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림 비용 ㅣ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백수린 후기 / 플레이타임 / 2021년 3월
평점 :
초반부는 쉬이 읽기 힘들었다. 작가가 매몰된 현실의 모든 것들이 숨통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씩은 두어야 마땅한 수호천사' 실리아의 등장으로 숨구멍이 조금 트였다. 낡은 헛간의 존재가 새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다.
'남자들이 쓰고 여자들이 연기해 온 여성성'을 벗어던진 여성에게 현실은 분투를 강요한다. 사회의 보호막이 사라진 이에겐 현실의 무엇 하나 녹록지 않다. 그러나 작가가 이렇듯 기운차게 스스로를 북돋우며 전기 자전거의 페달을 돌릴 수 있었던 건 이름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름을 재정립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이름에서, 자신을 정의하는 새로운 삶에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혼란 속에서 글과 인생, 언어와 감정의 파고가 휘몰아쳐도, 종종 20년을 들여 가꿨던 정원 딸린 빅토리아풍 집이 떠올라도, 오랜 시간 공들여온 삶을 자기 손으로 어떻게 허물었는지 떠올린 후에도 다시, 먼지가 떠돌아다니는 헛간 안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이 책의 와이프는 모두 이름이 없었다.
--
데버라 리비의 '생활 자서전' 3부작 중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은 두 번째 작 <살림 비용>.
작가가 삶의 비용을 들여 지은 글을 디지털 잉크로 찍어내주어 고맙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을 다진다. 나 역시 나로 존재하기 위해 삶의 비용을 기꺼이 치르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