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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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재의 영화와 소설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영화와 소설들은 주로 기계에게 인간이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다루었는데, 이런 소재들이 한동안 계속적으로 쏟아지고 흥행가도를 달린 것을 보면 당시 대중들에게 꽤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로 각광 받았던 것 같다. 또 2000년 전에는 밀레니엄 버그같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요소들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같은 미신들이 우리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던 때인지라 이런 소재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이렇게 주류를 이루던 SF 영화와 소설들은 2000년도를 넘어가면서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 영화와 소설들에서 다루었던 미래가 되었지만 결코 그런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제 이런 SF적 소재는 너무 반복되어 식상한 주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식상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닳고 닳은 소재라도 작가가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이야기의 힘이 달라진다는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덕분이였다. 사실 나는 가끔씩 이렇게 뻔해보인다는 편견과 의심으로 섣부른 결론을 냈다가 읽고 후회하는 책들이 종종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류의 책이였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에 내가 짐작했던 내용들을 죄다 비껴나갔다. 결론에 대한 포석들로 인해 결말에 대해 약간은 눈치를 챌 수 있었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결말 모두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책은 처음 예상보다 얇았으며, 내용은 기존 SF소설들과 달리 어렵지 않았고, 또한 화자가 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에 문체 역시 부드러웠다. 이 역시 모두 내가 그동안 접했던 SF소설들과 많이 다른 느낌들이였기에, SF란 장르에 압도당하지 않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액자구성을 통해 동시에 두가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2058년을 배경으로 아낙스가 공화국의 최고지성집단인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치르면서, 공화국의 역사적 인물 ‘아담’에 대한 이야기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둘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처음에는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에 대해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갖게 됐고, 그것이 둘을 잊는 접점이자 이 이야기를 이루는 주축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접점의 밑에 흐르는 갈등이 이 책의 주제라는 것을 곧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이 두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고 대화체 역시 간결하며 이야기의 흐름은 정적이였다. 하지만 그 잔잔한 표면 밑에서는 막 터져버리려는 갈등이 들끓고 있음이 등장인물들의 대화 곳곳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 왜 아낙스가 아담에 대해 끌릴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터지면서 그 갈등의 반전이 나를 압도해 버렸다.  

그동안 내가 접한 SF장르의 소설과 영화들은 대부분 흥미롭고 재미 있었지만, 그 작품들의 결말 후에 이렇게나 내 마음이 불편하게 만든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접한 대부분의 영화와 소설 작품들은 SF의 표면적인 이미지 묘사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주로 집중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SF의 내면적인 요소에 대해 치중을 했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 역시 인간과 기계의 본질에 대해 묻기보다는 서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긴박한 목적성에 주목했던 것이 대부분이였다. 그래서 간혹 인간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성이 결여된 미래 사회의 승리로 이야기의 결말이 나더라도 내 마음이 불편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표면적인 SF적 요소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본질에 대해 똑똑하고 잘나빠진 기계가 바로 그 인간이 본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은 내 폐부가 찔려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마치 내 본질이 공격받은 것 같은 그 느낌이 나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가 그런 논리적인 공격을 받는 아담과 같은 인간이였기 때문에 오는 필연적인 느낌이였을 것이다. 사실 작가는 인간이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요소를 기계에게 남겨 놓음으로써 미묘한 인간의 승리가 엿보이는 결말을 보여주긴한다. 하지만 그 실날같은 승리의 느낌조차 나를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만들수는 없었다. 이 공격으로 받은 상처는 앞으로 시간을 갖고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치유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제학 전공 출신에 과학 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버나드 베켓은 현재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이 책 한권만이 유일한 그의 저서로 번역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의 다른 책들을 번역본으로 만날 수 없는 것이 꽤 섭섭했다. 그의 담담한 문체와 주제의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에 통달해서 그의 저서를 원서로 읽게 되는 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 같으니, 부디 앞으로 그의 저서들을 한국어로 많이 접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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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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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뱀파이어에 대한 기억들 대부분은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라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TV에서 뱀파이어 영화를 해주는 날이면 덜덜 떨며 영화를 보고 그 잔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곤 했다. 이런 나의 뱀파이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게 된 것은 1993년에 개봉한 게리 올드만 주연의 “드라큐라”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로 등장한 게리 올드먼은 뱀파이어를 기존에 피를 빨아대는 무서운 괴물의 이미지에서 평생토록 한 여자만을 가슴에 담은 채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애절한 남자의 모습으로 내 기억속의 괴물 이미지를 탈바꿈해 해주었다. 이후, 내 안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서 조금씩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가던 뱀파이어들이 마침내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나타났다. 이 책 수키 스텍 하우스 시리즈도 이런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뱀파이어들은 세상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합성혈액이라는 것이 개발되면서 인간의 피를 빨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려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뱀파이어들을 꺼리고 배척한다. 심지어 뱀파이어의 피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동안은 괴물로써의 이미지로 세상에 소수자였다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존재로서의 소수자로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런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웨이트리스 수키는 뱀파이어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사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는데, 이 능력이 사람들과의 교류를 막는 일종의 장애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상황은 뱀파이어역시 자신과 같은 세상의 소수자라는 일종의 동질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수키는 우연히 뱀파이어 빌을 만나게 되고, 오직 그의 마음만이 자신에게 들리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곧 놀라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점점 발전한다. 빌 역시 자신을 배척하지 않고 선입견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의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생기는 문제라면 취향의 차이라던지 상대방의 가족이 다른 한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뱀파이어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게 되자 차원이 다른 문제들이 일어난다. 수키의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뱀파이어와 사귄다는 이유로 꺼려하고, 빌은 수키라는 존재로 인해 다른 뱀파이어들의 이런저런 시달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으로 이런 크고 작은 갈등과 문제들을 잘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이 연쇄살인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터지고, 수키 역시 연쇄살인마의 목표물이 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런 위험에서 빌은 최선을 다해 수키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수키역시 이런 빌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해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당차고 속깊은 아가씨답게 빌의 도움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결말로 빌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 

