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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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일들이 있다. 당시엔 소중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빛바래 보이는 기억들이 있다. 한발짝 물러나 보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감정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더 선명해지며 간절해지는 것들도 있다. 일곱 번째 파도의 레오와 에미의 기억과 감정들처럼.  

전작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뜻하지 않은 결말을 맞은 이들은 마지막 메일로부터 9달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메일을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일곱 번째 파도의 형식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서간문의 형태를 띈다. 하지만 전작과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만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의 메일에선 종종 현실에서의 만남에서 벌어진 사건과 감정들에 대해 말한다. 이런 이들의 변화는 마치 책속에서 튀어나온 소설속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 같아서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의 만남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만났을 때 있었던 사건과 감정에 대해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레오와 에미의 만남과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에, 이들의 재치있고 로맨틱한 메일에 전작처럼 푹 빠져들 수 있었다.

레오와 에미는 서로를 향해 다시 메일을 주고 받는 이유로 전작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만남을 품위있게 끝내기 위한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 이유는 표면적일 뿐 서로 그 결별을 핑계삼아 메일교환과 현실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그 만남을 결코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서로의 마음을 장농속에 담아 열쇠로 봉한다 한들, 그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저 숨기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그래서 레오와 에미는 일곱번째 파도에 자신들의 마음을 맡겨버린다. 모든것이 새롭게 시작는 그 파도에 말이다. 

전작인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에서 레오와 에미가 메일교환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감정이 대해 싹 트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일곱번째 파도에서는 그 믿음과 감정들이 공고히 다져지고 그 위에 비로소 결실을 맺게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결실은 맺어지기 힘들었을 것이지만. 그래서 일곱번째 파도로 에미와 레오의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 것이 참 고맙다. 전작을 읽고 그 여운에 한동안 너무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번째 파도를 읽은 지금은 이 책의 여운을 행복하게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인기작들의 후속작들은 전작에 비해 줄거리나 에피소드들이 탄력을 잃고 빛바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일곱번째 파도는 전작만큼이나 재미있고 재치가 넘친다. 이것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글솜씨가 그만큼 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이 완성도를 갉아먹지 않고, 전작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만남과 이야기들로 전작과 차별성을 두고있는 것만 봐도 이 작가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라도 기회가 된다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 부디 앞으로도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써내주길 작가에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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