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산다
오히라 미쓰요 지음, 김인경 옮김 / 북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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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여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오히라 미쓰요씨의 스토리가 방송 된 적이 있었다. 당시엔 그저그런 일본사람의 성공스토리라고 생각하고 방송분을 다 보지않고 그냥 넘겨 버렸다.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변호사가 된 당찬 여인네의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몇년이 지나 오히라씨의 첫번째 책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를 읽고 그녀 인생의 굴곡과 참 모습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과 관심은 시작되었다. 

오히라 미쓰요씨 책들은 나에게 많은 위로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을 주었다. 오히라씨에게 매료된 나는 그녀의 저서 중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은 다 구해서 읽어 버렸다.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내 주먹을 불끈쥐게 만들었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야지, 그때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용기와 자극을 북돋아 준 오히라 미쓰요씨가 행복해지길 바랬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바램과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산다"로 오히라씨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드시 행복해지길 바랬던 사람이기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런 내 동정과 생각들은 참 어리석은 것이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다름아닌 바로 오히라 미쓰요였기 때문이다.  

오히라 미쓰요씨는 여전히 밝고 씩씩하고 용감했다. 아이의 장애를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개성이라고 받아 들였다. 그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늦게 크고 조금 부족할 뿐인 개성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중한 생명이기에 자신의 건강과 맞바꾼 힘든 출산을 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부드러움과 여유를 지니고 행복해 한다. 그렇게 자신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보물이 바로 딸이라며 그 끝없는 애정의 깊이와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런 오히라씨의 행복한 마음이 책속에서 계속 느껴져서 읽는 내내 나도 마음이 흐믓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갖는 것이 행복한 삶의 요소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처음 오히라씨의 책을 읽게 된 순간부터 꽤 시간이 흘렀고 오히라씨도 나도 많이 변했다. 그녀는 묵직한 서류가방을 든 비행 청소년 전문 변호사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모습으로, 나는 꿈많은 학생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비록 지금은 각자가 꿈꾸던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난 자리에 있지만 아직은 이 모습과 위치가 인생의 완성점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직 오히라씨도 나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여전히 멋지고 당당한 오히라 미쓰요씨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한번 용기를 얻고 간다. 하지만 이제 그녀와 만나는 것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작별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피천득씨의 글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중략)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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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모어 ㅣ 이모탈 시리즈 1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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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을 너무 늦게 먹은 탓이였을까? 결국 잠자리에서 계속 뒤척거리던 나는 잠이 올 때까지 잠깐 읽어볼 요량으로 에버모어를 펼쳐들게 되었다. 마침 에버모어는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었기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읽기 나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이 들기 위한 내 선택은 썩 훌륭하지 못했다. 난 그날 밤 이 책을 읽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전부 잃고 그 사고로 인해 초능력을 얻게 된 16살 소녀 에버는 자신을 후드와 썬글라스로 감춘 채 가족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에 한가지 위안은 동생 라일리가 유령으로나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다는 것 뿐. 그런데 이런 에버의 앞에 데이먼이라는 그야말로 지구제일의 완벽한 남자가 전학을 온다. 그리고 이 완벽남 데이먼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에버와 러브스토리를 꽃피워 간다. 하지만 사랑이 더 불타오르기 위해선 장애물이 존재해야 하는 법. 데이먼과 과거에 로맨스로 얽혔던 느낌이 풍기는 드리나라는 여자가 나타나고, 의문에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 된다. 게다가 이 모든 일들에 데이먼이 얽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에버는 엄청난 시련과 맞닥들이게 된다. 

이 책을 완독하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것이였다. 분명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흡입력도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로맨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꼬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총 6권의 시리즈 중 도입부에 해당하는 1편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스토리에 대한 포석인지는 모르겠으나 설정의 부족함이 계속 눈에 밟혔다. 재미는 있지만 그와 비례하게 헛점도 많은 소설이라니, 칭찬을 해야할지 비판을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경험하고 초능력을 지니게 된 소녀 에버와 신비로운 남자 데이먼의 사랑이야기는 모든 여자들이 한번쯤은 꿈꿔봤음직한 로맨스처럼 달콤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이 책이 포스트 트와일라잇이라는 평을 받으며 국내에 당당히 출판된 것에도 백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난 트와일라잇보다 에버모어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란 부분에서 트와일라잇보다 더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버모어는 복잡한 감정을 지닌 다양한 캐릭터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작가의 뒷심부족으로 설득력있게 다 끌어가지 못했기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야기의 풍성함만큼 헛점도 적지 않게 보인다.  