보통 빌처럼 절대적인 힘을 지닌 남자주인공이 연인인 설정에서 대부분의 여자주인공 캐릭터는 사건의 주변인에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수키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 인상깊은 캐릭터였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빌보다 더 용감하며, 자기주도적인 모습이 여타의 다른 여자 캐릭터들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빌 역시 기존의 뱀파이어라는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캐릭터로, 먹고 살아가는 것과 집단장에도 열중하는 등 세속적인 그의 모습과 관심사에서 과거의 내 어린시절을 주름잡았던 무서운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내가 어린시절에 느꼈던 공포심으로 범벅이 된 뱀파이어를 되돌려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여주의 도움으로 목숨까지 구하게 되는 일도 벌어지니 말이다. 이런 빌의 모습과 강단있는 여주인공 수키의 모습에서 세상의 고정관념과 뱀파이어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변화는 한편으로 씁쓸함을 안겨줬다. 뱀파이어가 이렇게 순화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중 하나가 우리 사람들의 성향이 그들보다 더 악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소수자이고 사악한 성향도 갖고 있지만 함부로 사람과 자신들의 동료를 죽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인간들보다 더 법과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고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단순히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음해하고 소수자라고 배척한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인데도, 뱀파이어들과 비교해보면 참 못되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사실 요즘 각광받고 인정받는 공포영화들에는 더 이상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괴물들의 자리는 사람들이 매우고 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이 우리에게 더 친밀히 다가오고,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우리곁에 스며든 것은 이런 팍팍한 상황들의 반증이 아닐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소설적인 요소까지 양념으로 쳐져 이야기에 매력을 더하고 있고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간결한 필체와 깔끔한 이야기 구성 역시 맘에 들었다. 다만 주변과 사물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 읽는 동안 조금 곤란을 겪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들이 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못하므로 뱀파이어와의 로맨스 물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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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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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은 한통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예순을 넘기신 아버지가 금발에 왕 가슴을 가진 우크라이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믿기 힘든 선언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 여자에겐 어린 아이도 하나 딸려있댄다! 오~! 아버지, 노망이라도 나셨나요! 어머니와 사별하신지 2년이 지났기에 재혼하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 하필 상대가 그런 여자냐구요! 아버지를 이용해먹으려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그런 여자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저런 전화를 받는다면 주인공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나라면 저 전화가 걸려온 시점에서 그 상대여자인, 발렌티나한테 쫒아가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서로의 코에서 빨간 시럽을 뿜어내며 아웅다웅했을 것이다. 책속의 아버지 니콜라이는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두 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내내 자식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만, 나와 비교해본다면 정말 천사같고 이성적인 딸들 아닌가?  

