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기다릴 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 찾아오는데 등이 시려서 옷을 하나 더 껴입으려다 슬그머니 당신의손이 내 등에 닿아 있다 생각하고 옷을 의자에 내려둔다.
- P26

새와 눈이 마주쳐본 적이 있는가? 불면의 밤에 잠시 잠이들었다가 어떤 새와 눈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든 순간 잠이깬다. 내 불면 속의 새여, 너는 누구였는가. 갑자기 모든 인간의 시간이 한꺼번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당신은 새와눈이 마주쳐본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그 경험을 나에게 들려달라. 어땠는지, 그 경험을 들려달라.
- P32

사물의 정연함. 나는 쓸쓸하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받을수 없는 지옥 안에서 랭보를 읽는 것은 아직도 내가 젊다는것을 뜻하지만 쓸쓸해서 이 세상 귀퉁이에 나 혼자만 남은듯한 마음은 시인의 마음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늙어가는 한여자의 마음이다.
- P83

빨래를 하다가 잊어버린 사람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직 그 사람이 날 떠나지 않았네, 그 자리가 그래서 눅눅했네. 그래서 햇살 아래 빨래를 말리면서 그사람 생각이 났구나.
- P186

우리 모두는 실패할 것이라는 악몽에 시달린다. 악몽에 시달리는 시달리지 않든 우리는 실패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실패하는, 실패하는 존재다. 죽음은 모든 실패의 어머니이다. 몸의 실패.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실패의 근원이다.
- P227

사람들이 손을 오므리면 그 속에 어둠이 밀려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다 손을 펴면 어둠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고 손금에만 몇몇, 고여 있다.
- P304

2018년 4월 15
이 시들은 귤 한 알에서 시작되었다. - P30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11-23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씨님, 이 책 어때요?? 아냐아냐,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관심 갖지 말자;;;;;

dollC 2021-11-24 01:26   좋아요 1 | URL
귤 한 알을 삼키지 못한 시인이 마지막까지 놓지못한 치열한 사색의 시작(詩作) 노트예요. 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표지의 유고집이란 단어를 지나치기 힘들었어요. 라로님, 나중에라도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