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변명하지 마라 - 돈도 빽도 스펙도 없는 당신에게 바치는 ‘이영석’ 성공 수업!
이영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다소 돌직구적인 제목이 눈에 보이는 책이다. 저자는 돈도 빽도 스펙도 없는 평범한 한 남자지만 '총각네 야채가게'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으로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서평엔 자기 계발서가 별로 없는데, 사실 다 읽고 나서 서평까지 남길 필요는 없는 자계서들이 많아서 안 남길뿐이지(서평 쓰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 자기 계발서를 인문학만큼이나 열심히 보긴 한다.

 

그런데 사실 솔직하게 말해서 인문학 책과 자계서 둘을 비교해 볼 때, 자계서는 폭탄이 많았고 인문 고전 책들은 깊은 감동이나 느낀 점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 장르를 우위에 두고 싶진 않다. 자계서 책들이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좋은 자기계발서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물론 이 책은 저자 스스로가 자의적으로 자기를 판단한 것에서 객관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성공한 사람의 마인드를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은 철저하게 경험론으로 써져 있었으며, 다른 자계서들처럼 쓸데없는 인용문이나 남의 주장을 주구장창 늘여 놓지 않았다.

 

책은 돌직구와 같다. 다소 저자 성격이 강단이 있고, 뚝심이 있어서 그런지, 책의 어조는 굉장히 돌직구적인 스타일이다. 이런 필법에서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저자의 돌직구가 반가웠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한 자존심에 분개하기보단 저자의 마인드에 비춰서 내 행동을 돌아봤을 때 반성할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근성'이다. 평범하고 가난한 그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다. 우리 20대는 이런 근성이 약하다. 픽 하면 쓰러지고 픽 하면 변명과 합리화에 익숙한데, 그런 부분에서 저자의 일침은 새겨들을 만 했다. 모든 일에 근본은 성실함과 근성이다. 재능과 환경 역시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 끝내 이기는 사람은 근성이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튼, 정신력이 나약하고 근성 없는 사람들은 저자의 글이 좀 오만하고 불편하게 들릴지라도 진지하게 경청하여 읽는다면,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자기 계발서였고, 언젠가 한 번 저자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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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파잡기 - 개성 한량이 만난 평양 기생 66인의 풍류와 사랑
한재락 지음, 이가원.허경진 옮김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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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기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여성들이 보기에 굉장히~ 거북스러운 주제를 가지고 있는 고전이다. 개성 출신 부유층 한량이 평양의 기생 66명을 만난 썰을 풀어놓은 것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녹파라는 말은 평양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비슷한 주제의 책으로 명나라 말기에 <판교잡기> 라는 책이 있다. 그 책 역시도 풍류와 음풍을 읊고 있는 책인데, 뭐 그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아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홍루몽 - 구운몽 뭐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듯)

 

즉 말이 좋아서 기생의 이야기를 늘여 놓은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66명의 기생 품평 썰을 풀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되게 좀 거북스럽다만,) 나도 호기심 반, 의아심 반으로 책을 봤다. 책은 굉장히 짧았다. 거기다 작은 책이라서 사실 1시간이면 다 볼 수 있었던 내용이고, 어려운 철학적 내용이 담긴 고전도 아니라 그냥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저자는 무인 가문의 전통을 가진 부호 출신으로 개성이 고향이었다. 과거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뜻을 못 이루자 그냥, 유람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참 부럽고...(ㅠㅠ), 한편으로는 인생 자체가 참 무료했을 것도 같았다. 그는 한량이었지만 시와 서, 그림에 능했다고 한다. 확실히 책을 보니 글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파스텔 풍의 묘사가 느껴지는 듯했다.

 

기생 품평이라고 해서, 야설에 가까운 <금병매> 수준으로 외설스러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기생들의 취미나 습관 그리고 기생들의 모습 등을 짧게 묘사했으며, 기생들에 대한 절개에 대한 부분은 칭송하였으며, 애도하는 부분은 애도했다. 작품 내에서는 외설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혹여나 야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냥 구매하시지 마시고 인터넷 야설을 ㅠ 찾아보시길...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본다면 저자의 이런 행위가 거북스럽지만, 내가 이 책을 읽어본 바로는 저자의 필법은 기생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본 시각이었다. 기생의 지조를 높이 산 부분도 있었으며, 기생들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칭송한 부분도 있었다. 마음이 가던 여인에 대한 토로도 있었다. 기생의 취미나 습관 등을 이리도 자세하게 기억하여 기록을 남길 정도니 그가 꽤나 꼼꼼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좋아하는 기생은 아름답고 자태가 고운 기생이나, 섹시한 기생보다는 문학적 재능이 높은 문인의 자태가 있는 여인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튼 조선 말 기생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으며, 재미있는 점은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돈에 영혼과 몸을 팔아버린 사람들도 많았다는 점도 느꼈다.

