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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탄생 -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모험
송동훈 지음 / 시공사 / 2019년 4월
평점 :

15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무지와 공포의 바다를 도전으로 헤쳐나가며 대항해시대를 한껏 열어젖혔다. 바다를 향한 대항해가 6백년 전의 도전이었다면, 지금의 21세기는 우주를 향한 대항해를 시작하는 도전의 시기이다. 저자 송동훈은 앞으로 우주 시대를 살아갈 청춘과 시민들에게 지구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램을 피력하고 있다.

1212년 톨로사 전투는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실지 회복 운동)의 커다란 성과로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 세력의 붕괴를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십자군의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포르투갈이 탄생했고, 이후 100여년간 카스티야와의 영토 분쟁은 1385년 알주바로타 전투로 일단락되면서 평화가 찾아왔다. 당시 포르투갈의 국왕이 주앙 1세, 그의 3남이 바로 항해왕 엔히크이다.

1415년 주앙 1세와 그의 세 왕자는 북아프리카의 세우타 원정에 성공한다. 이후 엔히크 왕자는 1419년 사그레스에 근거지를 만들어 바다를 향한 꿈을 키워갔고, 그리스도 기사단의 단장으로 획득한 막대한 부를 항해 사업에 투자했다. 엔히크의 탐험 선단은 매년 서아프리카 대륙을 따라 남하하면서 바다에 대한 무지와 공포를 극복해 나갔다.
이는 전설의 기독교 왕국의 군주를 찾아 동맹을 맺어 이슬람 제국을 상대로 십자군을 부활시키겠다는 엔히크의 생각 때문이었다. 엔히크의 의도는 다분히 중세적 열망이었으나 그 결과는 근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데, 일면적 감상에 불과할 테지만 알면 알수록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종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469년 바야돌리드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결혼은 스페인의 탄생을 가져왔다. 이사벨의 그라나다 멸망은 스페인에서 레콩키스타의 완성이었고 동시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의 소멸을 의미했다. 산티아고 기사단을 비롯한 3개 기사단을 장악하며 강고한 권력을 구축한 이사벨은 포르투갈로부터 외면당한 콜럼버스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이는 결국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을 발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콜럼버스가 내건 조건은 대단히 파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요구를 수용했던 이사벨 여왕의 결단과 배포는 정녕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럼버스가 죽는 순간까지 인도로 착각했던 신대륙은 그가 바랬던 황금과 향신료를 주지 못했고, 이후 3차례의 항해도 성과는 없었으며 강력한 후원자였던 이사벨이 사망하면서 그의 이름도 잊혀져갔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1497년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은 구세계의 종말을 의미했다. 1500년 포르투갈의 카브랄 함대는 브라질을 발견했고, 알부케르크의 함대는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인도의 고아, 말레이반도의 말라카를 점령했고, 향료의 본고장인 인도네시아의 말루쿠 제도를 개척했다. 그리고 마침내 1519년, 항해왕 엔히크가 사그레스에서 시작한 바다 탐험이 꼭 100년이 지난 해에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마젤란 함대가 세계 일주를 향해 출항했다. 같은 해 베라크루스 해안에 상륙한 코르테스는 1521년 멕시코 고원의 아즈텍을 정복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531년 피사로는 안데스 산맥의 잉카에 대한 정복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정복자의 시대였고, 세계의 모든 대륙과 바다는 유럽으로부터 건너오는 침략자의 손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유럽과 비유럽의 충돌 시기와 양상은 다양했으나 결국 승자는 바다를 건너온 유럽이었다. 좋든 싫든 그것이 현실이었다. 무차별적인 폭력과 참혹한 비극 위에서 성립한 유럽 제국주의는 이후 세계사의 질서를 좌우했다. 이때 주도권을 차지했던 서구의 국가들이 지금도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욕망에 희생된 문명들은 여전히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한채 중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펼쳐질 제2의 대항해 시대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러시아, 일본, EU, 인도는 우주 개발을 위한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그속에서 우리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저자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이다.
모든 국가와 왕조, 개인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대항해시대 초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결국 초라히 스러져갔다. 주앙 3세의 포르투갈, 펠리페 4세의 스페인, 두 나라의 몰락은 너무도 허망하여 정말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종교재판소는 사상적 탄력성을 잃게 만들어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를 쇠락시켰고, 순혈주의와 배타성은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하고 사회의 동맥으로 작동할 인재들을 갉아먹었다. 교조주의에 빠진 사상과 국가 내부를 향한 쇄국은 결국 두 나라를 영원히 뒤처지게 만들었다. 발전의 양상은 각기 다르더만 망조의 현상은 왜 이다지도 유사한지...
평소 대항해시대와 스페인, 포르투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수많은 인물과 왕조들, 특히 비슷한 이름의 왕과 왕비들이 계속 나와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글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이야기의 핵심을 이어가는 스토리의 탄탄함과 이를 뒷받침하는 디테일, 필요할 때 과감한 가지치기로 주제에 집중해 전개해가는 이야기 방식은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20개의 챕터로 구분된 스토리는 시간적 경과에 부합해 두 나라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