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파잡기 - 개성 한량이 만난 평양 기생 66인의 풍류와 사랑
한재락 지음, 이가원.허경진 옮김 / 김영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신기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여성들이 보기에 굉장히~ 거북스러운 주제를 가지고 있는 고전이다. 개성 출신 부유층 한량이 평양의 기생 66명을 만난 썰을 풀어놓은 것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녹파라는 말은 평양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비슷한 주제의 책으로 명나라 말기에 <판교잡기> 라는 책이 있다. 그 책 역시도 풍류와 음풍을 읊고 있는 책인데, 뭐 그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아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홍루몽 - 구운몽 뭐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 듯)

 

즉 말이 좋아서 기생의 이야기를 늘여 놓은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66명의 기생 품평 썰을 풀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되게 좀 거북스럽다만,) 나도 호기심 반, 의아심 반으로 책을 봤다. 책은 굉장히 짧았다. 거기다 작은 책이라서 사실 1시간이면 다 볼 수 있었던 내용이고, 어려운 철학적 내용이 담긴 고전도 아니라 그냥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저자는 무인 가문의 전통을 가진 부호 출신으로 개성이 고향이었다. 과거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뜻을 못 이루자 그냥, 유람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참 부럽고...(ㅠㅠ), 한편으로는 인생 자체가 참 무료했을 것도 같았다. 그는 한량이었지만 시와 서, 그림에 능했다고 한다. 확실히 책을 보니 글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파스텔 풍의 묘사가 느껴지는 듯했다.

 

기생 품평이라고 해서, 야설에 가까운 <금병매> 수준으로 외설스러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기생들의 취미나 습관 그리고 기생들의 모습 등을 짧게 묘사했으며, 기생들에 대한 절개에 대한 부분은 칭송하였으며, 애도하는 부분은 애도했다. 작품 내에서는 외설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혹여나 야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냥 구매하시지 마시고 인터넷 야설을 ㅠ 찾아보시길...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본다면 저자의 이런 행위가 거북스럽지만, 내가 이 책을 읽어본 바로는 저자의 필법은 기생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본 시각이었다. 기생의 지조를 높이 산 부분도 있었으며, 기생들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칭송한 부분도 있었다. 마음이 가던 여인에 대한 토로도 있었다. 기생의 취미나 습관 등을 이리도 자세하게 기억하여 기록을 남길 정도니 그가 꽤나 꼼꼼한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좋아하는 기생은 아름답고 자태가 고운 기생이나, 섹시한 기생보다는 문학적 재능이 높은 문인의 자태가 있는 여인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튼 조선 말 기생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으며, 재미있는 점은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돈에 영혼과 몸을 팔아버린 사람들도 많았다는 점도 느꼈다.

 

책을 보며, 사실 이런 저자가 부럽기도 했다. 생업이 없더라도,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 여인들과의 추억이 많은 점 등은, 아무리 남자가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여인에 약할 수밖에 없듯, 부러움을 불러일으키긴 했었다. 모쪼록, 솔직하고 진솔한 필체가 돋보였으며, 고전 치고는 독특한 책임에는 분명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문학적인 외설스러움을 기대하고 중고서점에서 샀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만, 따뜻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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