 

책을 보며, 사실 이런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생업이 없더라도,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 여인들과의 추억이 많은 점 등은, 아무리 남자가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여인에 약할 수밖에 없듯, 부러움을 불러일으키긴 했었다. 모쪼록, 솔직하고 진솔한 필체가 돋보였으며, 고전 치고는 독특한 책임에는 분명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문학적인 외설스러움을 기대하고 중고서점에서 샀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만, 따뜻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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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 임동석 중국사상 61
오기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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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을 때, 현대 지도자나 리더의 입장으로 가장 귀를 기울여야 하는 사상은 병가 사상이 아닐까 싶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은 그 어떤 사상들도 값진 사상임에 틀림없지만, 경영학적인 부분에서 본다면, 가장 현대적인 사상은 병가 사상이다. 개인적으로 유가의 인위를 앞세운 사상은 너무 이상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으며, 흔하게 말하는 리더십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법가 사상은 너무 극단적인 형벌 주의를 강조하고 있어서, 폐단이 크다고 생각한다.


유가와 법가 두 사상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쳤다면, 병가 사상은 상당히 현실론적이면서도 치우치지 않은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병가에서 가장 성전처럼 받들여지는 책은 <손자병법>이며, 지금 리뷰하려는 <오자병법> 역시도 손무의 저서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손자병법>은 동양 최고의 병서로 인정받는 반면 <오자병법>은 그에 비해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최근 임건순 작가의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를 읽으며 익숙한 <오자병법>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한 해에 <손자병법>은 다섯 번 이상을 읽는데 반해, <오자병법>은 한 번 들춰볼까 말까 했던 나였다. 그래서 이번에 책을 읽을 때는 진득하게 사색을 곁들여서 느리게 음미하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결과 이전에는 보이지 않은 몇 가지 부분들이 들어왔다.


잘 알다시피 책의 주인공 오기는 천민 출신의 재상이자 장군이었다. 그래서 <오자병법>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의 호명지심(好名之心)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책이었다. 호명지심이란 인간의 명예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공을 이뤄, 출세를 하겠다. 내 이름을 천하에 알리겠다는 그런 인간의 명예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부분이 보이는 것이 <오자병법>이다. 이것은 신분이 미천한 오기 스스로가 가졌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손자병법>에 주로 나오는 사상은 호리지성(好利之性)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익을 탐하는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쟁을 경제력, 그리고 유형의 가치로 파악하고자 한 손무. 그런 그의 병법에는 당연히 유형의 가치를 탐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에 입각하여 병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제 <손자병법>에서는 싸워서 이기더라도 본전보다 경제적으로 손해일 경우 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 그리고 전쟁 전에 계산기를 철저하게 두드리라는 사상 등에서도 인간의 호리지성(好利之性) 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


두 병법 책에서의 철학은 이렇듯 극명하게 갈린다. 호리지성은 유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한 것이고, 호명지심은 무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을 이야기한 것으로, 이 부분만 봐도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보인다. 다만 두 병서의 공통점을 뽑아내자면, 무형적이건 유형적이건을 떠나 '인간의 욕심과, 탐욕'에 기초하고 있다는 부분도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전쟁의 목적의 첫 번째는 실제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보자면 <손자병법>의 호리지성이 생각될 만 하다. 그러나 전쟁이 어디 실리만을 추구하여서 일어나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전쟁의 이유는 실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명분'일지도 모른다. 숱한 전쟁들이 쓸데없는 명분론으로 자행된 것, 그 부분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전쟁의 명분론 적인 입장은 <오자병법>의 호명지심이 연상된다. 게다가 <오자병법>에서도 호명지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호리지성적인 부분도 강조하고 있었다. 사실 모든 병법의 요체는 호리지성을 밝힌 철학이니까,


<오자병법>의 독특한 부분은 <손자병법>에 비해 상당히 전술론적으로 구체적인 부분이 보였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손자병법>에서 항상 강조했던 것, 전쟁은 최대한 빨리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부분, 그러나 <손자병법>에서는 거국적인 전략론을 주장하고 있었지, 어떻게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야 하는지 방법론적인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이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혀놓고 있었다.


