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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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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이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가였다. 보통 사람의 이름에 눈이 가게 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어쩐지 표지에 적힌 작가의 이름엔 시선이 자꾸만 옮겨갔다. 본명인지 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읽게 된 그녀의 글들 역시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숨"이라는 이름처럼 부드럽고 차분한 호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의 글들로 이 책을 채우고 있었는데, 마치 천천히 숲속을 산책이 들었다. 물론 그 산책로가 언제나 햇볕이 비추는 밝고 부드러운 이야기만은 아니였지만, 간만에 만난 기분좋은 한국 여성작가의 글이라는 것이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이 책에는 총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발표시기는 작품별로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을 꿰뚫는 작가의 한결같은 시선 덕분에 잠시의 흔들림도 파문도 없이 잔잔히 이야기는 끝에서 끝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내공이 엿보이는 부분이랄까. 사실 이 책에 이야기들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베일에 쌓인 주제를 다룬것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개그코드나 막장소재를 넣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재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읽는 내내 살짝 놀라웠다. 그저 간결하고 평범한 삶을 엮은 문장들 뿐임에도 그 여백의 미가 단아한 아름다움과 재미로 느껴지다니, 아마도 이게 김숨이라는 작가의 재능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간과 쓸개였다. 간과 쓸개에서는 한 노인의 평범한 일상 곁에 다가온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는데, 그것이 노인이 어린시절에 목격한 저수지에 대한 기억과 누님의 병세와 이어지면서 서글퍼지는 그의 마음이 내게도 스며들었다.  

간과 쓸개에 등장하는 노인은 우리 곁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다지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식들과 그런 자식들에게서 엿보는 자신의 젊은시절 모습과 늙어져 병든 몸은 노인을 계속 괴롭힌다. 무엇보다 노인을 괴롭히는 것은 과거에 묻어 두었던 기억이 죽음에 가까워진 지금에서야 기억속에서 자꾸만 되새겨진다는 것,  그런데 그 죽음에 닿은 기억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죽음으로 향하고 있음에도 인생에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새운 이야기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노인은 삶에 대한 희망을 눈물로 대변한다. 그리고 나 역시 노인에게 투영된 서글픔을 걷고 다시 평범한 산책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책 한권으로는 작가 김솜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다만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될 뿐이다. 그래서 일상을 담은 소박하며 담담한 이 소설집은 마음에 들었지만, 김솜이라는 작가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 싶다. 그녀의 다른작품들이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다음작품에선 그녀의 내면을 좀더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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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밤의 궁전 ㅣ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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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세상에 대한 찬미부터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넘치는 내용을 담은 책들까지, 세상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방대한 내용과 종류의 책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 제각각의 개성이 담긴 책들을 창조한 사람들은, 그 책들의 숫자와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책읽기 방법을 구사한다. 나로 말하자면 어떤 책은 차를 마시며 쇼파에 앉아 우아하고 맘편하게 읽는 방법을 택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한밤중에 스텐드를 켜놓고 이불속에 푹 파묻혀 읽기도 한다. 또 어떤 책은 화장실에서 유쾌상쾌통쾌하게, 또다른 어떤책은 정자세로 딱딱하게 앉아서 읽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 한밤의 궁전은 어떤 방법을 선택했는고 하니, 우선은 잠시동안 주변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처리한 후, 이불속에 푹 파묻혀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이나 제목에 상관없이 이 책에 대한 내 읽는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책의 작가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말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미스테리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호러물도 썩 좋아하지 않고, 추리물도 피가 낭자한 작품은 꺼리는 편이다. 굳이 오싹한 공포심을 얻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런류의 영화들도 모두 피하는 편인데, 유독 미스터리물의 성격이 강한 사폰의 작품들만은 마음에 쏙 드니 이상한 일이다. 마치 사폰의 부리는 마법에 걸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사폰은 언제나 자신의 책에서 도저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나 사건이 벌어지는게 인생이고, 그것이 일종의 마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니다, 그저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걸려 있는 마법을 깨달았을 뿐이다. 하지만 무료한 일상속에서 잊고 있는 그 마법을 자신의 책들을 통해 다시 나에게 걸어버리는 사폰은 아마도 진짜 마법사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의 책에 매료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이런 사폰의 메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폰의 초기작이기 때문에 그의 메세지는 살짝 덜 다듬어졌지만,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읽힌다. 그건 이 책의 주인공들은 16살, 성인을 막 앞둔 아이들이라는 설정 덕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는 그들의 아지트 한밤의 궁전처럼 신비롭고 보호받았던 세상이고,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태양아래 선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그대로 직시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미스테리한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자신들이 아지트에서 속삭이던 몽환적인 이야기들이 사실은 이 세상을 둘러싼 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간다. 