에버모어는 로맨스의 전형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처음 읽는 순간부터 친근함을 느끼게 하여 책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진부한 로맨스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 독자가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야기 전반에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넣고, 에버가 가족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는 것에 대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글의 후반부에 그 이유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미숙함으로 빛이 바래고 에버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갉아 먹어 버렸다.  

에버는 이야기 내내 가족이 죽은 것은 내탓이야. 이런 이상한 초능력을 갖게 된 것은 내 업보야. 난 이렇게 우울하게 살다가 죽어야 마땅해라며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뿜어낸다. 그러나 이런 자아혐오성 발언도 한두번이지, 매 챕터마다 계속 이런 독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다보니 중반 이후부터는 자신이 실수 해서 생기는 모든 불행까지도 이 불운한 과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걸로 보여지기 시작했다. 즉, 여주인공 에버에게 더 이상 감정 이입이 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까지 났다. 차라리 이야기 초반, 에버가 갖는 죄책감의 이유에 대해 먼저 꺼내놓았다면 이야기의 집중력은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최소한 설득력에는 더 힘을 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 후반부에 에버가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부분의 이야기 구성방식 역시 눈에 거슬리는 부분 중에 하나였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서술방식의 문제인지는 원문을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챕터에서 장소의 이동은 에버가 고주망태로 학교 화장실에서 주차장으로 그리고 마일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마일즈의 집으로 가서 다시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순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고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는 내용의 대화가 갑자기 나타난다. 둘의 대화도중 에버의 생각으로 학교관계자들에게 음주로 붙잡혔었다라는 내용이 단 한줄 나오는데 그것만으로 이 갑작스런 전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학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장소 이동중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용의 전개 방식도 뒤죽박죽이라 이 부분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번역이 매끄러웠다면 조금은 이해가 되었을지 모르나 번역도 혼란인 상태라 이부분의 내용은 그냥 에버가 음주로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다는 것을 이해한것만으로 만족하고 넘어 가야했다. 

사실 작가의 서술방식과 뒷심의 부족에서 나오는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작가는 묘사보다는 감정의 이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묘사와 설명의 부족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어느정도 수긍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한 부분의 설명이 빠져 있는 것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알 수없는 장소의 이동, 서 있고 앉아 있는 모습, 물건과 캐릭터가 이동한 동선 등등, 묘사가 부족하여 상상으로 넘겨야 했던 부분이 꽤 많았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렇게 자잘한 부분들이 자꾸만 공백으로 남겨져서 정작 클라이막스에선 그 절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작가가 미처 묘사하지 못한 부분의 공백을 이해하고 수긍하기 위해 한참을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솔직히 번역은 칭찬 반, 비판 반의 마음이다.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읽을 수 있게 번역을 한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이야기는 부드럽고 쉽게 읽힌다. 그런데 의역이 아닌 직역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한 문장안에서도 앞뒤의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물론 의역이 무조건적으로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번역이란 문장 그 자체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적절하게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에버모어의 경우에선 문장 원문의 해석에 중점을 둔 나머지 직역에 집중했고 그래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며 의문이 많이 남는 번역이 되고 말았다.  