군마를 관리하는 방법, 그리고 행군을 하는 방법, 그리고 개별 병사들에게 맞게 장비를 장착하는 부분, 그리고 병사들의 신분에 따라서 부대를 다르게 나눠서 용병하는 방법 등등 <오자병법>은 <손자병법>에서 밝히지 않은 세심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자병법>이 거국적인 전략론을 밝힌 병서라면 <오자병법>은 구체적인 전술론 적인 부분도 잘 고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병서는 상당히 상호보완적인 병법서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자병법>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군사의 정예화'였다.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장군은 사졸들을 때론 속이기도 해야 한다며, 사졸들을 너무 아껴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주장을 했다. 이런 부분에서 <손자병법>의 가치관은 병사와 사졸들을 승리를 위한 전쟁의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부분도 연상됐었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달랐다. 오기의 역사적인 행적,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병사들과 똑같이 지내는 그의 모습, 격식 없는 사령관의 모습 등이, 그대로 <오자병법>에 투영됐는데, 병사를 아끼고 병사에게 포상을 주어 그들의 호명지심을 일깨우고, 그들의 공명심을 이끌어내, 장군과 병사가 하나가 되어, 굳건한 훈련으로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군대는 부자(父子)의 군대였었다. 병졸과 장수는 아들과 아버지가 되어 가족처럼 한마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오기의 방침이다.


실제 오기의 전술들을 자세히 보면, 기습전과 스피드한 별동대 전략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이런 것들에 밑바탕은 바로 정예화된 군사가 있다는 전제다. 장군과 동고동락하며 힘든 훈련을 견딘 군대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며, 일당백의 정예 군사들이기 때문에, 수만 많은 오합지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오기의 생각이다. 따라서 오기는 승리의 요건을 인간에게서 구했고, 이런 사상은 손무가 승리를 세에서 구한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손무는 세가 완성되지 않으면 싸움을 피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런 오기의 사상은 정치에서도 이어지는데, 바로 군주와 장군 역시도 화합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으며, 군대가 강하려면 군주가 나라의 백성들과도 화합이 잘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 오기였었다. 반면 손무도 군주의 정치를 중요시하긴 했으나 결정적으로, 장수의 군권과 군주의 정치권을 분리하길 요구했고, 군주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장수의 권한에 관여해선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즉 화합은 하되, 군주와 장군 사이의 고유 권한은 침해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사실 현실론적으로 봤을 때, 이 부분에서는 오기의 사상이 손무의 사상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군주가 실제적 힘, 군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에로부터 군권을 잃으면 나라 자체가 망한다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숱한 군주들은 오히려 장수의 군권을 통제하려고 애를 썼다. 이런 부분에서 군주와 장군은 시각을 공유하고 같은 입장으로 화합하는 것이 전쟁에서는 더 옳은 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오기를 법가사상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바로는, <오자병법>은 유가의 사상이 많이 스며든 책이다. 오히려 법가적인 부분보다는 유가적인 부분이 보이는데, 선비의 명예를 중시한 부분과 <오자병법>에서 역설하는 호명지심은 명예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그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오자병법>의 첫 챕터인 도국에서 오기는 군사 이전에 좋은 정치를 역설하고 있었다. 그 좋은 정치의 표본은 바로 유가들이 주장하는 덕과 인을 갖춘 군주가 백성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오기가 이전에 배웠던 증삼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발견했었다. 실제로 그는 군사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치사상가였었다. 이런 시각은 <육도>, <삼략> 등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서양의 마키아벨리 역시도 전쟁을 정치와 연계하여서 생각했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데, 실제 마키아벨리는 군사 문제에도 상당히 뛰어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그가 생애에 출간한 책은 <전술론> 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손무는 <손자병법>에서 군주의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긴 하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전쟁과 경제학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오히려 손무는 장군은 군주의 정치에 감놔라 배놔라 하면 안되며, 군주는 장수의 일에 간섭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같은 사상을 가진 것이 사마양저가 쓴 <사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 손무는 이전 병법가인 사마양저의 저술에서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래서 두 병서는 상호보완적이다. 경제적으로 전쟁을 풀어 놓은 <손자병법>, 정치와 연계하여 전쟁을 생각한 <오자병법>, 호리지성을 강조한 <손자병법>, 호명지심을 높이 산 <오자병법>, 객관적인 조건과 물질적인 조건, 그리고 세를 강조한 <손자병법>, 무형적인 정신력과, 질적 정예화, 그리고 인간의 믿음을 강조한 <오자병법>... 양 병서는 이렇게 사상적인 대조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 사상이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손무 역시도 호명지심을 의식하고 있었으며, 오기 역시도 호리지성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기 역시도 전쟁의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을 중요시했으며, 전쟁에는 속임수가 필요하다는 손무의 관점 역시도 따르고 있었다. 손무가 밝히지 못한 속전속결의 요체를 오기는 세심하게 밝혀놓고 있었으며, 오기는 더 나아가 <손자병법>에서 밝혀놓지 않은 장비에 대한 부분과, 군마에 대한 관리법도 소상하게 다뤄놓고 있었다.