그리고 인생이란 신비로운 마법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들은 과거의 어린시절에 작별을 고하고 마침내 어른이 된다. 솔직히 말해서 어찌보면 단순한 이야기구조다. 일반적인 성장소설에 흔히 나타다는 구조와 소재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평범한 소재들도 사폰의 손을 거치고 나면 별을 닮은 신비로운 이야기로 탈바꿈해버린다는 사실을 다시금 이 소설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폰은 서두에서 이 소설을 어느 한 특정연령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연령층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쓰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작가의 말을 읽는 순간, 나는 조앤롤랑이 떠올랐다. 해리포터 역시 전연령층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쓰고자 했다는 그녀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두개의 소설은 장르도 작가도 소설의 배경도 다르지만 넓은 연령층이라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두가지 더 있었다. 책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치는 긴장감과 흡입력, 그리고 이야기 전체에 감도는 마법의 기운이 그것이다.(책을 읽기전에 미리 화장실에 다녀온게 어찌나 다행인지!) 물론 이 책은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을 고려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른들이 읽기엔 살짝 쉬운 느낌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마법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폰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 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으로 인해 다시금 걸려버린 그의 마법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서 별빛을 내며 톡톡 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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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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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붙은 수식어는 화려하다. 마치 온몸에 별을 달은 개선장군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많은 상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책. 이런 책은 꼭 한번 읽어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많은 사람들의 평가로 이 책을 선택했지만, 나의 눈으로도 판단해 보리라라는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책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를 책의 채 반도 읽기 전에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의 목차를 보는 순간 이 책에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항복할 수 밖에 없으리라 짐작하긴 했다. 이미 목차에서부터 이 책이 가진 그 힘의 파동이 느껴졌으니까.    

이 책은 분명 유쾌하다. 하지만 그 안에 진하게 스며있는 씁쓸함에 때때로 울컥하기도 했다. 맷에게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 엿보였기 떄문이다. 사실 맷의 모습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일 것이다. 가정을 지키고 그 누구보다 좋은 아버지이자 멋진 남편, 그리고 착한 아들이 되고자 하는, 그저 평범한 이 시대의 가장. 맷이나, 짱구아빠나 우리 아버지나 모두 이 시대의 한 가장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자꾸만 터져나오는 이 범상치 않은 사건들과 말장난에 마냥 웃음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블랙 코메디 한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슬픔이 간간히 밀려왔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 드라마 "오피스"가 생각났다. 말 그대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원들의 이야기인데, 주요 코드는 웃음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결코 웃을 수 없는 짠한 감동이가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물론 대부분은 주인공 드와이트의 말도 안되는 행동과 농담(주로 아주 저질인)으로 그런 눈물나는 스토리가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과 몹시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그 드라마가 미국 드라마여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과 오피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미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자꾸만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감정이 이입되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네 아버지께서는 대마초를 팔 정도로 스케일이 크지는 않으시지만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말한다. 행복의 크기는 물질의 양과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진리것만, 그것을 그대로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맷의 경우가 그랬고, 나의 경우도 그랬다. 하지만 그것을 몰락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을 위한 한단계 물러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진리를 받아들이기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맷 역시 자신의 욕심을 모두 다 내려놓은 다음에야 행복에 대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역시 나는 아직 정신적 성숙이 한참 모자라기에, 맷처럼 물질적인 풍요를 놓치지기 전에 좀더 고군분투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안해요, 맷. 깨달음과 실천은 역시 좀 다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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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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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표지에 대한 별다른 인상은 없었다. 빨간 색상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짚이는 구석이 없는 무난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의 가름선을 이용해 읽은 부분을 표시하려는 순간, 이 책의 표지에 대한 인상이 바뀌게 되었다. 그제서야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가 이 책 그자체의 이미지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또하나의 책에 존재하는 파란 가름선이 이 책에 실제로 존재하는 파란 가름선과 서로 우연일리는 없었으니까. 나는 그제서야 둔하게도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이 책의 제2장을 읽던 중, 이 책의 표지를 우연히 불빛에 비춰보게 되면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되었다. 이 책의 표지, 즉 저 파란 가름선 안의 책 이미지에 빛이 닿아야만 보이는 은빛으로 이 책에 대한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이 책의 주제를 이미지로 멋지게 표현한 셈이였다. 