사실 읽는 내내 이렇게 나에게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게 만드는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책의 특이한 제목 때문이였다.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 대체 무슨내용일까? 책의 제목만 봐서는 쉽게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우크라이나의 농부가 쓴 수필인가? 아니면 농기계 전문가들의 수기 모음인가? 아마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느끼는 감정일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오죽하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서점들이 이 책을 문학 쪽이 아니라 기술 쪽에 분류해 놓았겠는가.  

이렇게 오랜 세월 책과 동거동락 했던 서점가 사람들조차 헷갈려 한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가 재혼하겠다는 이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이해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는 주제로 사회체제의 문제, 이민문제, 빈곤, 가난, 전쟁의 참혹함 등등 과거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들을 고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유물같이 느껴지는 문제들이 현대사회에 지구 어딘가에선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진 이중성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지한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버지의 황당한 전화한통으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결국엔 나름대로 해피엔딩이 되었고, 독자인 나로 하여금 재미와 읽은 보람을 느끼게 해줬으니 그 아버지의 전화는 꽤 괜찮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와 책속의“나”는 이런 나름의 결과를 내기 위해 혈압으로 중간에 몇 번이나 터질 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 니콜라이가 명을 다해 하늘나라로 떠난다면 그의 아내에게 부탁 하나를 하고 싶다. 로우킥을 한번 날려달라고. 머리카락을 한웅큼 뜯어내도 괜찮을 것 같다. 미안해요, 니콜라이. 난 아직까지도 당신이 싫어요! 부디 하늘나라에선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을 고치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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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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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후세계를 믿습니까? 사이비단체에서 사람들을 꾀어내는 데 종종 쓰이곤 하는 이 익숙한 짧은 문장을 화두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의 경우엔 사후세계를 믿는다. 사실 나는 사후세계를 믿던 안 믿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믿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내가 사후세계를 믿기에 그때를 대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바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옳다고 믿기 때문이고 내 스스로가 순간순간 떳떳해지기 위해서다. 내세를 대비하여, 혹은 사후세계를 대비하여 착한 일을 하고 바른 삶을 산다는 것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 결국 위선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내용은 나에게 쉽게 와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사유세계라던가, 자아성찰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읽는 내내 손발과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네 중학교 책에 써 있음직한 내용을 마치 심오한 철학을 나누는 것처럼 묘사된 내용들이 낯간지러웠기 때문이다. 그것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그 느낌과 지루함의 농도는 점점 짙어졌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주인공이 사망 후, 사후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설명하기 위해 그런 내용을 열거했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중후반부로 넘어 갈수록 그게 아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반복되는 내용들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주제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속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책의 홍보문구대로 이 책은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같은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서 벌어지는 긴박하고 스릴넘치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일 것이라고 믿었것만, 현실은 한없이 늘어지고 제법 따분하기까지한 사랑이야기가 1%남짓 들어가 있으며, 스스로가 몹시 철학적이라고 믿는 소설 책이였다.  

물론 주인공 크리스와 그의 사랑하는 부인 앤의 희생적인 사랑이야기는 좋았다. 하지만 그 사랑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반복해서 비슷한 에피소드를 계속 나열한 것은 지루했다. 그리고 사후세계의 이야기로 책 분량의 3분에 2이상을 잡아먹은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 아니였다. 차라리 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크리스와 앤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해서 긴박하게 소설을 구성했다면 훨씬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이 책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사후세계에 대한개념과 자아성찰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비록 그 내용이 우리에겐 너무 낮은 수준의 사유였기에 책의 내용이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이 책의 역자는 이런 작가의 주제의식 덕분에 이 책이 사랑과 영혼같은 통속적인 러브스토리가 되지 않았다고 평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과 영혼을 보고는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지만 이 책을 읽고는 지루함에 눈에 눈꼽만 가득 꼈을 뿐이다. 사람마다 보는 시선과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최소한 나에게 이 소설은 밍밍한 쥬스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작가의 동양에 환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땅치 않았다. 서양만세 같은 사상은 현세에서면 충분하다. 사후세계에서까지 서양만세를 외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런 고로 아마도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크리스의 아내사랑과 작가의 부드러운 글 솜씨 뿐 이였다고 기억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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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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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의 배경인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겐 사막저편에 존재하는 너무나 막연한 나라니까. 그저 가끔 TV를 통해 스치듯 보게 되는 것이 전부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의 나라라는 것 정도? 그리고 대부분의 중동국가들이 그러하듯 종교적인 이유로 여인들이 온몸을 천으로 감고 다녀야 하는 답답함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게 내가 아는 이란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이였다. 그런데 이 책으로 인해 이란이라는 나라는 불쑥 내 옆으로 다가왔고,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돋구었다.  

