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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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생긴 에피소드를 따스한 시선의 4컷만화로 엮은 책이다. 4컷 만화가 주된 내용이지만 중간중간 작가의 수필들도 함께 실려 있으므로 만화책과 수필집의 중간형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페코로스는 일본어로 동그랗고 작은 알양파를 뜻하는데 대머리인 작가에게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이 책은 본디 작가 본인의 사비를 털어 조촐하게 출간했으나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모자라 다큐멘터리에 영화까지 제작되었는데, 한국어판 표지에는 이와 관련된 홍보 내용이 표지에 화려하게 인쇄되어 있다. 나는 바로 그 홍보문구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됐다.

우리집은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신 할아버지를 10년간 병수발하며 돌본 기억이 있다. 그 10년간은 온 가족이 진이 빠져 집에만 매여 있어야 하는 암울한 시기였다. 환자가 있으니 그 어떤 휴가도 여행도 즐길 수 없었고 모든 생활의 계획은 환자를 중심으로 짜여져야만 했다. 당연히 신체적인,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굉장했다. 그 이후엔 치매가 온 외할머니를 한달가량 집에서 모시게 됐다. 신체적으론 건강하셨으나 정신적으론 건강하지 못한 할머니를 돌보는건 할아버지를 돌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였다.  

그러니 이 책 속의 어머니처럼 뇌경색에 치매까지 함께 온 노인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신체적인 괴로움만큼 정신적인 괴로움도 크겠지. 그럼에도 작가는 괴로움을 넘어 어머니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작가가 얼마만큼의 번민 후에 이렇게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됐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어머니가 작가 본인을 못알아보실땐 모자를 벗어 자신의 대머리를 보여드리면 단번에 알아보신다던가, 어머니가 허공에 대고 헛소리를 하셔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하시는 것 같다며 이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내가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새삼 반성하게 됐다. 

역자는 역자후기에서 이 책을 번역하고 아마존 재팬에 달린 수많은 감상평 다 읽어봤는데 단 한사람의 악평도 없이 칭찬일색이였다며 이 책에 갈채를 보냈으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일본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니까. 이 책의 작가 본인이나 부모님 모두 나가사키 지역 태생으로 이야기는 주로 어머니의 기억을 통해서 이어지는데 치매노인이라는 특성으로 인해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이야기 구조가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어머니의 과거에 얽힌 주요소재가 원폭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후반부에 가서는 2011년 일어난 일본 대지진 사건까지 이입되어 일본인은 원폭에 대한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더욱더 공고해지니 한국인인 나로써는 상당히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이 원폭으로 엄청난 피해를 받고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이 패전하기 전까지 그들은 다른 나라 국민들을 착취하여 그들의 욕심을 채웠음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들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지지한 정부와 군부가 세계2차 대전의 전범국이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전후 에피소드가 나올때마다 식은밥 한덩이 먹고 얹힌거 마냥 가슴이 답답했다. 이 만화는 어머니의 치매를 주제로 한 휴머니즘 만화였것만 작가가 원폭과 대지진을 결부시키는 에피소드를 그린 순간부터 길을 잃고 말았다. 자신들을 철저하게 제2차 대전의 피해자의 시각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와 다를게 없어져 버렸으니까.

비록 끝맛이 찝찝하긴 했으나 저자의 태도라던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배울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자 오카노 유이치의 책을 더 읽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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