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모든 사건은 한통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예순을 넘기신 아버지가 금발에 왕 가슴을 가진 우크라이나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믿기 힘든 선언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 여자에겐 어린 아이도 하나 딸려있댄다! 오~! 아버지, 노망이라도 나셨나요! 어머니와 사별하신지 2년이 지났기에 재혼하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 하필 상대가 그런 여자냐구요! 아버지를 이용해먹으려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그런 여자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저런 전화를 받는다면 주인공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나라면 저 전화가 걸려온 시점에서 그 상대여자인, 발렌티나한테 쫒아가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서로의 코에서 빨간 시럽을 뿜어내며 아웅다웅했을 것이다. 책속의 아버지 니콜라이는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는 두 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내내 자식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만, 나와 비교해본다면 정말 천사같고 이성적인 딸들 아닌가?  

사실 읽는 내내 이렇게 나에게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게 만드는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책의 특이한 제목 때문이였다.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 대체 무슨내용일까? 책의 제목만 봐서는 쉽게 내용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우크라이나의 농부가 쓴 수필인가? 아니면 농기계 전문가들의 수기 모음인가? 아마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느끼는 감정일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오죽하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서점들이 이 책을 문학 쪽이 아니라 기술 쪽에 분류해 놓았겠는가.  

이렇게 오랜 세월 책과 동거동락 했던 서점가 사람들조차 헷갈려 한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가 재혼하겠다는 이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이해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라는 주제로 사회체제의 문제, 이민문제, 빈곤, 가난, 전쟁의 참혹함 등등 과거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회문제들을 고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의 유물같이 느껴지는 문제들이 현대사회에 지구 어딘가에선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진 이중성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지한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아버지의 황당한 전화한통으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결국엔 나름대로 해피엔딩이 되었고, 독자인 나로 하여금 재미와 읽은 보람을 느끼게 해줬으니 그 아버지의 전화는 꽤 괜찮은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와 책속의“나”는 이런 나름의 결과를 내기 위해 혈압으로 중간에 몇 번이나 터질 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 니콜라이가 명을 다해 하늘나라로 떠난다면 그의 아내에게 부탁 하나를 하고 싶다. 로우킥을 한번 날려달라고. 머리카락을 한웅큼 뜯어내도 괜찮을 것 같다. 미안해요, 니콜라이. 난 아직까지도 당신이 싫어요! 부디 하늘나라에선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을 고치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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