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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한 입의 과학 - 달콤 살벌한 소화 기관 모험기
메리 로치 지음, 최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3월
평점 :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때쯤 엄마는 계몽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사줬다. 10권 남짓한 그 책은 칼라에 도판도 이쁘장 했는데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된 부분이 많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람의 소화관에 대한 그림인데, 소화관의 장기들이 하는 일을 작은 요정들로 치환해서 우리 몸안으로 들어온 음식물들이 어떻게 빻아지고 옮겨지고 흡수되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그 그림을 보고 그렇구나, 내 몸안에는 있는 요정들이 이런 일들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철썩같이 믿었더랬다. 물론 이 믿음은 얼마 뒤 엄마의 설명으로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이때의 아기자기하던 소화관 그림이 기억에 생생하다.
이 책은 내가 철썩같이 믿었던 바로 그 요정들의 실체, 즉 소화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으로 들어가서 밑으로 나올때까지의 구구절절한 소화관들의 사연을 유쾌하고 명랑한 필치로 풀어놓아 평소 과학관련 도서의 높은 허들에 부담감을 느꼈던 나같은 사람조차 아주 쉽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감히 장담컨데 이보다 더 쉬운 과학관련 도서는 없다고 봐도 좋다. 메리 로치같은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세속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탐구정신을 가진 사람이 초중등 생물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했다면 내 생물성적은 물론이고 내가 과학과 이렇게 멀어진 사람은 되지 않았을텐데 아쉬울 뿐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였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였는걸.
일단 이 책은 목차부터 범상치가 않다.
1 알고 보면 다 코가 하는 일이다
2 주인님, 저는 썩은 고기 맛을 먹겠어요
3 간을 둘러싼 오만과 편견
4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면 나랏빚도 갚는다
5 위, 위산 그리고 두 남자의 애증
6 더러운 침, 무서운 침, 착한 침
7 입으로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해요
8 고래에게 잡아먹혀도 살아남는 법
9 먹이의 역습
10 너무 많이 먹어서 죽은 사람들
11 밀수범의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 소화관
12 경고! 폭발할 수 있습니다
13 사람은 죽어서 장내 가스를 남긴다
14 냄새 고약한 장내 가스, 정말 나쁠까
15 나오는 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나요?
16 엘비스 프레슬리, 변비로 죽다!?
17 완벽하게 고쳐줄게, 역겨운 것만 참는다면
게다가 목차 바로 뒤 부터 시작하는 본문의 구성은 더 심상치 않은데, 페이지마다 각주가 어마어마하게 달려 페이지의 삼분의 일 가량은 기본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각주 많은 책은 독서 중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서 좋아하지 않는지라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나 약간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내 우려와 달리 각주의 내용은 굉장히 재밌었다. 보통 각주에는 단어나, 용어설명, 혹은 출처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의 각주는 그런 내용들 외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들이 미주알 고주알 다 들어가 있다. 격투 중 상대방에게 물어 뜯겨 손가락 관절을 절단할 일이 생긴다면 남은 인생 평생 성질죽이고 평탄하게 살 수 있게 가운데 손가락인 편이 나을거라는 둥, 미국의 복잡한 의료 단체 이름을 비꼬는 말장난이라던지 등등. 강의 중 삼천포로 빠지지만 결국 다시 본문의 내용과 연결되는 저자의 폭풍 수다는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였다.
인상깊었던 내용 몇가지를 언급하자면 우리가 음식을 먹을때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혀로 보는 맛보다 귀로 들리는 음식이 부서지는 소리라는 것과 성경에 나오는 고래(정확히는 큰 물고기)에 삼켜졌던 요나설화는 위로 씹는 운동을 하는 고래 소화관 구조상 있을수도 없는 얘기라는 것, 대장질환 치료는 물론이고 체중감량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대장이식 수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최근들어 섬유질에 대한 이야기가 확 줄어든 것은 섬유질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거의 쓸모없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의학계에선 아주 오래전부터 섬유질을 회의적으로 바라보았지만 관련 상품을 파는 기업들이 섬유질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욕과 환상을 부추겼을 뿐이라는 것, 구강내의 세균을 없애준다는 구강 세척제나 대변을 원할하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제품들 역시 섬유질과 비슷한 이유로 거의 효과가 없는 허황된 제품이라는 이야기는 내가 알던 상식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라 아주 놀라웠다. 사람이 대중매체에 의해 바보가 되고 조종당하게 되는건 정말 한순간이구나 싶었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문에 죽음에 변비도 한 몫했을거라는 주장이나 이슬람 자폭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위로 꿀꺽 삼켜 이동한다는 내용이였다. 엘비스의 경우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그 터질듯한 뱃살이 변비 때문이였다고 생각하니 이미 고인임에도 참 측은하게 느껴지다 못해 그의 엉거주춤한 춤사위 마저도 왠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이슬람 자폭 테러리스트의 경우 힘들게 삼켜낸 폭탄임에도 자기 자신의 신체가 보호막이 되어 비행기내에서 터뜨려봤자 기껏해야 자기 좌석밖에 못 날린다고 하니 그들의 어리석은 노고조차 안타까웠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며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그럼 최소한 폭탄을 삼키는 고통은 감내하진 않아도 될테니 말이다.
저자 메리 로치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은 순전히 자기취향의 주제로 집필했지만 비위가 약할지도 모르는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좀더 엽기적인 주제까지 연구하고 싶은걸 가까스로 참았다고 언급한다. 그녀가 똥꼬발랄한 탐구심에 반한 내 입장에선 그런 배려심을 발휘하지 않아 줬더라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노말한 수준의 책이 탄생하였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우스개 소리로 똥, 오줌, 토사물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농담거리라고 하는데 여기에 현대과학을 기반으로 즐겁고 유쾌하게 소화관을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웃음으로 승화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소화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물학이나 과학도서에 관심이 있는 사람, 단순히 재미있는 책을 찾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 내가 마치 이 책에 등장하는 만병 통치약을 파는 돌팔이 약장수 같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