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월그컵 프로젝트를 한다며 바람빠진 축구공을 들고 나선 아들에게 뭔가 잘 보이고 싶었다. 신문에 난 국가대표선수들의 멋진 포즈를 오려붙이고 우리나라 경기 일정도 붙이고 '오 - 필승코리아' 뭐 이런 말도 쓰고 해서 2절지 크기의 게시판을 선물했다. 그 날 이후 나도 아들도 만나기만 하면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 대표선수 이름부터 월드컵 참가국까지 모조리 외운 아들은 서서히 코너킥, 핸드링 등의 축구용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전 때까지만 해도 경기를 보는 것보다 잠을 선택헸던 아들은 시간이 갈 수록 축구에 빠져들었다. 나이지라아 전을 새벽에 깨어 보더니 , 우르과이와 독일 전을 보고 오늘 새벽에는 누나와 함께 연장전까지 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을 보았다. 사실 낮에도 입만 열면 축구였다.
"네덜란드가 이길것 같지요?"
"글쎄, 왜 그럴 것 같은데 -"
"브라질을 이겼잖아요."
나와 남편은 잤다. 아이들의 함성과 한숨을 들었다. "뭐냐? 쟤들." "그러게?" 네덜란드가 이길 거라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으나 아들에겐 어떤 아쉬움도 없었다.
시상식을 앞두고 아들이 방에 들어왔다.
"스페인이 우승했어요. 시상식 안 보실래요?"
딸은 "엄마, 네덜란드 볼이 골대에 또 맞았어요." 라며 관전의 즐거움을 밝혔다.
월드컵 덕에 아들의 꿈은 축구선수가 됐다. (그 이전까지는 소방차 운전수였댜.) 2002년 월드컵 이후에 폭발적으로 늘었던 축구꿈나무들, 2010년이 키우는 축구 꿈나무가 된 아들은 아침마다 축구연습을 한다. 주말에 가는 축구교실을 일주일 내내 기다리고, 월드컵 경기를 기다리던 아들에게 물었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살까? 월드컵이 끝났으니?"
"4년 뒤에 또 해요."
식탁 위에 깔려 있는 지도에서 스페인을 찾고 다시 브라질을 찾으며 방실 웃는다.
월드컵은 아들에게 4년을 기다릴 그 무엇을 선물하고 간 셈이다. 월드컵에도 여러 속 내가 있겠지 뭐든 그렇듯 상술도 있겠고, 술책도 있겠지 자본이 들어가는 마당에 무엇인들 맑고 깨끗할까? 하지만 일곱살배기 아들에게 월드컵은 세계를 알려주었고, 열정과 땀을 알려주었다. 다시 바뀔 꿈일지라도 잠시 사랑할 그 무엇을 가르쳐주었다. 축구를 보려고 새벽에 일어나는 아들에게 브라보. 엄마가 갖지 못 한 열정을 가진 아들에게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