쪽 분량의 본문에 텍스트, 사진, 지도, 그래프, 도표 등을 알맞게 배치해 지루하지 않다. 장마다 담은 내용이 자연환경과 동물을 배경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니 형이상학적인 글이 아니다. 지리적 지식, 기후 환경의 변화와 함께 육지와 바다의 동물을 다루니 공간 범위가 좁지 않다. 다른 나라에 살아 보기 어려운 여러 동물과 왜가리, 돼지, 반달가슴곰 같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는 동물이 등장한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청어가 조선 시대 국민 생선이었고, 과메기가 청어라는 토막상식도 있다. 어떻게 조선 시대 청어는 국민 생선이 될 수 있었는지? ‘사막의 배로 불리는 낙타는 기원이 북아메리카였음을 알고 있었는지? 사자를 동물의 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유럽인은 사자를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배설물이 항문 주변이 묻어 구더기가 끼는 것을 막으려고 새끼 양의 항문 주위 피부를 도려낸다(뮬싱)고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비행기가 아니고 큰뒷부리도요라는 새가 있다니! 캥거루 고기 먹어 보셨나요?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동물은 무엇일까? 어떤 애완견보다 라쿤의 눈동자와 얼굴이 귀엽더라. 등 여러 선생님이 18가지 동물의 다루며 질문하고 답하니 재미있다.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가 재미만 주지 않고, 홍학 보전과 리튬 개발을 통한 이윤확보라는 딜레마를 던진다. 고기를 많이 먹는 식문화는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니 채식주의자에게 식습관을 옹호하는 근거를 준다.

 

학자의 탐구력를 만나고 세상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법도 생각하게 한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이주에서 소빙기의 매커니즘을 찾아낸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외에도 상상의 지리 imagned geograpies’로 세상을 해석한다. 어떤 장소가 텍스트나 사진, 그림 등에 의해 특정한 형태의 공간으로 생산되는 것을 상상의 지리라 한다. 케냐나 탄자니아 지역이 초원이고 야생 동물의 낙원이라는 인식은 유럽인이 재현해 상상의 지리가 만든 공간이다.

 

소빙기에 경신대기근(1670~1671)이 발생했고, 강릉 앞바다는 얼어붙었다니 기록을 찾아보게 한다.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 Chasing Coral>를 보게 하니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독자를 행동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책을 읽은 덕분에 두루미, 황새, 왜가리, 백로를 견줄 사진을 보았으니 세종시 천변 산책길에서 만나는 왜가리를 보고 백로라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는 재미있고, 딜레마를 겪게 하며, 세상을 해석하는 눈을 뜨게 하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알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 독자의 행동은 생태 시민이 되려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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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세상, 길을 만납니다 - 숲꽃에서 만나는 치유의 삶
김준태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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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를 땐 그냥 땅만 보지 마시고요. 주변에 풀 나무와 인사하고, 숲새 노래 바람 소리에도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으뜸으로 요청하는 문장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관찰(觀察)과 경험(經驗)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믿어 과학을 강조하였다. 이후 인류는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를 이루어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일찍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약소국을 착취했고, 20세기에 화학이 자연에 끼친 폐해가 밝혀져 인류의 생활방식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문을 열고 앨 고어, 크레타 툰베리로 이어지는 환경 보호 움직임은 자연은 인간의 정복 대상이 아니라는 사고를 확산하였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은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고 위험하다는 충고다.

 

관찰과 경험으로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냄으로써 작가는 헤겔 논리학의 고유한 체계인 변증법, 정반합(正反合)에서 합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실천한다. 작가의 합에는 생물학과 인문학이 함께하여 통섭을 지향한다.

작가는 산에 오른다는 표현을 숲에 간다고 한다.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도시에서 살거나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자연에 눈길을 보내고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산에 오르는 일은 체력을 측정하는 수단이란 역할을 한다. 숲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이야기로 꾸민 책에서 숲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야기를 담았다. 50 개의 숲꽃을 사진과 글로 풀어낸 이야기를 읽어가며 자신의 삶 방식과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점검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독자라면 프롤로그에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다.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통해 작가는 숲꽃에서 의지, 배려를 찾아 소개한다. 문장으로 만나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고, 알 수 없던 지혜다.

 

서로의 삶터를 존중하고 꽃 피는 시기를 달리해 경쟁을 피합니다. 작은 꽃들은 함께 뭉쳐 큰 꽃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면서 역경을 함께 헤쳐 갑니다. 꽃에 형형색색 무늬도 만들고 냄새도 풍겨 곤충이 잘 찾아오도록 배려합니다. 암술 수술 길이를 다르게 하고, 꽃가루 익는 시기와 암술머리 열리는 시기도 달리하여 다른 개체와 화합합니다. 수정이 끝나면 꽃색을 바꾸고 꽃잎도 떨어뜨리지요. 미처 짝짓지 못한 이웃들에게 곤충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자기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을 펼치면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은 봄, 여름, 가을 순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과 글로 만난다. 여러해살이풀과 한해살이풀은 무엇이 다른가? 처녀치마란 숲꽃은 땅에 납작 붙어 피는데 왜 그럴까? 두 가지 물음은 뿌리와 씨앗, 지구복사에너지로 답한다. 꽃이 피고 난 후에 잎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새봄을 알리는 주역이랄 만한 꽃은 제비꽃이다. 현호색에 관한 작가의 해석(혼자로는 연약하니 여럿이 뭉쳐 큰 덩치를 흉내 낸. 큰 변고가 생겨 작은 꽃 몇 개가 손상을 입더라도, 남아 있는 꽃으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에 수긍하게 된다. 대부분 꽃은 꽃잎이 앞으로 젖혀지는데 꽃잎이 뒤로 활짝 젖혀져 있는 얼레지는 꽃말이 바람나 처녀란다. 그럴듯하다. 산을 오를 때 내려오는 마음으로 오르자는 뜻은 성취적인 삶의 태도를 보인 사람에게 주는 조언이다. 소나무가 독야청청할 수 있는 여건에는 송진과 같은 화학 성분이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타감작용으로 풀어간다. 모데미풀로 우리 식물 이름에 일제 강점기의 상처가 있음을 알아채고 안타까워한다. 꽃며느리밥풀, 동자꽃, 쑥부쟁이에 담긴 슬픈 사연에 코끝이 찡하다. 제우스의 유혹을 견뎌낸 시녀에게 헤라가 준 선물로 무지개 여신이라 불리는 아이리스는 붓꽃이다.

 

다음은 작가가 오랜 기간 소백산, 점봉산, 덕유산, 지리산, 계룡산 등 전국 숲을 관찰한 경험과 지식이 만든 문장들일 것이다.

 

까치수영은 꽃이 아래부터 차례차례 피고 지기 때문에 여름철 내내 볼 수 있는 꽃이다. 한꺼번에 피지 않고 왜 이렇게 꽃이 피는 것일까? 작가는 자연재해에서 한꺼번에 모두 잃는 참사를 피하려는 전략이다. 숲꽃은 하얀색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빨강과 노랑이 많이 보인다. 파랑에서 보라꽃이 상대적으로 드문데, 이들이 가을에 많이 보인다

 

20242월 신간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추천한다. 2019년 출간된 나무의 말이 좋아서도 좋은 책이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산을 숲으로 여기게 하고 숲으로 오라는 입문서 격이라 볼 때,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는 한 걸음 숲에 다가선 책이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나 김준태의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는 통섭(統攝)을 시도한다. 이런 부류의 책을 읽을 수 있음은 작가가 진테제(synthesis)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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