내가 표지에 이렇게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씩 그 숨겨진 의미를 깨달아갔기 때문이였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여느 소설들처럼 그 4장의 서술방식이 모두 한가지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1장은 1인칭, 2장은 2인칭, 3장은 3인칭, 4장은 여러시점들이 뒤섞인 형태로 서술된다. 그래서 처음에 제1장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의 표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가 내 흥미도 끌지 못했다. 제1장까지만 하더라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의 평범한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제2장을 읽게 되면서부터 이 책의 표지는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미지로 남지 않았다. 제2장부터 이야기는 갑자기 급변하면서 제1장의 이야기는 주인공 워커의 자전적 소설이자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꼭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처럼 말이다. 

이 책은 이런 액자구성과 다양한 시점의 변화 이외에도 작가의 이런저런 실험정신이 묻어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그런 실험정신이 작가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아주 보편적인 방식으로 서술을 하되 거기에 약간의 독특함으로 포인트를 줬다랄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특히 제2장에서 애덤이 그의 어린시절과 그의 요절한 남동생 앤디를 추억하는 장면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을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정성스런 장치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필요없는 장식으로 보였다. 그래서 차라리 그런 부분들을 과감하게 정리했다면, 이 책에서 그의 간결한 문체가 더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호하다. 결말에서조차도 그것들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다만, 등장인물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진실과 거짓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결국 독자들의 판단에 진실을 유보하고 있는 셈이랄까. 이 책은 제1장에서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중심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제2장부터는 그 사건의 뒷 이야기와 사소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에 드러난 텍스트만으로 사실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제1장을 모두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더 쉬워진다. 하지만 그 텍스트 안에 스며있는 진실을 찾아 해석하는 것은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독자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도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작가인 폴 오스터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개개인이 경험과 받아들이는 입장 등에 따라 각자에게 느껴지는 진실은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이란 이런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진실 말이다.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요근래 가장 인기있는 작가중 한명이기에, 그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흥미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그와 만날 기회는 자꾸만 미뤄져 버렸다. 그러나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그의 책과도 마침내 이렇게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어째서 그가 이렇게 인기있는 작가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간결하지만, 풍부한 감성을 담은 문체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직 이 책 한권만으로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그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그의 책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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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을 읽는 40가지 방법
그레첸 루빈 지음, 윤동구 옮김 / 고즈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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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을 처음 안 것은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사주신 위인전집 덕분이였다. 삽화와 사진이 중간중간에 나오는 40권짜리 전집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칠편은 특히 삽화가 꽤 마음에 들어 종종 읽곤했다. 하지만 당시엔 군인을 거쳐 정치가가 된 사람이 왜 이렇게 위인전집에 나올만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고, 또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처칠편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만 몇번씩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책의 뒷부분에 무슨 이야기가 써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처칠의 진면목은 그 정치계 입문 이후에 있었기에 어린날의 나는 알짜만 쏙 빼놓고 읽은 셈이였다. 그래도 그때 처칠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이 완성 되었으니 그다지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만일 그 어린날의 기억조차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테고, 그랬다면 내가 모르던 처칠에 대한 부분을 보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처칠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제법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처칠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과 부정적인 관점을 모두 게재하며 처칠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자 노력했다. 