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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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기욤 뮈소의 신간이 출간됐다. 
벌써부터 베스트 셀러에 올라가 있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 




그의 책이 전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그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책은 나도 열심히 읽고는 한다. 이번엔 그동안의 표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책을 받아들게 됐다. 그리고 왜인지 몽환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웬 걸. 이야기는 점점 스릴러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최근의 기욤 뮈소의 이야기들엔 스릴러적 요소가 많이 첨가되던 차였다. 그런데 이번엔 스릴러가 첨가된 것이 아닌, '본격 스릴러 소설'이었다. 




프롤로그는 가볍게 시작했다. 결혼을 3주 앞둔 커플의 오붓한 주말 여행 이야기를 보여 주면서, 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밝히면서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채 3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뒀지만 비밀이 있는 듯한 여자, 그리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줬으면 하는 남자의 말싸움을 시작으로 말이다. 여자는 '당신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될 경우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13쪽) 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한 장의 사진을 남자에게 보여줬고, 그 뒤 남자는 뒤도 안 돌아본 채 펜션을 떠났다. 남자가 다시 되돌아갔을 땐 난장판이 된 펜션과 사라진 여자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고, 휘몰아치는 듯한 프롤로그는 독자에게 굉장히 복잡한 느낌만을 남긴 채 본편으로 넘어갔다.

사진이 어떤 사진이었는지는 여자를 찾기 위해 남자가 마음을 먹은 후에 밝혀진다. '까맣게 탄 시체 3구가 찍힌 사진'이라는 것이 말이다. (이쯤에서 남자의 이름은 라파엘, 사라진 여자의 이름은 안나라는 것을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앞으로는 등장인물이 더 있어서 헷갈리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파엘이 가장 친하게 생각하는 친구는 60대의 은퇴한 경찰 마르크였는데, 그에게 사라진 안나를 찾는 것을 도와달라 부탁을 하면서 소설은 본격 스릴러의 길을 걷게 된다.




라파엘은 알 수 없었던 안나의 과거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마르크와는 같이 또 따로 정보들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안나가 사라진 뒤 첫째날, 안나의 본명이 '클레어 칼라일'이라는 것과 그녀는 희대의 사이코패스인 하인츠 키퍼에게 희생되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것, 현재는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책에는 안나가 사라진 뒤 총 3일의 이야기만이 담겼는데, 읽다보면 한 달 쯤은 지나간 듯 느껴질 정도로 담겨 있는 내용들은 방대하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안나가 클레어 칼라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녀를 곧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했던 내 자신이 꽤나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파엘이 그녀의 과거를 알았다는 것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되게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모든 사건의 실마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안나에게 프랑스에서의 삶을 만들어준 선생님, 하인츠에게서 도망친 클레어 칼라일을 차로 치었던 중령, 클레어 엄마 조이스 칼라일의 자매들, 불탄 시신 3구가 발견된 곳에 10살 무렵 납치됐던 남자, 클레어 사건을 파고들었던 기자, 수연, 몇몇의 형사까지. 라파엘과 마르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사건은 클레어 사건에서 클레어의 엄마 조이스의 사건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건으로 옮겨간다.



"영화 <고스트>에서 보면 여주인공의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벌어집니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현재도 주인공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죠."
"주인공의 운명을 바꾼 사건인데도 정작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기도 하지."
"네, 형사님 말씀대로 과거의 사건이 주인공의 성격, 심리, 내면세계, 행동방식까지 모두 변화시킬 만큼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사건의 전말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어요. 그때, '고스트'의 활약이 펼쳐지면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중략) 클레어 칼라일의 '고스트'를 찾아야 해요." (138-139쪽)

책을 읽다보니 표시해 뒀던 이야기인데, 왜인지 이 대화가 이야기의 중요 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저 부분을 읽을 당시 내가 제대로 표시해 뒀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 알 수 없는 '고스트'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것일까. 혹시 이 서평을 먼저 읽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고스트'를 추측해 나가면서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 부분을 쉽게 넘기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스트를 찾기 위해 노력했떤 라파엘과 마르크에게도 시련이 닥치게 되고, 위험도 닥치게 된다. 또한 예상 가능한 혹은 굉장히 생각하지 못한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과연 클레어를 찾아내 그녀의 뱃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라파엘의 아이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많이 접해봤던, 익숙한 패턴들의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다만, 작가 기욤뮈소가 엮어내는 이야기는 점점 속도가 붙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다음 상황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의 다음 스릴러가 기대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자네도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거야. (185쪽)

마르크가 하인츠에게 납치되었던 당시의 남자아이(이제는 성인이 된)를 만나 건네줬던 조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남자아이에게는 순간의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이후에야 알 수 있을테니,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지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리 있나. 특히나 자신의 아이를 잃은 부모는 그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법을 터득할리 없다.

