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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표지만 보고서 추리나 미스테리 장르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미치오 슈스케의 전작들 대부분이 추리나 미스테리 장르의 소설이였기에, 이 책 역시 그런 장르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껏 머금은 짙은 푸른빛깔의 표지 역시 그런 내 추측을 더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산과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속에 내던져진 세 소년소녀의 성장이야기였다.
어린시절에 학교마다 유행하던 괴담이 있었다. 입 찢어진 여자라던지, 홍콩할매귀신이라던지 같은 것이였는데, 이 학교에서 좀 수그러들라치면 바로 옆에 학교에서 유행하고 또 그 옆에 학교로 옮겨 다니다 결국 최후에는 다시 그 괴담이 되돌아오는 그런 식이였다. 하지만 괴담이 다시 되돌아 올 때 즈음에는 그 소문에 대한 기억들이 거의 잊혀져 있어서, 그 이야기들은 다시금 우리에게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급기야 그런 괴담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잡혀가지 않게 조심해야할 사항들까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을 정도였다.
지금같으면 인터넷을 검색해 냉큼 그 소문의 진위에 대해서 찾아보겠지만, 당시엔 그런 시스템조차 없었으니 그런 소문들에 벌벌 떨던 나를 포함한 꼬맹이들은 쉽게 진정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 시절엔 그런 소문들을 부채질 하는 책들도 어찌나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책을 읽는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기억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나를 신이치와 하루야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데려다 주었다. 그런 괴담들에 휩쓸리고, 믿고, 소원을 빌던 그때의 나로써 말이다.
신이치와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는 그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곁에 있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평범하지 못했다. 모두 하나씩의 결핍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쉽게 괴담에 휩쓸리고, 그것에 자신들의 내면을 투영해 토론하고 기대하고 실망한다. 그리고 급기야 그런 괴담들에 의지해 소라게를 태우며 소원을 빌게 된다. 그런 일들은 분명 그 아이들이 행복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들이였을 터였다. 하지만 그 소원을 비는 행동들은 마침내 서로를 향한 질투와 갈등으로 서로를 상처입히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상처에 대해 알고 있다. 성장을 하기위해선 감내해야할 고통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세아이들 역시 그 상처를 발판삼아 한단계 성장해 나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들 중, 유독 우습고 어리석은 기억들이 이 괴담에 얽힌 것들 같다. 하지만 그런 기억과 경험들이 모여 내 어린시절을 형성했고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발판이 되었으니, 그 모든 것들은 모두 소중한 나의 파편들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 책의 주인공인 신이치와 하루야와 나루미에게도 그럴 것이리라.
이 책을 읽으며 전형적인 일본감성을 담은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귀 기울이면"과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쪽은 자아찾기라는 주제를 담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고, 한쪽은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감성을 담은 이야기, 그리고 한쪽은 너무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다른 한쪽은 너무나 싫어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내 감정안에서 충돌했다.
물론 평범한 자아찾기라는 소설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본적인 감성이 꽤 강해서 쉽게 와닿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다. 신이치가 사람들에게 꺼려지는 이유가 나루미의 어머니가 신이치 할아버지 쇼조가 몰던 배를 탔다가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라던가,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라게를 태우는 장면들은 한국인인 나로써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본의 문화로써는 가능한 일들인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이렇게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와 오버랩되는 장면들이 많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담담하면서 섬세한 문체는 나를 이 책의 끝까지 이끌어 주었고,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