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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평점 :
2024.9.29.(일) 12:10
이런 식의 책은 드물다. 전문화되는 학문의 경향에 벗어나 신화, 철학,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적, 법의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논지를 펼친다. 더욱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문학, 철학, 의학의 결과를 사례로 들고 있으며, 놀라운 점은 서구 학문의 결론 부분이 공자의 기소불욕 물시어인으로 맺을 수 있다는 점이다. <책사람집>에서 책을 보내올 때 ‘인문 서평’이란 범주로 좁혀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증오의 역습』은 네트워크상의 증오를 막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고 선언하며, 증오는 왜 생기느냐는 뿌리 찾기와 어떤 결과를 표출하는가에서 출발한다. 증오에 관해 알아야 하며 증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는 심리학에 뿌리를 둔다. 서론에서 증오란 “경멸의 가장 파괴적 형태, 오직 파괴를 지향하는 성향”으로 정의하고, 이성과 감정을 장악하기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증오는 독성을 지닌 침묵, 거친 언사를 동반한 폭력, 사회 갈등, 차별과 집단 폭력, 범죄와의 전쟁 등으로 표출된다. 증오는 분노, 격분, 질투와 다르다. 이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증오는 그렇지 않고 자신에게까지 고통을 유발한다.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이트, 에리히 프롬의 생각을 담고 있다. 책은 “우리는 누구나 증오를 느낄까?” 자문하는 등 15가지 질문에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제 질문을 따라가 보자.
“증오는 어떻게 우리 안에 살게 되었을까?” 티에스테스와 아트레우스 이야기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증오의 뿌리를 찾고, 진화는 증오를 누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본다. 아들러는 열등감에서 증오의 원인을 찾는다. 증오는 계획적 사고다. 증오는 공격성을 띤 감정이다.
“증오의 씨앗은 무엇일까?” 긍정적 공감의 결여, 소통의 부재(침묵의 소리), 실망과 모욕이 증오의 싹을 틔운다. 특히 모욕은 가장 강력한 증오의 기폭제이며, 방어기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괴롭힘이 증오의 원인임을 묘사한다(p.64)고 말한다.
“우리 영혼의 치부에 시기, 질투, 탐욕, 복수심”이 있다는 것을 카인과 아벨의 예를 들어주고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에서 시기를 악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비교에서 시기가 시작된다며, “시기는 언제나 비교에서 비롯된다. 비교가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는 시기도 없다.”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의 눈매는 날카롭다. 증오의 눈매는 더 날카롭다. 가장 날카로운 눈매는 질투다. 질투는 사랑 더하기 증오이기 때문이다.”는 아람 격언을 소개한다. 불교에서 증오, 무지, 탐욕을 ‘삼독’으로 여긴다. 탐욕은 증오를 부채질한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복수와 맞물린 증오의 심리 묘사를 잘 다루고 있다고 평가한다.
“나를 보호하던 보호견이 내 영혼을 물어뜯었다.”며 두려움이 증오를 만들고,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 증오의 힘은 터져 나온다. 세뇌와 선동은 증오를 키운다. 집단의 비호를 받는 개인의 증오는 폭력성이 커진다. 증오는 천천히, 계획적으로 자라난다. 증오의 발작적 분출은 이성적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장으로 증오의 역습을 설명한다.
“파괴의 근원에 숨겨진 진실은 증오”라며 오랜 철학적 고찰, 최신 과학의 연구, 심리 치료의 임상경험을 종합할 때, 증오의 주요 특징은 파괴적 공격성, 공감의 배제, 섬세한 감정과 생각의 무시와 왜곡, 사악한 생각에 주력함, 잔혹함,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집요함이라고 한다. ‘잔혹함’의 예로 김정은이 장성택과 측근을 굶주린 개 120마리가 물고 뜯게 했고 지켜봤다(p.122)고 한다. 사실인지 독자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화, 분노, 경멸, 혐오”는 증오와 친척이라며, 경멸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차갑기 그지없는 감정으로 우월한 지위를 과시할 때 드러난다고 한다. 증오는 뜨거운 감정으로 사회적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증오의 얼굴”에서 증오는 편집증(성인의 1.4%에 나타남), 나르시시즘, 자아 중독으로 표출된다.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잠재적인 사이코패스를 ’검은 3형제‘라고 하며, 사디즘(남의 아픔을 즐거워함)을 포함해 검은 4형제라고 한단다. 사디즘은 경험이 없어 모르겠다. 서구인의 사고와 우리가 달라서 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투쟁” 부분에서 자기혐오와 심리 장애, 몸매 상실을 보는 두려움, 자해까지 이를 수 있는 자기혐오, 실패한 자아 최적화, 자기 자신을 겨눈 극한의 공격성이 내용은 평범한 삶을 사는 독자가 수용하기 쉽지 않지만, 히키코모리 현상은 알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끔찍한 사이가 되었을까?”라는 남녀의 증오를 다룬다. 애증은 사랑과 증오다. 두 감정의 공통점은 열정이라는 밀도 높은 감정을 담고 있다. 서구 사례에서 ‘인셀 운동’(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불만에서 시작돼 ‘이성을 간절히 원함에도 독신으로 사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혐오, 낙인, 페미사이드, 인셀” 등에서 결국 불태워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 말한다. 재물손괴 뒤에 증오가 숨어 있다며, 탈레반의 바미얀석불 파괴, 분서갱유, 독일에서 유대인 박해, 마야 고문서 소각 등을 혐오의 사례로 제시한다. 최악의 증오 범죄로 묻지마 살인, 학살, 테러를 예로 들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키르케르고, 헤르만 헤세를 데려와 설명한다.
“디지털 분노”는 인종 차별과 성적 모욕으로 폭력을 자극하며 가상공간에서 증오가 늘어간다고 우려하며 자존감의 결여를 원인으로 상정한다. 이를 막기 위해 형사 처벌과 심리적 전략을 말한다. 유머,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경고, 공감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전략으로 열거하며 공감에 호소가 가장 성공적이라고 한다.
“파괴의 도구들”은 증오의 수단으로 책임전가, 욕설과 비방으로 창피를 주기, 가스라이팅, 인간성 말살로 정리해 사례를 들어준다. 해밀턴의 작품 『가스등』에서 가스라이팅이 유래되었음을 소개한다. 인간성 말살의 사례로 히틀러와 괴벨스의 말, 르완다 투치족 학살을 언급한다.
“증오 극복의 10단계”(P.253)는 나를 모조리 태워 버리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단계로 소개한다.
“증오로 얼룩져 가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법”에서 유념해야 할 것들을 소개하지만,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으로 맺고 싶다. 끝으로 ’공감 능력을 장려하는 일‘이야말로 증오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며, 애정을 작고, 성세하게 배려하며, 길게 보자고 한다.
증오란 단어로 280여 쪽 분량이란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폭넓은 앎, 지식이 있어 통찰할 수 있어야 가능한 글이다. 학문에 치우치지 않고, 가볍지도 않고, 서로 공감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책을 통해 글을 쓸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러 개 감정을 다뤄 스피노자가 『에티카』, 강신주가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썼던 것과 다르게 ’증오‘에만 집중하고 있다. 서두에 말한 통섭은 전문화를 토대로할 수 있다는 역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