세상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않은 사람들로 나뉘지. 부모가 되면 훨씬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무한히 약한 존재가 되기도 해. 자식을 잃은 슬픔과 좌절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거야. 평생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고통이 주어지니까. (411쪽)

<브루클린의 소녀>는 우리에게 묻는 듯 하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그 유한한 시간들이, 자식을 잃은 누군가의 부모들이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들과 같을 수 있겠느냐고.  



덧. 한국인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대한민국에 갖고 있는 호감은 독자들만큼이나 커다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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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영어회화 : 디즈니 OST - 팝송으로 배우는 스크린 영어회화 시리즈
라이언 강 / 길벗이지톡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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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디즈니를 좋아하게 됐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좋아한 계기랄 것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삶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첫번째 애니메이션은 엄마가 보여준 <백설공주>였고 (무려 1930년 작품), <알라딘>, <인어공주>, <신데렐라> 등 공주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라이온 킹>이나 <101마리 강아지>, 최근 <빅히어로>와 <주토피아>까지 디즈니에서 본 영화보다 안 본 영화들을 찾는 게 빠를 정도니까 말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낭만적인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에 끌려 좋아했던 시절을 지나, 영화 속에 숨겨진 1cm를 찾아내고 싶어하는 현재까지, 디즈니는 여전히 내게는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디즈니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뭐니뭐니 해도 OST다. 최근에 와서는 뮤지컬적 느낌이 줄어드는 영화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기록했던 <겨울왕국>만 해도 캐릭터들의 속마음이나 이야기들이 뮤지컬적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겨울왕국> 이전엔 <라푼젤>이 그랬고, <뮬란>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이 그랬다. <백설공주>를 비롯한 초창기 영화들의 성악(소프라노들이 부르는 듯한 느낌의 곡) 스타일에서 현재의 뮤지컬 스타일로 변화해 나가면서 음악들이 세련돼졌고, 영화는 끝났지만 우리들 곁에는 주옥같은 노래들이 남았다.





그리고 여기, 디즈니의 OST를 통해 영어회화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팝송으로 배우는 스크린 영어회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디즈니의 OST들 중 좋은 곡들을 손에 꼽으라고 한다면 열 명의 손가락이 필요해도 모자라겠지만, 이 책에는 우리에게 친숙하거나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만한 OST 총 30곡이 소개되어 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Let it go' 열풍의 주인공 <겨울왕국>이다. 그 유명한 'Let it go'와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부터 올라프의 솔로곡 'In summer'까지 총 6곡이 소개되어 있다.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와 <라푼젤>의 'I see the light'과 'When will my life begin', <라이온 킹>의 'Hakuna matata'과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OST들이 많이 담겼다. 여기에 <미녀와 야수>, <뮬란>, <헤라클레스>, <포카혼타스>, <노틀담의 꼽추>, <피노키오>, <백설공주>까지. 13개의 영화 속 30곡의 OST들이 담겨 있다. 



아쉽게도 이 책엔 OST들이 수록된 CD가 따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사 해석이 되어 있는 '노래 듣기' 파트의 윗쪽에 보면 QR 코드가 담겨 있어 간단하게 들어볼 수 있다.(대체로 모든 링크들은 영화 속 한 장면들이었다. 또한 따로 검색을 하거나 찾아들어도 무방하다.) '노래 듣기'는 귀로 듣고 해석을 자막으로만 봤던 영화와는 달리 1곡을 여러번 들으며 그 의미들을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깊숙하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는 단어들이나 어휘들은 아래쪽 단어장에 따로 정리되어 있으니 궁금하면 찾아서 보면 될 것이고, 뒷페이지엔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회화들을 따로 추려 세세한 설명까지 덧붙이기 때문에 가사들이 실제로 쉽게 다가온다. 

