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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몽드 - 아홉 개의 환상기담
민경수 엮음, 신주혜 옮김 / 작품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기담책이라서 그런지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광택이 있는 표지에, 입가에 피 묻힌 채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여자 한 명, 그녀의 어깨를 건드리는 뼈만 남은 손, 십자가, 묘지
그리고 꽃, 보름달. 얼핏 표지를 본다면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의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렇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왜인지 을씨년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이 표지는 '아홉 개의 환상기담'이라는 부제목이 함께 자리를 잡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담이라는 것이 기이한 이야기, 그러니까 우리나라
얘기로 바꿔보자면 '전설의 고향' 비슷하게 되는건데- 솔직히 무서운 이야기일 것 같아서 밤에 읽기가 조금 꺼려졌다. 워낙 무서운 것을 즐겨보지
않는 성격이고, 무서운 부분은 빨리감기 하는 나란 여자는 역시나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조금이라도 무서울 낌새가 보인다면 아예 밤에는 책을
꺼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도 낮에만 읽었다. 해서 다른 책들은 쑥쑥 속도가 나는 반면, 이 책만 읽었던 자리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해 조금
애를 먹었다. (무서운 부분들이 나올때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애를 먹은 기억도 난다.)
책에는 표지에 적힌대로 9가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리고 환상적이라고 하기에는 괴이한 이야기들이라, 괴담이 맞는 것같다는 느낌도 든다. 다 읽어본 결과 역시 밤에 안 읽기 잘했다는 생각!! 제일
끝부분에는 작가 소개가 덧붙여 있는데,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이가 둘, 로빈슨 크루소를 쓴 작가도 있다. 작가들의 나라가
거의 겹치지 않아서(프랑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탈리아) 독특한 느낌이 더 잘살아 난 듯 하다. 아무래도 번역이고 옛날 글들이라 그런지
말투는 현재처럼 자연스럽지가 않았지만 그 정도는 많이 거슬리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죽은 옛
남편과 만나 잠시동안이지만 성찬제를 함께 즐길 수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성찬제'라는 첫번째 이야기와 제목에도 쓰인 아름다웠던
창녀 클라리몽드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신부의 이야기 '클라리몽드' (아마도 가장 길어서 기억에 남는 걸지도)다. 이야기는 화자가 겪은지 얼마
되지 않은 몇개만 빼고는 대체로 어떤이가 전해들은 이야기를 해 주거나 혹은 예전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엔 교훈을 주기도 하고. 기담이라는 특유의 형식이라 그리 장치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아무래도 죽은 이의 이야기를 하는지라
'죽음'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책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겪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해 봤다. 우리 주위에서의
죽음이란 것은 어쩌면 매일 일어나는 것이고, 알아채지 못하는 그 어떤 순간에도 '죽음'이라는 것은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조금 간절히 바라면,
혹은 환상을 꿈꾸면 죽은이가 나타난다거나 혹은 관련된 일을 알려준다거나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