덕분에 처칠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을 동시에 이해하고 처칠에 대한 내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해 갈 수 있었다. 물론 작가자신이 처칠광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객관성을 잃고 처칠의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할때도 있었지만, 그런부분들은 작가의 팬심으로 보고 넘어갔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사진자료들도 좋았고, 한 인물에 대한 전기가 어떤식으로 강조되고 왜곡되는지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이 책 덕분에 처칠을 위대한 위인이라는 존재에서 나와 같은 한 사람이라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알던 처칠은 어린시절의 철부지 처칠과, 나이가 들어 영국 수상자리에 올랐던 처칠 이 두가지의 모습뿐이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사이사이에 있는 처칠을 알게 되면서 꽤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읽었던 위인전기에서는 어느 부분에서도 처칠이 거만하고 독선적이며 명예욕과 야망에 가득차있었으며 인종차별주의자에 사치했던 사람이라고 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위인전기에서 어떤 바보같은 사람들이 그런 내용을 다루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그 간극이 너무 컸다. 내가 기억하는 처칠은 자신의 팔뚝살을 부하의 치료를 위해 떼어줄만큼 용감하고 착한 사람이었으니까.(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그 위인전기 작가의 창작같다.) 게다가 처칠이 그렇게 성격이 괴팍했다는 건 그의 어린시절에 한정된 것일 줄 알았는데! 새삼 세살버른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버릴데 하나 없는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단점은 소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에 최소한 "거만함"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 처칠이 정말 성격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마치 담임선생님들이 되도록 생활기록부에 긍정적인 말을 써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웬만하다면 그의 공을 부각시키고 과는 덮어주려는 것이 전기의 미덕일텐데 오죽하면 긍정적인 전기에서도 부정적인 전기에서도 그런 말들이 계속 따라 붙겠는가. 그런데 그런 거만함에서 나오는 독선과 괴팍함 덕분에 그 자신과 영국의 난국을 타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히틀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독선적이고 괴악한 성격의 사람이 딱 맞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나를 통해 상대방의 수를 생각한다랄까? 이렇게 히틀러나 처칠이나 둘다 가까이 가고 싶은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볼 때 위인과 악인은 백지 한 장 정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인도사람들에게는 히틀러나 인도독립을 끝까지 반대한 처칠이나 똑같을테니, 어쩌면 백지 한 장 차이 조차 안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평범한 한 사람으로써의 처칠은 내가 싫어하는 요소는 다 갖추고 있었지만, 정치인으로써 그는 유능했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이였다. 자신의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조국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따위는 버리고 넢죽 엎드릴 릴 줄 알았고,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의지가 있었다. 그의 귀족 혈통에서부터 비롯된 자존심과 거만함을 생각해볼 때 이런 그의 태도는 꽤 대단하다고 본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나라의 현실을 봐도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힘있는 자에게는 엎드릴 정치인들이 발에 채일만큼 많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과 안위를 내던질 정치인들은 많지 않지 않은가. 비록 야심에 가득차 있었고, 명예욕에 목말라 있던 처칠이지만 그런 것들을 이렇게 모두 자신의 조국을 위해 쓸 줄 알았던 모습은 그가 어째서 위인전에 오를만한 인물이였는지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처칠같은 존경받을만한 정치가가 한명 나타났으면 좋겠다. 처칠같이 성격이 괴팍하면 좀 곤란할 것 같지만. 

"가장 운 좋은 세대는 동질성을 갖는 세대로서, 한 시대라는 영역에서 안정적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는 세대다. 반대로 불운한 세대는 두 시대에 걸쳐 있는 세대다" 리턴 스테리이치의 말이다. 이 문장 이상으로 처칠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영광과 그 추억에 대한 믿음을 원동력으로 힘을 얻었지만, 미래를 외면했기에 실각했던 처칠. 그가 한세대에만 머물렀다면 그는 전쟁영웅으로만 기억될수도 있었고, 혹은 실패한 정치가로만 머물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세대를 살았기에 그는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를 잊는 시대의 상징이 된 느낌이다. 그래서 탐탁치 않게 느껴지는 그의 인간적인 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가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면 그 당시의 처칠이 처한 환경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처칠의 시니컬한 농담과 재치들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상으로 유쾌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던 그의 저서들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작가로써의 그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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