나같은 경우엔 처음엔 노래를 1번 들을 땐 영화의 다른 부분들까지 회상하느라 책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2~3번 들으면서 영어 문장들과 해석들을 번갈아보면서 봤다. 4번째부터는 해석들보다는 영어문장이 있는 쪽으로만 눈길을 두면서 속으로 따라불러봤고, 그렇게 여러번 따라 들으면서 문장이 입에 붙을 때 쯤엔 문장을 보지 않고 노래를 들어보기도 했다. 나는 책에 소개된 30곡 중 <노틀담의 꼽추>를 제외한 모든 곡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노래를 여러번 듣기가 더 수월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내가 디즈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또 증명이 된다.)





책 속에서 내가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가사 음미하기' 부분의 '발음' 부분이다. 중학교때 영어 선생님이 아이들의 발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우스개 소리로 '미역'이라고 발음하면 'milk'로 들린다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이런 것처럼 책에는 발음을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다른 부분들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steps in을 발음할 때는 '스텝스인'이 아닌 '스땝씬'이라고 해 주시고, sees you는 '씨스유'가 아닌 '씨-쥬'라고 해 주세요. (273쪽) 
mile, will, while을 발음할 때 혀를 윗니 쪽으로 밀면서 끝부분의 l 발음을 하면 '마일', '윌', '와일'이 아닌 '마열', '위얼', '와이얼' 이런 식으로 들릴 거예요. 그것이 좋은 발음이랍니다. (218쪽) 

이런 식이다. 굉장히 흥미로웠고, 글을 읽은 뒤 예문 mp3를 들었을 때 들리는 발음이 글과 비슷해서 더욱 흥미로웠고, 가르쳐 준대로 따라 발음했는데 mp3와 비슷한 소리가 나서 더 흥미로웠다. 읽으면서 이렇게 '모든' 단어들의 발음 소리를 코치해주는 책은 어디 없나 찾고 싶어졌다나 뭐라나.





30곡 중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곡은 <피노키오>의 'When you wish upon a star'였는데, 디즈니의 모든 영화 속 오프닝에 쓰이는 곡이기 때문이었다. 늘 들으면서 이 곡은 무슨 곡이었지? 어디서 나왔지? 생각하면서 들었던 그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니. 요즘에도 즐겨 하고 있는 디즈니 게임 속 배경 음악도 이 음악이라 발견하고 가장 기분 좋았던 곡이기도 하다. 해석된 내용이 활기차고 희망차서 더 좋았던 것도 있고. '당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이루어 질 거예요.'라는 곡의 주제가 디즈니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고, 이렇게나 희망찬 노래의 가사를 내가 이제 알게 됐다는 것도 기분이 좋아졌다.

위 이미지처럼 OST들은 어떤 장면에서 쓰였는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간다. OST의 뒷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와 (어떤 상을 받았다거나 어떻게 쓰였다거나 등등) 영화의 여러 장면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면 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을 듯 싶다.

책을 통해서 영어회화가 엄청나게 많이 늘었어요!라고 단번에 말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공부를 위한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길벗 시리즈임에는 틀림없다. 더불어서, 적어도 내게는 디즈니와의 많은 추억들을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 책이라 많이 애정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꽤나 공들여서 찾은 트랙리스트들을 mp3에 넣으며 랜덤 플레이에서 자주 디즈니의 OST들이 들리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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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
전희연 지음, 이동규 감수 / 건강매니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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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비만과 비만의 차이점은? 

고도비만인 사람과 비만인 사람이 같은 처방을 받는다면 그 결과는 같을 수 있을까?


사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세상에 나와 있는 '살을 빼는 방법'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해보기엔 나는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 방법들에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릴 수도 없는 나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러하듯 일종의 '다이어터'다.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진다더라, 이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살이 빠졌다더라. 아침이든 밤이든 정보를 준다는 프로그램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멘트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누가 살을 뺐다더라 하는 정보들 말고, 고도비만과 비만의 차이점을 세세히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체육 관련, 의학 관련 등 공부하면서 배우게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고도비만과 비만은 같은 처방이 아닌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일반인은?