전쟁을 인생에 비유를 해 보자, 물론 싸우기 전에는 분명 <손자병법>의 관점대로, 최대한 객관적인 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건을 최대한 좋게 만들고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 싸움이라는 것이 내가 유리한 상태로 싸우기만 하는가? 아니다, 때론 인생에서 물러설 수 없을 때는 극도로 불리한 경우에서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럴 때 <손자병법>은 피하고 다음을 기약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다르다. 화합과 단결, 그리고 질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고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불리하더라도 한 번 해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기의 사상이다. 불리한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서는 손무의 관점보단, 오기의 관점이 더 맞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생각해봤다.



#. 인상 깊은 구절


무후가 일찍이 어떤 일에 모책을 짜고 있었는데 여러 신하들 그 누구도 그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자 무후는 우쭐하여  조회를 파하고 즐거운 얼굴색이었다. 오기가 나서서 진언하였다. '초 장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이 능히 그 스승 될 만한 자를 얻으면 왕(王)이 되고 그 친구될 만한 자를 얻으면 패(覇)가 된다 하였소. 지금 과인은 재주가 없는 데도 여러 신하들 중 나를 미칠 만한 자가 없으니 초나라는 이미 끝난 일이오! 이처럼 초 장왕이 근심으로 여긴 바를 주공께서는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으니 저는 몰래 생각건대 두렵습니다.'  


무릇 전투 현장에서 곧바로 시신이 될 땅에서 반드시 죽으리라 여기면 살아날 것이요, 요행히 살리라 하면 죽고 만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손자병법 - 손무>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 임건순>

<울료자 - 울료> -> 오기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 받은 병법

<전술론 - 마키아벨리>

<전쟁론 - 클라우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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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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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선생의 글은 재미있다. 확실히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지만, 주류 사학을 배제하는 서술에서 여러 의미로 앞서 나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역사라는 것은 사실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관의 관념이 투입된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학문이다. 기록물 자체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도 그렇고 그것을 해석하는 현대의 사관들의 관념 역시도 있기 때문에 사실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해석되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함이 맞다.

 

 다소 그래서 이덕일 선생의 책을 볼 때에는 피곤했다. 과연 이 사람의 신선한 주장이 맞는가에 대한 판단도 해야 했고 주류 사학이 주장하는 논리가 맞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도 동시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한 권을 보기가 상당히 피곤했던 게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책은 이덕일의 해석이 옳은 부분이 많았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왕과 나>도 생각보다 절제된 감정으로 글을 쓰고 있어서 예전의 이덕일 선생의 필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참모론이라는 주제를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쓴 책이다. 보통 역사 책의 경우는 군주에 대한 내용이나 지도자에 대한 처세학서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요즘 돋보이는 부분이 참모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발하게 이인자 론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와 책들이 써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주요한 참모들을 뽑아서 설명하고 참모의 자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책이다.

 

일단 이 책의 성격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책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참모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기 때문에, 이덕일의 조곤조곤하면서도 세심한 해석은 참모들의 능력을 잘 분석하고 생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았다. 이덕일의 새로운 주장을 주장하는 책은 다소 과격한 논의 전개가 돋보여서 사실 좀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저자는 그런 과격한 모습보다는 친절한 안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11명의 참모가 나온다. 이런 책들의 경우 2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첫 번째 경우는 소수의 사람을 조명하면서 깊이 있게 주제를 설명하는 책과 또 하나의 경우는 여러 사람을 조명하면서 얕고 스치게 하는 대신 다방면적인 주제를 다루는 책이 있다. 예시문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나는 첫 번째 체제의 책이 좋은데, 이 책이 그런 경우다.

