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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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게 된 소설이다. 한동안 역사, 교육, 경제 관련 서적만을 읽다가 메말라진 감성에 작은 불씨를 댕겨보고자 소설에 눈을 돌리던 중 알게 된 <최후의 만찬>.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이 쏠리는데, 몇해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보고 왔기에 더욱 마음이 가는 책이었다.


책은 1791년 신해년에 일어난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 사건인 신해사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죽음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등치되어 임금의 가슴에 남는다. 그런데 윤지충의 집에서 한 장의 그림이 발견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모사본이다. 이 그림에는 상상치 못할 충격적 비밀이 수수께끼처럼 담겨 있는데...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역사적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들이 섞여 있다. 임금 정조, 실학자 정약용과 박지원, 화가 김홍도와 과학자 장영실, 도향과 6명의 초라니패 등인데, 주인공이 누구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소설의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스토리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난해하기까지 하다.


"만경강 기슭에 당도한 오라비는 여립의 후예들과 언약했다. 달 뒤편으로 해가 숨어들던 밤 버들가지 너머엔 샛강이 흘렀고, 물고기 등짝 위로 은빛 비늘이 보였다. 달빛 한 자락 강물 위에 내리면 건너편 능선은 꿈결처럼 밀려왔다." (97쪽)


문장은 매우 감각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작가의 깊은 사색이 은연 중 드러난다. 책의 주제와 메시지는 머릿 속에 잘 잡히지 않는다. 다만 임금과 여섯 초라니패의 입을 빌어 선악의 문제를 끊임없이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았다.


"김혁수에게 칼은 기다림과 같았다. 선과 악은 하나가 될 수 없으나 칼에 스며든 악의 본성으로 선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중략) 선을 찾아 나선 그의 칼은 늘 악의 정령이 출렁거렸다. 악을 누르는 힘의 원천은 결국 악일 것이고, 칼로 선을 되찾은들 그 선은 결국 악일 뿐이었다." (174쪽)


<최후의 만찬>을 끝까지 읽었기에 다빈치의 그림 속에 담겨진 비밀과 수수께끼는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부분에서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작가가 풀어놓은 말의 향연과 글의 미로 속에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애써 찾았다해도 찬찬히 더듬어가지 않으면 또다시 환상 속을 헤매게 되는 느낌이다.


노론을 비롯해 당파로 둘러싸인 현실 속에서, 유학과 실학과 서학의 길항 속에서 임금 정조의 모습은 외롭고 애처로웠다. "비선들의 종횡과 실세들의 농단으로 이 세상은 날마다 끓어올랐다." 는 표현에서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이념의 칼로 죽은 자의 육신을 가르는 것이 옳은 것인가?"(219쪽)는 정파의 유불리로 사실까지 마음대로 재단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경종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랜만의 소설 나들이는 즐겁고 흥미로웠다. 철학서가 아닌 문학서에서 사색의 물동이를 쉬이 긷게 되는 것은 이성 만이 아닌 영혼의 울림이 함께 하기 때문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책이었지만 오랜만에 감성 넘치는 문장에 흠뻑 빠져들었고 선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다빈치와 장영실이 그림을 통해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곱씹으며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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