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 임동석 중국사상 61
오기 찬, 임동석 역주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생각했을 때, 현대 지도자나 리더의 입장으로 가장 귀를 기울여야 하는 사상은 병가 사상이 아닐까 싶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은 그 어떤 사상들도 값진 사상임에 틀림없지만, 경영학적인 부분에서 본다면, 가장 현대적인 사상은 병가 사상이다. 개인적으로 유가의 인위를 앞세운 사상은 너무 이상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으며, 흔하게 말하는 리더십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법가 사상은 너무 극단적인 형벌 주의를 강조하고 있어서, 폐단이 크다고 생각한다.


유가와 법가 두 사상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쳤다면, 병가 사상은 상당히 현실론적이면서도 치우치지 않은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병가에서 가장 성전처럼 받들여지는 책은 <손자병법>이며, 지금 리뷰하려는 <오자병법> 역시도 손무의 저서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손자병법>은 동양 최고의 병서로 인정받는 반면 <오자병법>은 그에 비해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최근 임건순 작가의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를 읽으며 익숙한 <오자병법>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한 해에 <손자병법>은 다섯 번 이상을 읽는데 반해, <오자병법>은 한 번 들춰볼까 말까 했던 나였다. 그래서 이번에 책을 읽을 때는 진득하게 사색을 곁들여서 느리게 음미하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결과 이전에는 보이지 않은 몇 가지 부분들이 들어왔다.


잘 알다시피 책의 주인공 오기는 천민 출신의 재상이자 장군이었다. 그래서 <오자병법>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인간의 호명지심(好名之心)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책이었다. 호명지심이란 인간의 명예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공을 이뤄, 출세를 하겠다. 내 이름을 천하에 알리겠다는 그런 인간의 명예욕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부분이 보이는 것이 <오자병법>이다. 이것은 신분이 미천한 오기 스스로가 가졌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손자병법>에 주로 나오는 사상은 호리지성(好利之性)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익을 탐하는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쟁을 경제력, 그리고 유형의 가치로 파악하고자 한 손무. 그런 그의 병법에는 당연히 유형의 가치를 탐하는 인간의 본성, 호리지성에 입각하여 병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제 <손자병법>에서는 싸워서 이기더라도 본전보다 경제적으로 손해일 경우 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 그리고 전쟁 전에 계산기를 철저하게 두드리라는 사상 등에서도 인간의 호리지성(好利之性) 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


두 병법 책에서의 철학은 이렇듯 극명하게 갈린다. 호리지성은 유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한 것이고, 호명지심은 무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을 이야기한 것으로, 이 부분만 봐도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보인다. 다만 두 병서의 공통점을 뽑아내자면, 무형적이건 유형적이건을 떠나 '인간의 욕심과, 탐욕'에 기초하고 있다는 부분도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전쟁의 목적의 첫 번째는 실제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보자면 <손자병법>의 호리지성이 생각될 만 하다. 그러나 전쟁이 어디 실리만을 추구하여서 일어나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어쩌면 전쟁의 이유는 실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명분'일지도 모른다. 숱한 전쟁들이 쓸데없는 명분론으로 자행된 것, 그 부분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전쟁의 명분론 적인 입장은 <오자병법>의 호명지심이 연상된다. 게다가 <오자병법>에서도 호명지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호리지성적인 부분도 강조하고 있었다. 사실 모든 병법의 요체는 호리지성을 밝힌 철학이니까,


<오자병법>의 독특한 부분은 <손자병법>에 비해 상당히 전술론적으로 구체적인 부분이 보였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손자병법>에서 항상 강조했던 것, 전쟁은 최대한 빨리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부분, 그러나 <손자병법>에서는 거국적인 전략론을 주장하고 있었지, 어떻게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야 하는지 방법론적인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이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혀놓고 있었다.


군마를 관리하는 방법, 그리고 행군을 하는 방법, 그리고 개별 병사들에게 맞게 장비를 장착하는 부분, 그리고 병사들의 신분에 따라서 부대를 다르게 나눠서 용병하는 방법 등등 <오자병법>은 <손자병법>에서 밝히지 않은 세심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자병법>이 거국적인 전략론을 밝힌 병서라면 <오자병법>은 구체적인 전술론 적인 부분도 잘 고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병서는 상당히 상호보완적인 병법서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자병법>의 가장 큰 핵심은 바로 '군사의 정예화'였다.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장군은 사졸들을 때론 속이기도 해야 한다며, 사졸들을 너무 아껴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주장을 했다. 이런 부분에서 <손자병법>의 가치관은 병사와 사졸들을 승리를 위한 전쟁의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부분도 연상됐었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달랐다. 오기의 역사적인 행적, 병사들과 동고동락하며, 병사들과 똑같이 지내는 그의 모습, 격식 없는 사령관의 모습 등이, 그대로 <오자병법>에 투영됐는데, 병사를 아끼고 병사에게 포상을 주어 그들의 호명지심을 일깨우고, 그들의 공명심을 이끌어내, 장군과 병사가 하나가 되어, 굳건한 훈련으로 정예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군대는 부자(父子)의 군대였었다. 병졸과 장수는 아들과 아버지가 되어 가족처럼 한마음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 오기의 방침이다.


