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소망 자끄 엘륄 총서 4
자크 엘륄 지음, 이상민 옮김 / 대장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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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좌파와 우파가 있다. 좌파는 일반적으로 위험하게 여겨진다. 좌파는 이상만을 이야기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고발하기에 좌파는 늘 위험한 대상으로 인식된다. 엘륄은 말하자면 좌파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잊혀진 소망”은 엘륄의 신학의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소위 좌파신학자로서)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아주 불온한 서적으로 비쳐줄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항한다든지, 이 세상은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표현은 ‘존재함의 신학’에 익숙한, 익숙하다못해 푹빠져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단적인 표현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륄의 외치는 소망의 신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맹렬한 외침이다. 사실은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없이 너무나 잘 살고 있다. 이것은 처절한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시해 버리는 성경의 선언과 실제 삶의 괴리에서 오는 극단적인 딜레마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부르짖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응당 주셔야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것의 부재이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대해 소망한다. 엘륄은 이것이 바로 우상 숭배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을 원하기를 소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그 뼈저린 단절이 우리를 소망으로 이끈다. 엘륄이 말하는 소망은 바로 ‘맹렬하게 하나님만을 추구함’이다. ‘약속의 신학’이 위험성은 ‘약속’이 ‘실현’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륄은 약속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엘륄의 소망을 보면서 요나의 기도가 생각났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소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의 풍요로움 속에 안주하길 원하시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내버려 두신다면 그것은 가장 큰 하나님의 심판이요 저주이다. 우리는 현실의 풍요로움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번역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역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엘륄의 원의를 전달하고자 했을 법하지만, 지나친 문자적인 번역으로 인해 의미 전달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엘륄의 의도를 파악해, 문자에 얽매이기 보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과감한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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