추천사의 많은 의사들의 말처럼 더이상 비만은 단순한 에너지 불균형의 문제가 아니다. 고도비만인 사람들에게는 비만이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종의 질병이며, 비만과 함께 동반되는 여타 다른 질병들(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성인병)을 개선하기 위한 치료 목적으로써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식은 '비만인=게으른 사람'이라는 색안경을 장착한 채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몸 상태가 고도비만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도 없는데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필요한 정보인지조차도 선별하지 못하고 있으니, 인식 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도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 <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는 자극적인 책의 제목만큼이나 고도비만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려준다. 고도비만에 대한 잘못된 인식, 그로인해 잘못 처방되고 있는 고도비만의 치료법들까지. 거기에 고도비만을 탈출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적어도 '고도비만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는 고도비만에 대한 정의부터 새로 한다. 


평균보다 체중이 조금 더 나가는 과체중과는 달리 고도비만은 암과 같이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질병입니다. 고도비만은 이미 지방세포자체가 심각하게 변성되어 있어 일반적인 노력만으로는 정상으로 복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지방의 흡수와 분해 식욕과 연관된 신체의 호르몬 체계 또한 모두 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고도비만은 일반적인 섭취 칼로리량의 제한이나 운동량의 증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69-70쪽)


이와 더불어 한국형 비만은 서구형 비만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서양에서 효과가 있다는 약들을 그대로 한국형 비만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해외의 유명 다이어트 프로그램들의 이야기도 가져와 요요없이 감량한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출연자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과체중과 고도비만을 나누는 척도를 알려주고, 비만 관련 치료를 하는 의사들의 선입견 같은 팩트들도 전해준다. 간과하기 쉬운 고도비만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도 살짝이지만 다루고 넘어간다. 책의 대부분은 고도비만 탈출 사례들이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 팩트들을 간간하게 집어 넣어서 사례들만 나열하는 것과는 다른 '정보' 또한 전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것은, 책에 나온 '고도비만의 해법'이라는 것은 식이요법과 운동이라는 틀에 박힌 '왕도'가 아닌, 의학적 시술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맨 마지막 장은 고도비만인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는 운동들이 소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왜 고도비만 탈출을 위해서는 의학적 시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도비만은 일회성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성인병 질환들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 약을 먹거나 완전히 제약된 식이요법을 통한 다이어트를 한다해도 반드시 요요가 온다는 것. 한국인의 고도비만은 잦은 다이어트와 요요로 인한 체내 성분 변화로 인한 것이라는 것. 꼬여있는 성분들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급격하게 살을 빼는 것보다는 천천히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으로 살을 뺄 수 있는 시술법이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것.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다. 고도비만이 아닌 사람들이 본다면 '뭐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TV에서 이야기해주지 않고 병원에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고도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시술들의 종류, 그 시술의 위험성과 적합성, 성공사례 등을 통한 이야기들이 아주 자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독자에게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비만 관련 수술 중 대표적인 '지방흡입술'의 경우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시술이라는 것을 전제하기도 해서 다른 시술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 (이미 지방흡입에 대한 것들까지 검색을 하는 정도라면 과체중 그 이상은 될 테니 말이다.) 





<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고도비만이 더이상 게으름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인식하게 될 것이다. 고도비만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은 게으름의 산물이었을지는 몰라도, 고도비만에서 체중을 끌어내리는 것은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고도비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고도비만인들은 절대로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저자. 시술을 선택하는 것이 더이상 '쉽게 살을 빼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희미해지고, 고도비만 또한 죽을 때까지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라는 인식이 뿌리 박힐 때까지 앞으로 얼만큼의 세월이 더 걸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고도비만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를 알고 그를 실천해나간다면, 고도비만에서 탈출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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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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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이라는 한 단어, 덩그러니 환하게 불을 밝힌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는 표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진 -눈을 떠보니 온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채 '기적적으로' 깨어난- 이야기가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홀>은 '오기'라는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이다. 인은 증발한 채 덜렁 과부터 등장해 당황스럽긴 하지만, 찬찬히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그럴 작정을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28쪽) 을 잘 기억해 둬야만 한다.

