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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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서평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인생은 역시 다이나믹하고 예측할 수 없어 아름답다.


나민애, <책 읽고 글쓰기>, 서울문화사, 2020


저자 나민애는 2007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250여편의 평론을 발표했다. 현재 서울대에서 글쓰기 담당 교수로 서평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즉 '책 읽고 글쓰기'는 서울대 학생들로부터 '갓민애'로 불린다는 저자의 본래 영역이자 장기(長技)로서, 그의 담당 과목이며 특강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으니, 이 책의 제목이 <책 읽고 글쓰기>인 이유다.


서평은 책에 대한 '이성적' 평가라는 점에서 '감상적' 독후감과 다르다. 콘텐츠에 대한 분석-판단-평가가 들어있어야 하기에 서평을 위해서는 전략적 독서가 필요하다. '왜', '어떻게'를 중심으로 책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볼 것, 이것이 서평을 쓰기 위한 준비 단계의 요령이다.



저자는 서평 쓰기를 위한 체력 키우기의 방법으로 '1줄 쓰기'와 '100자 리뷰'를 추천한다. 자신의 언어로 책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사람의 '평'을 검색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소통이며 교감이라고 이해하는 저자는 가장 대중적인 소통으로 블로그 서평을 꼽는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책 읽고 글쓰기>는 제목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서평을 쓰는 구체적 노하우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분야별 도서에 따른 줄거리 요약법은 당장 서평을 쓰는 이들에게 유용한 지침이다. (그러나 '실용서' 분야는 아쉽다) 책을 바라보는 나만의 목소리와 색깔이 드러날 수 있어야 제대론 된 서평인데, 그 전략과 방법에 대해 매우 실용적인 대응책을 제시한 것이 흥미롭다.



'빈칸을 따라 채우면 서평이 되는 마법 노트'가 그것이다. 초보 서평러들에게 안성맞춤인 양식이 제공되는데, 심지어 예시까지 있어서 서평 훈련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런 식으로 내공을 쌓아가다보면 언젠가 나도 서평의 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가져본다.


블로그 서평 쓰기의 구체적 방법은 단계별로 제시된다.  서평의 제목 붙이는 법에서부터 서지 사항을 밝히라는 부분까지가 전반부라면, 줄거리 요약과 서평의 핵심인 분석과 평가는 후반부에 해당한다. 서평은 소개가 아니라 평가이므로, 평가로 안내하기 위한 줄거리 소개에 너무 힘을 빼지 말라고 조언한다. 서평의 과정에서 '선택(꼽기)'과 '질문(왜,어떻게)'은 분석과 평가를 위한 효율적인 전략이 된다. 



'서평 쓰는 법'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재기발랄한 글쓰기에 막힘없이 읽히는 시원스런 글맛은 탄성을 자아낸다. 글과 호흡에서 젊음과 스마트한 재기가 느껴진다. '갓민애'의 맛깔진 글을 읽다보면 책 블로거 또는 서평 블로거로서 공감되는 구절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지레 마음이 찔리기도 하고 때로는 질책이 되기도 하지만, 같은 길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만의 교감을 느낄 수 있어 작은 위로가 된다.


"우리에게는 나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은 공통된 욕망이 있다. 나의 흔적을 문자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바람직하며 보편적이다.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문자는 아직 죽지 않았다. (중략)  내 인생의 한 오후를 함께했던 책을 통해 내 과거를 남기기, 내 목소리를 통해 남과 소통하기, 그러면서 삶의 걸음걸음을 남기기. 비유컨대 서평 페이지들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하얀 조약돌들 -집으로부터 숲까지 가는 중간중간 길을 잊지 말자고 남겼던- 에 해당한다. 블로그 서평은 독서 여행기이고 나만이 구축할 수 있는 책들의 실록이다." (90쪽 인용)