 

11명의 참모를 깊이 있게 핵심에 입각하여서, 전반적인 생애를 고찰하며, 마지막의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사학자라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사료에 충실했고 설명도 충실했고 내용의 깊이도 있었다. 너무 길지 않은 적절한 분량과 내용적 깊이, 그리고 대체로 제시한 테마의 주제에 인물이 잘 부합된 해석 등으로 아무튼 괜찮게 봤던 책이다. 굳이 참모론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인물 개개인에 대하여 생애를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참모론에 입각한 처세서라기보단 정통 역사서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물들은 우리가 잘 아는 이인자가 나와 있다. 김유신, 고려의 4장군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홍유), 소서노, 정도전, 황희, 김육, 천추태후, 강홍립, 박자청, 인수대비, 홍국영 등 친숙한 인물도 있으며 다소 생소한 인물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김유신과 정도전이 있어서 흥미롭게 봤었다. 김유신을 다룰 때에는 <화랑세기> 역시도 고찰하고 있는데, <화랑세기>는 진본인지 가본인지 역사학계에서 논쟁 중인데, 이덕일 선생은 진본이라고 믿는 입장인 듯했다.

 

고구려, 고려, 조선 국가적으로도 치우치지 않았고 (물론 사료가 많은 조선이 많긴 하다만...), 이인자라고 해서 신하뿐만이 아닌, 장군이나 태후, 그리고 여왕(소서노)까지 그리고 성별도 남자뿐만이 아닌 여자도 이야기하고 있어서, 치우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도 엿보였다.

 

내가 집중하고 봤던 인물은 김육과, 강홍립니다. 다른 인물들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가볍게 봤지만 김육에 대해서는 지식이 거의 없었는데,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서인이면서도 당론과 반대되는 대동법의 정책을 주장하고 당론보단 나라의 국익을 위해 노력한 그의 모습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강홍립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고 있는 위인이지만 저자의 신선한 해석이 돋보였고, 나라의 배신자라고만 생각했던 그의 이면에는 투항하고도 조선을 위해 노력했던, 우리가 외면했던 던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모쪼록, 서문에 나온 것처럼,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지도자만을 위한 짱사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런 해석에는 일리가 있다. 더불어 그가 서문을 마치면서 한 말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겸허하게 성찰하는 자에게만 역사는 미래의 문을 살짝 열어주기 때문이다.'라는 말 역시도 음미해볼 말이다. 색다른 참모의 시각으로 역사를 풀이한 좋은 양서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치우친 리더만을 위한 책 보단, 이런 참모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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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평전
여명협 지음, 신원봉 옮김 / 지훈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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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를 보면 유비가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중학교 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삼국지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보고 또 보고하면서, 내재된 촉한 정통론을 보지 못하고, 유비 세력이 아군 세력이고 조조의 세력이 적군의 세력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책을 봤었다. 당시 유비 측의 오호대장군이라 일컫는 장군들과 제갈량의 모습은 나에겐 우상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성인이 되어 본 삼국지는 달랐다. 어느 정도 현실화된 나에게 있어서 영웅의 가치는 조조 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일반적으로 악평을 했던 조조의 이면에는 그의 뛰어난 모습이 담아져 있었으며, 역사의 시각이라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유비나 조조 어느 한 쪽을 지지할 순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조조는 삼국지의 숱한 군웅들을 이겨오면서, 성장했던 세력이고 유비는 그런 조조에게 항상 밀렸다는 것이다.

 

나는 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 삼국지를 보자면 전반부를 장식하는 영웅은 조조라고 생각하고 후반부를 장식하는 영웅은 제갈량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갈량 사후 삼국지는 재미가 많이 없었으며, 사마의의 비범함을 제지할 상대가 없어서 다소 삼국지의 재미가 떨어졌었다. 사실 제갈량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알고 있고 무용담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것은 80%가 거짓말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사에 나온 제갈량은 비바람을 몰아치는 신선의 풍모도 없었으며, 주유와 지모 싸움을 하지도 않았고, 더불어 사마의의 군대를 성문을 열고 모략으로 퇴각시키지도 않았다.

 

나는 역사적인 제갈량의 모습이 궁금해서 정사 삼국지 촉서와 더불어 제갈량의 삶과 사상을 분석한 평전을 구해 읽었다. 오늘 리뷰할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갈량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다. 책의 구성은 반은 제갈량의 인생에 대해 실증적으로 저자가 밝히고 있다. 구성은 여느 인물 평전과 같이 서사적인 구성이며, 따라 읽다가 보면, 굳이 삼국지 촉서를 읽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제갈량의 실제적 삶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또 다른 부분은 제갈량의 사상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와 군사적인 사상 그리고 경제 사상과 법제사상, 윤리사상 등 제갈량이 행하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심층적인 접근을 하며 분석을 했다. 즉 구성 자체는 5:5의 비율로 삶과 사상을 동일한 비율로 잘 나눠 설명하고 있었으며, 꽤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물론 한계도 있는데 지적하겠다.)