 

일단, 주인공 오기는 아내와 함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강원도의 어느 여행지로 가는 비 내리는 심야의 고속도로, 앞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추락한 교통사고로 오기는 '스스로 신체 통제권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40대 후반의 안정적인 '정교수' 라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던 그의 인생인 완전히 뒤바뀌었다. 간병인이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돌려줘야 했으며, 유동식을 호스로 몸 안에 밀어 넣으며, '그저 살아있기만 할' 뿐이다. 주인공은 깨어나자마자 자신만 살아남았음을 괴로워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았던, 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모든지 하기를 동의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혼자 살아남았으니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공 부부 둘 사이의 문제는 전혀 없었던 거라 생각했다. 오기의 기억 속 이야기로만 보자면 둘은 대학원생활을 하던 때 서로 사랑을 했고, 각자 원하는 진로를 따라 길이 갈라졌지만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 조금은 불편해도 참고, 결혼 생활 중에도 많은 결정을 아내가 하도록 양보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이 둘에게 문제가 있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기가 기억하는 것은 기억의 전부가 아닌 파편이었다. 아내와 함께 지냈던 20년 간의 시간들 중 극히 일부의 좋았던 기억들. 오기는 사고로 인해 뇌에도 손상을 입었고 그렇기에 기억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기에게는 여러 기억들이 돌아왔다. 특히나 부부가 심혈을 기울여 사들였던 집(타운 하우스)에 돌아와서는 더 많은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죽은 아내의 어머니, 장모와의 기묘한 동거까지. 이야기는 점점 숨이 꽉 막히는 상자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듯 했다.

 

장모는 결혼생활 내내 오기와는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딱히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불편함이었던지라 살면서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는 동아줄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장모의 행동이 좀 수상하다. 자신을 돌봐주러 오는 입주 간병인, 물리치료사, 자신의 옛 동료들이 입을 모아 '집 앞 마당에 큰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위, 큰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장모, 사위와 함께 여행가다 죽은 딸. 이런 관계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란 아주 심플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기의 입장에서만 묘사되는 행동들은 제약이 많다. 병원과 집. 공간은 이 둘 밖에 등장하지 않고, 회상씬들에 '공간'은 중요하게 차지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들만 오기의 머릿속에서 회상될 뿐이다. 제약이 많은 주인공의 상황은 독자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끔하고, 실제로 위협을 당하지 않음에도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게끔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의 회상장면이 많아질수록 더없이 좋은 사이처럼 보였던 주인공 부부의 모습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파국까지.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탄력을 받아 속도감이 붙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술술 읽히는 데 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감은 여전하니, 다음에 어떤 내용이 등장할지 갈수록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야죠. 죽어버렸으니까요. 다 죽었지요, 전부 다…… 다 죽었어요. 기껏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그만 어이없게 죽어버렸어요."

잠시 쉬었다가 장모가 말을 이었다.

"살려야지요, 내가. 내가 다 살려야죠."

(중략)

"연못이요? 정원에요?"

"산 걸 풀어놔야죠. 살아서 꼬리도 치고 숨도 쉬고 헤엄도 치고 그러는 걸 둬야지요."

"잉어 같은 거요? 근사하겠네요."

"산 게 근사합니까? 추접하죠. 악착같이 그 좁은 구멍에서 살려고 해댈 텐데…" (149쪽)

 

