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은 억제된 감정의 표현이자 놀라운 메아리다. 동시에 충실하고 신중하며 과장된 것이기도 하다. 공기와 접촉하며 사는 생물들은 겉껍질이 있어야 하고, 겉껍질과 속 알맹이가 다르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 철학자들은 이미지가 사물은 아니라고, 말은 감정이 아니라고 화를 내는 듯하다. 말고 이미지는 조개껍질과 같아서, 속에 든 내용물보다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더 잘 띄고 관찰하기 쉬운 자연의 본질적 성분이다. 겉모습을 위해 내용물이, 가면을 위해 얼굴이, 시와 미덕을 위해 열정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연에 다른 무엇을 위해 생겨나는 것이란 없다. 이 모든 단계와 산물이 존재의 순환에 똑같이 작용하는 것이다. - P5
개인이 염두에 둔 목표와 동기가 무엇이든, 그의 관심사는 다른 이들의 행동, 특히 자기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통제하는 데 있다. 통제는 대개 그가 다른 사람들이 상황을 정의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달성된다. 그는 자기가 의도한 대로 다른 이들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는 인상으로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상황 정의definition of the situation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14
우리는 일종의 상호작용적 타협 방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참여자들이 실제 상황에 대해 진정으로 동의한다기보다는 어떤 쟁점이 존중되어야 할지에 대해 잠정적 동의를 함으로써 단일한 상황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협력한다는 뜻이다. 공개적 갈등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합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런 수준의 동의를 ‘잠정적 합의working consensus’라 부를 것이다. - P20
만약 우리가 본래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외부 요소를 내면화해 자기를 단련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좀 더 나은, 이상회된 자신의 면모를 세상에 보여주려는 충동이 다양한 직업과 계급 구성원들의 조직화된 표현 방식에서 발견된다. 계급과 직업 특유의 위선적 어법과 가식적인 태도는, 대부분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바깥세상에서 쉽게 믿긴다는 점에 편승하는 음모의 효과다. - P51
공연은 표현의 일관성을 필요로 한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우리의 자아와 사회화된 우리의 자아 사이에 결정적 불일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기분와 에너지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다양한 충동을 지닌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관객 앞에 등장인물로 나설 때는 충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뒤르켐이 지적한 대로, 우리는 우리의 고차원적 사회활동이 ‘신체적 감각과 의식처럼 신체 상태에 끌려다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는 어김없이 완벽하게 똑같은 공연을 한다고 믿을 수 있는 일종의 정신의 관료화가 필요한 것이다. 산타야나는 사회화 과정이 사람의 모습을 변모시킬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특성을 고착화한다고 지적한다. - P77
우리는 모두 이런저럼 팀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음모자라는 일종의 달콤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팀마다 특정 상황 정의의 안정적 유지에 골몰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실은 감추거나 하찮게 다루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쯤 교활한 음모자 노릇을 실행하는 공연자일 수밖에 없다. - P136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남들에 대한 환상이 이면에는 지위의 상승 이동, 하강 이동, 수평 이동 같은 중요한 사회 이동social mobility의 역학과 좌절감이 도사리고 있다.무대 위의 행동과 무대 뒤의 행동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위를 얻으며 그 지위에 걸맞는 인물이 되더라도 공연자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새로 맞이한 상황에서도 이전 상황에 다를 바 없는, 예상치 못한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도 역시 관객에게 연출하는 공연이 있고, 공연에 필요한 지저분한 말썽거리를 처리하는 연출자는 있기 마련이다. - P168
리츨러Riezler가 지적하듯, 수치스러운 사실은 "남들이 알면 자기 힘으로 기억하고 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사실이 되고 자아 아미지가 되어버린다." ’한때 우리가 어땠는지’ 현재 우리 모습의 이면을 알고 또 앞으로 관객의 반응을 상징해줄 사람 앞에서 우리가 오래된 팀 동료를 대하듯 평온을 유지할 수는 없다. - P201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 권력을 과시하려면 효과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권력의 효과는 권력을 어떻게 극화시키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모범 · 거래 · 처벌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 상황 정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은 별로 쓸모가 없다.) 물리적 강제력처럼 가장 객관적이고 적나라한 권력 형태는 실은 객관적 · 노골적으로 행사되기보다는 오히려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과시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흔하다. 물리적 강제력이 행동 수단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뜻이다. - P302
공연된 자아란, 개인이 그럴듯하게 연출하여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가 연기한 인물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하고 연출된 자아를 개인의 자아로 여기게 만들지만, 자아는 그 개인에게서 비롯되기보다 개인의 활동 무대 전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목격자들의 해석에서 비롯된다. 제대로 꾸민 무대에서 공연을 잘하면 관객은 그 인물을 공연자의 자아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때의 자아는 공연의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공연된 자아란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어갈 운명을 지닌 유기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된 무대에서 실현되는 극적 효과에 속한다. 문제의 핵심이자 결정적 중요성은 연출된 자아 아미지가 신뢰를 받는지 불신을 당하는지에 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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