에버모어는 처음에 언급한대로 달콤한 로맨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여심을 뒤흔들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덕분에 밤을 새며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말이다. 물론 밤을 새며 읽은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에버모어가 재밌었고 그래서 이 시리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이렇게 에버모어의 후속작을 기다리는 마음이 아마도 에버가 데이먼을 볼때마다 느끼는 그 두근거림과 비슷하지 않을까?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브레이킹 던을 끝으로 떠나보내고 가슴에 뻥 뚫린 허전함을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달콤한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자잘한 단점을 상쇄할만큼 에버모어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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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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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노란 은행나무 빛깔로 물들어 가던 늦가을날 그 가을빛깔을 닮은 가스미초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노란빛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어쩐일인지 이 책 표지의 노란 은행나무 빛깔만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아사다 지로라는 것을 알게됨과 동시에 나는 가스미초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가스미초 이야기는 이미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그 아련한 추억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8편의 단편으로 엮여져 있다. 보통 단편집의 책 제목은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든 챕터의 제목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스미초 이야기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펼쳐든 순간 첫 단편의 제목이 가스미초 이야기라는 것에 당황하고 말았다. 보통의 책이라면 제목을 담고 있는 단편은 중간 그 이후 부분에 배치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첫 챕터부터 이 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아사다 지로의 공격에 KO해버린 나는 당황함을 마음 속 저 깊은 곳으로 꾹꾹 눌러 넣고 차근차근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단편으로 엮어져 매 챕터마다 각자의 이야기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지만 이 모든 단편의 화자가 “이노“라는 주인공을 구심점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8개의 이야기들은 단편이 갖는 산만함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깔끔하고 질서정연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의 이야기 안에 드러난 주인공의 단편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뭉쳐져 버린 감정이 폭발해 버린다. 그 감정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가슴속의 사라진 추억들과 그에 대한 애뜻함, 그리고 가슴 뭉클한 그리움인 것 같다. 그 폭발한 감정들은 어느순간 한없이 묵직한 감정의 잔상으로 내 가슴에 남아버렸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억은 두가지의 상반된 감정으로 다가온다. 지나간 시절의 향수에서 오는 애잔함과 아직 어렸던 시절의 실수들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가스미초 이야기의 화자 "이노"의 지나간 기억 역시 그 두가지 감정으로 가스미초에 살던 시절의 기억들을 펼쳐놓는다. 그 기억들은 이미 지나갔기에 그리고 어렸던 날들의 방황과 아픔들이 있었지만 그로인해 한걸음씩 성장 할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이 더없이 아름다웠노라 이야기한다. 즉, 가스미초 이야기는 단순히 그가 살았던 그 시절의 그 지역의 추억만을 이야기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절에 애잔함과 부끄러움에서 오는 인간의 성장과 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의 인생 이야기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딱 한부분 존재하긴 했지만, 그외의 그에 감성에 모두 동의 하므로 그런 점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아사다 지로의 책을 처음 만난것은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였다. 당시 중학생이였던 소녀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그의 소설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를 다시 만난 소설이 과거 기억에 대한 향수를 담은 이 가스미초 이야기라니. 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엔 줄곧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감성적이였던 사춘기 소녀시절 내 가슴에 인을 새긴 그의 작품은 어느새 팍팍한 어른이 되어버린 내 가슴에 또 다른 인을 남겨 놓으니까. 앞으로 10년뒤에 또다시 아사다 지로의 작품을 만난다면 과연 그때는 어떤 감성으로 내 가슴에 또다른 인을 남겨줄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그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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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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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어느날 밤 꿈을 꿨다. 책의 삼분의 일이상을 남겨둔 시점이였다. 완독을 하고 싶었지만 밤이 너무 늦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 완독하리라 다짐하며 책을 덮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책에 너무 몰입했기 때문일까? 꿈속에서 나는 스톨른 차일드가 되어 있었다.