작은 판형에 220여쪽 되는 슬림한 부피는 책 읽기에 도전할 마음을 품게 하기 충분하다. 다만 표지 이미지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내 서평은 몰라도,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서평 쓰는게 뭐가 좋은지는 확실히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서평 블로거와 학술적 리포트를 써야 하는 이들에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평을 쓰는 ('고수'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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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글쓰기의 모든 것 - 지금 배워 100살까지 써먹는 일과 삶의 진짜 무기
송숙희 지음 / 책밥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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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글쓰기의 모든 것> 저자 송숙희는 이 분야에서 20여년 동안 활동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대표 글쓰기 코치' 이다. 어느 책에서는 '대한민국 1호 책쓰기 코치' 라는 타이틀도 내걸고 있으니, 글쓰기와 책쓰기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그 이름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당신의 책을 가져라>, <따라쓰기의 기적>, <책쓰기의 모든 것>,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저자는 돈이 되는 글쓰기를 위한 카시(KASH)의 법칙을 제안한다. 본래 카시(KASH)의 법칙은 미국 생명보험협회에서 수십년간의 경험과 데이터를 분석해 정리한 보험 세일즈 분야의 성공 법칙이다. 이를 글쓰기에 접목한 것인데, 돈이 되는 글을 쓰는데 요구되는 일련의 지식(K), 태도(A), 기술(S), 습관(H)을 정리해 이 한 권에 모두 담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글쓰기의 어떤 특별한 노하우 같은 기법적인 것만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글쓰기의 핵심은 '쓰기'의 기법이 아니라 '글'이라는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쓰기는 '글+쓰기'인데, 이는 '전달하려는 메시지'인 글을 쓰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쓰기가 먼저가 아니라 쓸거리 즉 메시지가 먼저이고, 그렇기에 읽는 것이 먼저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이다. 


쓸거리를 만들려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려면 읽어야 한다. 돈이 되는 글쓰기의 쓸거리(메시지)를 구성하는 방법은 OREO 공식을 이용하고, 이를 핵심을 콕 짚어 전달하는 APT 포맷으로 담아내면 된다. OREO 공식은 하버드 150년 글쓰기의 비밀이기도 하다. APT는 전달력을 극대화한 에세이 쓰기 포맷이다.


<OREO 공식>

Opinion 의견 주장하기

Reason 이유와 근거 대기

Example 사례 들기(예를 들어 설명하기)

Offer 의견 강조, 제안하기


<APT 포맷>

Attention 독자의 주의를 끌고

Point 핵심을 전하고

call To action 원하는 반응 끌어내기(요청하기)


<돈이 되는 글쓰기의 모든 것>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고 다시 되새겨 읽고 싶은 부분은 1장 '글쓰기 불변의 법칙 7'과 5장 '글쓰기 근육을 강화하는 매일 습관 7' 이다. 그중에서도 돈이 되는 글쓰기 코어 근육 강화 프로그램이 주목된다.  읽기 근육을 단련하는 '베껴 쓰기', 생각 근육을 단련하는 '저널 쓰기', 전달력을 위한 실전 훈련 '에세이 쓰기'가 그것이다.


"쓰기는 읽기로 시작되고 읽기로 진행되고 읽기로 마무리됩니다. ··· 예를 들어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썼으면, 다음에 이어 쓸 내용을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앞에 쓴 문장을 읽어야 합니다. 글을 마칠 때까지 쓰고 읽고, 읽고 쓰기 패턴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니 쓰기의 거의 대부분이 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읽기는 글을 잘 쓰기 위해 갖춰야 할 보조 기술이 아니라 필수 기술입니다." (74~78쪽 발췌)


특히 베껴쓰기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배울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따라하기'이다. 수영을 배운다면 수영 강사의 동작을 따라하고, 그림을 배운다면 그리기를 따라하고 옛 그림을 모방하는 모작을 그리기도 한다. 서예에서도 옛 명인들의 필적을 모아놓은 법첩을 모서하고 임서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글쓰기의 시작도 기존의 명문을 베껴쓰기 하는 것이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책은 직장인 글쓰기부터 마케팅 글쓰기, 자기소개서, 이메일 쓰기, SNS 글쓰기, 대본 글쓰기, 고객서비스 글쓰기, 책이 되는 글쓰기까지 그야말로 '돈이 되는 글쓰기의 모든 것'을 담은 글쓰기 종합 완결판이다. 글을 자주 쓰는 블로거, 서평이나 체험단 리뷰를 쓰는 사람들, 글 잘 쓰기를 소망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을 이 땅의 직장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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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의 즐거움 -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본격 구글링 가이드
대니얼 M. 러셀 지음, 황덕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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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구세대는 네이버로 검색을 하고, 신세대는 구글링으로 정보를 찾는다고 한다. 여기서 신구 세대의 구분은 나이와 상관없는 표현이다. '구글'과 같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고의 유연성과 행동의 탄력성을 말하는 상징적인 의미일 것이다. 이 책 본격 구글링 가이드 <검색의 즐거움>을 통해서, 어제의 나는 구세대였으나 내일의 나는 신세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대니얼 M. 러셀은 전 세계 검색 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는 구글의, 그것도 검색 분야 선임 연구 과학자라고 한다. 더구나 저자는 스스로 궁금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만족스런 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검색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이 갖는 힘과 진실성은 믿어도 좋다. (단, 저자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를 수 있다!)