 

일단 제갈량은 동양에서는 굉장한 지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비단 중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그리고 서구권에서도 제갈량은 신비스러운 모략가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은 제갈량의 본 모습이 아니다. 제갈량은 모략과 계략보단, 원리원칙 주의자였으며, 그 잔꾀를 부리기보단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도적인 입장의 위인이다. 그는 군사 부분이나 모략 부분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 아닌 정치적인 부분과 민생 안정적인 부분에서 탁월한 두각을 보여줬다.

 

더불어 거국적인 시각 역시도, 시국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유비가 관우 사후에 무리하게 군사를 일으켜 제갈량이 구상했던 시국을 망쳐놓았지만, 제갈량의 시각 자체는 탁월했었다.

 

 책에서 본 제갈량의 모습 중 가장 눈에 들어온 점은, 정적이 있더라도,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그의 판단력이 돋보였다. 실제로 우리는 제갈량이 정적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그렇지 않다. 촉한이 건국되고 유비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유비의 집단은 굉장히 파가 나눠져 있었다. 관우를 중심으로 한 직계 수하 세력, 제갈량을 중심으로 한 형주의 선비들, 그리고 이엄을 중심으로 한 익주의 투항 세력들이다. 제갈량은 이런 정적들과의 권력 다툼이 있었다. 법정과 제갈량은 사실 소설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세력으로 보면 파벌이 달랐다. 그러나 제갈량은 공과 사는 구분하여서 일을 처리했다. 추후에 제갈량이 원정을 나갔을 때 이엄이 제갈량을 시기하여 군량을 대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제갈량은 대노하여 군법을 물어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유배를 보낸다. 제갈량 사후 이엄은 울면서 '제갈량이 죽었으니 이제 누가 나를 써 주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제갈량은 정적에게조차 인정받는 모습을 보였다. 정적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굉장한 친화력이라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위나라 군대가 촉한을 공격할 때 제갈량의 무덤을 지날 때 인사까지 하고 갔을 정도니 그의 인망이 이와 같았다.

 

우리는 보통 제갈량을 가난한 선비에 비유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의 누나들은 모두 형주의 세력가들과 결혼을 했고, 당연히 제갈량은 그 혜택을 받고 자랐었다. 형주는 전란 기간 동안 다소 조용하던 지역이었는데 이곳에 많은 선비들이 은거하러 와서 학풍이 높았다. 그런 곳에서 제갈량은 조용히 성장했다. 그의 장인 황승언 역시도 그 부분의 은사였으며, 당대에 내놓으라 하는 기재들과 난세지만 조용히 공부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는 부분에서 제갈량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책을 꼼꼼하게 독서하는데 제갈량은 책을 대강 훑으며 핵심 요약만을 읽고 지나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글들을 보면 어긋남이 없었으니 그런 능력이 부러웠다.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로 비유를 한 부분이나, 서서와 최주평에게 '자네들은 군수 정도밖에 되지 못할 걸세.'라고 한 발언 등으로 볼 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히 뛰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생애에 대한 부분은 사서를 읽어서 별다른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이할 사항은 맹획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는 아무 비판 없이 넣었는데, 사실 맹획과 남만 정벌에 대한 부분은 아직까지 검증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칠종칠금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왈가왈부하는 부분인데, 이런 부분을 짚지 않고 그냥 사실로 기록한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얼추 제갈량의 실제 모습을 잘 복원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경제사상 부분이다. 사실 의문이 드는 것이, 제갈량의 촉한은 위나라의 국력의 1/10 수준이다. 그런데도 몇 번이나 군대를 이끌고 공세를 취하는 입장이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국력도 약한데 어떻게 그런 것을 감당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떤 경제 정책을 시행했는지, 궁금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국세를 조성하고 있었다. 우선 가장 보편적인 부분이 소금과 철의 전매제도 시행인데, 역시나 제갈량도 이런 부분을 잘 간파하고 시행하고 있었다. 좀 어이가 없는 부분은 소금 전매제도를 이야기하면서 동굴의 천연가스 이야기까지 확장하여서 설명하는데 이런 부분도 가설이긴 하지만 너무 앞서간 주장 같았다. 그러나 저 두 제도는 중국의 경제 정책의 핵심이었으니 제갈량도 따랐을 것이다.