내가 불안감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부터다. 묘하게 어긋한 것 같은 장모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을 찰라, 집에 병문안을 온 동료들과 장모가 나눈 대화에서 그 '연못'이라는 것에 들어갈 '잉어 같은 거'는 잉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77쪽) 라는 구절이 담긴 시라든가, '인간이 어떻게 속물이 되는지, 그 관찰기라고도 할 수 있어'(182쪽) 라고 이야기하는 회상 장면 속 아내의 말이라든가. 불안한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양 모든 것을 털어놓는 오기의 모습 속에서, 처음에 언급했던 구절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라는 구절은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한 순간에 뒤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고. 아마 작가가 의도한 제목 <홀>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그동안 파두었던 공간들이고, 그 공간들이 모여 커다란 홀을 만들었을 때 자신이 만든 그 홀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열린 결말이다. 오기가 어찌되었는지까지는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 소설이지만 생각해 볼 점은 많은 것 같다. 사십대라는 나이에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죄들이라는 것, 그리고 <홀>이라는 제목 자체와 집 앞 마당의 '홀'의 상관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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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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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에의 심야상담소>라는 제목이 어쩐지 친근하게도 느껴지는 이 책은, 단편 7개로 구성된 책이다. 저자는 현재 일본에서 미스터리 작가로 가장 핫한 작가이기에 책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듯 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표지도 어찌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스르륵 읽어가면서,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장르적 특성 답지 않게 무겁지 않아 읽기 수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살인이나 사건이 일어나고 그를 해결하는 셜록홈즈를 비롯한 여타 탐정수사물, 첩보 액션이 가미된 히어로물, 뒤를 절대 돌아보면 안 될것 같은 스릴러물 등을 떠올리지 않나. 살인 사건이 당연시되고,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이 온 힘을 다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사건을 풀어내는 그런 이야기 구조 말이다. 하지만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다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소소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라는 제목에 맞게, 장소는 당연히 나가에의 원룸이다. 표지에 보이는 방은 아마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가에의 방인 듯 하다. 연보라색 띠지를 벗기면 가려진 이미지를 마저 볼 수 있는데, 쇼파 앞 식탁(테이블)에 음식이 담겨 있는 접시와 술잔, 젓가락, 앞접시 등이 놓여 있다.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원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 표지 이야기를 하냐면 7개의 단편 모두 이 '술상' 주변에서 '말'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본 등장인물은 유아사 나쓰미(화자), 구마이 나기사, 나가에 다키아키 총 3명. 여기에 단편마다 게스트가 한 명씩 등장하니 대체로 이 술상에는 4명이 둘러앉아 밤을 즐긴다.

나가에, 구마이, 그리고 나는 대학 시절 술친구였다. 졸업 후에도 셋 다 도쿄에서 일하게 되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술자리를 갖곤 했다. 그런데 매번 같은 멤버만 모이다 보니 심심해져서 몇 년 전부터는 친구를 모임에 데리고 오기로 했다. 그 친구들과 새로운 화제로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해서 어느 결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10쪽)

 

대학시절 술친구 3명은 하나의 음식(안주)를 정해 놓는다. 배 터질때까지 먹어보자, 혹은 이 음식을 질릴때까지 먹어보자 뭐 이런 느낌으로 잔뜩, 가득. 그리고 그에 맞는 술을 준비한다. (술에 대해 여러 지식이 있는 구마이가 선택과 추천을 도맡는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얘기를 하다보면 그에 관한 이야기(그러니까 안주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게스트들은 음식 혹은 술과 관련된 경험들을 꺼내놓게 되고 그러면서 나가에 원룸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바로 이때! 미스터리 추리물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바로 '나가에의 추리'다. 나가에는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게스트의 행동을 보면서 일반인들은 그냥 넘겨버릴 이야기들을 짚어낸다. 그리고 이때부터 추리물의 느낌이 약간 난다.

 

나가에는 '너무 똑똑한 머리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81쪽)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나쓰미는 나가에의 똑똑함은 절대로 연애 상대로 보지 않는 결정적 이유라고 언급해 두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모두는 나가에의 앞에서 누군가가 숨겨뒀던, 혹은 자신이 숨겼던 것들을 들키게 된다. 자신도 원치 않게. 그렇게 밝혀진 감정들은 대개 사소한 것들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겼든,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겼든, 일종의 '숨겨진 마음'에 대한 것들. 그냥 지나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지만 굳이 짚어내는 나가에로 인해 알게 된 진심들인 것이다.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긴 것을 인정하고, 그 술자리는 외려 마음을 제대로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마음을 알게 된 커플이 6커플. 심지어 여기에는 화자 나쓰미 부부, 그 당시에는 커플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게스트들이 이야기를 하고 나가에가 그 이야기들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찾는 패턴이 계속되다보니 아무래도 패턴이 읽히는 감이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궁금하다. 이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 속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까, 나가에의 입이 떼지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술을 아주 즐기지는 않기에 책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술자리'라면 늘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 그 친구들이 엄선해서 데려오는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좋은 음식 좋은 술.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한 마디로 힐링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루하루 힘들게 치이면서 삶을 살아낸 스트레스를 하하호호 웃으면서 씻어낼 수 있는 공간. 감춰진 마음을 찾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누구든 숨기고 싶은 마음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에 의문점이 든다면 나가에에게 찾아가보길 권한다. 그는 그저 행동의 나열만으로 묘한 부분을 찾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게스트가 상처받을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으니 주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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