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1 (보급판 문고본)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근영 옮김 / 이른아침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런 류의 책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한편에서는 용감하고 한편에서는 무모하고,  한편에서는 치열함이 묻어나고 한편에서는 가득한 어리석음이 묻어난다. 도대체 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쓰는 걸까?

먼저, 독자들은 이런 책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책은 옛날 어렸을 적 약장수의 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은 무지하다. 약장수는 화려한 언변과 알듯 모를듯한 전문용어들을 써가며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한다.  이런 책이 바로 그러하다.

저자는 고고학에 무지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고고학 용어와 기술적 용어들을 나열함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설득한다. 당연히 고고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저자의 논리에 설득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의심하고 볼 수 밖에 없다. 외계인이 지구 문명을 심었다니! 소설을 쓰고 있지 않는가?

이와 비슷한 책은 신의 지문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다.  신의지문 저자 그레이엄 헨콕은 기존의 모든 고고학적 업적을 깡그리 무시하고 외계인이 지구 문명을 심었다는 가설을 기정 사실화하여, 모든 문화와 기호를 외계인의 존재를 그려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지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일반인들에게 이런 류의 책들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이단적인 이런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만 베스트 셀러인지 외국에서도 베스트 셀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학문적 천박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슬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자의 주장은 혹세무민(?)하는 글이다. 그리고 이런 책이 핸드인핸드 시리즈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나름대로 괜찮은 교양서적으로 뽑아서 핸드인핸드 시리즈를 만들었을터인데, 이런 이단류의 책이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인류의 문명은 어느날 갑자기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폭발적인 문명의 진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것인데,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대답은 바로 외계인(12번쨰 행성에 사는)이 지구에 문명을 심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물론 귀납법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접근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귀납법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이미 연역적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귀납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말하자면 이어령비어령식의 주장일 뿐이다. 고고학은 어떻게 보면 결국 해석의 문제인데, 저자는 고대의 여러 유물들 중에서 외계인을 암시하는 듯한 (혹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증거들 만을 모아서, 외계인의 존재를 기정 사실화한다.

물론, 저자의 이런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면 곡학아세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알 수 있다.  저자는 기존의 고고학적 해석들을 모두 무시해버리고, 기존의 학문적 업적들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이끌고 간다. 그냥 재미로 읽으시라.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만병통치약을 판매하는 약장수에게 속아서 약을 사는 것과 꼭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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