실제 오기의 전술들을 자세히 보면, 기습전과 스피드한 별동대 전략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이런 것들에 밑바탕은 바로 정예화된 군사가 있다는 전제다. 장군과 동고동락하며 힘든 훈련을 견딘 군대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며, 일당백의 정예 군사들이기 때문에, 수만 많은 오합지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오기의 생각이다. 따라서 오기는 승리의 요건을 인간에게서 구했고, 이런 사상은 손무가 승리를 세에서 구한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손무는 세가 완성되지 않으면 싸움을 피하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런 오기의 사상은 정치에서도 이어지는데, 바로 군주와 장군 역시도 화합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으며, 군대가 강하려면 군주가 나라의 백성들과도 화합이 잘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 오기였었다. 반면 손무도 군주의 정치를 중요시하긴 했으나 결정적으로, 장수의 군권과 군주의 정치권을 분리하길 요구했고, 군주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장수의 권한에 관여해선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즉 화합은 하되, 군주와 장군 사이의 고유 권한은 침해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사실 현실론적으로 봤을 때, 이 부분에서는 오기의 사상이 손무의 사상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군주가 실제적 힘, 군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에로부터 군권을 잃으면 나라 자체가 망한다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숱한 군주들은 오히려 장수의 군권을 통제하려고 애를 썼다. 이런 부분에서 군주와 장군은 시각을 공유하고 같은 입장으로 화합하는 것이 전쟁에서는 더 옳은 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오기를 법가사상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바로는, <오자병법>은 유가의 사상이 많이 스며든 책이다. 오히려 법가적인 부분보다는 유가적인 부분이 보이는데, 선비의 명예를 중시한 부분과 <오자병법>에서 역설하는 호명지심은 명예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그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오자병법>의 첫 챕터인 도국에서 오기는 군사 이전에 좋은 정치를 역설하고 있었다. 그 좋은 정치의 표본은 바로 유가들이 주장하는 덕과 인을 갖춘 군주가 백성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오기가 이전에 배웠던 증삼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발견했었다. 실제로 그는 군사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치사상가였었다. 이런 시각은 <육도>, <삼략> 등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서양의 마키아벨리 역시도 전쟁을 정치와 연계하여서 생각했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데, 실제 마키아벨리는 군사 문제에도 상당히 뛰어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그가 생애에 출간한 책은 <전술론> 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손무는 <손자병법>에서 군주의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긴 하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전쟁과 경제학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오히려 손무는 장군은 군주의 정치에 감놔라 배놔라 하면 안되며, 군주는 장수의 일에 간섭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같은 사상을 가진 것이 사마양저가 쓴 <사마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 손무는 이전 병법가인 사마양저의 저술에서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래서 두 병서는 상호보완적이다. 경제적으로 전쟁을 풀어 놓은 <손자병법>, 정치와 연계하여 전쟁을 생각한 <오자병법>, 호리지성을 강조한 <손자병법>, 호명지심을 높이 산 <오자병법>, 객관적인 조건과 물질적인 조건, 그리고 세를 강조한 <손자병법>, 무형적인 정신력과, 질적 정예화, 그리고 인간의 믿음을 강조한 <오자병법>... 양 병서는 이렇게 사상적인 대조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 사상이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손무 역시도 호명지심을 의식하고 있었으며, 오기 역시도 호리지성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기 역시도 전쟁의 기본적인 물질적 조건을 중요시했으며, 전쟁에는 속임수가 필요하다는 손무의 관점 역시도 따르고 있었다. 손무가 밝히지 못한 속전속결의 요체를 오기는 세심하게 밝혀놓고 있었으며, 오기는 더 나아가 <손자병법>에서 밝혀놓지 않은 장비에 대한 부분과, 군마에 대한 관리법도 소상하게 다뤄놓고 있었다.


전쟁을 인생에 비유를 해 보자, 물론 싸우기 전에는 분명 <손자병법>의 관점대로, 최대한 객관적인 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건을 최대한 좋게 만들고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 싸움이라는 것이 내가 유리한 상태로 싸우기만 하는가? 아니다, 때론 인생에서 물러설 수 없을 때는 극도로 불리한 경우에서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럴 때 <손자병법>은 피하고 다음을 기약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자병법>은 다르다. 화합과 단결, 그리고 질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고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불리하더라도 한 번 해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기의 사상이다. 불리한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서는 손무의 관점보단, 오기의 관점이 더 맞지 않을까? 책을 덮으며 생각해봤다.



#. 인상 깊은 구절


무후가 일찍이 어떤 일에 모책을 짜고 있었는데 여러 신하들 그 누구도 그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자 무후는 우쭐하여  조회를 파하고 즐거운 얼굴색이었다. 오기가 나서서 진언하였다. '초 장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이 능히 그 스승 될 만한 자를 얻으면 왕(王)이 되고 그 친구될 만한 자를 얻으면 패(覇)가 된다 하였소. 지금 과인은 재주가 없는 데도 여러 신하들 중 나를 미칠 만한 자가 없으니 초나라는 이미 끝난 일이오! 이처럼 초 장왕이 근심으로 여긴 바를 주공께서는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으니 저는 몰래 생각건대 두렵습니다.'  


무릇 전투 현장에서 곧바로 시신이 될 땅에서 반드시 죽으리라 여기면 살아날 것이요, 요행히 살리라 하면 죽고 만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손자병법 - 손무>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 - 임건순>

<울료자 - 울료> -> 오기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 받은 병법

<전술론 - 마키아벨리>

<전쟁론 - 클라우제비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