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양장)
파커 팔머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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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의미에서 저자의 지식에 대한 문제 인식은 실존주의자들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유럽에 지배하던 사상은 이성주의였다. 사람들은 인간 이성의 가능성에 열렬히 환호했고, 이성의 계발은 인류를 유토피아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계 양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이런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났다. 덕분에 유럽은 실존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저자의 문제인식은 실존주의적인 입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지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실존주의와 공통분모가 있다. 팔머는 보다 근본적으로 지식이 가지는 폭력에 주의하고 있는데,  지식은 하나의 작의적 과정이고 문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포스트모던적인 접근과 유사하긴 하지만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기도 하다.

 

팔머는 지식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믿음은 잘못디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식은 인간 영혼 내부의 열정에서 시작되기때문에, 만약 그 영혼 내부의 동기가잘못되었다면 결과도 필연적으로 잘못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가 이토록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가 지식의 영성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바른 동기로 지식을 취득하고 지식이 전수되어질 때에도 올바른 동기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번역자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저자의 의도를 바르게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식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 지식의 실패는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우리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 사랑이 거하도록 하지 못한것에서 기인한,  말하자면 앎 그 자체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식은 관계성에 근거한 지식이다. 그는 이것을 기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 만물에 대한 사랑과 친밀한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을 지향하는 지식이 참된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지식의 가르침과 배움의 모델로서 수도원과 초대 교회의 광야 구도자를 들고 있다. 여기에 조금은 염려스러운 신비주의적인 형태가 엿보인다. 저자는 동양의 신비주의, 동양의 구도적인 자세에 대해서 너무나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실 그는 이것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조금도 모르는 듯하다. 아마 서양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방법론이 가지는 유익과 장점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양적 신비주의에 익숙한 내가 보기에는 조금은 위험하기 때문에 한 번 걸러줄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탁월한 점은 지식을 인격과 결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우리와 객관적이고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인격과 인격간의 상호 대화와 상호 관계이다.

 

서구 사회는 바로 이 점에서 크나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서구 사회는 진리를 나와 결부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저쪽 바깥에 있는 실재에만 관심을 두게 함으로 자아를 고립시키고 공동체와도 격리시켰다.

 

저자의 지식에 대한 견해는 통찰력있고 탁월하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실천이다. 그럼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저자는 그저 원론적인 방법론만을 제시한다. 물질주의와 객관주의에 찌들려서,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나 다 생소한 이 방법론을 교실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공교육이 도입되기 전에는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바 도제수업은 바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그런류의 가르침이 행해질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관계를 맺으며 통합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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