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코코야라는 작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여성 셋의 이야기다. 음식이름에 빗댄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 책의 주요소재는 음식이고, 각 장 별로 매번 다른 음식들과 식재료들의 이야기가 코코야를 배경으로 소박하고 맛갈나게 펼쳐진다. 다만, 그 음식 이야기들에 빗대어 이어지는 그녀들 개개인의 이야기는 때로는 달콤짭짤하기도 하고 한없이 씁쓸하기도 하다. 한 사람이 60년이란 인생을 살면서 만들어진 역사는 아무리 평탄하게 살았다 한들 마냥 달콤한 비단길만은 아니였을테니까.
 
바람난 남편과 이혼하고 8년이나 지났음에도 헤어진 전남편을 잊지 못하는 코코야의 주인 코코, 30년전 자신을 버린 첫사랑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독신여성 마쓰코, 30여년전에 죽은 어린 아들과 그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원망하던 남편을 잃은 이쿠코. 이 셋의 인연은 코코야의 새 종업원으로 이쿠코가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셋은 서로의 개인적인 사연에 대해서 깊이 알려하지 않지만 비슷한 연령대와 홀로 산다는 처지, 그리고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은 판이하게 다른 성격으로 셋은 금새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들 사이에 평화가 미묘하게 깨진 것은 쌀집 청년 스스무가 코코야로 쌀 배달을 오면서부터다. 셋은 동시에 스스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코코는 스스무군을 보며 전남편을, 이쿠코는 오래전에 죽은 아들을, 코코는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세사람의 내면을 짓누르고 있던 인생 이야기가 마치 베일이 벗겨지듯 한꺼풀씩 드러난다. 

나는 이야기 중반까지는 코코와 이쿠코에게 짠함과 답답함을 느꼈는데 종반에 치달을때는 마쓰코에게 고구마 열개 먹고 목이 꽉 막힌 답답함을 느꼈다. 중간과정이야 어찌됐든 코코와 이쿠코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정리했것만 마쓰코의 결말은 불구덩이 속으로 짚단을 짊어지고 뛰어드는 꼴이라 참으로 입이 썼다. 30년간 첫사랑을, 그것도 중간에 자신을 버리고 결혼하고 이혼까지한 남자를 기다린 마쓰코의 순애보도 어느순간 애정이 아니라 집착처럼 보일 정도였는데 정식으로 사귀고 나서도 자신과 약속을 멋대로 펑크내고 연락조차 안하는 남자를 끝까지 좋다고 물고불고 하는걸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30년간 모든 문제를 그런식의 잠적, 혹은 연락끊음으로 해결해온 남자는 결국 결혼 후에도 그럴거라는걸 모르나? 아, 정말 지 팔자 지가 꼰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가 보다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직전에서야 작가가 채굴장으로를 집필한 이노우에 아레노라는 것을 알고 잠시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채굴장으로를 읽지는 않았지만 왠일인지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불륜이나 젊음의 방황에 대해 겉멋이 든)이 강한 작가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쳐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이왕 읽으려고 맘 먹은거 끝까지 읽어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 작가 섬세한 묘사나 직접적인 대사 표출은 거의 없는데 이야기를 조이고 끊으며 풀어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일상적인 문장들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문장을 쓸 줄 아는 작가랄까. 일본 특유의 감성도 담백한 편이다. 다만 문장 중간중간에 과도한 첨언을 넣은 것은 상당히 눈에 거슬렸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영화든 드라마든 영상물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카모메 식당이나 빵과 고양이와 스프, 같은 류의 드라마나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 연령대를 중년여성으로 내려서 스스무군과의 로맨스가 미묘하게 형성되는 것도 재밌을 것도 같고. 물론 지금 이대로 만들어져도 완벽할 것이다. 일단 당분간은 혼자만의 바램으로 묻어두고 이노우에 아레노의 다른 책들부터 탐독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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