이 책의 배경은 1970년대로, 구소냉전시대의 영향으로 여러가지 사상들이 부딪히던 혼란스러운 시절로 사랑스럽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그 시절의 우리네를 보는 것과 같은 이란의 고단한 역사와 삶은 이 책의 이야기가 사막 저편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벌어지는 이웃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비밀경찰 시라크에게 쫒기는 그 시대의 신념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들과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도 계속되는 사람들에 사랑과 질곡한 인생살이는 어찌나 우리 부모님들의 삶과 닮아 있던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다 읽자마자 당장 이란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내가 가진 이란에 대한 지식들이 얼마나 알량하고 형편없는 것들이였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내가 그랬듯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란의 모습과 많이 다른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책은 아름답고 애닮으며 재미있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17살의 “나”라는 사람이다. "나"의 17살이라는 나이는 모호하다.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년도 아닌, 사춘기라는 터널 끝에 위치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아니기에 부모님의 의견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진학해야 했으며, 소년이 아니기에 눈떠버린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으로 가슴 아파해야 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혼란스러운 자아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나” 파샤의 이야기는 이렇게 상징적으로 당시 이란에 모습과 맞물려 결코 가볍지 않은 이란의 역사와 그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쉽게 찬찬히 풀어나가고 있다.

"나" 파샤는 너무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마치 우리 옆집에 사는 평범한 17살처럼 말이다. 다만 사는 곳이 이란이라는 것과 나라에 대해 입을 잘못 놀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며칠 뒤에 불구가 되어 나타나는 시절에 산다는 것이 우리 옆집의 아이와 다를 뿐이였다. 아, 우리나라의 인권에 대한 인식도 이 이야기의 배경과 같은 1970년대로 요사이 회귀하려 하고 있지? 어쩌면 조만간 이 책에 나오는 1970년대 이란과 너무나 닮았던 우리나라 독재권력의 모습과 그 편집증적인 상황들을 다시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면 이 책의 내용이 더 절실하게 와닿겠지. 물론 절대 그런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쨋던지간에 이런 평범한 소년 파샤가 첫사랑에 빠져버렸는데, 이름은 자리요 약혼자가 있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17살 혈기왕성한 청년이라면 그녀의 약혼자와 그녀의 집안에게 파샤의 절친한 친구인 아메드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 덤벼들어 볼 법도 한데 그럴수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그녀의 약혼자가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멘토인 닥터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말 못할 사랑에 빠진 파샤의 가슴은 점점 썩어 문드러져만 간다. 그런데 이런 파샤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찾아오니 바로 그 멘토인 닥터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다가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닥터의 부재로 사랑이 싹트던 자리와 파샤에게 크나큰 충격과 상처로 다가오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변명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꼭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파샤와 자리의 사랑이 이 책의 결말 이후에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둘의 가슴에 담긴 사랑이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기에, 별을 닮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다.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낯설었던 이란이라는 나라를 내 옆으로 찰싹 끌어다 놓았으니까. 사실 그동안 은근히 중동 출신쪽의 작가들에 책을 기피해 왔는데, 그것은 내가 우리나라 소설을 피했던 이유와 같았다. 지나온 세월이, 그리고 지금 지나가고 있는 시간이 참 슬프고 힘들기 때문이였다. 현실의 삶에서 잠깐 도망치기 위해 책을 읽는데, 책에서조차 현실의 각박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거부감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었고, 이제는 중동쪽의 이야기에 대해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읽게 된 테헤란의 지붕은 내 첫번째 중동소설로써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다. 부디 앞으로도 이 책의 작가 마보드 세라지의 책을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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