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펑펑 울었다기에 '그래 보자.'고 결정한 영화였다. 조카는 이제 중3이고,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가진고 있던 사전 지식에 비추어 볼 때 그 애가 울었다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평범하게 늙은 그 분들의 삶은 내 삶이었고, 나에게도 훅 불어올 늙음과 죽음이었다.
그리고 용감하다고 할만큼 꿋꿋한 사랑이 있는 영화였다.
근데 내 조카가 울 영환가?
그 아이는 왜 이 영화를 보고 울었을까?
아직 그 애는 나이 듦에 대한 훈련이 전혀 없어서가 아닐까? 모르는 것은 몹시 두렵기 마련이니까 내 옆에 떡 버티고 있던 내 부모가 늙고 병들고 죽어갈 것을 생각하면 울 만도 하다. 그건 내 부모의 이야기니까 근데 영화 속 인물에 투영되는 얼굴이 내 부모가 아니라 내 얼굴일 때 더이상 울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난 그래서 그 영화를 보며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일도 아니었다. 기분 좋게 보았다. 편안하게 - 언젠가 내게도 올 늙음과 그때 남편이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운 건 역시 치매다. 나이들어 다른 데 병이 들어도 치매만은 안 걸렸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건 좀 끔찍하다.
이 영화의 명언은 이게 아닐까? 우리는 다시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가족이었는데 -
다시 부부가 될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나와 함께 늙어가 이 사람과 나의 인연은 얼마가 큰 거이었을까? 생각해 보고, 큰 인연의 주인공에게 더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때아닌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