현실의 바다에도 '쓰레기'가 넘쳐나듯이,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에도 쓰레기가 넘친다. 무책임하거나 잘못된 거짓 정보가 만연하는 요즘, 온라인 검색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저자가 전통적 교육의 3R(읽기 Reading, 쓰기 wRiting, 계산하기 aRithmetic)에 조사 Research를 더하여 4R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또한 앞으로 일어날 변화 속에서 디지털 문맹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검색과 배움은 필수이다.


<검색의 즐거움>에는 구글을 이용해 의미있는 정보를 찾는 효과적인 방법과 절차들이 17가지의 Case Study 형태로 제시된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해당 챕터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간단히 요약하고, '어떻게 하지?'의 꼭지를 두어 구체적 조사 방법과 연산자들을 정리했다. 구글 어스와 빌딩 3D 이미지를 이용해 장소를 찾고, 창문에 비친 글자를 뒤집어 사무실을 알아내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호수가 폭발해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2천여명이 사망했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site: 연산자와 구글 학술검색을 활용해 조사한 결과 이는 사실로 검증되었다. 큰따옴표를 쓰면 특정 문구를 검색하거나 맞춤법 자동교정 기능을 우회할 수 있었다. 다윗이 정말 새총으로 골리앗을 죽이는 게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은 문맥용어(맥락용어)를 사용해 좋은 검색 결과를 얻었다.


위키피디아는 대체로 품질이 높고 꽤 믿을만하다는 저자의 평가는 인상적이다. 조사를 시작할 때 위키피디아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고, 특히 편집자가 붙인 별표를 붙인 문서는 특별히 완성도가 높고 좋은 참고가 되는 글이라고 한다. 특히 주제와 이웃한 언어로 쓴 항목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ex.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관련 문서는 영어판보다 이탈리어판 위키피디아가 훨씬 뛰어나다.)


모든 스페인 미션(포교당)에 별 모양 창문이 있는 이유를 밝힐 때는 자동 완성 추천과 구글 번역을 이용해 스페인어를 적극 활용했다. 여러 검색 결과 속에서 진짜 답을 찾을 때에는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과 2차 가공 자료가 그저 다른 문서를 베꼈을 수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했다. 구글 북스를 이용하면 책의 본문을 검색할 수 있고, filetype: 연산자를 쓰면 특정 파일로만 제한해 검색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카리브해의 패럿 피시는 수컷이 죽으면 암컷 중 하나가 성별과 색깔을 바꾸어 무리를 이끈다는 신기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것을 찾아내는 '절대반지'는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조차 한 번의 검색으로 답에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결국 연산자를 비롯한 구글의 검색 도구들을 적절히 활용하되 원칙을 지키며 만족스런 결과에 다다를 때까지 검색을 이어나가는 것,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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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책 읽어드립니다, 신과 함께 떠나는 지옥 연옥 천국의 대서사시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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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단테의 신곡을 이웃의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이참에 나도 한번 읽어볼까 하던 차에 이 책 <신곡>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 단테 알리기에리 라는 단테의 풀네임을 알게 된 것도 이 책 덕이다. 하지만 역시 고전의 힘인가? 그리 쉽사리 곁을 허용하지 않아서 읽어내느 데 상당한 품이 들었다.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영화 <인페르노>에서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그림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책 목차 바로 옆에 실려 있어 반갑기도 했다. 단테는 서른다섯의 어느 성 금요일에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지옥 여행을 시작한다. 연옥에까지 단테를 인도하며 길잡이를 했던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의 문앞에서 베아트리체에게 그를 넘긴다. 단테가 평생 가슴에 품었던 사랑 베아트리체와 함께 그는 천국을 둘러보며 하나님의 사랑과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으로 가는 영적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 <신곡>은 당시의 중세적 신학관을 단테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재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기본적 지식은 물론, 단테가 생존했던 중세 말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당대의 시대상에 대한 간단한 해제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옥' 편에는 다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목되는 건 교황과 주교·수도원장, 황제와 국왕, 상인과 자본가 등인데 그중 상당수는 단테가 살면서 만났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모두 지옥에 보내버린 셈이니, 이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얼마나 신랄하고 끔찍한 책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렌체를 떠나 타향을 떠돌며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망명객의 원한이 담겨 있는 듯하다.

