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1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어린시절 뱀파이어에 대한 기억들 대부분은 피를 빨아먹는 괴물이라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TV에서 뱀파이어 영화를 해주는 날이면 덜덜 떨며 영화를 보고 그 잔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곤 했다. 이런 나의 뱀파이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게 된 것은 1993년에 개봉한 게리 올드만 주연의 “드라큐라”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뱀파이어로 등장한 게리 올드먼은 뱀파이어를 기존에 피를 빨아대는 무서운 괴물의 이미지에서 평생토록 한 여자만을 가슴에 담은 채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애절한 남자의 모습으로 내 기억속의 괴물 이미지를 탈바꿈해 해주었다. 이후, 내 안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서 조금씩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가던 뱀파이어들이 마침내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나타났다. 이 책 수키 스텍 하우스 시리즈도 이런 인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뱀파이어들은 세상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합성혈액이라는 것이 개발되면서 인간의 피를 빨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공존하며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려하지만 인간들은 그런 뱀파이어들을 꺼리고 배척한다. 심지어 뱀파이어의 피에 여러 가지 효능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로부터 살해위협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동안은 괴물로써의 이미지로 세상에 소수자였다면 이제는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존재로서의 소수자로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런 조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웨이트리스 수키는 뱀파이어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사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는데, 이 능력이 사람들과의 교류를 막는 일종의 장애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상황은 뱀파이어역시 자신과 같은 세상의 소수자라는 일종의 동질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마침내 수키는 우연히 뱀파이어 빌을 만나게 되고, 오직 그의 마음만이 자신에게 들리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곧 놀라움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점점 발전한다. 빌 역시 자신을 배척하지 않고 선입견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의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생기는 문제라면 취향의 차이라던지 상대방의 가족이 다른 한쪽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뱀파이어와 인간이 사랑에 빠지게 되자 차원이 다른 문제들이 일어난다. 수키의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뱀파이어와 사귄다는 이유로 꺼려하고, 빌은 수키라는 존재로 인해 다른 뱀파이어들의 이런저런 시달림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사랑으로 이런 크고 작은 갈등과 문제들을 잘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뱀파이어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이 연쇄살인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터지고, 수키 역시 연쇄살인마의 목표물이 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런 위험에서 빌은 최선을 다해 수키를 안전하게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수키역시 이런 빌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해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당차고 속깊은 아가씨답게 빌의 도움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결말로 빌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 

보통 빌처럼 절대적인 힘을 지닌 남자주인공이 연인인 설정에서 대부분의 여자주인공 캐릭터는 사건의 주변인에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수키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 인상깊은 캐릭터였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빌보다 더 용감하며, 자기주도적인 모습이 여타의 다른 여자 캐릭터들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빌 역시 기존의 뱀파이어라는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난 캐릭터로, 먹고 살아가는 것과 집단장에도 열중하는 등 세속적인 그의 모습과 관심사에서 과거의 내 어린시절을 주름잡았던 무서운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쯤되니 내가 어린시절에 느꼈던 공포심으로 범벅이 된 뱀파이어를 되돌려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여주의 도움으로 목숨까지 구하게 되는 일도 벌어지니 말이다. 이런 빌의 모습과 강단있는 여주인공 수키의 모습에서 세상의 고정관념과 뱀파이어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참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의 변화는 한편으로 씁쓸함을 안겨줬다. 뱀파이어가 이렇게 순화된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중 하나가 우리 사람들의 성향이 그들보다 더 악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소수자이고 사악한 성향도 갖고 있지만 함부로 사람과 자신들의 동료를 죽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인간들보다 더 법과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수고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단순히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음해하고 소수자라고 배척한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인데도, 뱀파이어들과 비교해보면 참 못되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사실 요즘 각광받고 인정받는 공포영화들에는 더 이상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괴물들의 자리는 사람들이 매우고 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이 우리에게 더 친밀히 다가오고, 가슴을 지닌 존재로 진화되어 우리곁에 스며든 것은 이런 팍팍한 상황들의 반증이 아닐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대한 추리소설적인 요소까지 양념으로 쳐져 이야기에 매력을 더하고 있고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의 간결한 필체와 깔끔한 이야기 구성 역시 맘에 들었다. 다만 주변과 사물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 읽는 동안 조금 곤란을 겪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점들이 이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못하므로 뱀파이어와의 로맨스 물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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