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새해 인사를 써 놨길래.

벌써 6월인데 하면서 촘촘히 보니

으악 2011년 새해 인사다.

그새 1년 6개월이 지났고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없는

설렘을 상실한 삶을 연속적으로 산다.

 

달라진게 있다면

내년부터 3년의 휴가를 갖기로 했다는 것.

누가 주는 건 아니지만

7년마다 가져야 하는 안식년을 안쓰고 21년을 일했으니

3년은 쉬어야 공평하다는 생각.

 

만약 내가 평균수명을 산다면 이 3년을 보약 삼아 다 살아보고

만약 평균 수명을 살지 못한다면 놀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여 3년 동안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놀고 싶은 만큼 놀아 볼 예정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jo 2012-07-13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 글 자주 올리세요.. ㅎ.ㅎ
 

조카가 펑펑 울었다기에 '그래 보자.'고 결정한 영화였다. 조카는 이제 중3이고, 영화를 보기 전에 내가 가진고 있던 사전 지식에 비추어 볼 때 그 애가 울었다는 것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평범하게 늙은 그 분들의 삶은 내 삶이었고, 나에게도 훅 불어올 늙음과 죽음이었다.  

그리고 용감하다고 할만큼 꿋꿋한 사랑이 있는 영화였다.  

근데 내 조카가 울 영환가?  

그 아이는 왜 이 영화를 보고 울었을까? 

아직 그 애는 나이 듦에 대한 훈련이 전혀 없어서가 아닐까? 모르는 것은 몹시 두렵기 마련이니까 내 옆에 떡 버티고 있던 내 부모가 늙고 병들고 죽어갈 것을 생각하면  울 만도 하다. 그건 내 부모의 이야기니까 근데 영화 속 인물에 투영되는 얼굴이 내 부모가 아니라 내 얼굴일 때 더이상 울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난 그래서 그 영화를 보며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일도 아니었다. 기분 좋게 보았다. 편안하게 - 언젠가 내게도 올 늙음과 그때 남편이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려운 건 역시 치매다. 나이들어 다른 데 병이 들어도 치매만은 안 걸렸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건 좀 끔찍하다.  

이 영화의 명언은 이게 아닐까? 우리는 다시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가족이었는데 - 

다시 부부가 될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나와 함께 늙어가 이 사람과 나의 인연은 얼마가 큰 거이었을까? 생각해 보고, 큰 인연의 주인공에게 더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때아닌 다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도대체 시간은 다 어디로 가는 건지- 

17일은 <만추>가 개봉한 날이고, 난 그날 조조로 이 영화를 봤다. '만추'가 좋아서 그랬다.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인가 이 영화에서 만추란 실로 만추였다. 그후 난 만추가 좋다. 우울하고 그윽하며 어디선가 사랑이 시작되고야 말 듯한 느낌이 '만추'에선 느껴진다. 

노랗고, 빨간 단풍은 없었으나 우울하고 그윽하며 어디선가 사랑이 시작될 것 같기는 마찬가지인 뿌연 안개 속의 <만추>는 좋았다. 저녁 노을 빛이 가득한 마지막 장면은 기다림의 끝이 만남이 아닐 것을 예고함에도 따뜻했고, 그 빛이 영락없이 날이 저무는 빛이기에 '만추'와 딱 들어맞는다. 웃으면서도 크게 웃을 수 없고, 슬프다 해도 울 수 없는 그 애매함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영화 <만추>는 소란하고 강한 것에 길들어 버린 우리를 천천히 조용히 여과시키기까지 하는 듯  

<만추> 어때요?  

난 좋았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명탐정에 확 끌린 이유? 흥행 1위라고 해서다. 배우 김명민을 좋아해서 본 건 아니다. 김명민의 전작 영화들을 나는 보지 않았으니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완전히 반한 배우이지만 그렇다고 배우 찾아 영화를 볼 열성이 내겐 없다. 하지만 영화 내내 왠지 의로울 듯한 그 배우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행복하더라 후훗. 

이 영화에 대해 말하라면 - 아 어설픔  

뭔가 잘 짜여지지 않은 듯한 느낌. 오달수가 한객주라니 반전 치고는 맹랑하다. 암시래야 임판서의 "객주 놈" 이라는 대사 정도 밖에 없었다. 그 정도의 암시로는 뒷 골이 찌릿 해 지는 반전의 묘미를 즐기기가 어렵다.  

천주학과의 연관. 왜 천주학을 끌어들이고 싶었을까? 정조의 시대여서? 개인적으로 나야 기독교 신자니까 천주학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아름다운 정신으로 표현된 것에 무한 감사하지만 꼭 그 설정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또 김명민의 '저도 하지 못하던 일을 연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먼저 하셨군요.'라던 그 진지함은 천주학을 믿는 성도의 생각이었던데 반해  영화 뒷 부분에서 그저 그냥 세례를 받았다는 식으로 처리 되는 것은 잘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임판서가 아씨를 죽이려 한 것은 그녀가 천주학을 믿어서가 아니라 돈세탁의 열쇠를 갖고 있어서 이기 때문이다.  

그저 재밌게는 봤으나 뭔가 엉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영화로부터 가르침을 입어야 한다면 '욕심부리지 마','더불어 잘 살아야 진짜 행복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설맞이 대목을 염두해 둔 탓인지 이른바 거물 감독들의 영화가 개봉했고, 대중 영화만을 볼 수밖에 없는 나는 '평양성'을 봤다. '황산벌'을 참 재미나게 본 기억이 있기에 이 영화는 애초에 볼 계획이었다. '황산벌'이 준 감동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계백의 가족들이 장열하게 죽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반짝. 또 다른 하나는 전쟁에서 백성들은 오직 개죽음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번쩍.  

설 명정을 맞아 가족들과 우루루 영화관에 갔다. 총 14명이 함께 갔고, 이번에는 불광 CGV가 아니라 춘천CGV에서 봤다. 남편과 기타 아주버님들은 영화관을 여관쯤으로 착각하신 듯, 아주 푹 주무셨다. 아이들은 제법 본 듯하지만 영황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약간 지루함을 느끼긴 했어도 워낙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세뇌된 내 뇌는 당나라를 엿멕이는 듯한 설정에 내심 속 시원했다. 그럼에도영화가 내게 가르친 것은 어느 전쟁이든 백성들은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황산벌'의 번쩍임이 그대로 있다. 첫 장면에서 백성들을 왕 앞을 줄줄지나가는 작은 물체 정도로 표현한 것이 이 영화 전체를 암시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왕은 작은 인형들을 바라보 듯이 줄줄, 졸졸 전쟁터로 백성들을 몰아가지만 백성들에겐 그 삶이 전부인 것을. 쯧쯔 그리하여 우리는 신라도 고구려도 백제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어느 산골 깊은 곳에 가서 살아야 주체로서의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지루함 나 역시 살짝 졸기는 했으나 이것 저것 따지고 보면 인생의 진정성을 생각하게 한다는 미덕을 갖춘 영화다. 기발한 전술 역시 킥킥 웃음을 준다. 벌을 이용한 전쟁 진짜 멋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