<신곡>을 읽으며 가톨릭에서 얘기하는 '연옥'의 개념과 '파문'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큰 소득이다. 특히 중세인들에게 갖는 '파문'의 의미는 실로 막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면 설사 죽는 순간 용서를 받는다 하더라도 생존한 햇수의 30배에 달하는 고행을 더 해야 한다는 것. 또 연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살아있는 자들의 기도라는 것이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천국' 편의 시작 부분은 앞의 지옥 편과 연옥 편의 내용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와 설명으로 채워져 있어 당혹스럽다. 화자도 다르고 보는 시점도 다를 뿐 아니라, 마치 '천국' 편의 해설을 보는 듯했다. 234쪽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책을 읽는 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먼저 삽화의 위치이다. 본문의 내용과 삽화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거나, 몇 페이지 뒤로 삽화를 옮기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삽화 하단에 간단한 소개나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번역이 어색하여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못하는 비문도 종종 발견된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다수의 오타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한 문단 전체가 반복되는 오류도 있었다. 교정과 교열을 제대로 거쳤는지 의문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피렌체 출신의 위대한 인물들의 무덤이 있다.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많다. 단테의 무덤도 있는데, 사실 이것은 빈 무덤이고 그의 진짜 무덤은 라벤나에 있다고 한다. 단테의 유해를 돌려받지 못한 피렌체인들이 아쉬움을 달래고자 빈 무덤을 만들고 성당 앞에 동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몇년전 이탈리아 여행시에 들었던 가이드의 설명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추억으로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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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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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게 된 소설이다. 한동안 역사, 교육, 경제 관련 서적만을 읽다가 메말라진 감성에 작은 불씨를 댕겨보고자 소설에 눈을 돌리던 중 알게 된 <최후의 만찬>.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쏠리는데, 몇해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보고 왔기에 더욱 마음이 가는 책이었다.


책은 1791년 신해년에 일어난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 사건인 신해사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죽음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등치되어 임금의 가슴에 남는다. 그런데 윤지충의 집에서 한 장의 그림이 발견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모사본이다. 이 그림에는 상상치 못할 충격적 비밀이 수수께끼처럼 담겨 있는데...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역사적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들이 섞여 있다. 임금 정조, 실학자 정약용과 박지원, 화가 김홍도와 과학자 장영실, 도향과 6명의 초라니패 등인데, 주인공이 누구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소설의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스토리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난해하기까지 하다.


"만경강 기슭에 당도한 오라비는 여립의 후예들과 언약했다. 달 뒤편으로 해가 숨어들던 밤 버들가지 너머엔 샛강이 흘렀고, 물고기 등짝 위로 은빛 비늘이 보였다. 달빛 한 자락 강물 위에 내리면 건너편 능선은 꿈결처럼 밀려왔다." (97쪽)


문장은 매우 감각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작가의 깊은 사색이 은연 중 드러난다. 책의 주제와 메시지는 머릿 속에 잘 잡히지 않는다. 다만 임금과 여섯 초라니패의 입을 빌어 선악의 문제를 끊임없이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았다.


"김혁수에게 칼은 기다림과 같았다. 선과 악은 하나가 될 수 없으나 칼에 스며든 악의 본성으로 선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중략) 선을 찾아 나선 그의 칼은 늘 악의 정령이 출렁거렸다. 악을 누르는 힘의 원천은 결국 악일 것이고, 칼로 선을 되찾은들 그 선은 결국 악일 뿐이었다." (174쪽)


<최후의 만찬>을 끝까지 읽었기에 다빈치의 그림 속에 담겨진 비밀과 수수께끼는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부분에서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작가가 풀어놓은 말의 향연과 글의 미로 속에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애써 찾았다해도 찬찬히 더듬어가지 않으면 또다시 환상 속을 헤매게 되는 느낌이다.


노론을 비롯해 당파로 둘러싸인 현실 속에서, 유학과 실학과 서학의 길항 속에서 임금 정조의 모습은 외롭고 애처로웠다. "비선들의 종횡과 실세들의 농단으로 이 세상은 날마다 끓어올랐다." 는 표현에서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이념의 칼로 죽은 자의 육신을 가르는 것이 옳은 것인가?"(219쪽)는 정파의 유불리로 사실까지 마음대로 재단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경종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랜만의 소설 나들이는 즐겁고 흥미로웠다. 철학서가 아닌 문학서에서 사색의 물동이를 쉬이 긷게 되는 것은 이성 만이 아닌 영혼의 울림이 함께 하기 때문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책이었지만 오랜만에 감성 넘치는 문장에 흠뻑 빠져들었고 선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다빈치와 장영실이 그림을 통해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곱씹으며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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