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현혹하다, 투시하다, 들리다, 휘다, 보내다, 위장하다, 연기하다'라는 7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요. 구사나기 형사와 데이토 대학 물리학과 유가와 교수의 콤비가 돋보이는 추리소설입니다. 처음 구사나기 형사의 이름을 봤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작가님의 전작 '용의자 X의 헌신'에 나온 구사나기 형사와 유가와 교수가 그대로 다시 나온 거였어요. 너무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고, 구사나기 형사가 참 유능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물리학 교수인 유가와가 나온다는 것만 봐도 과학적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한 편 한 편 읽어가면서 수사에도 과학이 필요하고 이런 외부인의 조언도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일반인과 공조하면서 풀어나간다는 점이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유가와 교수는 뛰어난 실력과 겸손함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이런 사례가 많다면 악용될 소지가 있으니까요. 이 책에 나오는 유가와의 대사 중 이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요. '현상을 분석하려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일단은 그 아이디어를 존중해야 합니다'라는 말에 공감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립적인 태도로 수용하고 다각도로 연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학자의 자세인 것 같습니다.
회를 거듭해가면서 저도 탐정의 자세로 '여기서는 누가 범인일까?'를 고민하다가 허를 찔리기도 하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탐문하면서 연관성을 발견하기도 하는 구사나기 형사의 수사를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단편 소설이다 보니 이야기가 빨리 마무리되고 범인은 생각보다 빨리 범죄사실을 인정합니다. 단편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겠지요.
책에는 과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과학 문물들을 접하니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실제로 사용된다면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이런 기술들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면서 사람들 간에 얽힌 일들을 들여다보게 되는데요.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부간 문제, 동료 간의 경쟁과 시기, 사이비 종교의 문제점, 불륜 등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과학으로 푸는 수사라는 설정이 재미있네요. 구사나기 형사와 유가와 교수의 우정도 보기 좋습니다. 이 콤비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