 

한중 쟁탈전 당시 조조는 퇴각을 하면서 한중의 인구를 거의 모두 이주시켰다고 책에는 나왔다. 그래서 유비가 한중을 장악했을 때, 주변 신하들이 '백성이 없는데 무슨 이득이겠습니까.' 하고 상소까지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런 한중에 농본 정책을 시행하는데 둔전을 감행했다. 따라서 한중을 빨리 원상복귀 시켰으며 이런 한중은 훗날 위나라 침공의 핵심 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 외 각종 양잠이나 농업 등을 장려하고, 특히나 특산품인 촉한의 비단을 값비싸게 거래를 하여 국가적으로 이득을 많이 봤다고 한다. 촉 지역은 비단이 아주 곱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제갈량이 활용했다고 한다. 즉 상업적으론 철과 소금의 전매제를 시행하고, 농업 부분에서는 농본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며, 양잠을 하여 비단을 특산품으로 활용하여 외교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특히나 관중을 흠모했는데 그는 분명 <관자>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 봤을거다. 유선에게 필사까지 해 줬다고 하니) <관자>는 제자서 중 잡탕적 성격이지만 상업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나와 있는 책이니, 제갈량이 이런 부분도 참고를 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제갈량의 '출사 표'를 보면서 '울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걸로 말한다면... 나는 충신이 아니겠다. 사실 제갈량이 쓴 출사표를 보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이렇게 깊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상세한 인사정책에 대해서도 그가 수고를 한 부분도 인정을 했지만 감동까진 안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는 제갈량의 삶의 부분으로 볼 때는 감동을 했었다.

 

 유비를 사람들은 대체로 덕이 많고 어진 군주로 평가하는데, 사실 유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위인이다. 그 역시 한 고조 유방과 같이 음험하고 모략과 계략에 빠삭한 군주다. 삼국지를 조금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면 유비나 조조나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제갈량과 유비의 사상은 전혀 다르다. 제갈량은 오로지 정도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품이고 유비는 다소 모략적이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인덕으로 감췄을 뿐이다. 제갈량은 아마 알았을거다. 유비가 죽기 전 유선을 부탁하며 눈물 어리게 조위를 타도해달라고 할 때, 유비가 어떤 인간인지 몰랐을 리 없다.

 

유비는 제갈량을 빠삭하게 이해했다. 그에게 맡기면, 그는 배신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마지막으로 눈물로 호소했다. 사실 제갈량의 구상에 초를 친 것은 유비다. 결국 유비는 대업의 큰 구상을 감정적인 원한 때문에 그르쳤고, 그 수습을 제갈량은 하려고 노력했다.

 

유비 사후 제갈량이 받는 압박은 심각했다. 사기는 떨어졌고, 군주는 우매하고, 집정 대신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나라와의 관계도 회복해야 하고 국토는 형주를 빼앗긴 상황에 모든 것이 최악인 상황이었다. 더불어 밑에 남만의 세력들마저도 반기를 드는 입장이었다.

 

누가 봐도 사실 제갈량의 북벌 정책은 무리수가 따랐다. 그러나 제갈량은... 노력했다. 안될 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피하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그는 군주를 보좌하면서 두마음을 품지 않았고, 사욕을 위해 재물을 채운 적이 없었다. 죽을 때 나무 몇 그루밖에 없었던 그의 재산으로 볼 때 그는 청렴한 관리였다.

 

안정적인 그라서, 군사를 움직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나라에서 군대를 일으킨다는 것은 굉장히 백성들로부터는 고단한 일이다. 백성들이 전쟁을 좋아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제갈량이 군사를 몇 번이나 일으켜도 백성들은 불만하지 않았고, 제갈량이 쓰러져 죽었을 때 온 국민이 울었다고 했다. 이것은 제갈량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공감 받는 정치인이었는지 모범적인 정치인이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는 만능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 역시 실수를 했고 마속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래서 군사를 돌려야만 했었다. 그도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긴 적 없이 군량이 없어서 돌아온 적도 많았다. 그가 군사적 재능이 없다면, 위나라가 방어 위주로 정책을 펴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마의가 국지전으로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장기전으로 전쟁을 끌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위연과의 자오곡 계책으로 인해 공명을 폄하하는데, 분명한 것은 그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 (책의 저자는 공명의 편이다.),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공명이 병법을 모른다는 주장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비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상대의 모략을 알아내고, 화살을 얻어오는 그런 신기를 부리는 제갈량은 없었다. 다만 역사적 제갈량은 자신의 주어진 여건에 충실히 살았고, 질 줄 알면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군주의 유언을 따랐다. 어찌 보면 어리석다고도 평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다. 그의 이런 우직한 충성심은 훗날 여러 사람들에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적국에서조차 애도하고 명신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세월이 흐르고 한족의 이데올로기가 겹치고,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허구가 붙여졌을 뿐이지 역사적인 제갈량의 모습은 성실 그 자체였다.