꿈은 단편적이였고 대부분의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 않지만 꿈속의 마지막 장면과 그때 내가 한말, 그리고 감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어른이 된 스톨른 차일드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괴물이야?“ 라고. 그 질문을 받은 과거의 내 친구는 울면서 차마 나를 쳐다보지 못한 채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내 가슴은 저며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난 한동안 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스톨른 차일드들은 자라지 않는다. 자신이 바꿔칠 아이를 찾아낼 때까지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영원히 어린아이인 존재들. 그들은 내 꿈속의 질문에 답처럼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본다면 괴물들임에 분명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 평범하지 않은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스톨른 차일드도 자란다. 다만 어린아이의 외형에 갇혀 있을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내면엔 그들이 지나온 세월을 쌓아 그만큼의 나이를 채워 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영원히 어른이 될 수는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어른으써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도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그리 갈망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스톨른 차일드들은 나이는 먹되 영원히 어른은 될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을 과거를 바꿔치기 당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톨른 차일드의 이야기가 더 가엽고 안쓰럽고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집착하는 헨리. 그리고 멈춰진 과거에 살면서 그 시간에 얽매여 미래를 외면하는 애니데이. 이 둘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 놓인 지독한 갈등이였다. 자신의 현재모습에 불안해하며 자신의 과거에 집착하지만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의 흐름에 나이를 먹어갔지만 어른이 되지는 못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 고통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대면할 용기를 내었을 때 비로소 그동안 외면하던 서로를 마주하고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간의 성장에 대한 고통을 끝내고 진짜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 미래로 한걸음 내딪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결국 어른이 되는 것이란, 진짜 자신을 찾아내는 슬프고 고통스럽운 감정과 경험을 수반하는 것 같다. 과거에서 진짜 자신을, 그 뿌리를 찾아내서 안정감과 평온함을 얻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껏 익숙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경험해보지 못한 불확실한 미래로 가야함을 깨달아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부디 비로소 그 미래를 향하게 된 진짜 헨리와 진짜 애니데이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긴 시간동안 읽은 이 책을 덮었다.

스톨른 차일드는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가 진행한다.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독백의 형식에 가깝다. 하지만 결코 표현이 지루하거나 반복적이지 않다. 오히려 주인공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기억과 감정에 이야기들로 인해 책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다르고, 그 차이가 어떤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천천히 쫒아가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 이야기가 끝이 맺어 있을 정도로 이 이야기는 참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만 교정과 번역의 아쉬움이 자꾸만 눈에 밟혔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던 애니데이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였던 헨리.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 과연 나는 내가 되고자했던 어른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 같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아직 가을은 좀 여유가 있고 내 가을은 끝나지 않았으니 좀더 깊게 생각을 해보고 결론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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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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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일들이 있다. 당시엔 소중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빛바래 보이는 기억들이 있다. 한발짝 물러나 보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감정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더 선명해지며 간절해지는 것들도 있다. 일곱 번째 파도의 레오와 에미의 기억과 감정들처럼.  

전작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뜻하지 않은 결말을 맞은 이들은 마지막 메일로부터 9달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메일을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일곱 번째 파도의 형식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서간문의 형태를 띈다. 하지만 전작과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만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의 메일에선 종종 현실에서의 만남에서 벌어진 사건과 감정들에 대해 말한다. 이런 이들의 변화는 마치 책속에서 튀어나온 소설속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 같아서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의 만남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만났을 때 있었던 사건과 감정에 대해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레오와 에미의 만남과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에, 이들의 재치있고 로맨틱한 메일에 전작처럼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레오와 에미는 서로를 향해 다시 메일을 주고 받는 이유로 전작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만남을 품위있게 끝내기 위한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 이유는 표면적일 뿐 서로 그 결별을 핑계삼아 메일교환과 현실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그 만남을 결코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서로의 마음을 장농속에 담아 열쇠로 봉한다 한들, 그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그래서 레오와 에미는 일곱번째 파도에 자신들의 마음을 맡겨버린다. 모든것이 새롭게 시작는 그 파도에 말이다. 

전작인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에서 레오와 에미가 메일교환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감정이 대해 싹 트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일곱번째 파도에서는 그 믿음과 감정들이 공고히 다져지고 그 위에 비로소 결실을 맺게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결실은 맺어지기 힘들었을 것이지만. 그래서 일곱번째 파도로 에미와 레오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 것이 참 고맙다. 전작을 읽고 그 여운에 한동안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번째 파도를 읽은 지금은 이 책의 여운을 행복하게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인기작들의 후속작들은 전작에 비해 줄거리나 에피소드들이 탄력을 잃고 빛바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일곱번째 파도는 전작만큼이나 재미있고 재치가 넘친다. 이것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글솜씨가 그만큼 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이 완성도를 갉아먹지 않고, 전작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만남과 이야기들로 전작과 차별성을 두고있는 것만 봐도 이 작가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부디 앞으로도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써내주길 작가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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