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세상이 온통 노란 은행나무 빛깔로 물들어 가던 늦가을날 그 가을빛깔을 닮은 가스미초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노란빛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어쩐일인지 이 책 표지의 노란 은행나무 빛깔만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아사다 지로라는 것을 알게됨과 동시에 나는 가스미초 이야기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가스미초 이야기는 이미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그 아련한 추억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8편의 단편으로 엮여져 있다. 보통 단편집의 책 제목은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든 챕터의 제목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스미초 이야기 역시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펼쳐든 순간 첫 단편의 제목이 가스미초 이야기라는 것에 당황하고 말았다. 보통의 책이라면 제목을 담고 있는 단편은 중간 그 이후 부분에 배치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첫 챕터부터 이 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아사다 지로의 공격에 KO해버린 나는 당황함을 마음 속 저 깊은 곳으로 꾹꾹 눌러 넣고 차근차근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단편으로 엮어져 매 챕터마다 각자의 이야기와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지만 이 모든 단편의 화자가 “이노“라는 주인공을 구심점으로 갖고 있다. 그래서 8개의 이야기들은 단편이 갖는 산만함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깔끔하고 질서정연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의 이야기 안에 드러난 주인공의 단편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뭉쳐져 버린 감정이 폭발해 버린다. 그 감정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가슴속의 사라진 추억들과 그에 대한 애뜻함, 그리고 가슴 뭉클한 그리움인 것 같다. 그 폭발한 감정들은 어느순간 한없이 묵직한 감정의 잔상으로 내 가슴에 남아버렸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기억은 두가지의 상반된 감정으로 다가온다. 지나간 시절의 향수에서 오는 애잔함과 아직 어렸던 시절의 실수들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가스미초 이야기의 화자 "이노"의 지나간 기억 역시 그 두가지 감정으로 가스미초에 살던 시절의 기억들을 펼쳐놓는다. 그 기억들은 이미 지나갔기에 그리고 어렸던 날들의 방황과 아픔들이 있었지만 그로인해 한걸음씩 성장 할 수 있었기에 그 시절이 더없이 아름다웠노라 이야기한다. 즉, 가스미초 이야기는 단순히 그가 살았던 그 시절의 그 지역의 추억만을 이야기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시절에 애잔함과 부끄러움에서 오는 인간의 성장과 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책의 인생 이야기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딱 한부분 존재하긴 했지만, 그외의 그에 감성에 모두 동의 하므로 그런 점은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아사다 지로의 책을 처음 만난것은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였다. 당시 중학생이였던 소녀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그의 소설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를 다시 만난 소설이 과거 기억에 대한 향수를 담은 이 가스미초 이야기라니. 참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엔 줄곧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감성적이였던 사춘기 소녀시절 내 가슴에 인을 새긴 그의 작품은 어느새 팍팍한 어른이 되어버린 내 가슴에 또 다른 인을 남겨 놓으니까. 앞으로 10년뒤에 또다시 아사다 지로의 작품을 만난다면 과연 그때는 어떤 감성으로 내 가슴에 또다른 인을 남겨줄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그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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