 

역사의 제갈량은 실수도 했고, 그 실수 때문에 스스로의 관작을 낮췄으며, 그럼에도 인재가 없는 촉을 책임 지려고, 고심했고 분투했던 한 인간이었다. 지금 유행하는 드라마 정도전 역시 자신의 이상향은 '제갈량'으로 잡고 있다. 두 사람은 엄청나게 공통점이 많다. 반쪽짜리 성공자였다는 점. 재상 주의를 지향했다는 점, 군주에 충심을 다 했다는 점, 학문이 뛰어난 점, 문무를 겸비했다는 점, 행정에 능했다는 점, 도덕적인 탄핵이 없다는 점, 청렴 결백했다는 점, 성장기에 신진사대부와의 교류와 형주의 선비 집단과의 교류 등, 공통점이 아주 많은 두 사람이다.

 

실제로 <삼봉집 경제문감>에서 정도전은 제갈량과 재상 주의를 엄청 칭송한다. 아마도 자신도 그런 청렴한 재상으로 나아가겠다는 부분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제갈량은 그의 재상 정치의 롤모델이 됐던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갈량과 정도전의 가장 큰 차이는 정적에 대한 대응이었다. 제갈량은 정적과의 감정적인 대응을 피하고 포용하고 포섭하고 공과 사를 그르치지 않으려 노력하여 상대적으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사실 좀 편협했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정적을 몰살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차이였다. 그런 안정과 화합의 가치관은 국정에서도 보여준다. 국민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고, 조세를 감면하면서도 법제 기강을 확립하여 국가의 법률을 바로잡았다. 제갈량이 행한 법제는 굉장히 강도가 높은 법제였지만 국민들은 불평불만하지 않고 따랐다는 것. 그것은 제갈량의 공감력의 힘이었다. 더불어 정적들과의 관계도 적절하게, 공사를 구분하며, 처신하고 화합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에서 율곡 이이가 추구하던 상생의 정치의 모습도 떠올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갈량이 정도전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품과 정치력과 화합의 관점으로 봤을 때, 제갈량의 처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선조들은 이런 모습에서 제갈량에게 감동받지 않았을까?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없듯, 위인이라 칭송받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실수하는 모습이나 부족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제갈량이나 정도전 역시 우리와 같이 뜨거운 피를 흘리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 점은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제갈량에게서 아쉬운 부분은 아무래도 인재관이다. 마속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장완과 강유의 천거 등도 아쉽다. 실제로 제갈량이 죽고, 군권은 강유에게 인사권과 정치권은 장완에게 넘겨준다. 두 사람은 화합하지 못했고, 제갈량 사후 내시 세력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런 황제를 보필하지 못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촉한은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갈량이 그들을 지목하고 국사를 맡겼을 때에는 어쩌면 인재가 없는 촉의 한계라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정몽주가 죽고 고려가 망했듯, 그는 촉한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의 사후 촉한은 급격하게 쇠락했으며, 결국 멸망했다. 역사적으로 패자에 불과한 제갈량은 사후 굉장히 추존되며, 지금은 동양의 지혜로 상징되고 있다. 아름다운 현실의 패배자였지만, 역사적인 승리자가 된 셈이다. 이런 부분에서 현시대에서는 불행했었고 역사적으로 승리자가 된 선배들, 플라톤이나 공자의 삶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찌하랴, 살아서 이루고자 했던 촉한 부흥의 꿈을 못 이루고 끝내 괴롭게 죽어야만 했던 그, 정군산에 묻힌 그는 후세의 숱한 칭송에도 불구하고 말이 없다. 과연 그는 이런 칭송들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덧없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면, 감응력이 뛰어난 정치가, 안정적인 내면을 가진 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국내에서 나온 책들 중 제갈량에 대해서 소상하게 밝혀놓은 책이다. 삼국지를 읽지 않더라도 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며, 삼국지를 읽고 제갈량에 대해 역사적으로 자세히 알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도서다. 어차피 똑바로 된 제갈량에 대한 평전은 내가 알기로 이 책 밖에 없는 듯싶다. 삼국 시대 후반의 실제 역사와 더불어, 눈물겹게 아름다운 패자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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